이 영화는 사실 일반적인 로맨스나 드라마가 아니다. 영화로서는 다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다른 부분들을 건드린다. 똑똑하고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는 보수적인 가정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온 뉴욕 트리뷴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제시카. 그녀는 30살을 바라보지만 아직 남자가 없다. 데이트는 여러번 해봤지만 가지각색의 이유로 상대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뛰쳐나왔고, 여전히 그녀는 자신만의 이상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 실린 광고 한 줄.
"새로운 것 없는 관계를 맺는 것은 타성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경험에 앞서오는 두려움과 수줍음 때문이다. 모든 걸 감수할 준비가 된 자만이 살아있는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이것은 릴케를 인용한 것으로, 알파벳 이니셜만으로 광고를 내 릴케를 알지 못하는 일반인(?)을 따돌리려는 술책이었다. 하지만 지적인 제시카는 이를 알아 챈 것. 하지만 구인광고를 낸 사람이 여자임에도 제시카는 전화를 걸어 그녀를 만난다. 수줍게 나마 만나게 된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양성애자로 여러 섹스파트너를 가지고 있고 지적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영화에 매료되었던 것은 영화초반에 나오는 배우들의 지적인 대화이다. 각종 시인과 철학자 등의 고전적인 저서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하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서 나는 매력을 느꼈다. 어떤 이는 그것이 그저 언어유희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언어유희는 사유를 풍부하고 깊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그저 놀이는 아니다. 영화 중간 '숙성시키다'라는 말을, '생각이 점차 깊어진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배운 언어를 배운 것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새롭게 창출해내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작업이다. 아니 로맨스 드라마 감상평에 웬 딴 이야기? 라고 생각지는 말길. 나는 이들의 로맨스에도 빠졌지만 이들의 지적인 대화에 더욱 푹 빠졌기 때문이다. 채널을 돌리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