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영화 한 편을 때려줬다. 참고로 이 영화는 2002년도 봄 작품이고, 제목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지만 내용은 모른다. 감독이나 배우들의 이름을 봐도 그다지 내가 알만한 인물은 없는 듯 하다. 다만 그나마 약간 친숙한 이름이 애슐리 쥬드인데, 누군지는 모른다. 영화속의 백인여자였나? 아님 흑인남자? 애슐리가 누구건 난 상관없다.
대략 난 이런 범죄를 중심으로 한 법정영화들을 좋아한다. 변호사와 검사가 나오고, 쫓고 쫓기는 접전이 벌어지고, 증거채택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장면들이 재미있다. 사실 이 영화는 법정영화라기 보다는 그냥 스릴러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주거니 받거니 말싸움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 아니라 법정 밖에서의 스릴 넘치는 아찔한 순간들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해병대인 남편이 9명을 살인했다는 죄목으로 끌려가고 그의 아내인 변호사 클레어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사건진상을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군법 전문가 찰리를 만나 남편구하기에 나선다. 알 수 없는 괴한으로부터의 침입, 미행, 도청, 심지어는 차가 미끄러져 굴러 아이를 잃는 순간까지 오지만 클레어는 결국 남편을 구해낸다. 법정싸움에서 이긴 것은 아니지만 국방부가 소송을 취하시키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남편을 살린 꼴이 되었다.
하지만 사건은 너무도 시시하게 끝이 나버렸고, 시시하게 이겼다. 뭔가 미심쩍다. 나는 이후의 영화진행을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아마도 클레어와 남편이 기뻐하며 살아가던 도중 괴한들의 습격을 당하고 다시 이에 대한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었다. 멕시코에 살해된 군인의 아내를 인터뷰하러 간 찰리를 통해 들은 사실. 남편 톰이 9명을 살해한 것이 사실이고, 증인 2명을 추가로 죽였다는 것이다. 톰은 다른전화로 이 사실을 엿들었고 클레어를 어찌해보려하지만 순간 나타난 살해현장의 주민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죽는다. 그리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결론은 의외였고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지만 그렇더라도 이 결론이 영화의 흥미를 이끌어내주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한계가 보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 칼 플랭클린은 <광란의 오후>와 <블루데블>을 만든 감독이라고 한다. 두 영화 모두 소설을 영화한 작품이고, 그런 점에서 <하이크라임>도 그러하다는 것. <하이크라임>이 본래 소설이라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고, 감독에게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또 이것이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과 평가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그냥 비디오로 볼 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