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영화 '사토라레'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사토라레'가 '왓 위민 원트'보다 늦게 개봉됐다는 점에서 소재의 원조는 '왓 위민 원트'에게 있으나 두 영화를 비교판단하여 우위를 가릴만큼 비슷한 것은 아니다. 소재는 같지만 그것을 영화에서 풀어가는 방식이나 소재를 이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별개로 취급해야 한다.

'사토라레'가 한 개인의 마음 속 생각을 모두가 공유한다면, '왓 위민 원트'는 개인이 주변의 여성들의 마음 속 생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수와 소수의 시각의 차이를 보인다. '왓 위민 원트'는 한 개인만이 그런 능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투명인간'과도 같다. '투명인간'은 스스로가 보이지 않음으로써 타인을 몰래 관찰하고 그의 행동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을 읽는 '왓 위민 원트'와는 차이를 보이지만 여전히 한 개인이라는 소수가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마샬은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을 가진 자기잘난맛에 사는 광고기획자이다. 그런 마샬에게 달시는 경쟁자로 보일 뿐이고 그녀를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날 주위 여성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읽는 능력을 지니게 된 마샬은 달시의 머리 속 생각을 읽게 되면서 달시의 아이디어를 몰래 가로채 승진의 기회를 잡고, 결과적으로 무능력자로 전락해버린 달시를 간접 해고시키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마샬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달시에게 찾아가 달시의 아이디어를 가로챘음을 고백하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게 되고, 달시는 그런 마샬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마샬과의 에피소드는 달시가 중심이지만 달시 뿐 아니라 그의 딸과도 그의 직장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한 서류정리 여직원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마샬은 그동안 주위 여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 혹은 그들의 힘겨운 직장생활의 속감정들을 들춰보게됨으로써 이들에게 좀더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타인과의 소통을 주제로 한 영화로 봐도 무방하다. 소통의 부재가 안겨주는 슬픔과 고통이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한 남성의 능력으로 인해 '소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 해결자가 '마샬'이라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모순되게도 '남성주월적'이게 되지만, 그가 '남성'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한 사람을 통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주제를 훌륭히 풀어냈다고 볼 수 있겠다.

강력추천한다. 남성우월주의자를 위해서건, 여성을 위해서건, 소통의 부재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해서건,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의미있게 다가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