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그렇게 보고싶던 '올드보이'를 봤다. 또 우연히 케이블 티비를 켰다가 "어! 올드보이네" 이제 막 시작했던 것이다. 이미 깐느 영화제에서 최초로 '심사위원장 대상'을 차지해 화제가 되었던 '올드보이'는 '공동경비구역 JSA'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두번째 복수극이다. 첫번째 복수극은 '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서는 뭐 이런 영화가 다있나, 너무 잔인하다, 라는 식의 느낌만을 간직했던 나는 그것이 비록 눈살찌프리게 하는 잔인한 장면으로 구성되어있을지라도 영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이를 배제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그 영화는 달리 보인다.

'올드보이'는 박찬욱, 유지태, 최민식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모두 출연한 작품이기에 꼭 보고 싶었다. 비록 군에 있던 때 개봉된 영화라 영화관에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보게 되어 기쁘다. 하지만 역시 집에서 케이블 티비를 통해 보는 것은 감동이 떨어지는 듯 싶다. 쇼파에 누워 아작아작 과자를 씹으며 그것도 혼자라면 좋으련만 옆에 엄마도 함께 보고 있어서 성행위 장면에서는 비디오도 아니라 빨리돌리기를 할 수도 없어 약간 뻘쭘했다.

15년 동안이나 이유를 모르고 갇혀버린 오대수는 감방에서 티비를 통해 자신의 아내가 살해됐음을 알았고, 살해자가 자신이라는 지목에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된다. 모든 것이 철저히 통제되어있는 그곳에서 15년이란 세월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11년간은 고통스러웠지만, 나머지 4년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고통도 생활이 되어버리면 무감각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이곳에 갇히게 된 이유가 궁금하고, 누가 가둬놨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다 감옥에서 나오게 되고, 그는 하나하나 추적해가며 진실을 밝혀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살아남은 딸인 미도와 인연을 맺게 되어 사랑하게 되지만, 그는 그녀가 딸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되지만 딸에게만은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기고픈 오대수는 결국 자신을 15년간이나 감옥에 가둬놓았던 이우진을 향해 꼬리 살랑살랑 흔들고 왈왈 짖어대며 심지어는 이우진의 구두를 혀로 깨끗이 핥으며 개처럼 행동하고, 자신의 혀를 가위로 잘라내는 등 자학까지 해가며 이우진에게 사정한다. 결국 이우진은 미도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제 사는 낙이 없어진 이우진은 자신의 펜트하우스 꼭대기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권총자살로 생일 마감한다. 오대수는 미도와 함께 인적드문 산으로 올라가 함께 산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흔히 두 가지다.

"뭐 영화가 이러냐? 내용이 뭔지 모르겠다." 혹은
"대단한 영화다. '복수'를 주제로 인간내면의 심리적인 묘사를 보여줬다"

함께 영화를 본 엄마는 전자의 반응이고, 나는 후자의 반응이다. 전자건 후자건 어느 것이 바르고 옳다는 기준은 없다. 영화는 지금까지 살아온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홍상수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아무나 함부로(?) 보지 않는다. 멋모르고 봤다가는 돈 아까워 죽겠다는 소리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면 그들의 영화를 본다. 일단 평범함을 벗어난 것이 이끌리고, 영화 자체가 주는 느낌이 색다르기 때문이다. 내용이 어떻건 그건 두번째 문제고, 난 색다른 영화들을 좋아한다.

'올드보이'는 확실히 색다르다. 홍상수나 김기덕 같은 색다름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거창하게 '복수'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평까지는 필요없다. 그저 그의 색다름을 즐길 뿐이다. 얼핏 보면 줄거리 하나 없는 이 영화는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른 배우가 했더라면 가뜩이나 내용도 없는 이 영화가 더 어설퍼졌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다음에도 복수전을 보여주겠다며 복수극의 마지막편을 구상중이라 한다. 빨리 나오길 기대하지는 않는다. 천천히 나와도 좋다. 하지만 앞의 두편과 또다른 새로운 복수극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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