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연자리를 두 개나 꿰찬 조재현이 <목포는 항구다>에 이어 출현하는 두번째 작품이다. 두 영화가 동시에 개봉되어 모두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조재현도 이제 '흥행배우' 대열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과거 감칠맛나는 단역이나 조연 수준에 그친 것에 비하면 그로써는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영화 <맹부삼천지교>는 영화 제목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듯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에서 따온 제목이다. 맹자가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갔다는 이 말을 응용해 극중 맹만수는 '맹사성 서울대보내기'를 위해 없는 돈에 사채를 빌려 강북에서 강남의 노른자부위인 대치동 아파트로 이사, 사성이의 교육에 열을 올린다. 강북에서 1등해도 서울대 갈 수 없다, 학교와 학원거리가 1킬로미터 이상이면 서울대 떨어진다 는 알만한 학부형은 다 안다는 '사실(?)'에 기초해 이사를 간 것이다. 오로지 자식의 서울대보내기를 위해...
결국 영화말미에는 맹사성이 음대진학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현실교육의 문제점들을 지적해내는 것은 그와는 별도의 문제다.
첫째, 맹만수의 '맹사성 서울대보내기'는 '서울대 지상주의'를 엿볼 수 있는 사례다.
학교교육이 인성교육은 저리가라하고 오로지 대학보내기에 열중되어 있는 이 시대에, 그것도 공부 좀 한다하는 학생을 둔 학부모라면 자식 서울대보내기, 그라도 안되면 연고대 보내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의 세태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세태에 비난을 가하거나 풍자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영화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판적 풍자영화는 되지 못하고 그저 코미디일 뿐이다.
(공부 좀 한다는 자식을 둔) 모든 학부모가 자식 서울대 보내기에 열중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맹만수를 도와주는 일수쟁이인 손현주의 말을 통해 정당화되는지도 모른다. 이 나라는 붕어빵 장사를 하더라도 서울대를 나와야 성공한다고... 일견 맞는 말이다. 연예인을 하더라도, 붕어빵 장사를 하더라도, 학생운동을 하더라도 '서울대' 출신이면 격이 상승된다. 뭔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이려니, 혹은 서울대 출신이니 달라도 뭔가 다르겠지 하는 심리적 기대감은 '자식 서울대 보내기 열풍'을 정당화한다.
둘째, 자식의 적성보다는 학벌에 중점을 두는 교육풍토를 보여준다. 돐 때부터 마이크를 집어 맹만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맹사성은 어린 시절에도 동네에서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로 이사간 뒤에도 아버지 몰래 학교가 끝나면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른다. 극중 찰떡궁합인 현정이에게 미행을 당해 들키기는 했지만 현정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연 연습 중 전기쇼크를 당한 맹사성이 병원에 실려가며 맹만수는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가 끝날 시점 맹만수가 사성이가 노래하는 공연장을 찾게 되면서 둘의 갈등은 해소된다. 결국 아버지는 자식이 원하는 공부를 하게 해주지만, 그전까지 사성이는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부를 하지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공부 못한 한을 자식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다. 나는 공부를 못했으니 너라도 공부를 해서 나의 꿈을 이뤄다오.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고픈데 아버지는 내게 다른 것을 원하신다. 내가 원하는 것과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 여기서 자식의 갈등은 시작된다.
아버지의 꿈을 무시하고 내 갈길을 가느냐, 아니면 아버지가 원하는 꿈을 위해 노력하느냐.
전자를 택할 경우 때로는 그 가정은 가족간의 심한 갈등과 불행으로 점철되고 자식이 가출하는 사태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식은 자신의 꿈을 이뤄 성공하기도 한다. 성공한 뒤에는 그간의 갈등이 무너진다. 하지만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듯 하다. 성공하지 못한 경우에는 아버지는 자식을 향해 "거 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 그건 니 길이 아니다"라는 식의 눈초리를 보낼 수 있고, 오히려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했다 치더라도 그간의 갈등으로 인한 고통은 너무나 크다.
후자를 택할 경우 자식은 아버지의 꿈을 이뤄낼 수도 있고 아버지에게 만족을 드릴 수도 있지만 정작 꿈을 이룬 자신은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평생을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자학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더군다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는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실망감, 본인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앞서 언급한 세가지 경우의 사례보다도 가장 처절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어느 쪽의 만족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 두 가지가 이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는 현실교육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서울대 지상주의와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주의. 두 가지 모두 우리가 지양해야할 부분이다. 서울대를 개혁한다는 말은 예전부터 나왔다. 대학원 중심의 연구대학으로 만든다, 학부를 통폐합시킨다는 등의 이야기가 들린지는 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대는 자신들의 막강한 권력을 놓치 않으려 한다. 어떤 학과목이던 서울대가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 서울대 지상주의는 없어지지 않는다. 국문과도 서울대, 정보통신공학도 서울대, 철학과도 서울대, 교육학과도 서울대. 서울대가 전 과목을 석권하고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개혁은 없다. 서울대는 다른 학교에는 없는 특수 학과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연구대학원으로 탈바꿈해야한다. 아니면 프랑스와 같이 파리1대학, 파리2대학 하는 식으로 모든 대학의 이름을 없애고 숫자를 부여해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둔 부모가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서울대에 보내려하는 부모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서울대' 자체를 탓해야 한다. 서울대가 변해야 다른 대학도 변하고, 그렇게 되면 부모들은 오로지 서울대에만 목을 맬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학벌중심주의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울대가 먼저 변해야한다.
작년 수능시험을 치고 서울대와 다른 대학에 동시 합격한 한 지방학생이 서울대 중심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서울대를 택하지 않고 다른 대학을 택한 것은 귀감이 될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보다는 문제의 중심은 대학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孟 : 맏 맹
母 : 어미 모
三 : 석 삼
遷 : 옮길 천
之 : 어조사 지
敎 : 가르칠 교
전한(前漢) 말의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에서 비롯된 말이다. 맹자(孟子)는 이름이 가(軻)로,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에서 멀지 않은 산둥성 추현(鄒縣) 출신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어머니 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현명한 사람으로 아들 교육에 남달리 관심이 많아 단기지교(斷機之敎)의 일화를 남긴 분이다.
맹자가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놀 만한 벗이 없던 맹자는 늘 보던 것을 따라 곡(哭)을 하는 등 장사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는데, 하필 시장 근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아이와 함께 살 곳이 아니구나 하여 이번에는 글방 근처로 이사를 하였다. 그랬더니 맹자가 제사 때 쓰는 기구를 늘어놓고 절하는 법이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법 등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아들과 함께 살 만한 곳이구나 하고 마침내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노력으로 맹자는 유가(儒家)의 뛰어난 학자가 되어 아성(亞聖)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맹자 어머니는 고금에 현모양처(賢母養妻)의 으뜸으로 꼽히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며, 또한 어린이들이 얼마나 순진무구한가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