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공현 외 지음,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 한겨레에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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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에게 ‘질문하라’고 권한다. 학생인권은 당연한 것이며, 그러므로 다들 잘 알고 있다고들 믿고 있다. 그런데, 왜 행동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 틀렸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질문이 없고, 질문이 없으므로 성찰도 행동도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앎이란 얼마나 허위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 불철저한 것인지, 그래서 실은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를 이 책을 읽는 동안 깨닫게 될 것이다. (이계삼)-7쪽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나이가 어린 사람’이 아니다. ‘덜된 사람’, ‘사람이 되어 가는 존재’로 취급된다. 청소년은 미숙하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미리 정해 주어야 한다. 청소년은 판단력이 부족하다. 잘못된 판단을 막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른들의 ‘허락’을 구하도록 해야 한다. 청소년은 충동적이다. 그래서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시’해야 한다. 국민의 20%를 차지하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이 이런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사람이 아닌 청소년에게 인권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특히나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할 청소년에게 자유와 권리는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것이 된다. -24쪽

체벌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는 사람은 때려야 알아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말을 하고 애원해도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윗사람을 때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결국, 핵심은 맞을 짓을 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누가 때릴 수 있고 누가 맞아도 되는 자인가’에 있다. 힘의 우열이 본질인 것이다. -69쪽

A와 B를 두고 어느 편인지 밝히기를 강요당할 때 침묵은 최후의 방패막이가 된다. 세상에는 A와 B 말고도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선택하라면 A편이지만 그걸 밝히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힘든 사회에서 침묵은 자기 내면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된다. 그래서 양심의 자유는 마음에 품은 생각을 드러낼 자유뿐 아니라 드러내지 않을 자유, 마음속 판단을 유보할 시간을 누릴 자유까지 포함한다. -103쪽

집단 의식으로 충성을 강제하는 것은 충성을 유보할 자유, 충성의 조건을 따져 물을 자유, 충성을 거부할 자유가 들어설 자리를 없애 버린다. 그리고 주어진 맹세의 내용을 암송하면서 맹세의 내용에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일치시키도록 만들기 시작한다. -105쪽

핀란드와 같은 나라에선 집중하기 힘든 학생은 잠시 수업에 빠졌다가 나중에 보충을 받을 수 있도록 학생의 숨통을 틔워 준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인간의 조건 위에서 수업의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딴짓’을 할 수 있어야 학습권은 비로소 의무가 아니라 권리가 되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128쪽

"협상을 거부하는 사회를 곤경에 빠뜨려야 비로소 협상의 자리가 열린다."(마틴 루터 킹)-185쪽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올랭프 드 구즈)-191쪽

정치적 권리가 없다는 말은 곧 그 사회에서 온전한 인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자 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를 독점한 귀족들이 ‘아랫것들’의 비참한 현실을 해결해주지는 않을 테니까. 고대 로마에서 노예라는 말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정치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
비(非) 시민’들이 일종의 노예에 해당한다. 그래서 시민의 대열에 끼지 못했던 학생들이 정치적 권리를 얻어 내는 일은 노예가 아닌 인가능로, 당당한 시민으로 인정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192쪽

모든 생각과 행위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얌전히 공부만 하는 행동도 정치적이고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것도 정치적 행위이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어떤 가치와 방향이 담겨 있다는 뜻이고, 그 행동이 주위에 던지는 메세지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미 부산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이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은 사회에 대해 판단하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판단하지 않으면 기존 질서를 인정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194쪽

인간은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자기 삶의 주인은 ‘나’지만 혼자서만 모두 해결해야 한다면 쓸쓸하고 너무 힘겨울 것이다. 그래서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동시에 보살핌을 받을 권리도 중요하다. 홀로 꿋꿋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듯 보이는 대나무도 흙 아래에서는 많은 뿌리가 서로 뒤엉켜 있다고 한다. 청소년이 자유를 누리면서도 지원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청소년이 도움을 받으면서도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를 상상할 수 있다면, 금지와 통제만 남발하는 보호주의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261쪽

교사에게서 뭔가 배울 점이 있을 때, 교사를 통해 좋은 질문을 만났을 때,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교사에게 감화된다. 학생의 입과 눈과 귀를 열어 주는 교사에게 학생들의 마음은 사로잡힌다. 반면에, 교사가 이런저런 규칙을 앞세워 몰아세우거나 학생을 침묵시키고자 힘을 사용한다면, 그때 교사의 권위는 보잘것없는 권위 의식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침묵이 강요되는 교실에서는 의문이 허용되지 않고,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수업은 배움의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모습인가’를 고민하도록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교실에서 배움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272쪽

인간은 불복종의 행위에 의해 끊임없이 진보했다. 양심이나 신념에 의해 권력 앞에서 ‘아니요’라고 용감하게 말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적 발전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지적 발전 또한 불복종-새로운 사상을 억누르려는 권위, 변화를 몰상식한 것으로 규정하려는 기존의 오랜 견해들의 권위에 대한 불복종-하는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에리히 프롬, <심리학적 도덕적 문제로서의 불복종>)-279쪽

역사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규칙을 어기더라도 기존의 것에 도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항상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맹목적으로 따를 수는 없습니다. (메리 베스 팅커, 1965년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로 검은 완장을 차고 학교에 갔다 정학 당한 고등학생)-279쪽

인권을 보장한다는 말은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은 자기에게 있어야 함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286쪽

학교에서 보는 교과서에서조차도 우리는 ‘위험 인물’이야. 보건 교과서와 체육 교과서에서는 에이즈 감염의 원인을 동성애로 규정하고, 다른 교과서들에서도 이성애만이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 동성애에 대해 또 다른 편견과 왜곡을 그들이 만드는 거지. 교사조차도 수업 중 호모포비아적 발언을 일삼고 있고, 이성애만이 정상적이라 가르치고 있지. (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 인터넷 뉴스 바이러스, 2010년 1월 6일)-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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