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캐릭터는 억지로 가공해서는 안 된다. 평소 그 사람의 습관과 기호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나 캐릭터는 발견이 아닌 개발하는 것이다. 본인의 스타일을 본인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의 관찰과 조언을 꾸준히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 내면화해야 한다.
둘째, 그 캐릭터는 사실성이 있어야 한다. 존재감을 나타낸다며 독한 캐릭터를 택했다가는 뒷수습이 어려울 수 있다. 착하거나 예쁘지도 않은데 착하고 예쁜 척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정 욕망에 쏠려 있는 인상’, ‘그런데 우리 일상에서 볼만한 인상’, ‘나보다 잘나지 않고 따지고 보면 동질성이 느껴지는 인상’이라면 좋을 것이다.
셋째, 캐릭터 완성에 있어서 대담성이 필요하다. 망가지는 것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인상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제2의 자아가 맞지만, 체질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54쪽
예전에 조용기 목사를 비판하다 잘렸을 때 <월간조선>에서 집필하던 자유기고가가 "당신이 조용기 목사 비판한 게 유명세 얻으려는 의도 아니냐"라고 했다. 나보다 큰 상대를 치면 같이 유명세를 타서 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불쾌해지더라. 지금의 청년들은 좀 그럴 필요가 있다. 큰 상대와 싸워라. 이명박 정권이나 ‘삼성’ 같은 대기업들에게 대항해라. 불의한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못내는 이유는 낙인찍혀 취업 못할까하는 염려 때문이다. 제대로 붙으면 그들만큼 커지게 된다. 열린 공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곳에서 자유롭게 소신껏 발언해라. 부조리하고 부정한 권력에게 마음껏 대항해라. -207쪽
소신발언하고 고대에서 자퇴한 김예슬에 이어 제2, 제3의 김예슬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오더라. 오히려 학교에 남은 학우들이 김예슬을 욕한다. 유명세로 취업하려 한다고. 좌파로 낙인찍힌 애를 써주는 기업이 있겠나. 명문대 졸업장 없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신 발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같은 청년들이 냉소하는 시대가 씁쓸하다.
취업 안 되고, 조직에서 잘리고, 등록금 빚에 허덕이는 것은 청년들의 책임이 아니라 잘못된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어른들의 책임이다. 돈 때문에 눈치 보며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것처럼 비참한 게 없지 않나. 우리 기독 청년들이 담대하게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