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문사위원회의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민주화인사 결정과 대법원의 송두율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무죄판결, 북한경비정 NLL침범관련한 군 사령부의 허위보고에 대한 질타 등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국가정체성의 훼손'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 그만두자. 다들 지레짐작하고 있는 평범한 의미로서의 한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로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의 주장은 현재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최근 논란이 된 사건들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존중받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비전향장기수의 민주화 인사 결정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어떠한 것이든 상관없이 당시 그들이 주장한 내용만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은 이미 징역이 만료된 상태였고, 이들의 민주화 시위는 만료된 뒤에 다시 국가가 이들을 감옥에 집어넣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감옥내에서 단식투쟁을 했고, 이들을 죽일 수는 없었던 국가는 호스를 이용해 이들에게 억지로 음식물을 투여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 과정에서 숨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징역이 만료됐음에도 국가가 여전히 이들을 놓아주지 않는 상황에 대해 분노했고 그 과정에서 단식투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당한 이유로 시위하던 이들에게 국가는 죽음을 부여했다. 그것이 고의적이든 고의가 아니든 간에 상관없이 이들은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투쟁하다 숨졌다.

의문사위원회는 당연히 이들에게 '민주화 인사'라는 결정을 내렸고, 재향군인회를 비롯한 보수단체와 한나라당은 즉각 반발했다. 어떻게 간첩에게 민주화인사라는 호칭을 부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말도 안된다. 하지만 사건의 겉만 보지 말고 본질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화 인사를 규정하는데 있어 이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사상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고, 그로써 죽음을 맡이했는가 하는 것이 민주화 인사 규정의 과정이다. 비록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네와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이들의 투쟁은 공산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의문사위원회의 이들에 대한 민주화 인사 판단은 옳다.

둘째,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 우리사회가 점차 진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판결이었다. 과거 같았으면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때렸을 것이지만, 대법원은 송교수에게 무죄를 선고 했다. 하지만 사기죄 하나만은 유죄선고 했다. 송교수가 북한에 편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책을 저술했던 것은 인정되나 그것이 국가에 커다란 위협이 되거나 실존하는 위험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 판결의 본질이다.

송교수가 북한의 고위인사였는지의 여부를 증거하는 것은 오로지 황장엽과 그 측근의 진술일 뿐이고, 그렇게 본다면야 우리 주위에서 누군가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모두가 함께 주위에 있던 한 사람을 지목해서 그를 도둑으로 몰아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비단 도둑질 뿐이랴, 살인도 그러할 수 있고, 증거가 불충분한 모든 것이 주변인의 진술만으로 유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증거불충분이다.

또 송교수의 행위가 우리나라에 치명적이고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험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스파이노릇을 해 국가기밀을 빼간 것도 아니고, 그저 북한과 좀 친했고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뿐인데, 그것이 뭐 그리 큰 문제가 되는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유죄 선고가 내려지려면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음모일 뿐이다.

셋째, 북한경비정 NLL 침범관련 군 사령부 질타. 북한경비정이 유엔이 정한 NLL을 침범했고, 이를 중국어선이라고 우리측에 거짓보고했다. 그리고 다음날 북한은 우리정부에 그것은 중국어선이었음을 문서로 다시 확인해줬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고, 우리 군은 당시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향해 함포를 쏘며 정당한 대응을 했지만 이에 대한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하지 않고 자기네 입맛에 맞게 잘라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는 허위보고이다. 그리고 청와대는 군의 허위보고에 조사를 지시했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왜 북한의 거짓말에는 대응을 하지 않고, 우리네 군 고위층을 질타하느냐, 라고 따진다. 한나라당의 말도 맞다. 북한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우리군만 때리는 것은 너무 편파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위보고한 우리 군을 무조건 감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나라당은 자꾸만 우리군은 감싸고 거꾸로 북한에 대응을 하라고 하는데, 이 또한 편파적인 시각이다. 잘못한 사항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감싸지 말고 때려줘야한다.

군의 허위보고는 매우 중대한 사항이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짓이다. 이들이 어떤 의도로 허위보고했는지는 본인들이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른다. 하지만 추측컨대, 이들은 최근 화해무드로 가는 남북문제에 대해 위협을 가함으로써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불거지고, 군 장성의 비리와 뇌물 문제 등이 까발려지면서 정부가 군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사실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추측이다. 추측을 사실로 기정화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이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군 고위층 인사를 거치면서 사실이 갑자기 거짓으로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사안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국가정체성을 훼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한나라당의 정부에 대한 '국가정체성 훼손'이라는 주장은 '오버'라는 말이다. 국가는 제 갈길을 가고 있는데 자꾸만 발목을 잡으려 한다. 왜냐면 사회가 진보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진보된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지지율 감소와 빈 밥그릇으로 이어지게 되고 여태껏 자기네들이 해왔던 것들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국가는 제대로 돌아간다. 딴지걸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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