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끄미 사건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주방/가전/요리 쪽 분야에서 활동하는 네이버 파워블로거 한 분이 공동구매를 그간 진행해왔었던 것 같고, 이 공동구매를 통해 구입한 물품에 하자가 생겨-회사는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테스트를 더 하겠다는 입장- 기사화되면서 난리가 난듯하다. 약 3천 명 정도가 블로그 공동구매를 통해 구입했고, 그외에도 이 블로그에서 보고, 또는 이 블로그에서 구매한 사람의 추천으로 홈쇼핑 등 다른 경로로 제품을 구매하기도 해 수치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다고. 새삼 파워블로거의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해당 블로거는 특정 회사의 특정 제품을 공동구매로 내걸면서 제품당 7만 원 가량의 수수료를 받았다. 알려진 수치로만 계산해도 7만 원 곱하기 3천 명, 2억 1천만 원이다. 약 10개월 진행됐다던 공동구매를 통해서 블로거는 앉아서 2억 1천만 원을 벌어들인 것. 블로거는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동안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것 같다. 방문판매 제품의 경우 판매자가 보통 40%의 수수료를 가져간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만일 7만 원을 수수료로 회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면 블로거도 회사에 당한 것이고, 자기들은 블로거에게 당한 것이다, 라는 식의 주장도 보인다.
-공동 구매 경험
작년 처음으로 공동구매를 진행해본 적이 있다. 애플 블루투스 키보드의 가죽 케이스를 미국 회사에서 한국으로 20개 정도 들여와 배송료를 추가로 받고 일일히 배송해주었는데, 당시 공동구매 제안 글을 올리면서 단서를 달았다. 몇 개를 주문하느냐에 따라서 각각의 구매자 분들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일괄 구매 후 취소를 요청하는 분이 없도록 막기 위해 계약금만 받겠다, 그리고 물건을 최종적으로 구매한 후 금액을 배분하여 알려드리겠다, 배송료는 별도다. 대략 이 정도. 예상대로 신청자 중 입금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기에 최종 인원을 가늠할 수 없었고, 계약금만 미리 받겠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괜찮았던 것 같다. 만일 신청해놓고 입금을 안 했는데, 내가 이미 그 숫자만큼 주문했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보게 될 테니까.
게시 글의 마지막에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공동구매를 진행하고, 일일히 포장해서 배송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백 원 단위면 몰라도 수수료는 먹지 않겠다고. 해외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고, 원화를 구매자 숫자로 나누다보니 최종 부담해야 할 금액이 1원 단위까지 나왔다. 또, 우체국 등기 비용을 알 수 없어 등기 비용을 대충 2,500원으로 계산하고 받았는데-그보다 많으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상 우체국에 가니 2,500원에 조금 못 미쳤다. 이런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인해 20명 각각 100원 단위 수수료가 남게 되어 내 주머니에 들어갔다.
애플 제품 또는 악세사리에 대해 파워블로거도 아니었고, 해당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었다. 키보드 케이스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고, 배송이 부담되어 20명으로 제한했으니까. 또 개인적으로 수수료를 더 가져갈 수도 있었다. 총 금액을 나누기한 금액을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됐을 테고, 배송료를 더 받아도 됐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유명인이건 아니건 상관 없이 그 분들은 나를 믿고 공동 구매에 응했고, 해외 배송 특성상 한 달이 넘는 기간이 걸렸음에도 중간에 의심하시는 분이 없었다. 누군가 나를 의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만일 그런 문의가 온다면 해외 배송 상황을 캡쳐해서 드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모두 믿어주셨다. 그건, 내가 그곳에서 활동한 사람이 아님에도 공동 구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소한 과정들까지도 실시간으로 세세히 공개했기 때문일 것.
온라인 쇼핑몰이나 매장 구매는 순전히 업체와 개인의 문제이지만, 파워블로거가 됐든 아니든 특정인이 구매의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면, 투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알라딘 블로거들이 모여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로 신문에 의견 광고를 낼 때도 마찬가지. 공동 구매도 그렇고, 의견 광고도 그렇고, 굉장히 피곤하다. 실명으로 넣는 분도 닉네임으로 넣는 분도 있고, 넣고도 말씀 안 하신 분도 있어서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가장 피곤했고, 수시로 전체 금액과 게시판에 공지한 금액이 맞는지, 빠진 분은 없는지 확인했다.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피곤해진다. 입금자가 얼마를 넣었는지는 밝히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내가 일부를 공개하지 않아도 아무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당연히 그러지 않았다. 내게 입금을 하시는 분들은 내가 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거짓된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믿기에 참여했다는 것을 나도 인식하기 때문이다.
-다시 깨끄미
문제가 된 제품에 실제 하자가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지만, 하자가 있든 없든 해당 블로거가 공동 구매 기간 동안 자신이 수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수수료가 얼마인지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른 구매자들은 문제가 있는 제품을 구매했다는 사실에도 분노하지만, 평소 믿었던 블로거가 자신들 모르게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는 사실에 더 분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또 분노하는 이유는, 해당 블로거가 자신으로 인해 피해본 이들에게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블로거는 방송 이후 사과문 비슷한 글을 올리긴 했지만, 자신은 해당 제품의 회사를 믿었기에 제안을 한 것이다, 회사에 환불 요청을 하고 있으나 안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신이 이미 받은 또 앞으로 받게 될 수수료를 전체 구매자 숫자로 나눠서 드리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블로거가 사과해야 할 것은 막대한 공동 구매 수수료를 챙겼고,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수료가 5백 원이라면 5백 원이라고, 7만 원이라면 7만 원이라고 공동 구매 글에 함께 알렸어야 했다. 만일 그랬다면 그랬음에도 믿고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장사를 하려나보다 생각하고 구매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 블로거는 사태가 이리된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는 있지만, 무엇을 미안해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구매자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듯.
-책 파워블로거
책 분야에서도 파워블로거란 말이 나돈지 꽤 되었다. 몇몇 매체에 나 또한 파워블로거로 언급된 적이 있었고, 활동하는 이들이 워낙 적은 이 공간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서재의 달인' 타이틀도 세 개나 달았다. 쓰는 글의 양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고, 활동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게 지내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를 파워블로거로 지칭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그러나 영향력은 별로 없다. 영향력을 무엇으로 가늠하면 좋을까 생각했는데, 일일 방문객 수나 땡스투 받는 횟수, 금액 등으로 객관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당장 어떤 수치로 보여줄 만한 것은 그게 전부다.
일일 방문객은 들쑥날쑥하나 하루 백 명이 고작이고, 땡스투 횟수나 금액도 아주 미미한 수준. 서재의 달인 타이틀이 있으나 일년 꾸준히 간간히 글 올리며 추천과 댓글 좀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왜 파워블로거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는 데까지 온다. 내가 책에 관해 글을 쓴다 해도 독자 영역이 많지 않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주류니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그 숫자가 미미하고, 여기까지 오니 뭣도 아니구나 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한다.
책 분야에서는 요리나 가전, 전자제품 등보다는 훨씬 못하겠지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분명 있고, 돈을 챙기려면 챙길 수도 있을 것. 특정 출판사의 책에 대한 호평을 자주 올리는 방식으로 출판사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는 경우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와 같은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고, 고작 해봐야 서평단에 참가해 책을 읽고 평가를 하는 방식이 전부. 서평단에 포함된 이들은 나름 알려진 이들도 있고, 아닌 이들도 있다. 알려졌다고 해봐야 따지고 보면 별 거 없는 나 같은 블로거들이 많을 테고. 수년 전에 서평단에서도 활동해봤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책들이 다수 들어오는 통에 부실하게 활동했다. 이후 서평단을 끊었다. 내 독서 활동에도 방해가 돼서.
별개로, 가끔씩 출판사들이 내게 개인적으로 접촉해와 특정 책을 언급하며 관심 있으면 주겠다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그냥 조건 없이 주는 경우도 있고, 조건을 다는 경우도 있다. 어떤 출판사 편집자와는 개인적으로 알아서 그에게 사적으로 들어오는, 하지만 그가 읽지 않는 책을 내가 받은 적도 있다. 이건 그가 출판사 직원이기는 하나 개인적인 선물이니 제외해야. 출판사의 이름으로 연락이 올 때는 대개는 조건을 하나씩 다는데 서평을 쓰든 뭘 하든 흔적을 남겨 달라는 것. 좋은 책에 대해서는 좋다고 쓰고, 아닌 책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써야 하는 것이 원칙. 하지만 제안을 수락한 것은 나이기에 좋은 책에 대해서는 좋다고 하지만, 아닌 책에 대해서는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 편이다. 그 '아닌 것'이 내게만 아닐 수도 있는 경우가 다수인데, 나로 인해 내게 책을 건넨 출판사가 피해를 보면 안 되기 때문. 아닌 책은 그냥 안 쓰거나 '밑줄긋기'만 올리는 편이다.
-블로거의 도리
깨끄미 사건으로 인해 파워블로거의 영향력, 그리고 책의 경우를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가능하나 그와 같은 일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 어떤 블로거는 출판사에 자신이 요청해 책을 달라고 했고, 출판사에서는 안티 글이 올라올 것을 두려워해 그냥 줬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다. 출판사에서 읽어보라고 제안하며 주는 경우와는 달리 이 사례는 거꾸로 블로거가 출판사에 달라고 요청한 것. 그렇게 해서 그는 그 책을 읽었고, 블로그에서 호평을 한 걸로 안다. 방문자가 많은 블로그니 글을 보고 구매한 이들도 없지는 않을 것. 다른 제품과는 달리 가격이 낮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크지 않은 점이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사례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책이 정말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블로거가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여 출판사에 책을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
2004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내가 올리는 모든 글은 선물을 받은 책이든, 출판사에서 제안하여 받은 책이든, 내가 구입한 책이든, 헌책방에서 건진 책이든, 길거리에서 주운 책이든, 오로지 내 머리와 마음에 의거해 판단하고 감상한 결과물이다. 특정 저자에 대한 호감(예를 들면 김용석, 김용규, 탁석산, 김상봉 등), 특정 출판사의 책에 대한 호감(예를 들면 휴머니스트, 동녘, 산책자 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오로지 나로부터 나오는 것. 영향력 미미한 분야의 영향력 미미한 북로거지만, 깨끄미 사건으로 여러 생각을 해보았고, 혹시라도 나나 내 글로 인해 책을 구입하든 책을 빌리든 영향을 받으실 분에게 이 정도는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끝.


* 책 이미지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들일 뿐. 좋아하는 출판사는 더 있지만, 일단 이 셋만 떠올랐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