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물과 인간 사이 -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른 동물들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프리데리케 랑게 지음, 박병화 옮김 / 현암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왜 인간의 악한 본질을 인간이 원숭이로 지내던 저 옛날의 특징으로 한정하고, 선한 본질만이 오직 인간적인 특징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왜 인간은 다른 동물과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고상한' 본질을 찾으면 안 된단 말인가?" 이 책의 첫 장에 나와 있는 스티브 제이 굴드의 말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풀하우스>, <인간에 대한 오해>란 책으로 알려져 있는 진화생물학의 대표 학자이다. 그는 인간과 같이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 생물들도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성의 증가에서 나온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는 인지생물학의 관점에서 동물과 인간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 프리데리케 랑케는 동물들이 인간과 같은 관점에서 사고와 판단을 하지는 못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기보다는 이 책을 통해 동물들이 "어떻게 일상적인 결정을 내리고 생존을 위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단순 명쾌하게 보여"준다. 목적은, "적합한 실험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통해 대상을 정확히 관찰한다면 동물이 가진 인지 능력도 충분히 검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는 사례들"로 제시하는 것. 최근의 인지생물학은 개념을 도입하거나 논증을 하는 대신 관찰과 분석을 통해 동물에 접근한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의 결과물인 것.
논증과 반박 등으로 채워져 있을 거라는 기대와 전혀 다른 책이다. 이 책은 온갖 실험하고 관찰한 기록들로 가득하다. 케아앵무새가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는 방법, 짧은꼬리원숭이가 감자 씻는 요령을 익히는 방법, 미어캣이 보초를 서는 이유, 까마귀의 의외의 지능적인 면모, 침팬지의 도구 사용법이 각각의 챕터를 구성하고 있다.
미어캣의 경우가 흥미로웠는데, 그 귀여운 동물이 두 발로 땅을 지탱하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웃음이 났다. 미어캣이 높은 지대에 올라 주위를 살피는 이유는 물론, 예상하다시피 적이 가까이 오지는 않나 경계하는 것인데 보초를 서는 미어캣은 자신이 위험에 노출되면서 희생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다른 동료들보다 먹이를 많이 먹어 몸무게가 더 나가는 미어캣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보초를 서지만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 몸에 남아 있는 에너지에 따른 역할 분배이다. 적이 출현했을 때에도 보초를 서는 미어캣은 절대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워낙 영리한 동물이라 보초를 서는 곳 근처에 땅굴을 파놓고 있어, 오히려 다른 동료들보다 더 먼저 숨을 수 있다고. 책의 소제목처럼 '이기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타적이진 않다고 결론내릴 순 있겠다.
미어캣은 먹이를 주면 체중계에 오르는 걸 마다하지 않는데, 특정 몇몇 미어캣에게 먹이를 더 주고 몸무게를 늘렸더니 이 녀석들이 보초를 더 서더라,하는 실험 결과를 내는 등 이 책은 이와 같은 각종 실험과 사례로 가득하다. 주의주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이런 식으로 동물도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지능(?)을 사용하여 행동 방식을 결정하며, 그 지능이 인간의 사고 체계와 다르다고 하여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숭이는 동료 원숭이의 행위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며, 앵무새는 문제를 해결하려다 내팽개치고 친근하게 지낸 인간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앵무새에게는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여 어렵게 먹이를 쟁취하기보다 그냥 인간에게 달라고 하는 게 더 편한 방법인 것.
저자 랑케의 일관된 주장은, 동물들이 생각보다 어리석지 않고 상상 이상으로 영리하다는 것. 그들은 나름대로 세대를 거치며 진화해왔고, 전통을 전하기도, 학습하기도 한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시각은 동물 연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왜곡된 결론만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그들도 충분히 지능적이고, 충분히 사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