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물신 숭배의 허구와 대안 - 카이에 소바주 3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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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물신 숭배의 허구와 대안. 특이한 제목을 달고 있다.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랑과 경제라는 두 단어와 논문 제목스러운 부제. 전부터 지인들의 블로그를 통해 제목은 간간히 접했는데, 그다지 읽고픈 마음이 생기진 않았었다. 이번에 글벗 한 분이 쓴 글의 제목이 이와 동일하여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 궁금하여 구입해 보게 되었다. 시각과 논리는 무척 신선했지만 내용의 질이 뛰어난 것과는 상관 없이, 그 새로운 개념 정립과 큰 줄기를 제외하고는 딱히 머리에 남는 건 없었다. 읽기는 수월한데 정리는 잘 안 되는. 

  역자는 모스와 라깡과 마르크스를 한꺼번에 융합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평했는데, 모스와 라깡과 마르크스를 모르는 나로선 그걸 알 턱은 없었다. 그냥 그렇다면 그런 줄 아는 수밖에. 하지만, 그 셋을 융합했다는 평가를 일단 떨궈놓고,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가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경제를 이야기하다가도 인류학과 신화를 이야기하고, 철학으로 건너가기도 한다. 흔히 분류하는 학문의 영역 간 경계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유롭게 떠오르는대로 글을 쓴다는 것. 강의를 하듯 풀어써서 어려운 내용임에도 읽는데 부담되진 않았다.  

  '1장 교환과 증여'를 유심히 읽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을 때 순수하게 주는 마음으로 건넸다면 이건 순수증여가 될 텐데, 선물을 건네는 사람이 이에 대한 보답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면 이것은 순수증여가 아니라 증여 내지는 교환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마음으로 물건을 건넸다면, 그는 상당한 가치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말대로라면 "교환은 이 증여라는 기초 위에 입각해서 증여를 부정하거나, 다른 조직으로 다시 만들거나 함으로 해서 발생"한다. 교환을 토대로 증여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증여를 토대로 교환은 발생한다.  

   또한, 교환에는 '물物'이 건네지면서 그것을 전에 소유한 사람의 인격이나 감정이 포함되지 않지만, 증여의 경우 '물'을 매개로 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격적인 뭔가가 이동한다고. 동일한 가치를 지닌 물로 답하는 것은 그 물에 내재하는 교환가치를 중요시하는 것인데, 증여에서는 이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받은 물의 가치를 안다해도 동일한 가치로 답례하기보다는 그보다 더 큰 가치, 하지만 너무 크지 않은 가치로 전달해야 한다고. 양자의 비등비등한 대칭적 관계가 중요하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러한 순수증여, 증여, 교환의 개념을 자본주의 사회를 해석하는 개념으로 확장한다. 순수증여를 하는 힘은 사회의 밖에 존재하며, 순수증여에 담긴 영혼의 힘으로 사회 안으로 그 물을 가지고 들어올 수는 있지만, 부나 풍요로움의 원천 자체가 사회의 내부로 들어오는 경우는 없다고. 하지만, '화폐의 형태로 변형된 부'는 부를 낳는 원천을 사회 내부로 가지고 와 '인간화'해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화폐 발생 이전엔 사회 밖에서 사회 안으로 영력, 영혼이 담긴 힘과 함께 물이 들어왔다면, 화폐 발생과 함께 이러한 구조가 무너져  교환만이 남게 되었다. 순수증여의 영력을 회복해야 하는데 화폐가 오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게 안 되는 것.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역자는 "자신이 소유하는 물건에 대한 완전한 지배자"가 되어버린 오늘날, 날로 심화되는 빈부의 격차를 해소할 묘안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나눔과 베풂의 미덕을 강조하고, 도덕심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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