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을 비판하려면 내 자신이 떳떳해야하고 내 스스로 도덕성을 기본전제로 깔고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남을 비판할 것이다.
김규항씨의 <B급 좌파>에 실린 동명의 글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난 스스로를 '진보적 자유주의자' 혹은 '좌파 자유주의자', '비판적 자유주의자'라고 말한다. 그 말은 즉, 나는 나의 양심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양심까지고 지켜내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기 위해서는 나는 다른 이들을 향해 계속해서 쓴소리를 해댈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르는 기본전제는 나 자신의 양심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나의 양심이 깨끗하지 않고서 나는 다른 이들을 향해 쓴소리를 해댈 수가 없다. 다른 이와 나의 죄질의 차이가 클지라도 그나 나나 깨끗하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좌파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고해성사를 한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다지 크게 잘못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수학경시대회에서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시험문제 답을 몇개 가르쳐준 적이 있고, 대학에서 시험전 책상에 조그맣게 기록한 몇 문장을 통해 교양과목 시험에서 약간의 이득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가끔이기 했지만 그리고 그가 잘못한 것이긴 했지만 나는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 원인 제공이야 누가 했건 누가 잘못했건 나의 폭력행사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 이외에는 나는 나의 도덕성에, 나의 양심에 비춰 잘못한 일은 없는 듯 하다.
한가지 더.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한 나의 머리속에 갇혀있던 생각들 중에서 나의 양심에 반하는 것들이 조금 있기는 하다. 나는 누군가를 죽이고픈 생각을 한 적이 있고, 누군가를 매우 증오한 적이 있으며, 그가 잘못되기를 바란 적도 있고, 가끔은 아니 자주 야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나는 지금껏 이정도면 나의 양심을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이 정도의 도덕성이라면 남에게 뭐라고 할 만한 자격은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지금껏 했던대로 나는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쓴소리를 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나는 그들의 양심까지도 지켜낼 것이다. 나는 김규항이 자처하는 B급좌파까지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좌파인지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좌파가 되고픈 희망을 가진 사람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