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역 출구에서 한 여학생을 만났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있던 내게 다가오더니 "저기요, 혹시 교회 다니세요?" 라고 물으며 입을 뗐다. 순간 '앗! 이런 걸렸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여학생이 귀찮게 느껴졌지만 참기로 했다. 몇 년전 수유리에서 "혹시 도에 관심있으세요?"라고 말했던 여학생에게 너무 짜증스럽게 대했다가 오히려 그 여학생의 말빨에 내가 기가 죽었던 적이 있었고, 당시에 나도 참 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솔직히 도에 관심있냐고 물은 것이 뭐 잘못인가? 단지 나는 걸렸구나 하는 생각에 귀찮음을 느꼈을 뿐이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이번에는 이 여학생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는 내게 요 앞에 xx교회에 다니는데 이번 일요일에 거기에 한번 와보지 않겠느냐, 좋은 말씀 한번 들어봐라 라는 식으로 말을 했고, 나는 모든 종교를 거부하지도 않되,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나는 특정 종교에 구속되고 싶은 생각이 없으며, 따라서 나를 기독교인으로 만들려고 하지는 말라 라는 등의 내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나는 종교로서가 아니라 철학으로서 당신이 말하는 세상의 문제들과 우리 자신의 문제, 진리를 찾아나가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여학생은 자신과 나의 관심사와 가치관이 동일하다는 것을 공감하며 기됵인으로 전도하려는 것은 그만두고 그저 일요일에 좋은 말씀을 전하니 한번 와바라 라는 식으로 나를 설득했다.

 추운 겨울에 그렇게 서서 나를 설득하는 그녀를 보니 참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차라리 매몰차게 말했으면 찬바람 맞지 않고 그냥 갔을텐데 괜히 내가 제대로 응하는 바람에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또 말하고 하느라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결국 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와 그 자리를 뜨고 말았지만, 그녀는 내게 꼭 한번 와보라 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취직을 하고, 돈을 벌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애를 낳고, 기르고 하는 일련의 인생의 과정들이 아주 평범해보이지만 사람들은 이것조차도 겨우겨우 따라간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다 해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어떤이는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모르고 산다. 물론 그 행복이라는 것이 본인이 느껴지는 바에 따라서 결정된다면 아마도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 또한 그 행복을 느끼면서 무언가 비어있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난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봤을 거라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이 틀렸기 때문에 공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등등의 소위 말하는 철학적 물음들은 바로 우리가 느끼는 공황이 무엇인가를 대변해준다. 그녀가 말하는 바도 그러한 것. 아무리 청년실업이다 뭐다 하면서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그것을 논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정신적 공황을 메꿔야한다는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결국 나도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다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이렇게 사회준비인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내가 찾던 것들, 고민하던 것들이 가치없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꾸준히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거치며 찾아야하는 것들이고, 다른 한편으로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나는 나의 물음들을 접어놓은 채 사회준비를 하련다. 삶의 안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숨을 쉴 작은 구멍 하나만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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