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에 실린 冊 에세이 '숨어사는 외로움'에서 김수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나눔 이전의 나눔이며, 가장 큰 나눔의 실천입니다.
나눔이 무소유의 소극적 실천이라면 자발적 가난은 적극적 실천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노력할 때, 이 세계의 모든 가난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문장이다. 내 자신이 부를 소유함으로써 그것을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삶이 아닌 스스로 가난을 자청해 사는 적극적인 무소유의 삶. 우리 모두가 가난해질때 우리 모두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역설적인 문장은 확실히 옳다.
부를 소유한 자들이 아무리 나누어준다고 한들 그들은 여전히 부유할 것이요,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가난할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가난해진다면 가난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극도의 가난은 사라지고 만다. 마치 지금의 교육 평준화처럼 말이다. 교육이 평준화되니까 뛰어난 천재도 뒤떨어진 바보도 생겨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영재를 죽이는 정책이라고 하지만 어떤면에서 이 정책은 바람직하다. 적어도 환경에 의해 바보가 되는 이들은 없으니 말이다.
부의 소유를 교육에 빗댈 수 있을까만 그저 떠올라서 지껄여봤을뿐이다. 이걸 가지고 부자와 천재를 동일시할 수 있느냐 라고 따지지는 말기 바란다. 나도 그 쯤은 아니까... 천재와 영재가 줄어드는 문제는 기본적인 평준화 정책 위에 후천적인 제도적 보완을 하면 될터. 기본틀인 평준화 정책 자체를 허물 필요는 없다.
나는 적극적 가난을 실천할 수 있는가?
아니다. 난 그러지 못한다. 그러기엔 난 너무나 세속적 인간이다.
그렇다고 부를 극도로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벌리는대로만 쪼들리지 않게 살아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뿐이다.
그러나 나는 나눔의 미덕은 실천할란다. 적극적 가난을 통해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못할 망정 소극적 무소유는 실천해야하지 않겠는가?
그게 세상사는 맛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