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들어와 동아리를 찾던 중 가입한 곳은 '노래패'였다. 당시 나는 학교 식당 앞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록동아리 인줄 알고 찾아갔으나 알고 보니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였다. 나는 대학 새내기라면 으레 그렇듯 '운동권'이나 '민중가요'라는 단어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왕 가입했으나 열심히 해보자 하고 마음 먹었다. 그곳이 록동아리였건 노래패였건 내 목적은 드럼을 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드럼이 목적이었던 나는 그 노래가 민중가요던 록이던 별 상관없었다. 그저 드럼을 친다는 것으로 행복했다.

#1
시간이 흘러 노래패 공연을 할 때였다. 선배들과 나는 공연곡을 놓고 어긋나기 시작했다. 민중가요에도 장르가 다양하기에 나는 민중가요 중 다소 록적인 노래들을 연주하고 싶어했고 선배들은 쨍가를 넣고 싶어했다(쨍가는 너댓명이 앞에 나와 주먹을 쥐고 손을 흔들며 부르는 노래라고 보면 된다). 민중가요에 적대적인 나는 쨍가를 매우 싫어했다.

#2
노래패에 있다보면 선배들이 함께 집회에 가자거나 교양교육을 하자는 제의를 하곤한다. 어떤 곳에서는 후배들을 강제로 집회장소에 데리고 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집회를 나가지 않으려는 나와 선배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1과 #2를 통해 본 나는 운동권과 민중가요, 집회, 시위 이런 단어들에 매우 적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저 노래패에서 드럼만 치고 싶었다. 그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학 4학년인 나는 이상하게도 운동권, 민중가요, 집회, 시위 라는 단어에 매우 친숙하다. 아는 민중가요도 별로 없고 집회나 시위에 참석해본 적은 더더욱 없는 내가 이 단어들에 친숙한 것은 왜인가. 지금의 나를 보면 나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시각이라는 것은 천상 운동권이다.

1학년때는 그토록 적대적이었던 내가 4학년에 와서 친숙하게 된 것은 바로 '철학' 때문이다. 1학년 당시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의미도 모르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2학년에 철학과로 전과한 이후 동서양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만나면서 또 나의 사유함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나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나름대로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났다. 사회 제도의 모순들에, 사회의 약자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결국 나는 운동권의 시각을 갖게 됐다. 운동 한번 안해본 책상물림 운동권이 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운동권과 내가 다른 것은 그 시작에 있다. 대개의 운동권은 민중가요를 부르고, 집회에 나가고,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나름대로의 시각을 형성하는 반면, 나는 그러한 과정없이 오직 철학으로 지금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나를 볼 때 결과적으로 운동권의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시각의 '본질'은 다른 것이다. 나의 시각은 사유함에서 비롯되고, 그들의 시각은 자신의 눈으로 현실을 봄에서 비롯된다.

나는 내 스스로의 생각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배들의 말이나 제의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내 스스로가 공부하고 생각하면서 그 시각을 형성하고 싶었다. 강요받지 않은 자기주체성에 기반을 둔 사유를 통해 나는 세상에 눈을 떴다. 이제 남은 것은 나의 사유함을 토대로 현실에 뛰어드는 것이다. 운동권에 비해 나의 행동은 한참 늦었지만 그들에 비해 나는 깊이있는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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