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나는 종로3가 지하철 계단에서 사람들에게 구걸(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만 딱히 표현할 만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하고 있는 할머니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음반을 사기 위해 다시 종로를 찾았다. 어둑해진 저녁무렵이었다. 방배동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로 향했다. 지난번과 같은 경로로 종로3가에 다다랐고 역시나 같은 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왔다. 그런데 지난 번 바로 그 출구 계단에 똑같은 할머니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계셨다. 옷을 잔뜩 껴 입으시고 두꺼운 목도리를 하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리는 하얗게 새었고 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을 향해 두 손을 내밀고 계셨다. 할머니 앞의 조그마한 통에는 동전에 몇 개 보였고 그 앞을 사람들은 열심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할머니를 발견한 순간, 지난 번과 같이 나는 또 마음속에 어떤 망설임같은 것이 느껴졌다. 할머니에게 가지고 있는 동전을 드릴까. 지난번에는 마음 속에서 이런 망설임이 교차하는 순간에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이번에는 내가 동전을 가지고 있던가? 하는 생각에까지 다다랗다. 그러나 내겐 동전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건 지폐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는 또 지상으로 나와 사람들 속으로 파묻혔고 이내 내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조금전의 망설임은 마음 속 어딘가로 묻어둔 채...

지난 번 나의 '지하철 노인'에 대한 글을 읽은 어떤 한 사람이 내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동전 하나가 아닌 그들의 손을 맞잡아주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때 나는 순간 어떤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꼈고 그의 일침이 고마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봤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손을 맞잡아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씀씀이, 혹은 동료의식이기도 하지만, 물질적 도움이 없이 그것만으로 그들이 만족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마음은 가있더라도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들에겐 타인의 마음씀씀이와 더불어 물질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결론을 내리고도 그들을 도울 수 없는가. 아니 돕지 못하는가. 그것은 순전히 아직까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 나는 말은 열심히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있어선 아직 서툴다. 의지의 문제일까.

'지하철 노인'의 예에 이것을 적용시켜 보았을 때, 나는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만 있을 뿐, 그 마음을 전달할 줄도 모르고, 물질적 지원을 하지도 못했다. 할머니에 대한 가련한 마음이 있돼 나는 왜 그 자리에서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지도 못했고 가지고 있던 돈의 일부를 건네지도 못했는가. 전자의 문제는 아마도 내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자리에서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는 행위, 잠시라도 할머니와 함께 그곳에 머무는 행위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고,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파묻혀 걸어가던 나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평소 '평범'이라는 굴레를 나에게 씌우기를 거부하던 내가 '평범'에서 벗어날 절호의 찬스를 왜 두려워했는가?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평범'을 끊임없이 거부하면서 결국은 '평범'에서 벗어나는 것을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생각의 진전을 보았으나 더이상은 무리일 듯 싶다. 좀더 깊은 고민이 요구된다.

그리고 후자의 문제, 가지고 있던 돈의 일부를 할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문제는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돈'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한다. 밥을 굶어가며, 웬만한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며 어렵게 모은 돈으로 씨디를 사려고 했는데 중간에 할머니에게 이것을 쉽게 내주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것은 '지하철 노인' 1편에서도 제기했던 문제이다. 나는 경제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고 작은 돈에서 누군가에게 또 떼어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기까지가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분석해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남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습관의 문제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이런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돈이 많아진 후에도 남에게 자신의 것을 내주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이다. 이러한 지적은 옳다. 나는 내가 돈이 적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떼어주길 거부했지만 이는 핑계일 뿐인 것이다. 다음 번에는 적은 돈이라도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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