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지난 강연인데 이제 쓰고 있다. 확실히 게을러진 탓이다. 그동안 많은 강연을 갔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미친 등록금의 나라. 한국대학교육연구소에서 공동집필하고, 공동집필에 참여한 필자들이 각 대학에서 강연을 열었다고 한다. 신청한 곳은 이화여대 강연이었는데, 강연장에 들어서고선 놀랐다. 약간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몇 없었다. 마케팅팀 직원 한 명과 강연자, 그리고 강연을 들으러온 분 한 명. 내가 들어서니 두 명이 되었다. 이런 강연은 듣는 사람으로서도 참 미안하다. 한참 늦게 시작하고 듣는이는 다섯이 되었지만, 잠시 후 넷이 되었다.  

  미친 등록금이 화제다. 얼마전엔 대학생들이 각 대학에서 시위 아닌 시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등록금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이명박은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든 공약을 다 지킬 수는 없다." 라고 응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모든 국회의원 후보자, 정치인들은 이제부터 허경영식으로 좋다 하는 공약들은 다 만들어 홍보할 것이다. 일단 당선되고 나면 "모든 공약을 다 지킬 수는 없다"라는 명언 한 마디를 남겨주면 된다. 대학은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등록금을 올리고, 학생들은 거리로 나서지 않는다.  

  "입시 전형료 13~18만 원. 민자 기숙자 일년 2인 2실에 500만 원. 대학의 가격 책정이 대학 밖 외부 하숙비와 비슷하게 책정되는 현실이다. 포항공대만 제외다. 입학금은 약 100만 원 가량으로 일본과 한국만 '입학금'이라는 걸 받으며, 수업료 안에는 실험실습비가 포함되어야 함에도 예술대, 공대 등에서는 별도의 비용을 청구한다. 대학원생의 경우, 대학생에 비해 등록금 인상하기가 쉽다. 교수와 학교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신분인지라 함께 모여서 시위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학 등록금은 그나마 이야기라도 되지만, 대학원은 항상 제외되어 있다."  

  "각 대학에서 대학마다 들어가 있는 '생협'을 무너뜨리려고 하며, 대학의 학교 식당 이윤이 안 나오기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생협과 학교 식당은 전혀 이윤을 남길 수 없는 사업이며, 상업 매장이 들어올 수 있게 건물 공간을 할애하는 것이 현실이다." 생각해보자. 불과 10년 전만해도 학교에 편의점이나 커피체인점 등은 볼 수 없었다. 자판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어 홀짝였으며, 학생 식당에서 천 원짜리 밥을 먹었다. 그러나 이제 대학의 모습은 달라졌다. 편의점과 스타벅스 등은 물론이고, 고급 레스토랑까지 들어와 있다.  

  이화여대 안에서 그 비싼 레스토랑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여기에 가는 학생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돈이 있으면 자식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는 현실이니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부모는 당연히 가진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례로 서울대에는 대원외고 졸업생들이 강원, 충청, 전라, 경상도 출신을 합친 것보다 많다. 몇몇 언론과 조사기관에서도 발표를 한 바 있지않던가. 서울대생의 부모 직업과 재산 정도를 조사해봤더니 서울 그것도 강남 3구에 많이 몰렸고, 부유층인 경우가 상당하다고. 이화여대라고 다를 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비싼 레스토랑도 만들면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장사가 되니까 들어가 있는 것이다.  

  다시. "2008년도 주간동아에 따르면, 여대 등 등록금이 남녀공학에 비해 비싸다. 관계자는 당시 청결과 안전을 이유로 들었는데, 구체적으로는 화장실에 휴지 비용이 들어간다고 말하였다." 어이가 없을 뿐이다. 여대의 등록금이 더 비싼 이유는 화장실 휴지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나보다. 여학생들이여 화장실 휴지를 왜 그렇게 많이 쓰는가? 아예 뽑아서 집으로 가져가시는가? 이런 질문을 그들에게 던져야 하겠는가. 휴지를 아무리 많이 쓴다 하기로 개인당 등록금을 타 남녀공학 대학보다 수십에서 백만 원씩 더 내야 하다니.  

  "홍대의 경우.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서 학생들에게 공간을 할애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기업 몇 곳이 들어가 있고, 로스쿨 신청을 위해 당시 공간을 비워 두었다. 결국 로스쿨은 탈락했다. 고대에 스타벅스(전국 매출 2위라고 한다), 숭실대의 홈플러스 등도  학교와 기업이 협력을 맺고 건물을 지어주고 임대 30년 무료 방식으로 계약하는 사례다." 결국 이기는 것은 학생과 학교가 아니라 기업이 된다. 이때부터 학교는 기업에 종속된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를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다. 두산이 중앙대 사태에 개입하거나 하는 방식 말이다. 

  "이화여대 전체 수업 중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7.4%. 적립금에서부터 예금 이자 수입이 14.1%다. 교육부대수입(논문심사비 포함), 법인전입금, 기부금, 국고보조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교 수입의 약 80%가량은 학생들에게서 나온다. 기부금 83억 중에 기업이 내는 것은 3억 5천이 전부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화여대는 천안에 땅을 사놓고 파주에 캠퍼스를 만들려고 추진 중이지만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대도 안성 캠퍼스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고 한다. 땅을 사서 그걸로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학은 인터뷰나 언론에서 이를 부인하고 있다." 자신들의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일부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등록금이 올라가도 교육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 돈은 다 땅값으로 간다. 오바마는 하버드 로스쿨을 다니며 낸 등록금을 상원 의원이 되어서야 다 갚았으며, 한국의 교과부 관계자는 든든 학자금 제도가 있어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알바를 할 필요가 없다고, 어느 프로그램에서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는 말. 졸업 후 이십대 태반이 백수인 마당에, 취직해서 갚으면 된다는 안이한 말을 하는 건, 뭘 보고 판단한 것인지. 연봉이 적은 기업에 취직한 사람일수록 갚지 못한 대출금의 이자는 급격히 늘어나고, 결국 오래도록 여기에 시달린다. 정부는 채권추심팀까지 용역으로 뽑아 대출금을 받아내려 하고 있다. 국가가 국가가 아닌 것.  

  현실이 이런데 한국의 대학생은 왜 반응하지 않는가?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의 경우 폭력 시위로까지 대규모로 번지는데, 한국은 왜. 영국에선 왕세자 부부가 시위대 행렬에 둘러싸였고, 어느 나라에서는 고속도로를 점거했다." 그래도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불편해 하지 않는다. 시민 의식이 된 것이다. 한국은 소득 대비 등록금 비중이 가장 높다. 어느 대학생은 부모님이 내주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니라고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것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정리 논평. 등록금이 없거나 저렴해야 모두가 교육의 기회를 동등하게 받는다. 대학은 많고, 원하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가는 시대가 다시 왔다. 대학은 많아도 돈이 없기에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대학에 가는가도 부모의 소득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데,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도 누구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누구는 문화 생활을 즐기거나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상황. 이것은 불평등하다. 등록금이 비싸지면 비싸질수록 가정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계급이 정해지는 꼴이다. 계급이 존재하지만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정해진 계급을 깨고 올라갈 수도 없는 사회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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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4-2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답한 노릇입니다.

마늘빵 2011-04-20 14:03   좋아요 0 | URL
...

穀雨(곡우) 2011-04-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 제 아이가 대학에 갈 때쯤이면 집을 팔아야겠군요.
그 뒤로 둘이나 더 있는데....쩝

마늘빵 2011-04-20 14:10   좋아요 0 | URL
아, 대학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죠. 그래서 전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습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국가는 저출산이니 하면서 구호만 외치고, 애 낳으면 돈 몇 푼 쥐어주는 걸로 끝내려 하죠.

穀雨(곡우) 2011-04-20 14:5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돈 몇푼 주는 그것도 빨리 안준다는 거....ㅋㅋ

인문MD 바갈라딘 2011-04-2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날 참석자가... 다른 강연 일정과 겹쳐서 참석을 못 했는데... 내용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다짐도 소극적 자세겠지요, 저도 마찬가지 생각인데요. 이거 참 답이 없는 답답한 노릇입니다. 졸업하고 나면 다들 또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으니.

마늘빵 2011-04-20 18:01   좋아요 0 | URL
아, 이대 강연에 오실 예정이었군요. ^^ 그날 제 생각에도 다른 뭔가가 있었던 거 같아요. 가고픈 강연이었던 것 같은 느낌만 있다는. 누구 강연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고.

비로그인 2011-04-2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 중 하나는, 정해진 틀 이외에 얼마나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가,로 결정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수학 성적이 뛰어나게 좋지 않을 경우 어떤 진로를 택할 수 있는가? 같은 문제이지요. 그리고 그 다양한 진로가 개인의 성취와 얼마나 연관지어질 수 있을 것인가?
없군요. 여기는, 없어요.

2.대치동에서 학원강사를 했던 사람의 말로는, 한 클라스 인원 30명 중 25명 가량의 부모 직업이 의사였고, 나머지 5인은 판사나 기업인 등이었다 해요.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열정과 학생의 능력(단어 사용이 참으로 뷁스럽습니다만)이 만나야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곳. 그와의 대화 끝에 생각했어요. 나는, 나와 함께 사는 아동을 저 지옥으로 내몰지 않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걸어들어가기를 원치 않는 이상은. 그 뒤의 일을 모색하는 것이 관건이다. 라고. 그게 아주 힘들 것 같습니다. 아주, 많이요.

3.한동안 뜸하셔서 무슨 일 있으신가, 생각했어요!

마늘빵 2011-04-21 10:53   좋아요 0 | URL
1. 동의합니다. 한 가지로만 판별되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오직 경쟁과 줄세기만 남아 있을뿐. 해당 기준에서 벗어난 자는 주변인으로 살아가게 되죠.
2. 박사 받고 고액과외, 학원 강사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어봐도 비슷합니다. 있는집에서는 투자 대비 산출을 내려고 계속 퍼붓죠. 그들 사이에서도 경쟁을 하고,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도 또 경쟁을 합니다. ^^ 계속 따라가다가 쳐지고 좌절하는 사회.
3. 무슨 일이 있긴 해요. 힘든 상황인데, 책이나 글로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