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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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다시 소설을 손에 들었다. 얼마만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책 자체를 멀리하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상처가 깊어 다른 어떤 것에 시선을 줄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고,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겠지만, 위로 받을 곳이 필요했다. 딱딱한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에도 간간히 눈길을 주고는 있지만, 단번에 읽히고 이해하기 쉬운 책들만 집어들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는 아니지만, 어쩌다 윤대녕을 추천 받았고, 이 책을 선택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리고 관계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곱 개의 짧은 이야기를 합쳐 책을 냈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지만 '윤대녕'이라는 소설가만의 내면 세계와 문장, 표현이 그대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한 번쯤 가봤을 만한 장소에서,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빠져들게 되는 건, 등장인물들 간에 설정된 관계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이 미묘한 지점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찬찬히 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고민했을 소설가의 모습도 떠올려 본다.  

  나이가 들면서 오래 만나온 사람들의 존재가 더더욱 소중하고 그리워진다는 작가의 말. 만나서 헤어지는 순간부터 그리워지고,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그는-윤대녕은 스스로가 만나고 헤어지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심정으로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 한다. 윤대녕의 이러한 심정이 짧은 각각의 소설에 배어 있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또 만날 것이다. 오래 만나온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지속되면 좋겠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묘한 상황으로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부는 나의 잘못이기도 했고, 일부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도 했다. 타인이 내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없진 않겠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타인에게 잘못한 것만이 유독 기억난다. 그때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하는 식의 후회도 든다. 윤대녕의 이 소설을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으로 읽으며 지난 일들이 자꾸 떠오른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바람이 불고 있어 아프고, 하릴 없이 그 바람 맞으며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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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나드 2011-04-1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저 현아예요. 오랜만이죠?^^
무슨 일 있으셨던 거예요? 에구구.
그래도 윤대녕 소설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으신 것 같아 제가 더 기분이 좋네요.
힘내세요...!

봄 하면, 윤대녕인데..올해는 어째 윤대녕 소설들이 손에 잘 안잡히네요.
뭔가 뒤숭숭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요.
좀 더 따뜻해지면 한번 봬요~~*

마늘빵 2011-04-19 01:26   좋아요 0 | URL
네, 지난 번이랑 닉네임이 다른 것 같은데. ^^
잘 지내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겐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네요. 윤대녕 소설은 처음 접했어요. 조용히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홍상수 류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따뜻해지면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