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13 - 미국은 '1당 민주주의' 국가인가? 미국사 산책 1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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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의 글쓰기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레포트식 글쓰기', '기자식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글쓰기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강준만은 자기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가지고 있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체계를 다듬어 왔다. 그가 한 해에 십여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와 같은 서평도 책을 읽는 족족 쓰다보면 자기만의 스타일 생기고, 쓰는 시간도 무척이나 빨라진다. 개인적인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책을 읽고 뭔가 흔적을 남기는 행위에도 소홀해져 다시 내 안의 엔진을 가동시켜보려 애쓰는 시점이긴 하지만.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무려 총 17권으로 구성되었고, '미국사 산책'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같은 글을 원했다면 잘못 골랐다. 저자가 강준만이라는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한 번이라도 그의 글을 접했다면 그가 어떤 식으로 글을 쓰고, 책을 쓰는지 알 것이다. 그는 엄청난 자료 수집광이고, 평소에 수집해둔 그와 같은 방대한 자료에서 쓰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적절한 자료를 뽑아낸다. 그리고,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에 맞추어 그 자료를 편집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댄다.   

   어떻게 보면, 이건 대학생이 교수에게 제출하는 보고서의 방식과 닮아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채택된 자료를 가지고 아주 정교하게 구성한 잘 짜여진 창작물이다. 우리가 평소 어떤 신문이나 책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세세하고 비밀스러운 내용들을 어디서 찾아냈는지, 재밌게 잘 엮어냈다. 창작물이긴 하지만 자신이 직접 쓰지 않은, 즉 인용한 글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은 한국와 무척 닮았다. 아니, 거꾸로 말해야 옳다. 한국은 미국과 무척 닮았다. 여러 통계를 보아도 확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미국 사회를 따라가고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리지 않고 - 개인적으로 나쁜 것만 따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 사회를 따라가고 있다. 대학 교수의 상당수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거나 박사 수료를 마친 사람들이며,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려면 미국의 인맥을 쌓고, 미국에서 공부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어느 대학 강사에게 들은 바로는,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미국 박사 출신으로 자체 한정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미국사 산책 열일곱 권이 어떤 기준에 의해 각기 물질적으로 서로 다른 책으로 분류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기준에 대한 마땅한 설명은 못 본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시간의 순서를 따르고 있고, 미국의 역사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각 책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미국사 산책 13권>은 '미국은 '1당 민주주의' 국가인가?'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1당 민주주의'에 홑따옴표가 붙은 이유는 깊이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민주주의'와 '1당'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단어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자유롭게 정당을 설립하거나 없앨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누구나 자신의 성향에 따라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1당 민주주의라니.  

  13권에서 다루는 특별한 주제는 LA 흑인 폭동, 민주-공화 양당제의 종언을 고하는 제3의 대선 후보 로스 페로의 선전, 진보-보수를 초월한 승자 독식주의이다. 여러 민족, 인종이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다보니 이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백인 경찰은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백인보다 흑인에게 더 억압적이고, 거칠게 대응하며, 흑인이 백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 흑인은 더더욱 뭉쳐 보복을 하려 든다. 이와 함께 라틴계의 미국 유입이 많아지면서 흑인과 라틴계의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흑인의 일자리였던 부분에 임금이 싼 라틴계가 들어오면서, 저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인식이 흑인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하다. 요즘 식당이나 호프 등에 가보면 한국계 학생 알바나 아주머니보다 연변 동포들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말이 어눌하고,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대개 그 분들이다. 식당일을 하시는 분들은 노동에 비해 그다지 많은 돈을 받아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식당 주인은 연변에서 오신 분들의 임금이 한국인 아주머니의 임금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에 그분들을 고용한다. 그 몇 푼이나 된다고 그걸 또 깎기까지. 식당 경영 사정이 안 좋은 곳은 식당 주인을 탓하기도 뭣하다. 그리고 이건 탓할 문제도 아니다. 한국 아주머니가 일을 가져가면 연변 아주머니는 또 할 일이 사라지니까.  

  미국사 산책 13권이면 시간상 한참 전의 이야기인데도, 이 책 곳곳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와 비슷한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고 주장하며 살다가 이제서야 연변, 중국, 동남아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다문화 국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수십년전에 있었던 일들이 한국에서는 곧 심각한 갈등으로 표출될 것이다. 지금은 외부에서 들어온 분들이 소수지만, 이 숫자가 많아지면 한국 역시 다문화 갈등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무척 읽기 쉽게 쓰여졌고, 구체적 사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재미도 있다. 미국사를 공부한다기보다는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제별로 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읽는 데 전혀 부담이 없다. 번뜩이는 통찰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글이나 책, 보고서를 쓰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자료가 되기는 할 것이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 또다른 창작물의 좋은 자료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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