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닥에 머물면서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리들이 많다. 어느 회사는 교과서 떨어졌다고 담당자를 싹 잘라버렸다더라, 반면 어느 회사는 합격했다고 일본 여행을 보내줬다더라. 어디는 성과급을 준다더라, 어디는 일만 왕창 시키고 암 것도 없다더라 등등. 그렇다. 이번에 교과서 합격 발표가 또 났는데, 어느 출판사에서 담당자를 싹 잘라버렸다. 합격하면 담당자에겐 암 것도 없고, 불합격이면 해고가 일반적이다. 잠 못 자가면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합격/불합격 여부에 상관없이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불합격했으니 그럼 만들 교과서가 없지 않느냐 더 이상.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는데, - 사실 이들은 교과서뿐만 아니라 교재도 만들 수 있다. 그보다는 교과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 그렇게 치면 대한민국의 모든 회사들이 딱 필요할 때만 고용하고 필요치 않으면 잘라버려야 한다. 실업률은 급등하고 사회 문제로 대두될 테지. 실제로 예전보다 모든 분야에서 그와 같은 흐름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요새는 교육의 장이라는 학교에서조차도 기간제 교사 대신에 시간 강사를 고용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도 모자라 인턴 교사를 쓴다고도 한다. ('쓴다'는 표현을 싫어하지만 양해 바란다.) 대학에서 시간 강사 피빨아먹듯 이젠 중고등학교에서도 시간 강사 피빨아먹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스게소리 반, 진실 반, 교과서 집필 시기가 끝난 뒤에는 실업자들이 엄청나게 쏟아질 거란 이야기가 있다. 교과서 업무를 담당했던 편집자들이 이제 만들 교과서가 없으니 잘릴 일만 남았다는 것. 좋은 교과서 만들어보겠다고 있는 지식 없는 지식, 있는 아이디어 없는 아이디어 쫙쫙 뽑아내어 몽땅 교과서에 퍼부어봤자 남는 것 하나 없다. 교과서 만드는 과정이 이 따위이고,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고용되고 해고되는 존재인줄을 몰랐다. 좀 더 나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주축이 되어 한 가지 교과서만 만드는 국정에서 여러 민간 출판사가 참여하는 검정으로 바뀌었는데, 정작 교과서를 만드는 민간 출판사들의 고용 형태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국가(교과부)는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좀 더 세부적으로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첫째, 모든 교과목에 대해 국정에서 검정으로, 나아가 검정에서 인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검정은 집필 기준을 내려 그에 맞게 만들었는지 엄격히 심사하는 것이고, 인정은 그 심사 과정이 검정보다 엄격하지 않고 주체가 교육과정평가원이 아닌 지역 교육청이다. 그러니 국정보다 검정으로 했을 때, 검정보다 인정으로 했을 때 좀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과서가 나올 수 있다. 지금의 검정 교과서도 물론 다양하긴 하지만 집필자와 출판사는 아무래도 세세한 집필 기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둘째, 교과서를 만들어 제출하는 출판사들에 대해 개발금을 보조해줘야 한다. 지금은 합격한 출판사에 한해서만 제작비를 보전해주기로 되어 있다. 불합격하면 그 출판사는 몽땅 망해버린다. 이번에 맨 앞에서 언급한 출판사가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깊다. 출원한 많은 교과서가 떨어졌고, 손실이 막심했던 출판사로서는 대량 해고를 택했던 것. 물론, 개발금을 보조해줄 경우 너도 나도 교과서 만들겠다고 나서 출원 종수가 많이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출판사들이 무턱대고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발금 전체를 무조건 보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보전해준다면 어차피 떨어질 경우 손실은 입게 마련이다. 손실을 감수하고 모험을 해야 하는 상황인건 같지만 좀 더 덜 피해를 주는 방법을 택하는 것.  

  교과서 한 권 개발하는데 수억씩 든다. 그런데 합격해도 이익금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채택율에 따라 달라지는데, 채택율이 다른 교과서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지 않은 한, 출판사는 이익을 가져가기 어려운 구조다. 우스게소리로 고생은 저자나 출판사나 다 같이 하고, 이익은 저자만 가져가간다고 말한다. 이익이 많지 않은데 뛰어드는 이유는, 교과서 출판사라는 명예, 그리고 교과서와 연관된 교재를 판 이익금 때문. 교재 이익금은 사실 국영수 과목이 아니면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과서 최다 합격', '출원한 교과서 전 종 합격' 등의 문구로 출판사를 광고하는 건, 교과서를 많이 만들었고 많이 합격시켰다는 명예를 드러내는 것이다. 국가에서 교과서 출판사에 보조금을 지원하면, 직원 대량 해고와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또 싸가지 없는 출판사의 경우 부려먹기만 하고 자르겠지만.  
 
  셋째, 교과서 편집자를 지원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교과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인건비 일부를 국가에서 지원한다던가 하는 방안도 있다. 국정일 때는 편집자가 국가 기관 소속이었겠지만, 지금은 국가가 공교육에 사용하는 교과서를 제작하는 역할을 민간에 맡긴 상황이니, 국가의 일을 민간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교과서는 국가가 교육을 위해 만들어야 하는 필수품이니까. 그렇다면,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민간에 맡겼으니 민간 출판사라고 할지라도 교과서 업무에 매달리는 편집자들의 인건비를 국가가 출판사에 지원해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립학교 교원의 경우 국가에서 상당량을 지원하지 않는가. 지금은 모든 책임이 다 출판사에 떠넘겨져있는데, 국가 교육에 사용하는 교과서를 만드는 데 있어서 국가는 심사만 할 뿐 - 심사료도 과목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거의 2천만 원 안팎이다. 현 정부 이전까지는 2백만 원 정도였다. -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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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동 작업의 인세 배분
    from 자유, 그리고 자유 2012-01-08 14:26 
         공동 저작물의 인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이 일을 하면서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오늘은 인세 문제를 얘기하겠다. 지난 번에 이어 앞으로 계속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말을 꺼내려 한다. 드러나지 않은 일들은 수면 위로 끄집어 내어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합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
 
 
카스피 2010-06-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는데 그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수업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죠.
간단한 예로 A출판사의 중학 국어 교과서에서 1학년때 진달래 꽃을 배운 학생이 다음해에 A출판사가 떨어져 B출판사의 2학년 국어 교과서로 배울시 다시 진달래 꽃을 또 배울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학이나 영어와 달리 국어의 경우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 작품은 한정되어 있어 이런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다분히 많죠.

마늘빵 2010-06-01 23:32   좋아요 0 | URL
내일 휴일이라 오랫만에 포트리스를 했더니 시간이 이렇게... ^^ 네, 그것도 큰 문제입니다. 별로 페이퍼로 다루려고 했는데. 이번에 1학년엔 합격했지만 2학년엔 떨어진 교과서가 많습니다. 중학 국어의 경우 채택율 1위 교과서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은 2학년엔 다른 교과서를 택해야 하니 그런 문제가 발생하죠. 그 많은 국어 교과서 중 작품이 일치하는 게단 한 개도 없었다고 합니다. 검정 교과서의 '다양성'이 반영되었다고 봐야 하나요. 1학년에 대거 합격시켜놓고 자기들도 너무 많았다 싶었는지 2학년엔 왕창 떨어뜨리는 바람에 이 꼬라지가 됐죠. 떨어진 교과서의 저자들이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떨어졌다는 거죠. 나중에 페이퍼에서 자세히.

가넷 2010-06-0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트리스요?... 탱크가 미사일 쏘고 그런거 말씀하시는 거죠?;;; 오랜만에 들어 보네요 포트리스;;;

마늘빵 2010-06-02 22:36   좋아요 0 | URL
흐흐. 가끔합니다. ^^ 스트레스 풀 겸.

가넷 2010-06-03 08:34   좋아요 0 | URL
그게 유료였나요?... 아이템 살때만 돈주고 사는 거였던가... 갑자기 오랜만에 해보고 싶어 지네요.ㅎㅎ

마늘빵 2010-06-03 09:33   좋아요 0 | URL
유료 아이템도 있는데 그건 안 써요. ^^ 무료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