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철학을 했다. 그럼에도 철학이라는 신성한 물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오늘도 그 영원한 물가에서 서성거린다. 내가 알기로 철학은 본디 실용적 학문이었다. 삶을 선택하게 하고 사람을 변화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초고를 보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출간을 말렸다. 철학하는 사람이 쓸 책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 철학의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이 쓸 책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철학이 사람의 삶에서 거리를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재야에 산다.
직업이 없는 사람은 비루해진다. 그렇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더 비루해진다.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하다. 그러니 이제 보라. 누가 더 비루하고 더 가난한지를! 겨울이 끝나 추위가 가면 꽃피는 바닷가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믿음이여, 내 가난한 믿음이여. 소망이여, 내 간절한 소망이여.-274-2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