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사람 - 이문열 조정래 백낙청 김민수 김상봉 김종철을 만나다
이명원 지음 / 이매진 / 2008년 11월
절판


지식인의 세계는 낮의 화려한 언어의 향연에서 피어나는 주체 못할 담론의 우아한 쾌락과 밤의 초라한 골방에서 나뒹구는 격조 없는 소외감이 왕복운동하면서, 내면적 분열증을 증폭시킨다.(레지 드브레, <지식인의 종말>을 인용하며)-5쪽

간혹 대중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지식인조차 지식인의 ‘하방(下方)’이라는 표현을 드물지 않게 쓰는 걸 보면, 그것이 대중이든 아니면 국가 권력이든, 자신을 고유한 존재로 구별 짓는 지식인의 습속은 사실 존재 상황의 불안정성에 기인한 신분적 반동 형성의 측면이 짙다. -6쪽

누가 그러라고 요구한 적도 없는데, 대체로 지식인이라는 표현을 듣기에 적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체의 비전에 대한 탐구를 가치 있는 지식노동의 존재론적 기반이라 인식하고 있다. -8쪽

비체제적 지식인은 체제에 대한 협력과 저항이라는 지식인의 상투적인 ‘역할론’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한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과 주장에 내포되어 있는 ‘분류 체계 그 자체’의 타당성을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검토해볼 만한 지식인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9-10쪽

앞으로 우리들이 목도하게 될 미래형 지식인은 ‘체제적 지식인’으로서 그 기능을 부여받는 것과는 상대적으로 무관한 ‘비체제 지식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4쪽

"작가는 한 사회의 모순과 비인간적인 것을 주도면밀하게 꿰뚫고 투시해서 좋은 쪽으로 반전시키려 노력하고, 사회의 불안 요소나 동요가 있을 때 그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지, 그것을 조장하고 불안을 더 확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들은 좀더 정직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가 보수라고 하더라도 보수 세력의 책동에 대해서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진보라고 말하지만, 민주화 세력의 잘못은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조정래)-52쪽

"문인이 현실 정치에 대해서 발언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모순과 갈등을 감시 감독하는 관점에서 발언해야 된다. 그것은 작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자기의 사적 견해, 개인의 감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면 안 된다. 자기에게 불리하더라도 대의를 위해서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작가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헌신성과 희생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조정래)-52-53쪽

"작가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식인들이 과거처럼 아무런 전문성 없이 개입하기 어려워진 세상이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발전이겠다. 하지만 전문가만이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서 발언하는 세상은, 그것도 끔찍한 세상이다. 자기 분야에서 충실하게 활동하고 실력을 쌓으면서 또 전체에 대해서는 각자가 자기 나름으로 소신을 갖고 발언해야 할 것이다."(백낙청)-95쪽

"우리 사회는 이미지 정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많이 이야기하는데, 나는 미디어에 노출된 모든 정치인은 다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말과 글을 통해 한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창과 같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바라보는 창도 하나의 이미지인 것이다. 사람이 말과 글은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의 진실 여부를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지도 또 다른 언어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김민수)-135-136쪽

"자유가 철학의 전제가 아니라, 자유를 박탈당하고 노예 상태에 있는, 억눌리고 묶인 자들이 자기를 해방시키고 도야하고 계몽하는 과정에서 씨알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동시에 더불어 싸우고 항쟁하고 요구하는 부름의 소리가 20세기 한국 철학이었다. 세계 철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철학의 새로운 보편성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상기해보라. 여가 속에서 철학을 향유하는 사람들보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묶여있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 이런 사람들을 배제하고 말하는 철학의 보편성은 허위의식에 갇힌 것이다. 함석헌은 철학자이면서 농부였다. 존재 기반 자체가 민중적 보편성에 기반하고 있었다."(김상봉)-153-154쪽

"씨알은 자신 안에 생명의 힘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스스로의 꽃과 열매를 맺는 자발적인 생명"(심의용)-156쪽

"서양에서 자유를 향한 투쟁은 한편에서는 노예를 만들면서 반대로 자기들은 자유로워지는 모순적 과정이었다. (중략)
노예를 만들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 모두 더불어 자유로운가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자유를 위한 투쟁이 한국사다. 그 점이 다르다. 서양은 자기들만의 고상한 자유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밑바닥에서 출발한 자유이므로 누구도 노예를 만들지 않는 자유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 그 속에 같이 있다. 이것이 한국의 20세기 철학과 항쟁의 역사 그 자체가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김상봉)-158쪽

"국가는 시민들의 서로 주체성의 현실태인 한에서 서로 주체성의 표현이고, 그 실현인 한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국가가 씨알을 모두 보호하고 최선을 다해서 모든 씨알을 위해서 존재하는 한에 있어서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국가기구 또는 헌법적 질서라고 하는 것이 법을 빙자해서 극소수의 특권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때, 수탈과 억압의 도구에 지나지 않을 때, 씨알들과 국가 사이에는 전쟁 상태 말고는 다른 것이 조성될 수가 없다."(김상봉)-166쪽

"‘피를 나눈다’라고 하는 건 고통을 나누는 거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한다는 것이다."(김상봉)-168쪽

"물론 지금의 정치 체제 속에서는 국가에 복지정책을 더 많이 하라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복지국가 역시 공리주의적,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않는 체제가 아닌가. 그리고 그 체제는 무엇보다도 국민을 타자화한다. 국가나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논리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지 않은 게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란 국가를 전제로 한다. 국가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생태적으로 이것은 지속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그 자체가 반생태적인 것이다."(김종철)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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