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삶을 묻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녘 / 2009년 8월
구판절판


사람은 식물에게서 영양과 번식의 능력을 이어받고, 동물에게서 운동의 능력을 이어받아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기본적인 욕망들을 충족시키고, 이 능력들만으로는 채울 길 없는 욕망은 의식의 운동, 곧 사고 작용을 통해서 충족시킨다. (중략) 사람의 욕망은 식물이나 동물의 욕망과는 달리 역사 속에서 생겨나고, 역사 속에서 채워지는 측면이 있다. 이 측면을 인간 욕망의 역사성이라고 부르자. (윤구병)-15쪽

불교에서는 이상으로 삼는 무욕의 상태, 다시 말해서 욕망과 충족이 완전히 일치하여 아무런 틈도 없는 상태는 불행 의식과 동시에 행복한 느낌도 사라지는 상태이다. 역설적으로 생명계의 진화는 욕망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아서 생기는 불행을 원동력으로 하여 이루어져 왔고, 누군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도 생겨나는 욕망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 사이에 메워지지 않은 틈이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윤구병)-18쪽

‘아예 없는 것’은 의식의 대상도 욕망의 대상도 아니다. 우리의 의식은 ‘아예 없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의 욕망은 ‘아예 없는 것’은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모든 생명체의 건강한 욕망은 생명의 유지와 연관해서 ‘지금 없는 것’ 그러나 ‘앞으로 있을 것’, ‘여기 없는 것’ 그러나 ‘어디엔가 있는 것’, '나에게 없는 것‘ 그러나 ’내 밖에 있는 것‘을 지향한다. (윤구병)-23-24쪽

개체나 종에게 삶의 공간이 넓어지고 삶의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은 삶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반영한다. (윤구병)-24쪽

삶이 안정되면 의식은 잠이 든다. 감각마저 필요 없을 만큼 삶이 안정되면 감각도 잠이 든다. (중략) 사람이 감각 능력과 아울러 의식까지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동물에 비해 사람의 삶의 조건이 한층 더 불안정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의식의 발생은 본능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생존 조건의 반영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사람의 의식이 건강한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쓰여야 한다. (윤구병)-24-25쪽

사람의 욕망과 관련하여 ‘없는 것이 있다’는 결핍감은 ‘있을 것이 없다’는 의식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윤구병)-25쪽

사람의 욕망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욕망을 채우려는 방식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사람의 욕망이 이렇게 역사성을 띠는 것은 사람의 경우에 감각으로 파악된 ‘없는 것’과 의식으로 파악된 ‘없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생명체의 경우에 ‘없는 것’은 감각될지라도 의식되지는 않는다. 감각으로 파악된 ‘없는 것’은 감각될지라도 의식되지는 않는다. 감각으로 파악된 ‘없는 것’은 이미 ‘있는 것’이지만 ‘지금’, ‘여기에’, ‘나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따로 만들어낼 대상은 아니다. 어디엔가 이미 ‘있는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윤구병)-26쪽

새들의 울음은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 배고플 때 내는 소리 다르고, 짝지을 때 내는 소리 다르고,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내는 소리 다르다.
이처럼 의식이 없는 새조차 욕망의 충족과 좌절 정도에 따라 바뀌는 감정을 소리와 몸짓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데, 의식의 도움을 받아 어떤 생명체보다 더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개별적으로 집단적으로 표현할 능력을 지닌 생명체인 사람은 계급 지배의 긴 역사적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공포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안으로만 삭인 채 숨죽이고 살아온 것이다.(윤구병)-34쪽

인생 전체를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채워야 하는 현대인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가?"를 묻는다.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조차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인생의 가장 기초적인 물음조차 사치로 여기며 취업에 필요한 지식으로만 자신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박은미)-108-109쪽

자기 자신으로 살면 타인의 시선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데 자신이 충분히 자신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는 일에 지나치게 종속되는 것이다. 내가 나로서 사진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면서 살면, 즉 자아실현을 하면 타인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되는데, 자신의 저 깊은 내면에서 자신을 승인하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된다.(박은미)-110-111쪽

자기답게 살자. 자기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늘 찾으며 자기다움을 형성하며 살아가자. 그러한 삶은 타인의 시선에 결정당하는 삶도 아니고, 타인의 시선에 얼어붙는 삶도 아니다.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 각자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중략) 자기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자기다움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 알수록 타자의 자기다움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소외되지 않고 존재 가치를 고양하면서 사는 것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원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실존적으로 살면서 인간다움과 자기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해질 것이다. (박은미)-115쪽

진실로 철학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우선 성실한 삶, 고뇌하며 반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깨닫고 그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주체적 의식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문제 의식을 갖게 된 사람은 이미 철학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를 깨닫고 그 문제와 씨름하는 모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건 모두 다 철학자다. 직업적인 소수만의 소유물인 철학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정신 속에는 그가 인간인 한 철학자로서의 소양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삶의 포괄적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의 본래적 요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며, 또 그러한 지반 위에서만 철학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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