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가는 길은 혼자 가는 길이고, 넓게 가는 길은 같이 가는 길이다. 끝간 데 없이 깊고 좁은 동굴 속으로는 혼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한 발 한 발 내딛는 긴장과 정신 집중의 쾌감을 만끽한다. 끝간 데 없이 좌우로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의 지평선을 향해갈 때는 누군가와 손잡고 가야 한다. 그래야 동행의 즐거움과 나눔의 기쁨이 있다. 공부하기와 글쓰기에도 깊이 가는 법과 넓게 가는 법이 있다. 깊이 가는 법은 명상과 고뇌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고 독창적으로 주제를 풀어가는 길이다. 넓게 가는 법은 정보와 지식의 교환으로 이루어지고 협조적으로 소재를 얻어가는 길이다. -5쪽
"우리가 사용하는 글쓰기 도구가 우리 사고에 함께 가담한다."(니체)-117쪽
"인간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지 않고는 삶을 살 수가 없다."(캇시러)-151쪽
읽기가 ‘지식 창조’의 방식이라면, 글읽기는 인간과 지식 사이에서 ‘지식 습득’의 방식이다. 이 점에서 읽기와 글읽기는 확연히 구분된다. 따라서 글읽기를 단순히 읽기의 한 방식이라고 보기보다는 그것과 다른 차원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과 이 세상의 여러 현상 사이에 읽기의 행위가 있고 그것으로 인간은 지식을 창출한다. 반면 인간과 이미 창출된 지식 사이에 글읽기 행위가 있으며 그것으로 인간은 지식을 습득한다. 그러므로 읽기와 글읽기는 지식의 창조와 지식의 습득이라는 행위의 맥락에서 역순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52쪽
읽기는 이미지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언어화하지만, 글읽기는 상당수의 경우 문자 언어를 이미지화하는 행위를 동반한다.-153쪽
"우리의 임무는 이 세상을 읽는 것이다."(휘트먼)-157쪽
"결국 이 세상은 멋진 책 한 권에 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말라르메)-157쪽
"의심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Ubi dubium ibi libertas)"-221쪽
철학은 과학에 개념을 제공하였고, 숙련된 기술은 과학에 도구를 제공하였다. -238쪽
"기계가 완전하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기계가 완전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런 기계를 원하지 않는다."(매즐리시)-247쪽
"인간 정신은 어떻게든 모든 것에 열려 있다."(토마스 아퀴나스)-250쪽
"기술은 단지 우리에게 도구를 제공할 뿐이며, 인간의 욕망과 제도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다이슨)-255쪽
앙가주망이라는 말에는 어떤 일에 자기 자신을 담보하는 것, 다시 말해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구속하는 일종의 ‘자기 구속’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자기 구속인 이상, 구속일지라도 행위자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다. 자기 외부에서 지시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어떤 임무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277쪽
"생각은 권력을 결정적으로 굴복시키지 않는 한 권력 앞에서 항시 안전하지 못하다."(호르크하이머)-279쪽
"정치학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정치적 언급을 하는 것은 아니다."(촘스키)-279쪽
정치 권력은 민중을 억압하고, 문화 권력은 대중을 지배하며, 사회적 무관심은 서민을 삭제하지만, 과학-기술의 힘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인류를 멸종시킬 수도 있(다.)-288쪽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중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릴케가 로댕의 걸작 <지옥문>을 구성하는 <생각하는 사람>의 형상을 보고 한 말 중)-339쪽
문화적으로 혼란스럽다는 것은 문화의 영역에 ‘정치성’의 개입이 적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반면 문화적 획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성이 개입해 있다는 뜻일 수 있다. -345쪽
"어쨌든 철학은 항상 너무 늦게 도착한다. … 철학이 회색 위에 자신의 회색을 덧칠할 때면 삶의 모습은 이미 늙어버린다. 그리고 회색 위에 회색을 칠해가지고는 삶을 젊게 할 수 없다. 다만 삶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땅거미 질 무렵에야 자신의 비행을 시작한다."(헤겔)-389쪽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땅거미 질 무렵에야 자신의 비행을 시작하지만, 새로운 하루를 여는 새벽빛을 보며 둥지로 돌아온다. 여명에 귀소하는 부엉이! 헤겔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부엉이가 ‘과거의 끝’을 본다는 것만 생각했지, ‘미래의 시작’을 본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부엉이는 귀소하면서 본 새벽빛을 미래로 투영하는 꿈의 화두로 삼는다. 철학자의 미래 예측은 미래학자의 연구에 비하면 공상의 수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자의 미래 구상은 현실의 새벽빛을 보고 그것에 상상력을 부여하므로 때론 더욱 현실감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철학자는 과학자가 관찰하지 않는 역사적 시간과, 그 시간 위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의미를 세로지르는 길고 긴 가지의 축 위에 단단히 둥지를 틀고, 깊은 잠 속 화려한 꿈을 꾸는 부엉이이기 때문이다. 꿈 속의 부엉이는 둥지의 든든함에 세로지른 가지 위를 날아 높게 비상한다. 그의 꿈 이야기는 이미 세로지르기 너머의 세계로 열려 있다. -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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