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도 한 명의 독자다. 그런데 한 명의 독자로서 만족해서는 안 되는 것이 편집자의 운명이다. 편집자는 독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도 해야 하지만 또 그 욕구를 이끌어 내야 하는 사명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냉정하게 물어보자. 누가 편집자에게 그런 사명을 던져 주었나? 바로 이 점에서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편집자는 비단 책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 당대 사회의 트렌드도 만들어 간다. 무엇보다도 고답적으로 책의 세계만을 편집한다고 믿는 것은 지각 있는 편집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정은숙)-14쪽
중요한 것은 편집자는 무식할 수는 있지만 무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편집하는 책과 연결되는 이야기와 세상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는 사실 관계나 이론을 바탕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책뿐만 아니라, 지식을 수단 삼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책도 많다. 그럴 때 책은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담는 그릇이 된다. 생각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행동도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 편집자는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종진)-51쪽
원고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저자에게 있지만 서문과 본문의 문체가 다르고 정서가 어긋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원고를 저자 상의 없이 고친다거나 ‘들어낸다’든지, 심지어 단 한 문장이라도 대신 쓰는 일은 마약보다 끔찍한 악마의 유혹이다. (차익종)-147쪽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변수’는? 그건 아마도 저자가 원고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연락을 끊고 잠적까지 한다면 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이승희)-188쪽
때로 편집자는 주어진 문장을 고치는 수준을 넘어서는 에디터십을 발휘해야 할 필요도 있다. (중략) 비록 이 단어들이 관습화되어 자주 사용되기는 하지만,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올바르지 않다. 더구나 독자가 청소년인 한자 학습서에 이런 시대착오적인 설명이 바람직할까? 결국 저자에게 요청하여 이 설명은 다른 내용으로 교체했다. (중략) 텍스트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놓으려 하는 것, 나는 그것이 텍스트 가공을 하는 편집자의 기본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김희중)-201-203쪽
편집자로서 정말 중요한 자질은 세상과 문장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열정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자질은 편집자가 되기 이전부터 쌓여 있어야 한다. (이우희)-228쪽
편집자가 다루는 텍스트는 그저 글자들의 나열이 아니다. 인격으로서의 존엄을 지닌 한 사람이 펼친 ‘정신 활동’의 소산이다. 그 앞에서 겸손해질 수 없다면 제아무리 오랜 세월 텍스트 다루는 기술을 갈고 닦았다 해도, 그 텍스트의 가치에 걸맞은 책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텍스트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할 것은, 해박한 지식이나 숙달된 기술이나 풍부한 실무 경험 따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대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삶을 마주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요컨대 자신의 삶도 제대로 편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정신이 담긴 텍스트를 감히 편집할 엄두인들 낼 수 있을까?(변정수)-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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