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엄기호 지음 / 낮은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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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참으로 가혹한 말이다. 철저히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충실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라는 의미다. 굳이 이와 같은 정언 명령 형태로 지침(?)을 내리지 않더라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충분히 제 이익에 충실하고, 자기 이외에 남을 돌보지 않는다. 그러니 이 말은,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앞으로 그리해라, 라는 의미가 아니라, 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정반대의 정언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혹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 시대에 개인이 살아가야 할 철학을 제시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자기계발, 처세술의 차원에서 제목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래, 맞다. 이 책은 '이 시대에 개인이 살아가야 할 철학'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다만, 남을 돌보지 않고 제 이익을 추구함으로써가 아니라, 남을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단지 '입으로'가 아닌 '행동으로' 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최근 몇년간 참 많이 들은 용어다. 정확히 뭘 의미하고,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사람들은 우리가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며,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삶을 파탄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사실 또한 이미 알고 있다. 이 책 곳곳에는 몸으로 체험한 이들의 사례가 실려있다. 여학생들은 제 몸값이 가장 높은 나이에 성매매에 나서며, 일제고사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아이는 모든(?) 서민들의 꿈이자 희망인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다. 

  지금은 또 달라졌지만, '교육인적자원부'로 명칭이 바뀌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국가에 경제적 부를 가져다 줄 미래의 인적 '자원'이며, 매달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한달살이 하는 직장인들은 단지 회사의 부품일 뿐이다. 부품은 고장나거나 낡으면 버리고 다시 갈면 된다. 직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하루의 절반 이상이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의 부품으로서 존재한다. 그나마라도 이들이 노동자로 인정을 받으면 다행이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이들은 노동자인 동시에 자영업자다.  

  "그전까지 노동자는 언제나 개별 노동자로서만이 아니라 집단으로 존재해 왔다. 노동자는 사용자와 개인적으로 계약을 맺지만, 그 노동 계약은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통하여 전체 노동자 집단이 책임지면서 보호해 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서 노동이 자영업화하면서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질과 성과에 대해 혼자서 책임을 지게 된다. 집단으로 존재할 수 없는 노동자는 그저 자기 몸에 대한 자영업자일 뿐이다." 

  회사는 개인이 내는 성과에 주목하며, 성과를 내지 못한 직원은 쫓겨난다. 개인이 자영업자임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연봉제'이다. 개인은 제 몸을 자원으로 회사와 몸값을 책정하고 계약을 맺는 작은 경영자이며, 이들은 (나이들어서도) 회사와 계약을 맺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직장에서 하루 절반(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남은 시간엔 영어 공부를 하든, 컴퓨터 자격증을 따든, 뭐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회사는 더이상 이들을 '써주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쓰임을 당하기 위해서는' 개인은 제 몸에 대한 '경영'을 체계적으로 잘 해줘야 한다. 일용직 노동자나 계약직 노동자나 정규직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계약을 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우리의 자유는 그들에게 종속되어 있다. 과거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한데 비해 지금은 개인의 자유가 널리 보장된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는 '국가'에서 '기업'으로 주인을 바꾸었을 뿐이다. 국가가 우리를 기업에 팔아넘겼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억압과 통제로부터 해방됐지만, 국가에 의한 노예 상태에서 '기업을 향한 자발적 노예 상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알아서 각자가 삶의 방식을 선택하라. 하지만, 그 책임은 너희들 몫이다. 국가는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하나의 선택지를 따르며, 그에 따른 결과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다. 선택할 자유는 있되, 선택지는 하나인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을 피해 작은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와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간주된다. 그 또한 하나의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 나 이외의 대다수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암울한 현실을 깨고 나오기 위한 방법은, 우리가 수없이 들어온 '연대'와 '투쟁'이다. 우석훈이 <88만원 세대>를 쓰고,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텐데, 그 대답도 '연대'와 '투쟁'이었다.  

  우리의 현실이 앞이 깜깜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겹다 - 언제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원한다. 연대와 투쟁이라니까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그건 질문하고 고민하는 자들의 몫이다. 저자는 교육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앎을 추구하게 하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며,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도록 북돋우며,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와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교육에 동참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대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정확히 그 반대로만 하면 된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삶의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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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엄기호 지음; 낮은산
    from Aromatic, Delicious Scalpel 2009-09-15 22:03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나름 많은 책을 읽고 느끼고 실제하는 현상들을 보아오기에 독후감이라는 제목아래 또다시 이야기하기가 조금 서먹하긴 하다. 자꾸 되풀이되는 듯한 내용에 가만히 앉아 자판만 두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