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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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약간 들어있습니다.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책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여기 밑줄긋기를 읽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책을 읽을 계획이 없다면, 그러나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읽으셔도 상관 없습니다. -0쪽

그들의 삶이란 항상 똑같아요, 왜죠, 생각해 보세요, 그들의 삶이란 항상 똑같아요, 다른 게 없죠, 나타났다가, 얘기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진사들에게 미소를 짓고, 항상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죠, 우리 모두가 다 그렇죠,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이나 저나, 모든 사람들은, 이곳 저곳에 나타나, 얘기를 하기도 하고, 집을 나섰다간 그곳으로 돌아가죠, 가끔씩 웃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죠, 우리 모두가 유명인이 될 수는 없죠, 다행한 일이네요, 선생님의 수집이 등기소만한 크기가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더 클 수도 있죠, 등기소는 단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고, 그런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우리가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홀몸이 되든, 등기소에선 그런 것엔 관심도 없어요, 그런 일들 가운데서 우리가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행복과 불행은 마치 유명인들과 같은 거예요, 인기가 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보다 더 끔찍한 사실은, 등기소에선 우리가 누군지조차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들에게 우리는 몇 개의 글자로 된 이름과 날짜 외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206-207쪽

완전한 죽음은 망각의 마지막 열매이고, 삶이란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221쪽

공동묘지란 아무 작은 공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도시가 형성되면서 그 주위의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행히도 그 공간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엄청난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다. 예전엔 그 주위를 빙 돌아가며 담을 쌓았지만,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담 안쪽의 한정된 공간 속에 죽은 자들의 치열한 자리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마치 등기소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이 담을 허물고 조금 더 넓게 새로운 담을 쌓아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백 년 전, 묘지를 담당했던 한 관리인의 머릿속에, 거리로 향하는 담을 제외하고 다른 방향의 담들은 모두 제거해버리자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그것이 담 안쪽과 바깥쪽의 감성적 관계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는 변론했던 것이었다. 담이 가지는 의미가, 비록 위생적인 면이나 장식적인 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저 빨리,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잊혀지게 하는 효과 외엔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225쪽

생사에 관해 신고를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 애절한 망각으로 인해 제때에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동묘지는 등기소보다 더 빨리 죽은 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게 되었으므로, 이 중앙 공동묘지의 또 다른 명칭은 모든 이름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렇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지만, 등기소에서 그 두 단어란 마치 보자기 같은 것으로, 그 속에서 모든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 자든 죽은 자든, 공동묘지의 경우엔, 종착지라는 그 본질적 의미로 언제나 사망자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만 했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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