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 Issue & Thinking 01
토머스 슈뢰터 지음, 유동환 옮김 / 푸른나무 / 2007년 12월
절판


케인스에 따르면, 국제수지에서 흑자를 낸 나라, 즉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한 나라가 받을 돈에 대한 이자를 치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보다 빈곤한 나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조금 이상한 논리 같지만 케인스는 경제를 ‘돈벌이’로 보지 않고 ‘순환’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미국은 해외 무역수지에서 적자를 기록한 나라에게 부담을 넘기려 했다. ‘갚을 사람이 문다’라는 강자의 논리가 등장한 것이다. 화이트는 각국의 경제력에 따라 기금을 조성하고 경제위기 시에는 그 한도 내에서 대출할 수 있지만, 먼저 대출 기관의 집행부가 제시하는 조건을 이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72-73쪽

1971년 8월 금 태환 제도, 즉 언제나 금 1온스에 35달러의 가치로 교환하던 규정이 존슨의 후임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 끝장나고 말았다. 닉슨은 미국의 달러화를 평가절하(환율 인상)하고 금리를 올리는 조치를 동시에 취했다. 이것은 미국의 빚을 줄이는 동시에 그 짐을 다른 나라(대개는 개발도상국)에게 떠넘기는 조치였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미국이 외국에 진 빚의 실질 가치는 큰 폭으로 떨어져 엄청난 빚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고, 그 결과 막대한 달러를 쌓아 놓고 있던 유럽 각국과 일본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그 대신 미국은 금리를 인상해 주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유럽과 일본은 덩달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에게서 대부분 달러로 차관을 얻어 갔던 개발도상국이 그 금리를 고스란히 물어낼 수밖에 없었다. 개발도상국이 마지막 피해자였던 것이다. -76-77쪽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

긴축 정책의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우선 정부 지출을 줄이는 대신 세율은 인상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공기업의 비중이 큰 나라에서 공기업을 (특히 외국인에게) 매각하는 공기업 민영화도 하나의 방안이다. 금융기관이 대출 규모를 대폭 줄이는 긴축 금융도 안정화 프로그램의 한 요소다. 이 긴축 금융의 결과, 금리는 폭등하게 된다. 또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것도 안정화 프로그램의 핵심적 요소다.
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면 해당국은 저성장, 심지어는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기업과 금융기관도 힘들겠지만, 그 고통은 대부분 실업률 상승과 실질 임금 인하를 통해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것이 바로 국제수지 불균형의 조정 책임을 전적으로 적자국이 지도록 만든 IMF 체제의 궁극적 효과다. -82쪽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미국의 경제 질서를 세계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후진국은 대부분 시장 기능이 매우 취약하여 정부가 의욕적인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는 등 경제에 많이 개입하고 있다. 따라서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규제 완화와 정부 개입을 줄인다는 명목을 내세워 자유화 정책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중략)
IMF의 자유화 정책에는 공기업의 민영화도 포함된다. 공기업 민영화는 재정 긴축의 수단인 동시에, 공기업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결정적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한 국가 내부의 자유화에 머물지 않으며 대외적 자유화, 즉 외국 기업에 대한 개방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이에 따라 선진국 자본이 싼값에 해당국 기업을 잡아먹을 수 있는 기회를 더욱 확대한다. -83쪽

제노바 2001

2001년 7워 20일과 21일 주말, 한편에 높은 산을 끼고 있는 제노바는 여느 때처럼 고요한 도시가 될 수도 있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이 도시에 들어와 있던 수많은 세계화 반대론자들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이 때문에 제노바 시민들은 경찰서장의 권유를 받아 억지로 짧은 휴가를 내고 이미 이 도시를 떠났다. 그 주말 이 도시에 투입된 경찰들을 보면 과거 1970년대의 시위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이 야만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했던 과거의 그 장면이 다시 현실에서 재연된 것이다! 그리고 카를로 줄리아니라는 학생은 시위에 참여한 대가로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경찰청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붉은 선이 그어진 구역을 설정해 놓고 일반인은 물론 기자들까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그곳은 국가원수들이 회의를 하는 장소였다.
시민의 시위 권한을 박탈하며 회의 참석자들을 눈에 띄지 않게 선상 호텔에 숨겨 놓고 끝내는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막을 내린 이 회의는 세계화의 냉혹한 단면을 숨김없이 보여 주었다. -180-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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