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 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2
리영희 외 지음, 박상환 엮음 / 철수와영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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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국민이라는 말을 쓰면 안됩니다. 민주주의적 시민이라는 말을 써야 합니다. 국민이라는 것은 국가라는 상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들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오늘날까지도 정치인들뿐만 아니고 심지어 결혼식장에서 주례사를 하면서도 ‘국민 여러분’ 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존재의 구성원인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지칭하는 대신 국민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벌써 소외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돈, 권력, 힘을 상징하는 국가라는 상위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하고 그 밑에 존재하는 개개인들을 국민이라는 정치용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국민이라고 부를 때 이를 소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계속)(리영희)-15-16쪽

우리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시민이란 어떤 권위나 권력도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평등 사회인 시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50년 동안 권위주의적인 지배자로서의 국가권력은 극우반공이라는 광적인 사상 통제수단을 가지고, 우리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해왔습니다. 이런 지배에 항거하고 투쟁하며 죽어간 선배들은 시민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위해 싸웠기에, 소외를 극복하며 삶에 귀중한 보람을 느낀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독자성을 가지고 자기 결정적이며 자유로워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으로서 시민의 삶은 자유로운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항거하며 싸울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저항 없이 ‘편안한’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우리에게 소망스런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의미랄까 뭐 이런 것이 박탈되거나 퇴색되는 사회라고 볼 수 있지요. (리영희)-16쪽

유엔인권조약에는 A협약과 B협약이 있습니다. A협약은 사회권의 문제라 부르는 즉, 사회 실업으로부터의 자유, 최소한의 생존권, 사회적 또는 경제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협약입니다. B협약은 영장 없이 구속당하지 않을 자유, 사상, 표현, 결사, 집회 등의 자유입니다. 이 중 B협약의 자유들이 보장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입니다. (손호철)-56쪽

황도유학의 기본은 원시유학의 특정 요소를 끄집어내어, 천황은 소위 자기 수하의 백성들을 한결 같이 사랑한다는 황도정신에 대한 구호로 변모시켰다는 것입니다. 일부 개량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일본은 1등 국민이고 우리는 2등 국민이라 생각하고 만주나 몽골은 3등 국민이라 생각하는 그런 민족의 등급을 매기는 것에서도 황도유학이 이용됩니다.
가령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지원제에서 징병제로 전환될 때, 일부 개량주의자와 황도유학자들이 이제야 독립이 되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천황을 위해서 군대에 가서 희생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고, 국민된 의무를 다해야 한다."라고 생각한 것이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이런 부정적 맥락에서 실천적 요소에 대하여 황도유학의 논리가 이용된 것입니다. (이이화)-129쪽

성찰이성에 눈뜬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 좋은 점을 공유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성찰이성에 눈뜨지 못한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누가 더 우월한지를 견줍니다. 서로 비교하여 내가 우월하다는 점만 확인하려고 합니다. 똘레랑스가 성찰이성을 요구하는 까닭이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다름을 용인하라는 정언명령으로서의 똘레랑스는 다름을 용인하지 않고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억압하고 배제하는 앵똘레랑스에 ‘단호히’ 반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다름을 용인하는 똘레랑스이지만 용인할 수 없고 용인해선 안되는 것은 앵똘레랑스입니다. 인류 역사상 똘레랑스 사상이 먼저 생긴 게 아닙니다. 똘레랑스사상은 인간의 앵똘레랑스 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앵똘레랑스의 인간 행위가 먼저 있었고 그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태어난 게 똘레랑스사상인 것입니다. (홍세화)-162쪽

사회구성원들에게 합리적 이성이 결핍되고 긍정적 가치가 공유되지 못할 때, ‘다름’의 관계는 서로 부정하는 관계로만 설정됩니다. 공익과 진실이라는 목표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이 합리적 논거를 통해 경쟁하는 대신에 서로가 서로를 극복해야 하는 부정의 관계로만 설정되는 것입니다. 서로 용인하는 경쟁 대상은 설 자리가 없고 내 편이 아닌 모든 사람이 극복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소수자는 강자, 다수 집단에게 아주 쉬운 극복대상이 되고 인권 침해의 희생자로 전락할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홍세화)-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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