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오프 더 레코드 -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
박진진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6월
절판


사랑이 식는 건 한순간이다. 실제로는 서서히 조금씩 식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한순간이다. 더이상 떨림이 없는 손, 다시 하이힐을 신기 시작한 나, 어느 날은 식어가는 사랑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져 그의 팔을 가만히 베고 누워 소리 없이 울기도 했었다. 전에는 보였지만 굳이 인정하지 않았던 단점, 그리고 새로 보이기 시작한 단점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단점이 아니라 그걸 보는 내 눈이란 것을 알았지만 사랑이 식어버린 눈으로는 더 이상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줄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23쪽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포기한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어느 날 아깝게 느껴지는 건 순식간이다. 사랑 때문에 못한 것들, 심지어는 내 사랑에서 충족되지 못한 부분들까지 못마땅해진다.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모든 걸 다 걸고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어디선가 그런 사랑이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사랑은 변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단점이 있다. 우린 그저 잠깐 그걸 눈감아줄 뿐이다. 이렇게나 얄팍하고 미덥지 못하고 신념도 잘 뒤바뀌는 인간들이 대체 사랑이란 걸 왜 할까? 그건 사랑이 식는 과정의 슬픔보다 콩깍지가 쓰인 사랑의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일 것이다. -24쪽

사람들은 대부분 첫사랑을 좋게 기억한다. 뭔가 잘 모르고 순수했던 시절이라서 서툴렀지만 그래도 그때는 ‘진심’이라는게 존재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심은 서로가 다시 만나면 언제든 부활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첫사랑은 원래 이뤄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만난다고해서 그 이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참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되지도 않는다. 지난날의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다시 만나보지만, 그건 좋았던 일만 있어서가 아니라 편리하게도 우리의 뇌가 그것만을 취사선택해서 기억했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은 그냥 지나가게 둬야 한다. 세월의 흔적을 다 버릴 수 있는 건 노래 가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 흔적들을 다 떠안은 채 다시 예전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 세월만 흐른 게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도 그 세월 안에 흘러가버렸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되도록 만나지 않는 게 좋다. 그냥 좋았던 기억, 그걸로 충분하다. -50-51쪽

세상에서 가장 ‘등신쪼다’같은 일을 꼽으라면 헤어진 남자에게 친구로라도 만나고 싶다며 매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못잊겠걸랑 차라리 눈물 콧물 다 짜가면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애걸복걸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깨끗하게 잊는 게 맞다. 괜히 자존심 한 조각은 남겨두고 싶어서 친구 어쩌고 하는 어설픈 가면을 써봐야 상대는 이미 어떤 마음으로 친구 운운하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못 이기는 척 친구로 받아주는 놈은 십중팔구 진짜 나쁜 남자다. 적어도 자기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미련 정도는 싹을 잘라줘야 하는데 이건 그 싹에 물을 주고 앉았으니 나쁜 남자란 말도 아깝다. -104-105쪽

섹스는 분위기다. 왜 여자들이 촛불도 켜놓고 침대에 꽃잎도 뿌리길 바라겠는가. 또 제아무리 평소에는 깡소주를 즐기나 하더라도 그날만큼은 맛도 모르는 와인을 고집하겠는가. 그것은 섹스할 때 뭔가 그럴듯하고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이다. 신음이라고 해서 어디서 산모가 애 낳나 싶을 정도의 신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귓전에 살짝살짝 흘리듯 내는 신음은 아마 섹스 테크닉 못지않게 서로에게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110쪽

우리는 바람을 피우기 전에 딱 한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건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이 일을 알게 될 경우 받게 될 마음의 상처이다. 아마도 바람난 애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세상에 배신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건 없다. 믿었던 사람에게 찍히는 발등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간혹 자기를 배신한 사람이 작정하고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보다 그들의 바람 상대가 믿었던 친구나 애인이라는 점에 더 오래 마음 아파한다. -196쪽

연애가 좋은 건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얼마든지 선택의 기회가 있어서이다. 지금의 사랑보다 훨씬 더좋은 사랑이 찾아왔다면 미련 없이 떠나도 좋다. 그러나 상대방이 마음 아파할까 봐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친다면 그건 정말로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기만 하면 모든 게 다 괜찮은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결속된 남녀의 경우 새로운 사랑을 선택하려면 너무나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연애의 경우는 다르다. 물론 상대방은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을 사랑하는 당신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을 위한답시고 이 사람도 사랑하고 저 사람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둘 중 어느 하나도 진지하게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196쪽

시간이 흐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당연히 단점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이 단점을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아 아니다. 견디고 있다면 이미 그건 사랑이 아니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면 내가 조금씩 노력해서 그가 고쳐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고, 만약 조금씩 양보하면 되는 단점이라면 그 단점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이 단점 때문에 그 단점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방법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다. 바람의 상대 또한 단점을 갖고 있다.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197-198쪽

여자들은 사랑을 하면 자신의 전부를 거는 경향이 있다. 생활 자체에 사랑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자들은 처음에는 여자와 같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가 여자보다는 훨씬 빠르다. (중략)
어쩌면 남자들이 우리처럼 사랑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는 건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자들과 달리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사랑만을 강요하는 건 다 포기하란 소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남자에게 너무 많은 집중도를 요구하는 것은 내가 1순위일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연애 초창기에나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여자친구가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 그는 늘 해왔던 생활로 다시 복귀하려고 한다. 여자친구가 있어도 늦게까지 회사 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컴퓨터 게임을 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이런 일들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당신에게 어떤 존재이냐며 따진다. 그러면 남자들은 여자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보챈다고 생각한다. (중략)-216-218쪽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친구가 싫어져서 혹은 당신의 존재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제쳐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왔던 일을 하는 것이며, 단지 달라진 것은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뿐이다. -219쪽

사랑을 계산하는 시기는 이 사람과 사귈지 말지를 고민하는, 연애를 시작하기 바로 전이어야 한다. 이미 연애를 시작했다면 그런 계산은 접어야 한다. 사랑하는 도중에 계산하기 시작하면 누구나 자기가 아깝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상대방을 충분하게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은 천년만년 지속되는 게 아니다. 언젠가 끝난다.
그렇게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그 시간에 후회 없을 만큼 충분히 사랑해야 한다. 오래전에 끝났던 사랑이 아쉬워 다시 만난다고 해서 예전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건 없다. 그때의 그와 나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다.
아무리 변하지 않았더라도 서로 분명 달라져있다. 다시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이지, 과거의 사랑을 이어가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헤어짐을 고민하고 있다면 제일 먼저 충분히 사랑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그와 하고 싶은 일이 더 많다면, 그와 함께할 행복한 일들이 남아있다면 다 해보고 헤어져도 늦지 않다. -223쪽

첫사랑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건 단지 그게 처음이어서가 아니다. 뭘 잘 몰라서 충분히 사랑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자꾸만 생각나고 아쉬운 것이다. 생각보다 첫사랑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어떤 사랑을 해도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22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