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삼성 특검을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를 말한다. 넓게는 대한민국의 경제 위기이고, 작게는 삼성과 관련된 기업에 근무하는 월급쟁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고통일 것이다. 정의의 이름을 앞세워 범죄자 집단을 처벌하자니 범죄와 별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선량한 일개미들의 구체적인 삶까지 피해를 주게 되고, 그렇다고 경제를 앞세워 대충 얼버무리고 끝내자니 여러 국가 기관을 떡주무르듯 주물러 장악하려고 한 쿠데타 집단을 그냥 놔줘야 하는 꼴이 되고.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온다고 해도 정의를 못 본 체 할 수는 없다는게 기본적인 내 생각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정의는 경제에 앞서야 하며, 부정의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일개 개인의 고발로 시작된 사안이지만, 비록 그가 범죄 집단에 머물며 한때 그들과 같이했던 위인이라고 하지만, 그 개인의 사생활과 성격과 기타 모든 항목들은 배제한 채 사건의 진실 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삼성 특검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고, 단 한 번도 소환된 적이 없다는 이건희 회장이 두 차례나 검찰에 불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삼성의 범죄 행각을 고발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어쩌면 이건희 회장을 소환한 것은, 검찰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거대한 쇼를 펼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결과가 나온 뒤에 이 정도로 했는데 설마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를 쳤겠어, 라는 식의 반응을 기대하는 건지도 모른다. 일단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특검이 옆길로 세지 않고 범죄에 가담한 모든 이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기를 기대한다. 얼마전 만난 어떤 분은, 지금 특검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핵심적인건 검찰과 국세청 등 국가 기관의 고위 공무원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줘 자기네 사람으로 만들어 국가를 장악하려 했다는 것인데, 이게 빠진 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범죄 항목이 여러 가지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혐의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빠짐없이 모두 수사해야 할 것이다.
말하려고 했던건 이게 아니고. 특검이 길어져서 죄없는 삼성 일개미들과 관련 하청업체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본다면 그들 입장에서 특검이 빨리 끝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이 압박을 받음으로써 관련없는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오직 압박에 힘겨워 해야 할 것은, 죄를 저지르고도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는 범죄집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검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국가 경제에 피해를 안 주는 방향으로, 다시 말하면 삼성은 아무런 잘못한 것이 없다는 식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야 관련된 하청 중소기업들도 피해를 보지 않을테니까.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현재 중소기업들이 힘겨운 상황에 처한 것이 삼성 특검 때문인가 하는 점이다. 혹시 다른 원인이 있는데, 삼성 특검과 관련되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삼성 특검 = 중소 기업의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공식이 굳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건 그들이 생각하는 '현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현재 중소기업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이유는,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있다. 기업 프렌들리 라고는 하지만, 그 기업에 중소기업은 제외되어 있으니,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은다 한들 혜택을 받지 못한다. 혜택을 받는 건 대기업뿐이다.
현 정부는 환율 인상을 유도해서 수출 대기업에 가격경쟁력을 더해주려 하고 있는데, 이 혜택을 받는 기업은 대개 반도체나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생산하는 대기업에 한정된다. 그러면 수출이 잘 되면 그와 관련된 중소기업이 동시에 혜택을 보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국제 시장의 원자재 값은 상승하고 있고, 원자재를 들여와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상납'해야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재료 값은 더 드는데 대기업에서는 그만큼의 부품 값을 매겨주지 않으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생은 중소기업이 하고 재미는 대기업이 보는 결과를 가져올밖에. 어느 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중앙회 조이현 경영연구팀장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하지만, 실상은 '대기업프렌들리'다."라고 말했다 한다. 환율 정책 뿐 아니라 규제 완화 조처도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뿐 중소기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삼성특검의 결과로 대한민국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말하는 건 매우 잘못된 생각이며, 그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있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삼성 특검이 어떻게든 마무리되려면 이명박 정부가 힘을 얻어야 하고, 따라서 이명박의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생각 - 이런 생각은 특검수사가 대통령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 은, 오히려 거꾸로인 결과를 불러올 뿐이다. 삼성은 삼성대로 빠져나가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더 힘들어지는 사태를 막으려면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가 아니라,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개개인의 삶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을 찍었어야 맞다. 파이는 아무리 커져도 파이가 내게 떨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모든 구경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커진 파이는 몇몇 힘있는 녀석들이 가져갈 뿐이다. 남는 건 없다. 삼성특검을 반대하고, 한나라당을 찍는다 해서 나아지는 건 결코 없다. 이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