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m I? - 나는 내가 만든다
정창현.안광복.한채영.강동길.최원호 지음 / 사계절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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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부터 안광복 교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논리학을 가르치는 건 특별한 소수에게만 안겨지는 대단한 행운이다. 한국의 고등학교에 선택 교과로 편성되어 있지만 실제로 철학이나 논리학을 선택하는 학교는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두 교과는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아이들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지만, 버려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 버려졌다.

  안광복 교사는 행운에 당첨된 특별한 소수이다. (주변인에 따르면) 그는 학교 현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스스로 자기계발에도 소홀함이 없이 꾸준히 정진해나가고 있다. 가히 철학 교사의 표본이다. 이 책은 그런 안광복 교사와 중동고의 국어, 영어, 과학 교과 교사, 교장이 함께 참여해 만들어낸 꽤 잘 만든,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자기탐색 교과서다.

  학교 현장에는 '창의적 재량 수업'이라는 시간이 편성되어 있는데, 실상은 교육용 비디오를 틀어주고 보라고 하거나, 아니면 자율학습 시간을 주거나 하는 등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래 창의적 재량 수업을 통해서 정규 교과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가르치지 못하는, 수업을 해당 시간에 하도록 융통성을 나름 발휘한 것이지만, 학교 교사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지 매우 고민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니 진도가 늦은 교과의 보충수업으로 채워지거나 학생들의 자율에 맞기거나, 재미없는 비디오를 틀어주며 스스로는 방관자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교육이 아니라 방치다.

  매우 빠르게 읽었다. 그야말로 창의적 재량 수업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장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장 나는 누구인가, 를 통해서 자기 정체성 확립을, 2장 더 멀리 보자, 를 통해서 비전 수립을, 3장 나는 내가 책임진다, 를 통해서 자기 관리를, 4장 함께하면 즐겁다, 를 통해서 커뮤니케이션 향상을 유도한다. 말로만 그런게 아니라 정말 여기 있는 교재를 잘만 활용한다면 재밌는, 또 의미있는 수업이 되리라 믿는다.

  지은이들은 이 책의 말미에 본래 쓰여졌던 원고의 90% 가량을 제거하고 10%만을 압축시켜 책으로 내놨다고 한다. 기초연구 2년에, 실제 수업을 통한 집필 기간 3년, 관련 분야 전문가 면담 130여명, 수업 참여 학생 1400여명, 이 정도면 괜찮은 수업 교재로 충분히 검토되었다고 봐야겠다. 좋은 수업 교재가 나왔으니 남은 것은 현장에서 교사들이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좋은 교재가 있다고 해서 좋은 수업으로 곧장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이 책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교사들만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은 '풀어야 할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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