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 철학을 내 것으로 만드는 "생각 교과서"!
김민철 지음 / 그린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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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논술 붐이 일면서 - 각 대학들이 논술 폐지를 선언하는 시점이라 과거형인 '한때'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출판사도 열심히 좀 더 쉽게 쓴 청소년용 철학서적들을 내놓으며 이에 부응하기도 했다. 여전히 대중화 작업은 진행 중이지만 인수위의 일방적인 교육 선언이 국민들의 합의없이 그대로 실천된다면 서서히 사그라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논술'을 핑계삼아 나오는 철학서적들 중에 괜찮은 것들이 꽤 많았는데 이런 책을 골라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중적인 철학 서적이라면 대략 두 가지 정도로 분류가 된다. 그리스 아테네부터 시작해서 현대 프랑스와 미국, 독일에 이르기까지의 현대 유럽 철학까지를 간단히 소개하고 풀어놓는 철학사 책이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장르들과 연합하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텍스트들을 통해 철학적 사고를 이끌어 내는 책들이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책들이, 어떤 철학사적 지식과는 별개로 자신의 사유를 그대로 풀어놓는 책이다. 일명 철학 에세이인데, 김민철의 <철학, 땅으로 내려오다>라는 책 또한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함이다. 타인의 삶을 꾸준히 모방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추구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의 행복의 길을 걷고자 하기 위함이다. 나와 나의 묻고 답하기는 점차 '나'에서 '사회'로 시선을 넓혀가며 나를 넘어선 주변의 것들,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지구상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민철은 철학이란 '따져묻기'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추구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고, 그에 따르면 지혜란, "지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여 그와 관련된 상황이 주어질 때 최선의 판단을 도출해 내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암기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지식을 그 원리에서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거기에는 '따져묻기'가 필수적인 것이다." 현재 어린아이부터 취업준비생을 넘어 승진시험을 보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국민 모두가 '많이 외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식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식이 합격과 불합격의 판단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은 텍스트(지식)에 대한 자신의 해석(지혜)이다.

  "사실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 (니체, 권력에의 의지) 이 책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추구하고 있는, 사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해석을 가하는 김민철만의 철학 에세이이다. 그는 이 책 곳곳에서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지식은 주인이 아니다. 이 책의 주가 되는 것은 지식이 아닌 김민철의 해석이다. 그의 해석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그가 익히고 배워온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자기해석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이 왜 '따져묻기'인지를 알려주고, 지식이 아닌 지혜를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본보기이자 표본이라는 점에서 교과서라 칭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접하는 고리타분하고 일방향적인 교과서가 아니라 자기 생각이 주가 되는 '생각 교과서'라는 점에서 '교과서'의 일반적 정의와는 멀리 떨어져있다고 봐야 한다.   

 p.s.  ○○, ○○○하다. 라는 식의 제목은 이제 많이 식상해졌는데 제목을 지을 때 좀 더 신선하게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김민철의 철학에세이'라고 하면 이 책에 딱 적절한 제목이겠으나 김민철 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기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생각 교과서'라고 해도 될 것 같지만 '철학'이 빠져버리면 내용과 뭔가 맞지 않고, '철학 교과서'라고 하기엔 너무 고리타분해 보이고 나름 고심해서 나온 결과인지 모르겠다만, 솔직히 제목은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요런 좋은 책들은 제목도 같이 확 끌어줘야 한다. 참, 철학적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이 책은 적절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법, 철학하는 법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입맛에 잘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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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8-02-1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에 갔다가 생각나서 구입해서는 읽고 있는 중인데, 정말 쉬우면서도 재미있더군요. 그렇다고 그냥 모양만 흉내낸 건 아니고... 좋은 책인 것 같아요.^^

마늘빵 2008-02-11 09:18   좋아요 0 | URL
:) 어떤 걸 요약하고서 쉽게 풀어 쓴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저자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은 '에세이'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