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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브레인
티아고 포르테 지음, 서은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3월
평점 :
AI 시대에도 여전히 '세컨드 브레인'이 필요한 이유
세컨드 브레인이란 인간의 기억과 사고 능력을 디지털 도구에 체계적으로 외주화하여, 생각이나 지식을 저장·연결·활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인간의 뇌는 대용량 저장 장치가 아니다.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의 한계로 인해 정보는 쉽게 사라지거나 왜곡된다. 본래 인간의 뇌는 지식을 연결하고 해석하며 '창조'하는 데 최적화된 기관이다. 이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에겐 보조적인 제2의 기억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컨드 브레인은 단순한 저장소를 넘어선다. 정보가 체계적으로 조직화되어 있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언제 어디서든 즉시 꺼내 쓸 수 있는 유기적인 시스템이어야 한다.
아날로그 스크랩에서 AI까지, 도구의 진화
종이 신문을 보던 시절에는 지하철역 무가지나 구독 신문을 오려 공책에 붙이곤 했다. 그렇게 만든 스크랩북만 열 권이 넘었다. 이후 USB에 파일을 담아 다니고 문서를 스캔하던 단계를 거쳐, 클라우드 서비스로 자료를 재분류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어 에버노트, 원노트, 옵시디언, 노션 같은 도구들이 등장하며 종이 수첩과 물리적 스크랩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했다.
이 모든 변화가 불과 20년 사이에 일어났다. 이제는 인공지능 서비스까지 더해지면서 "지식을 직접 스크랩하고 저장하는 게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AI에게 묻기만 하면 필요한 자료를 순식간에 찾아 구조화해 주기 때문이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화'하는 과정
기억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세컨드 브레인이 필요했는데, 이제 AI가 그 기억과 검색을 대신해 준다면 세컨드 브레인은 무용지물이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이 정보를 찾는 수고를 덜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정보를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유'에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직접 수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 '나에게 왜 필요한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 과정을 건너뛰고 인공지능이 내놓은 결과물에만 의존한다면, 인간은 가장 주체적인 사고 역할을 상실하고 만다.
“기술을 활용하고 정보 흐름에 숙달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과 '생각하는 힘'을 꼽는다. 단순 지식 습득과 결과 도출은 이제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영역이다. 과제를 AI에게 맡기는 학생들은 당장 좋은 성적을 받을지는 모르나,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지적 퇴보'의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매끄럽지만, 그럴듯한 거짓말인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안목은 오직 깊게 생각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이전의 도구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함을 지녔다. 하지만 기억과 검색을 넘어 결과물까지 대신 만들어주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나은 창조를 위해 AI가 주는 대로만 받아먹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이 강력한 '세컨드 브레인'이 될 수는 있어도, 주체가 되는 '퍼스트 브레인'은 여전히 인간의 뇌여야 한다.
“훌륭한 창작가들은 영감을 불어넣는 외부 자원, 즉 자신의 경험과 관찰, 성공과 실패 모두에서 교훈을 얻고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에서 끊임없이 도움을 받는다. 창의력에 한 가지 비밀이 있다면, 우리가 주변에 끼치는 영향을 수집하고 정리하려고 매일 노력할 때 창의력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영문판은 2022년 6월, 한국어판은 2023년 3월에 출간되었다. 챗GPT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이 2022년 11월 말이니,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직전에 쓰인 책인 셈이다. 최신 AI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 책이 관통하는 지식 관리의 본질은 인공지능과 공존해야 할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유효한 가르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