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자의 글쓰기 - 책이나 논문을 쓸 때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낼 것인가?
하워드 S.베커 지음, 이성용ㆍ이철우 옮김 / 일신사 / 2006년 3월
품절


퇴고를 수없이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은 초고의 엉성함과 일관성 결여에 대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초고는 발견을 위한 것이지 발표를 위한 것은 아니다.-45쪽

개요는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개요를 가지고 글을 시작하면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개요에 의존하여 시작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적어 가면서, 가능한 한 빨리 아이디어를 토해내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 당신이 작업해야만 하는 미완의 부분은 당신이 방금 적어놓은 다양한 것들이다 - 을 발견할 것이다.-100쪽

'가장 쉬운 것부터 하라'는 원칙을 지킨다. 가장 쉬운 부분부터 쓰고, 논문들을 분류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허드렛 일들을 먼저 하는 것이다. ... 중략 ... 우선 당신이 써온 것에 관해 메모를 하고, 각각의 생각을 카드에 적는 것부터 시작하라. 원고에 적혀 있는 어떤 생각도 없애버리지 말라. 그런 생각들은, 그 순간에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 수 없을지라도, 여러 가지로 유용하다. –-101-102쪽

연구자는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기본적인 생각을 명료하게 해놓아야 한다. 연구자의 생각이 명료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은 이미 영향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최고 또는 최악으로 만들어 준다.-198쪽

* 여기서부터는 <한국 사회과학자의 존재 이유>(이성용 역자후기)에 관한 밑줄긋기입니다.
-0쪽

각주 : 그 강사는 저서의 변환과정을 아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그것은 '번역물->편저->저서'라고 웃으면서 말했다(이한우, 1995 : 311-314는 번역물이 저서로 바뀐 책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우선 교수는 대학원생과 박사실업자에게 논문을 나누어주고 번역을 시킨다. 이것이 번역물이 생성되는 첫번째 단계이다. 두번째 단계에서 박사실업자는 번역물을 총괄적으로 다듬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러 사람들이 번역했기 때문에 출판사에 편저로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책이 출판될 무렵, 원고가 괜찮다고 생각되면 교수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저서로 바꾸라고 말한다(우리는 교수업적의 평가에 있어 번역물, 편저, 그리고 저서가 차지하는 점수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교수의 행위가 얼마나 합리적(?)인 행위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논문을 진짜로 번역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저서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머리말에 적는다. 교수가 저서에서 진짜로 작성한 글은 머리말 뿐이다. ... 중략... 이것은 우리 학계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교수의 권위주의적 폭력과 비양심적 자세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278쪽

학자들은 왜 표절과 짜깁기로 글을 쓰는가? 나는 전공에 대한 자부심의 결핍과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의무를 망각하는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학문세계가 없는 사이비학자들이 주도권을 잡은 학계에서는 표절과 짜깁기로 쓰여진 글들이 판치기 쉽다.-280쪽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사이비 학자가 자신의 상품을 과대 포장할 수 있도록 '간판'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간판의 정당성은 우리 사회의 피라밋 유형 구조에 의해 합리화되고, 교육제도에 의해서 강화되어 왔다. 사실상 우리 나라 사람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할 수있는 위치의 상당한 부분은 일차적으로 대학입시에 의해 결정된다. 고졸자보다 대졸자가, 그리고 비일류대학의 졸업생보다는 일류대학 졸업생이 좋은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에서 부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개인 또는 집단이 간판 또는 그 간판이 중심이 된 집단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챙긴다는 데 있다. 최근 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고학력자일수록 학연과 같은 연고에 집착하고 질서의식과 비판의식도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똑똑한 자일수록 자신의 연고를 이용하여 자신의 밥그릇을 더 확실하게 챙긴다는 것이다.-282쪽

우리 학계 피라밋의 최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일류대 교수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대개 일류대 출신이고 박사학위는 한국의 일류대나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취득한 자들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일류 대학에 입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우리 나라의 일류대학은 매년 그 당시에 가장 똑똑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선발하여 정원을 채워왔다. 이렇게 선발된 똑똑한 대학생 가운데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대개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원 과정에서도 경쟁에 승리한 자만이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국내 박사는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학위를 취득한다. 한편 외국 박사는 학부시절부터 외국어 공부를 하고,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유학하여 학위를 취득한다. 일류대학의 교수는 이렇게 뽑고 또 뽑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한 일류대학 출신 박사학위자 가운데에서 또다시 선발된다. 이러한 과정 때문에 일반 사람(특히 비일류대학의 학생)은 일류대학의 교수를 거의 신적인 학문의 권위자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저술한 교재 또한 거의 '성경'처럼 생각한다. -283쪽

사이비 전공자는 자신의 성품을 '내용'으로 팔면, 고객이 자신의 상품이 불량품인 것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책의 내용보다는 자신의 업적과 지위를 강조하는 '껍데기'(또는 간판)로 자신의 상품을 선전한다. 자신에 대한 비판 역시 비판 내용보다는 비판 자체를 가지고 반박한다. "내가 누군데 감히 너 따위가 나를 비판해." 이와 같이 사이비 교수는 오직 '껍데기'(결과)만 중요시하지 '내용'(과정)은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암기식 교육을 선호하기 쉽다. 게다가 이치를 따지고 창의력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다보면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기 쉽다. 자신의 지식을 최대한 포장함과 동시에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교육을 시킨다. 이러한 교수한테 교육을 받은 학생은 논리적 모순을 발견하고 표절과 짜깁기를 비판할 수 있는 '감시의 눈'을 가질 수 없다. 결과적으로 사이비 교수는 학계의 피라밋 구조뿐만 아니라 교육방식까지도 악용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왔던 것이다.-286쪽

각주 10 : 한국사회에서 교재의 질은 주로 조직의 힘에 의해 평가되지, 교재의 '내용'에 의해 평가되지 않는 것 같다. 출판사는 일류대학 교수의 권위와 연줄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저서를 출판하기를 희망하고, 또한 책의 출판을 결정할 때,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의 간판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다. 출판사의 이러한 행위는 비도덕적인 교수와 합세하여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고객은 과대포장에 한번 속지 그 이상은 속지 않는다. 출판사는 편집과정에서 글이 표절과 짜깁기로 일관되었거나, 또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출판사는 저자의 간판보다는 저자가 쓴 내용을 가지고 출판 결정을 해야 한다. 저자 역시 출판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말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286쪽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이 말의 이면에는 교육이 잘못되면 그 나라의 국민은 100년 이상 고통의 나락 속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혼과 그것을 유지하고 창조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부실경영을 해서 회사를 부도낸 기업가들에게 사재를 털어 노동자에게 보상을 하라는 주장을 많이 해 왔다. 이제는 교수 자신이 부실교육을 한 대가에 대해 과연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

각주 11 : 학계가 공멸할지라도 자신은 정년이 보장되어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교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교수조차 기억해야 할 법원의 판결이 있다. 자유당 말기, 많은 여성을 농락한 박인수 사건에서, 판사는 "법은 보호해줄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해 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교수의 정년보장도 학생과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하려고 노력하는 교수를 위한 것이지, 학생과 국민을 기만하고 자신만의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사이비 교수를 위한 것은 아니다.-289쪽

학계에서 논문의 질은 주로 논문이 실린 곳이 어디인가에 근거해서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출판된 경우 학술지에 실린 글에 최고 점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국내 학술지보다는 외국 학술지에 실린 글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평가방법에는 고려되어야 할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사회과학자의 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글인가? 사회과학자인가 아니면 사회과학에 관심있는 일반 대중인가?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과학자의 논문은 '해외수출용'보다는 한국인의 이익을 위한 '내수용'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291쪽

왜 대부분의 학술지들이 동료학자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글로 가득차 있을까? 학술지는 주로 학회회원들에게만 배부되고, 사회과학에 관심있는 일반 대중들은 구입하기 매우 어렵다. 그 결과 학술지의 주고객은 '국민'이 아닌 '학술지 회원'이 된다. 학술지 회원은 동료이지만 보이지 않는 경쟁자이다. 경쟁에서는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진짜 전공자가 드문 사회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서구에서 개발된 '최신 무기'를 과시하여 상대방의 기를 죽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이비 전공자들은 그 최신 무기가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고, 최신 무기를 보여준 사람을 어설프게 공격하다가는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최신 무기를 가지고 남에게 폼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최신 무기를 소개한 신진학자들에게 입발린 칭찬을 하기 쉽다. 바로 이것이 학술지가 온갖 '서구의 최신 무기'들이 난무하는 학자들의 '지식과시의 전투장'으로 전환된 이유일 것이다. -291-292쪽

미래의 지식사회는 평생직장보다 평생직업이 강조되는 사회이다. 평생직장이 강조되는 현대 산업사회는 자신의 학문세계가 없는 학자일지라도 직장이란 울타리를 통해 자신의 일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 하지만 평생 직업이 강조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학문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자신의 무기가 없는 학자는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무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교수와 과목을 찾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사이비 전공자도 학생에게 생존무기를 내용대신 '간판'으로 줄 수 있다. 이는 미래 한국 사회에도 사이비 학자들이 영속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의미한다. 반면 진짜 전공자는 '내용'으로 학생의 무기를 만들어주며, 학계의 도덕성을 회복시켜 탄탄한 미래의 지식사회를 형성해주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제 학생들은 자신의 무기를 형성할 요인이 '간판'인가 아니면 '내용'인가를 결정할 중대한 시기에 왔다. 이러한 학생들의 결정에 따라 우리 나라의 미래는 크게 좌우될 것이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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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9-1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글도, 아프님도.

마늘빵 2007-09-13 00:17   좋아요 0 | URL
이 책 본문 보다는 역자의 후기가 더 멋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