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다. - P9
특정한 주체의 로맨스만 긍정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 P11
"애 낳고 출근하면 이기적인 년이고, 안 나가면 맘충" 출산 경험이 있는 기혼 여성이 언론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같은 N포 세대지만 남성과 여성이 놓인 사회적 조건은 확연히 다르다.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 상승이 그들 삶의 선택지를 넓혔따고 했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결혼을 결심한 일하는 여성에게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도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양자택일의 고통을 마주하느니, 결혼도 연애도 거부하고 싱글로 남는다. 여성에게 연애나 결혼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다. - P29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는 낭만적 사랑을 ‘개인화되어, 더 넓은 사회적 과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준거점도 가지지 않는 어떤 개인적 서사 안에 타자를 삽입하는 이야기’로 정의한다. 전통 공동체 삶에 묶여 있던 개인이 근대 사회의 자유로운 개인이 되면서 로맨스는 사적 영역의 삶에 한층 가까워진다. 이 시기를 거치며 로맨스는 더 이상 허구나 환상이 아닌 개인이 직접 써 내려가는 삶의 서사가 되었다. 자신만의 로맨스 서사를 통해 삶의 한 부분을 조직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다. 기든스는 로맨스라는 단어 자체가 ‘이야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낭만적 사랑과 소설은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고 말한다. - P35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울리히 벡) - P36
두 개인은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로 따로 또 같이 고군분투하며 삶을 조율해 나간다. 기든스는 이를 ‘합류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두 개인은 각기 다른 곳에서 흐르기 시작한 두 개의 지류와 같다. 낭만적 사랑이 견고한 바위라면 합류적 사랑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두 개인은 지류가 어느 합류점에서 만나 하나의 강물로 흘러가듯 어떤 계기로 만나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간다. 강물은 바다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시점에서 다시 갈라져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사랑하는 두 주체는 현재를 유대하고 공유하지만 미래의 시간은 열린 결말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원하고 유일무이한 낭만적 사랑을 탈각한 대신 현대 사회의 유동성을 수용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너를 사랑한다. 감정의 기브 앤 테이크는 합류적 사랑의 기본 형태다. - P38
썸은 사랑이라는 행위를 하는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도 투영한다. 때론 사랑 그 자체보다 사랑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일각에서는 연애가 요구하는 경제적 부담, 관계적 부담 등은 기피하고 연애가 주는 설레는 감정만 소비하고 싶은 이기심에서 비롯한 관계로 썸을 바라본다. 그러나 한번쯤은 현대의 유동하는 사회 조건 속에서 관계를 갈망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영된 연애의 형태라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타인을 책임지는 것이 사치인 현실 조건에서 연애가 주는 약간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관계 맺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전략이 발현된 형태가 썸이다. - P45
연애 자본은 연애 시장에서 개인의 시장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자, 개인이 연애를 위해 활용하는 투자 자본이 된다. 개인은 연애 시장에서 최적의 상품을 고르기 위한 탐색을 한다. 과거 결혼 시장에서 집안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결혼 상대의 시장 가치로 판단되었다면, 현대의 연애 시장에는 상대가 지닌 모든 자질이 고려된다. 에너지, 유머, 매너 등 양화될 수 없는 자질 역시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개인은 연애 시장에서 자신의 희소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계발해 연애 자본을 투자하고 축적한다. - P79
연애는 최후의 보루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가운데 노력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사랑이다. 그리고 노력과 응답은 개인이 일말의 능동적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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