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에 관하여 (반양장, 일반판)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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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닙니다. 웅크리고 침묵해서는 어차피 오래 버티지도 못합니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지금 처해 있는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얻어맞고 비난받아 찢어져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저 오기가 아닌 판단에 근거해 버틸 수 있습니다. 요컨대,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 P7

자신이 받은 알량한 상처의 총량을 빌미로, 타인에게 가하는 상처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무마해버리는 비겁함 - P19

실제 타인에게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는 나로 화장하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래봤자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시체가 될 뿐이다. 사람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 책임감이 동반되는 관계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그렇다.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는다는 건 타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그만큼 더 겹쳐졌다는 의미다. 수많은 인과율과 책임관계 안에서 사람은 나약하고 겉과 속이 다른 모순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
내가 별로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선량함이나 역량에 의존하는 방식보다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체계가,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더 빨리 가닿을 수 있다. 그건 비관이 아니다. 비전이다. - P22

이제 와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그냥 방송 건달일 뿐이다. 쓸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몸이 가장 많이 상했다. 그래도 컴퓨터 앞에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앉아 있는 습관은 버리지 않았다. 엉덩이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 P27

존경과 권위는,
스스로 선배라고 선언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행동과 품위,
아껴 보고 배울 점들로부터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다. - P32

인간은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죽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로잡힐 과거는 늘어간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죽음 따위는 근사한 문장 안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지막 순간,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멀찌감치 초과해버린 과거의 무게에 눌려 버둥거리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스꽝스럽지도 비장하지도 않은 그냥 인류, 라고 부를 만한 광경이다. - P33

사실 냉소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편리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비관과 냉소는 대개의 경우 피폐한 자들의 가장 쉽고 편한 도피처다. 나는 냉소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가 제일 아늑하고 좋다. 글쓰는 자에게는 냉소적인 태도가 객관성을 담보해 주기도 한다. 뜨겁고 충만할 때보다 냉소적일 때 했던 말과 글이 더 오랜 시간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곧잘 타인의 진심을 무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정을 주장하는 말들을 무시한다. (…)
너무 많은 비관과 냉소는, 때로는 막연하고 뜨거운 주관보다도 되레 진실을 더욱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이 글을 읽을 여러분은 부디 나보다 나은 미감과 연민을 가지고 세상의 진심들과 겨루어주길 바란다. - P101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계산된 위악을 부리지 않고 돈 위에 더 많은 돈을 쌓으려 하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며 인간관계의 정치를 위해 신뢰를 가장하지 않고(나는 신뢰를 가장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듯 구토가 쏠리는 인간을 삼십 명 정도 알고 있다) 미래의 무더기보다 현실의 한줌을 아끼면서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되 네 편과 내 편을 종횡으로 나누어 다투고 분쟁하는 진영 논리의 달콤함에 함몰되지 않길 하루하루 소망하는 자다. - P113

죽이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렴하게 착취당하는 자들과, 죽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조직에 맞게 어른다워지는 것이라 착각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슬프다. 한국의 군대는 주변부의 죽음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도발하게 만든다. 그곳에 우리는 꾸역꾸역 아들과 형제와 친구들을 밀어넣고 있다. 남자가 되어 돌아와라,는 말을 남기며. - P136

우리가 우리 행동과 생각의 준거를 과연 세상의 소위 ‘현실’이라는 것으로부터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좀더 어른스럽게 정당한 것일까. 바로 그 ‘현실’이라는 것은 굳이 우리가 행동의 준거로 삼아 응원하고 부추기지 않더라도 저 홀로 알아서 능숙하게 재생산된다. ‘현실’을 존중하는 것과 ‘현실’에 종속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최소한의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하거나 외면한 채로, 우리는 어느 순간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급하고 묵직한 지상의 문제이며, 진짜 현실이다. - P171

집단행위가 거기 가담하는 개인을 익명으로 만들기 때문에 개별의 지분을 축소하는 착시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스스로 폭력의 주체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1/n의 폭력이 무서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 P185

좋은 영화는 볼 때보다 보고 나서가 더 중요하다. 사유가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저 현실의 근심을 잊기 위해 찾아보는 프랜차이즈 오락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건 온당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신보다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할 것 같다. - P247

"시함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영화 ‘록키’) - P260

(영화 ‘설국 열차’에 관한 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다름 아닌 가능성이다. 우리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커티스와 남궁민수는 지금의 체계와 규칙을 물려주고 그 안에서 아프니까 청춘이고 밖은 추우니까 열차는 달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가능성을 물려준다. 그것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 P310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다. 반면 실패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는 보기 드물다. 타인의 불행과 실패를 그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 정작 전염될까봐 사유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성공담이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잠시 동안의 쾌감과 환상뿐이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고 혹시 모를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청해야 하는 것은 성공담이 아니라 굴복하고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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