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옮길 때마다 나는 너무나 큰 슬픔을 느낀다. 추억이나 고통, 즐거움이 있던 곳을 떠날 때 그 슬픔이 더 크지는 않다. 충격을 받을 때마다 출렁이는 단지 속 액체처럼 이동 자체가 날 흔든다. -이탈로 스베보, "에세이와 흐트러진 페이지" - P5
그러다가 한밤중 언제나 같은 시간에 잠을 깬다. 쥐 죽은 듯한 고요 때문이다. 그 순간 거리를 달리는 차도,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도 없다. 잠이 점점 가늘어지면서 날 떠난다. 누구라도 좋으니 어떤 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 P11
나는 나이면서 그렇지 않아요. 떠나지만 늘 이곳에 남아 있어요. - P13
이따금 내가 사는 동네 길거리에서 함께 어떤 이야기, 어쩌면 인생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도 있었을 한 남자를 만난다. - P17
어른이 돼서도, 지금 기억나는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이 있다. 새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우리가 사랑을 나눴던, 내 처녀성을 잃었던 방을 청소하던 첫 남자친구와의 일이다. 그는 바닥에, 침대 아래, 안락의자 쿠션 사이에 떨어져 잊고 있던 동전을 버리고 싶어 했다. "아무 가치가 없어, 그걸 주워봐야 아무 소용 없어."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몇 년 동안 가구 뒤에 쌓인 먼지 더미와 함께 그 동전들을 모두 쓸어 버렸다. 순간 나는 우리의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가슴 아프지만 명확히 깨달았다. - P102
그가 집까지 날 데려다준다. 난 장 본 봉투를 들고 고맙다고 인사하며 보통 때처럼 그의 양 뺨에 입 맞춘다. "뭐 다른 것 필요하지 않아, 우리 것 좀 줄까? 반은 저장식품이야." "재난이 일어나면 집에서 나가는 게 더 좋아." "으음, 그래" 사실이다. 다른 건 필요 없다. 그가 날 위해 마음 한쪽에 간직해둔 애정이면 충분하다. - P117
파라솔들이 켜진 뜨거운 모래사장 위에서 빛나던 오후가 생각난다. 마을 전체가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 P140
내겐 그녀가 가진 평온이 없었지만 그녀 가까이에 있음으로써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미안하긴 했으나 그 때문에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그늘 속에서 잠이 들었다. 잠을 깼을 때 여자가 누웠던 의자는 비어 있었다. 해가 지고 금방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난 우울해졌다.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그 그늘은 구출이라기보다 패배였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늘 감수해야 할 혹은 넘어가야 할 야생의 요소, 열망하는 또는 증오하는 요소다. 비교당할 똑똑한 남자 형제나 아름다운 자매가 없음에도 난 그늘에 있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 계절의 냉혹한 그늘 또는 자신 가족의 그늘을 피할 수 없다. 동시에 내겐 누군가의 친절한 그늘이 없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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