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 스케치 1 -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풀빛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한국철학을 보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가 과거의 철학을 보는 이유는 그 시대로 돌아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고유 사상들을 보고 그 안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와 힘을 얻기 위해서다. 지금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며 한국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시선은 아직 살지 않은 미래에 맞추어져있되, 그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고 살펴봐야한다. 역사는 영원히 반복된다, 고 말했던 투키디데스의 발언 때문이 아니라, 역사가 반복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과거를 지녔든 과거는 오늘을 만드는 근원이 되었고, 과거를 통해 만들어진 오늘은 미래를 만드는 근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철학계에서는 푸코와 데리다, 라깡, 하버마스, 롤스, 매킨타이어 등을 논한다. 여기 이름 올리지 못한 수많은 프랑스와 독일과 미국과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모든 사회적 논쟁과 철학을 논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유행하는 서양의 철학을 배우며 오늘의 한국을 논해야 하는가. 그들의 시각이 오늘의 한국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을 배척할 필요도 없지만 추종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시각은 단지 과거의 서양철학에 비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하나의 또다른 시각으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서양의 새로운 시각들을 공부하고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한편,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준 과거의 한국인들의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새로운 시각 못지 않게 케케묵은 과거의 시각 역시도 오늘날의 한국을 바라보고 진단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배척해선 안되고, 그 어떤 것도 추종해선 안된다. 모든 가능성을 열려있고, 수많은 시각으로 하나의 사물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 길은 그 안에서 보인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 대표 김교빈은 "한국 사람이 한국 철학을 배우는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우리철학을 배우는 목적은 한국 철학의 본모습을 알고,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새롭게 재구성해서 현실에서 생명을 얻는 철학으로 되살려 내려는 데 있다. 따라서 이처럼 한국 철학 사상을 주체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국 사람 뿐이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 철학을 발전시키려고 한국 철학을 배우지는 않는다. 그들이 한국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한국 철학을 통해 한국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며, 나아가서는 한국 철학에서 배운 것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좀 더 풍부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외국 철학을 배우는 것은 우리의 사유를 좀 더 풍부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이지, 그들의 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각으로서 존재하면 그만이다.

  이 책은 10년 전의 <이야기 한국 철학>의 개정판이다. 한국철학서적들은 지금에와 대중을 상대로 한 인문서적들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출간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서 외면받았던것 뿐이고, 책읽는 문화가 좀 더 조성된,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대중적인 인문서적에 관심을 쏟고 있는 오늘날 이 책들은 헌 외투를 벗어던지고 새옷을 입고 그들에게 새 것인양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한국 철학>은 김교빈, 권인호, 이종란, 이홍경, 이현구, 이철승, 김형찬, 박정심 총 여덟명이 함께 작업한 책으로, 당시 30-40대였던 그들은 이제 40-50대가 되었다.

  저자 대표 김교빈은 서문을 통해 여러 필진이 썼기에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지만, 수많은 독자의 한 명으로서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각각의 장과 장의 연결은 부드러웠으며, 필진의 개성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서술 방식의 차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무감각한건지 아니면 개정판을 내며 잘 다듬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몇 권 살펴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철학 서적 중에서 가장 쉽게 자연스럽게 풀어낸 책이 아닌가 싶다. 큰 기대하지 않고 접했지만 의외의 좋은 책을 만나 기쁘다. '1부 원시시대와 고대의 철학 이야기'에서부터 2권의 끝인 '10부 개화사상과 애국계몽사상'에 이르까지 책은 시간순으로 과거부터 근대까지 올라오며 철학사상뿐 아니라 그 시기에 그와 같은 철학이 탄생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까지도 자세히 설명해줘 매우 친절하다. 한국철학을 알기 위해서뿐 아니라 한국 역사를 알기 위해서 이 책을 보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될 듯 하다. 역사적 큰 맥락은 철학과 함께 움직인다.
 
  잘 짜여진 편집과 구성, 한국철학사 도표와 본문의 사진과 그림들까지 적재적소에 필요한 곳에 들어가 중간중간 시각적인 즐거움도 선사해주었다. 편안하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매우 잘 만들어진 한국철학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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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을 배척할 필요도 없지만 추종할 필요도 없다."
옳은 말씀. 하하


logos678 2007-05-1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서 한국철학을 전공한 저보다도 한국철학 관련 서적을 더 많이 읽으시네요. 요즘 가끔 퇴계의 성학십도 꺼내 보고 있는데, 중학교에서 도덕 가르치면서 전공서적에서 손을 놓았더니 요즘엔 내가 예전에 이런 걸 어떻게 읽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리에 안 들어오더라구요.

마늘빵 2007-05-1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 네. 모든 것이 현실을 보기 위한 도구일 뿐이죠. 서양의 것도 중국의 것도 과거 우리의 것도.
로고스님 / 엇, 한국철학을 전공하셨나요? 저는 한국철학에 거의 무지합니다. 1차서적으로 본 건 이덕무의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밖에 없습니다. 고루 읽는건 불편부당한 시각을 키우기 위함이지요. 그래도 철학전공인데, 알지는 못해도 읽기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읽었다고 다 아는건 아닙니다. 읽었다는건 그저 관련된 다른 책을 다시 읽을 때 아 어디서 들어봤다, 아 그랬었지, 하고 머리 속에서 맞장구 치는 정도겠지요.

logos678 2007-05-13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대학 땐 90% 이상이 원전강독이었어요.(학부로 변하기 이전이니까 지금은 좀 바뀌었겠죠?) 그래서 오히려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덴 부족한 게 많죠. 님 리뷰 읽고 자극받아서 다시 전공서적을 꺼내 읽어볼까 생각 중이랍니다. 언제 한 번 친정에 다녀와야겠네요. 책 가지러...

마늘빵 2007-05-1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학부되기 전에 입학했어요. 제가 입학하고 다음 년에 학부로 바뀌더군요. 그게 참 안좋은데. 고지식한 원전강독이 나중엔 더 남더라고요. 대략적인 얼개짜기는 혼자서 되지만 원전을 보는건 혼자서는 안되거든요. 로고스님 나이는 짐작이 안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