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종교영화 혹은 어떤 영적인 계시에 관한 영화인줄 알았다. 그런데. 가족영화라고. 정말이지 내내 영적인 영화로서 받아들이던 내게,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서도 아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이 영화를, 어디까지 참아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영화관람의 중점이 되었다. 끝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채로 엔딩 크레딧 올라가더라.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의 위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대개 영화는 무슨 영화인지 자세한 내역을 모른 채 봐야 제맛이지만 이 영화는 시시콜콜 다 알고 봐야 이해할 수 있다.



* 친절하고 자상한 아버지 혹은 어머니는 자식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관심이냐 간섭이냐. 

  미국에는 실제로 영화에서와 같이 '내셔널 스펠링 비'라는 철자 맞추기 대회가 있는데, 이는 만 16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참가하여 순전히 집중력과 기억력에 의거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대회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 종교학 교수인 아버지 사울은 그의 딸 엘리자가 어른들도 모르는 글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기억해내는 능력을 발견하고선 이 대회에 참가시킨다. 그는 믿고 있다. 딸이 자신에게는 없는 어떤 영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신과 대화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울에 딸과 철자대회를 준비하면서 아내와 아들에게 소홀해지고, 아내와 아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외된 자신을 드러낸다. 아내는 남편이 항상 되뇌이는 말마따나 신비한 빛의 조각들을 모으는데 주력하고, 아들은 유대교를 배신하고 힌두교에 몰입함으로써 '이유있는' 반항을 한다. 화목했던 네 명의 '가족구성원'은 이제 각자가 관심갖는 것들을 위해 하루를 살아내고 '가족'은 무너져간다.



* 화목한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 가정의 평화는 사소한 부분에서 깨어진다. 그리고 어긋남은 지속되기 쉽다.

   영화는 잔잔하게 화목한 가정이 서로 어긋나고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 어느누구도 이 영화가 그런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영화를 접하게 된다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황당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감독은 새로운 형식의 가족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아무런 메세지도 전달하지 못했고, 그다지 볼 거리도 없다. 종교와 영적인 교류 등등을 끄집어내어 뭔가 있어보이는 영화를 만들려했지만 하나도 안 있어보이고, 양념이 되어야 할 것이 주가 됨으로써 주요내용은 사라지고 양념은 정체를 드러내지 못한 채 뒤섞였다.

  스코트 맥기히와 데이비드 시겔,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는 이번이 첫번째가 아니다. 2001년 <딥 엔드>라는 아직 보지못한 -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 영화를 함께 만들었고, 이번이 두번째 공동작이었으나 역시 실패했다. 볼거리가 없다면 메세지라도 뚜렷해야 하는데 메세지도 없고 볼거리도 없고 영화의 장르조차 의심케 만든다. 처음엔 스릴러일줄 알았다. 잔잔하게 다가다 이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구나, 싶었는데 그도 아니었다. 참 애매하고 모호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유일하게 내 시선을 주목한 것은, 리처드 기어. 나는 그의 얼굴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푸근함이 좋다. 사람이 참 따뜻하다, 라는건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체조장학생으로 메사추세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2년 뒤 연기에 뜻을 두고 곧장 뮤지컬에 몸을 던졌으며, <그리스>의 주연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영화에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참 많은 영화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다지 흥행한 작품은 많지 않고 내가 그를 접한 것조차 <귀여운 여인>과 <자칼>이 전부다. 이제 50대 후반을 달리는 그지만 연기에 나이가 따로 있으랴. <다섯번째 계절> 이후 <플록>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던데 이건 개봉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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