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도 괜찮아 -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이은의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51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들은 자기가 당한 범죄나 그 가해자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을 책하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 지망생이나 직장 내 성폭력 같은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경우는 범죄가 발생한 경위나 이를 다투기까지 피해자가 수없이 주저하고 망설잉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더 심하다. "노"라고 말하지 못한 자책감이 뾰족한 화살이 되어 자기 내면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51-52
(성폭력은) 피해자가 뭘 어째서 생기는 범죄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오랜 세월 잘못된 프레임, 즉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욕을 자극해 가해자가 욕정을 참지 못했다‘는 프레임을 유지해왔기에 그 영향을 구석구석 받고 있는 것뿐이다. 사람은 동물이지만 그저 동물이 아니다. 누군가 벌거벗고 길바닥을 지나간다고 한들 그 사람을 만져도 되는 것은 아니다. 자책을 하더라도 가해자가 해야지 피해자가 할 게 아니다.

68
사건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갖는 의문성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왜 이제야 알렸대?"이고, 다른 하나는 "그게 성희롱이야?"라는 반응이다. 이 두 가지는 언뜻 보면 다른듯하지만, 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직장 내 성희롱 또는 학내 성희롱 등으로 분류되는 행위들은 함께 생활하는 조직 안에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낟. 더구나 가해자와 피해자는 동일한 권력관계에 있지 않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비하여 코딱지만큼이라도 갑의 지위에 있는 경우가 99.9퍼센트다. 이런 행위들은 ‘그냥 참고 넘길 수도 있는데 내가 예민해서 기분이 언짢은 것인가?‘하고 고민이 되는 수위의 자극에서부터 시작된다.

81
성희롱의 정도가 일정 수위를 넘어서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준에 이르러 고소를 하면, 수사기관에서 당사자 간 주장이 다른 경우 대질신문을 하기도 한다. 이때 성폭행 가해자들의 변명은 주로 세 단계로 이어진다. 안 했다, 기억 안 난다, 여자가 유혹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사귀는 사이라는 주장이 이어진다. 그리고 사귀는 사이라거나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한다. "커피를 타서 건넸다.", "자신을 보고 유독 많이 웃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등 친절이나 친근감 정도의 표현을 내세운은 경우가 많다.


159-160
혐오는 비겁하고 위험하다. 약한 상대를 향해 혐오의 시위를 당기는 이들은 자기들이 잘못된 과녁을 향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쏜 화살이 혐오스러운 괴물을 향하고 있다고 믿으며, 진짜 자신들의 삶에 위해를 끼친 힘 센 괴물을 만날까 봐 잘못 설정한 과녁을 버리지 못한다. 한편 애꿎게 혐오의 대상이 돼서 과녁이 된 이들은 이렇게 잘못 날아든 화살을 맞을까 봐 몸을 사린다. 그 화살이 어디를 향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을 증발되고 그 화살이 이 과녁을 향한 것 자체의 잘못만이 이야기된다. 그렇게 혐오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247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과정이 당장은 힘든 상황을 만들더라도, 마침내는 그 과정의 진정성이 통하는 순간이나 지점을 만나게 된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순간과 지점을 만나도록 조력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침묵하거나 다수에 동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들이 미덕인 양 내리닫는 건 사람을 얻는 방법이나 더 나은 결과를 얻는 선택이 아니다. 그 공간이 직장이든 학교든 통할 사람과는 통하게 되어 있고 해명할 필요가 없는 일들은 해명하지 않아도 인생에 큰일 나지 않는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가 가는 길에 진정성이 있느냐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귀하게 대할 자세가 되어 있느냐다.

262
현실에서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확률보다는 목격자나 주변인이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런 일이 불거질 때면 목격한 사실의 부당함이나 피해자의 입장보다는, 증언을 하거나 피해자 편에 섬으로써 자신이 불리해지고 불편해질 일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세상이 바뀌는 건 용감한 피해자들 덕인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몸담은 환경과 세상을 조금씩 좋게 바꿔나가는 것은 피해자의 용기나 가해자의 반성이 아니라 수많은 제삼자의 선택이다. 그들이 유리함보다 유익함을 선택하고 피해자를 지지할 때 세상은 좀더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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