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를 실수로 지웠다가 다시 넣었더니 썸네일 이미지로 다른 책이 뜬다.)
이상하고 '후진' 생각과 실천들에 대하여 그것이 왜 이상한지를 설명하여 납득시켜 주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동시에 그런 차별적 인식은 우리 안에 너무 깊이, 켜켜이 뿌리박혀 있어서 끝없이 성찰하고 정정해 나가지 않으면 어느새 차별과 권력을 실천하는 것이 된다. [예컨대, 어제 링크한 "조나단, 한현민, 라비 '흑형'이란 말에 상처 받는 이유", BBC News 코리아 (2019. 9. 4.) https://www.youtube.com/watch?v=QnTPdBMLzOo 영상을 보면, 한국에서 백인들에게는 "혹시 어디서 공부하시냐?"라고 묻지만,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한테는 "혹시 어디서 일해요? 어느 공장?"이라고 묻는다는 장면이 있다. 유쾌하고 발랄하게 우리 내면의 그릇된 코드를 성찰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영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위와 같은 장면은 은연중에 노동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내포한 것일 수 있다. 예컨대, 같은 영상을 블루 칼라 노동자나 그 자식들에게 보여준다면 그 또한 상처를 주는 일이 되지 않을까?] 페미니즘은 차별과 권력의 코드를 파헤치고 드러내는 최일선에 있는 사유로서, 우리의 일상을 하나하나 바꿔 나가는 가장 실천적 투쟁이 된다.
재작년 말에 양성평등 강연을 준비하면서 참고할 목적으로 절반을 읽다가 이번에 마저 읽었다(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557605). 최근 들었던 강연에서 참 인상 깊었던 대목 중 하나가, 한국 사람들 다수는 백주 대낮의 언론사 인터뷰나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차별적 인식과 혐오 발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스란히 발화한다는 것이었다(자기 얼굴이 노출되는데도). [역시 어제도 링크한 세계가치조사 http://www.worldvaluessurvey.org/WVSContents.jsp를 보면, '다음 사람들을 이웃으로 맞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라별로 집계하고 있다. 질문한 항목은 약물중독자(Drug addicts), 다른 인종의 사람(People of a different race), AIDS 환자(People who have AIDS), 이민자/이주노동자(Immigrants/foreign workers), 동성애자(Homosexuals), 종교가 다른 사람(People of a different religion), 폭음자(Heavy drinkers), 비혼 동거 커플(Unmarried couples living together),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People who speak a different language), 전투적 소수자(Militant minority), 전과자(People with a criminal record),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Emotionally unstable people), 무슬림(Muslims), 유대인(Jews), 전도사(Evangelists), 출신국에서 오지 않은 사람(People not from country of origin, 맥락을 정확히 모르겠다), 정치적 극단주의자(Political Extremists)이다(이들 범주 하나하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위와 같이 범주화하는 것이 적확한지, 심지어 정의할 수나 있는 것인지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대중 인식 지형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이므로 그러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자). 우리는 다른 인종과 이민자/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AIDS 환자 등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전반적으로 아주 높다(특히 AIDS 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이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보건의료 관점에서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양에서 AIDS는 더 이상 치명적이거나 전파되는 질병이 아니게 되었음에도, 한국에서 AIDS 환자는 병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는 서글픈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흔히 인종차별, 소수자 차별이 우리보다 심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에서도 그런 인식을 우리처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나라들에서 그런 말을 공적인 자리에서 서슴없이 하면 질 떨어지는 수준 낮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친구를 잃게 된다. 나아가 직장을 잃을 수 있고 법적으로 처벌받는 일도 생긴다. 지금 미국에서 각종 총기로 무장하고 거리에 나와서 "COVID-19에 관한 언론 보도는 모조리 '가짜 뉴스'이고 트럼프 대통령을 낙선시키고 우리 경제활동과 자유를 억압하려는 민주당의 '음모'"라는 식의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적어도 낮에는)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든 리버럴이든, 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외국에서는 그 비슷한 취급을 받는 언행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좌파 정당은 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시류에 타협하는 모습이 보이고, 특히 남성 중에 차별적 태도를 곧잘 드러내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국뽕 마케팅'은 주의 깊게 자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당장 중국의 자화자찬이 엄청난 백래시를 맞고 있지 않은가. 트뤼도 총리가 여러 면에서 오락가락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음 연설은 우리가 곱새겨 볼 만하다. 캐나다 정부에서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 관행을 역사적, 공식적으로 사과한 연설이다. "Full Speech: Justin Trudeau offers formal apology to LGBTQ community for government discrimination," Global News (2017. 11. 29.) https://www.youtube.com/watch?v=xi23IL3b6cs]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의 차이, 술집에서 '이모'라는 호칭, 아침드라마의 사회학과 같이 평소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에 대한 지적이 흥미롭다. 아무튼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우리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요, 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직면하자("남성들이여, 우리가 악어임을 받아들이자"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398432). 그래야 우리도 더 행복해진다.
곧 『민원을 제기합니다!』라는 신간을 내실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책들이 인용되어 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쓴 리베카 솔닛의 책이 상당히 많이 번역되어 나와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어둠 속의 희망』과 『걷기의 인문학』은 각각, 2006년 창비, 2003년 민음사에서 나왔다가, 2017년 창비와 반비에서 다시 나온 것이다.
추가)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 사제를 허용할 때까지 신도들이 미사 참여를 보이콧하는 건 어떨까... 지은이처럼 그 때문에 이미 떠난 이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미사 전례에서 가부장제적 어휘들이 불편하다. 여성 사제 불허 방침이 영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한상봉, "여성사제, 여전히 남은 숙제", 가톨릭 일꾼 (2018. 12. 3.)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463; "여성의 역할 존중하지만 여성 사제는 허용 안 돼", 가톨릭평화신문 (2016. 11. 13.)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59584&path=201611; 조광태, "여성+기혼 사제의 등장?…가톨릭 전통, 천년의 빗장 열릴까", UPI 뉴스 (2019. 10. 2.)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1910020062; 이미령, "가톨릭 구하려면 여성 사제 허용하라", 한국일보 (2019. 10. 2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231500342581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