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 - 전략형 인재를 위한 역사 다시 읽기
최중경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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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 8

(정치관심자 9, 비관심자 7)


작품은 이미 흘러간 역사를 오늘의 잣대로 역사를 재단해 보았을 때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저술된 것으로 나는 이해하며 읽었다.


본 작품을 지난 2021년 처음 접했는데 당시 여러모로 지금처럼 국회가 시끄러울 때 강성의 이미지로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던 인물 중 한 사람이 ‘저자’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작품을 처음 접하고는 내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 수준으로 본 작품 내용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저자의 강성 이미지로 인해 독후감 정리를 주저하며 당시의 소회를 별도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몇 수준 낮은 ‘상임위원장’이라는 작자들의 개그콘서트를 방불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장관

청문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랄과 발광에 가까운 인간들의 작태를 보면서 과거 큰 임팩트로 다가왔던 작품 내용과 비슷한 면이 떠올라 본 작품을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어떤 내용에서는 절로 감탄하게 하는 주장도 있었으나 어떤 주장에서는 너무도 저자의 개인적 소견이 강하거나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수위 조절 차원에서 또 역사에 대한 일천한 지식으로 저자의 주장에 논박할 능력이 부족해 정리에서 일단 제외하였다.


작품도 지적하고 있지만 우리의 정치와 리더들의 소명 의식 부족의 큰 원인은

‘현대판 음서제도’와 ‘노블리스 오블리주 미흡‘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었는데 나는 전적으로 동감하며 특히 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 어떤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위 두 가지 문제점은 아주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해당 문제는 최근 이루어진 ‘장관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또 형태를 달리해 나타났다고 판단하는데,

‘음서제도는 아빠 찬스’라는 형태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미흡’문제는 ‘공기업 수장 임명 부실 검증’과 현 집권 정부가 과거 야당시절 전 정부에 대해 독설에 가깝게 퍼부어 대던 과도한 물쓰기와 골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치졸한 행동을 보여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만 그 점에 대해 이상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 생각하며 저자도 수년전 이미 이런 정치판에 ‘딱 맞는’ 현상을 아래 문장으로 예견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주장을 보면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지배층은 국가를 경영하는 인재집단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기득권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려는 패거리집단이라는 개념이 더 어울리는 한심한 집단으로 전락했다.“ (P 99)

라는 문구로 ‘임진왜란’ 자리에 작금 우리 정치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을 적용해 보면 어느 것 하나 틀린 게 없는 즉, 오늘의 이런 개판인 현상을 정확히 예측한 문구였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느낀 것은 리더를 향한 ‘용비어천가’를 외치며 너도나도 충직한 측근임을 나타내고자 말도 안 되는 헛소리와 함께 수준 낮은 비난과 지적질로 협치를 통해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고 성장시켜야 할 상대를 싸잡아 비난으로 일관하며 리더의 눈에 들려고 난리치는 저열한 인간들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인조가 병자호란 때 그 수모를 당한 이유가 바로 음서제도로 등극시킨 측근들 때문이었다‘

라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며, 해당 작품 저자 주장을 내세워 우리 역사의 잘잘못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 내가 이야기해도 들어줄 대중도 없겠지만 -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관점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이지 어느 수준 낮은 인간처럼 역사에 대해 편협된 시각을 질타하는 대중에게 몰상식하게 ‘후지다’라고 표현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작품을 통해 느낀 점은 우리의 리더를 과거 정치 권력의 실세였던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던 강력한 카리스마의 ‘현대판 숙종‘으로 만들지, 아님 모친에게 급소를 붙잡혀 후세도 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한 ’현대판 경종‘으로 만들지,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그렇게 정권욕에만 눈이 어두웠던 ’현대판 세조‘로 만들지는 리더를 보좌하고 있는 측근들의 자세에 달렸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제1장 우리 역사의 두 가지 가정

(전략적 사고가 필요했던 순간)

- 중대한 역사적 기로에서 지도층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는 역사의 진로는 물론

  국가와 민족의 운명까지도 결정한다. 만약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의

  지도층이 실제 역사와 다른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지도층의 책임을 이해

  하게 되고 지도층의 자격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지도층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특권을 누리는 위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고뇌하고 노력

  해야 하는 고달픈 자리로 국민 대다수가 지도자 자리의 무게를 인식할 때 전략적 사고

  능력을 갖춘 진정한 지도자가 양성될 것이고 국민들도 진정한 지도자를 알아볼

  것이다.

 

1.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만주족 편에 섰더라면?

-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해 명나라에 반기를 들고, 그의 아들인 홍타이지가 1636년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로 등극, 홍타이지는 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의 후방

  지원자인 조선을 평정할 필요를 느낌.

  당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친명정책으로 청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냄

-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의 반정 명분 중 아버지의 나라인 명을 배신했다는 논리로 인해

  인조는 친명정책을 공고히 하나 후금은 이를 문제 삼아 1627년 조선을 침략

  --->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게 됨.

- 명과의 연합 작전을 하던 중 후금을 공격한 일과 홍타이지 황제 즉위식에서의 결례로

  인해 청나라의 조선 침략 명분을 주게 됨.(병자호란)

- 청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파견할 것을 제안하는 등 우호적이었다. 여진족은

  말갈족의 후예이고 말갈족은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으며,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연합해 세운 나라가 발해였기 때문이다. 여진과 조선은 실제로 함경도 지역에서는 

  서로 통혼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 누르하치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 즉,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경주 김씨의 후손이라는 해석이 있다고 한다. 청나라와 손을 잡고 명나라 정벌에

  나섰다면 어떠했을까?

 

[한족에게 나라의 운명을 의탁한 이유?]

1) 예의와 명분을 집착하다 정신적인 종속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2) 여진족을 오랑캐라 하여 멸시하며 그들을 상전으로 모시는 데 거부감이 컸을 것이다.

3) 성리학이라는 형이상학적 학문을 숭상해 대외 정보 수집과 분석에 소홀했다.

4) 중국 왕조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저자는 후기 글에 이렇게 쓰고 있는데


2. 14세기 원명 교체기에 고려가 요동을 차지했더라면?

- 14세기 중엽 홍건적 일파의 두목인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였으나 군사적 입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중원을 차지했다고는 하나 만주와 조선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 당시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한족이 요동을 실효적으로 직접 지배한 시기는

  고구려 멸망 직후이기 때문에 한족이 직접 통치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 이성계의 조선은 알아서 굽히고 들어가 굴욕적인 군신관계를 맺었고 공민왕 이후

  중단되었던 공녀까지 바치는 제후국 신세가 되었고 그 결과 몽고군에 항복한 원나라

  부마국이 되었던 고려시대보다 훨씬 낮은 대우를 받는다.

- 위화도 회근으로 한민족이 자력으로 한반도를 벗어나 만주를 회복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신채호 선생은 고려시대 묘청의 난을 고구려

  고토 회복을 추구하던 세력이 몰락함으로서 대륙 진출의 끔에서 멀어진 중대사건

  으로 인식했다. 위화도 회군이야말로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 중 하나이다.

- 만약 당시 요동정벌이 이루어졌다면 요동의 인적 자원을 장악한 고려는 만주로

  세력을 넓혀서 군사력 측면에서 명나라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제2장 성장판이 닫혀 있던 조선

1. 잘못 설정된 조선의 건국이념

- 조선은 한 수 아래였던 일본에 식민지가 되는데, 조선 조정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본의 호전성을 이야기하며 일본을 비난하기 전에 조선을먼저 돌아보고 조선의

  오류를 찾아내야 한다. 조선의 오류를 찾아내 그 오류가 발생한 원인을 찾아내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조선의 오류를 찾아내지 않고 일본 탓만 하면 또다시 유사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 건국이념에 대한 저자의 주장

      건국이념은 시대가 바뀌면서 국가의 장기적인 성장을 막고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

 

* 총 7개의 분야에 걸쳐 오그라진 조선의 성장판이 닫힌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 아래 제목은 내가 작품을 읽고 더 근접한 내용으로 만든 것임.

사대주의와 중농주의가 초래한 자충수

미약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해금정책(海禁政策)’과 ‘폐광정책(廢鑛政策)’

국민총화를 힘들게 했다. (논공행상/양반들/사제관계 등)

기술 선진국이던 조선,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치다.

정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조선.

조선의 불찰로 탄생한 텐진조약.


1) 사대주의 및 중농주의가 초래한 자충수

- 명나라에 종속된 사대주의는 17세기 만주족 굴기에 따른 중원 세력의 판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으며, 명분론에 매몰되어 붕괴되는 명나라에 집착하는 결과

  초래 또 ‘여진족 = 오랑캐’라는 선입견으로 중원의 새로운 주인이 될 청나라를

  지나치게 자극

- 조선 지배층의 ‘집단인지장애 증상’은 조선 사대부가 숭상한 ‘성리학’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는 하나, 이는 성리학의 문제라기보다 성리학의 오용, 남용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결국 명분과 예절을 중시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아무런 도전이 없는 정체된

  폐쇄사회를 유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통치 철학일 수 있으나 외부로부터

  도전이 끊이지 않는 역동적인 개방사회에 맞지 않는다.

  ---> 체제 유지 또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안전판으로 유교사상이 이용됨.

- 중화사상에 매몰된 사대주의 외교가 평화공존을 위한 실리 추구를 벗어나 맹목적인 

  복종으로 변질, 중국 이외의 국가들 특히 서양 국가들과 관계를 설정하거나 국제       

  정세를 파악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버렸다.

   ---> 임란 당시 의병장 및 관군 장수들의 공적은 깍아내리면서 명나라 이여송이 이끈

         명나라 원군을 높이 평가한 점, 임오군란 당시 국가의 위기가 아닌데 부패한

         지배층이 청나라에 원군을 청한 점 등은 중화사대주의를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실리외교가 아닌 지배층 기득권 유지를 위한 안전판으로 사용되었다.

- 중농주의에 입각한 경제체제는 공업에 종사하는 장인과 상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낮춰

  근대국가 발전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는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가로막는 부작용 초래.

- 조선의 왕은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없는 구조로 사대부와 왕만 놓고 보면 입헌 

  군주제 비슷한 국가 지배구조로 중국에서도 조선을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런 조선의 신권정치는 실수를 줄이는 효과는 있을 수 있겠으나 탁월한 군주가

  속도감 있게 의사결정을 통해 국가 역량을 집중하기 어려웠으며 우매한 군주 등극 시

  부패가 가중되거나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 매관매직으로 국가 기강이

  무너지며 동학혁명으로 이어져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2) 미약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 양반은 사실상 납세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 없이 특권만 누리는 계급이었다.

  한마디로 국가 위급 시 양반 즉 지배층 자제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했고

  심지어 돈이 있거나 빽이 있으면 ‘방군수포제’, ‘대립제’ 등을 통해 군대를 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호적상 양반 숫자의 급증은 군역 인구의 감소와 국방력 감소와 

  연결되었다. 특히, 납세 인구의 감소는 국가재정의 취약성으로 나타나 국방력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폐해 사례는 

  1866년 강화도 ‘정족산성 전투’에서 총 595명의 장졸이 참전했는데, 그중 67%인

  367명이 민간인 포수였다고 한다.

   ---> 조선이 518년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의 제후국 지위를 청하여 중국에

         종속되어 중국의 공동운명체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나라를 무너뜨린 ‘신해혁명’(1911년) 직전 대한제국이 무너진(1910년)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3) ‘해금정책(海禁政策)’과 ‘폐광정책(廢鑛政策)’

- 삼면이 바다인 조선은 농지가 부족한 반도국가로 해금정책으로 무역을 통한 번영의

   의지를 스스로 꺽어버리고 가난과 기아에 허덕였으며 풍부한 지하자원을 사장.

   위 두 정책은 이웃인 일본에게 번영의 기회를 양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 해금정책은 중국의 주원장이 중국내 권력투쟁에서 반대세력이 해상 세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내린 정책이었는데, 조선은 특별한 고찰 없이 이를 따라했으며

  조선이 막을 내릴 때까지 이 정책을 고수한다.

  여기에 더해 섬에서 거주하는 ‘공도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은

  반사이익으로 ‘후추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 조선은 개인이 광산을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쓰다가 병자호란(1637년)이후

  청나라와의 무역을 위한 은의 수요가 늘자 1651년부터 개인 광산 개발 허용한다.

  연산군 시절(1506년) 세계 최고의 제련기술인 ‘연은분리법’을 우리 손으로 개발

  하였지만 중종에 의해 사치 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폐기(1544년)되었고,

  이 기술은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막대한 양의 은을 생산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일본은

  세계 최대의 은 생산국이 되었고 은을 매개로 한 국제 무역에 참여해 국부 축적했다.

   ---> 중종이 은 제련기술을 폐기한 이유는 ‘사치풍조’와 관련되었으나 실상은 

         은 생산량 증가에 따른 신흥세력의 등장을 경계한 것일 수도 있다.

   ---> 1812년 발발한 ‘홍경래의 난’도 홍경래가 광산을 개발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모아서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기록이 되어 있다.

 

4) 국민총화를 힘들게 했다. (논공행상/양반들/사제관계)

- 임진왜란이 끝나고 논공행상을 하는 과정에서 최일선에서 싸운 의병장들을 배제하고

  역으로 누명을 씌운 과 이순신 장군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을 보면서 또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하며 임금의 피난길을 동행한 사람들 중심으로 공적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병자호란과 구한말 외침에 항거해 일어나는 의병의 숫자를 격감시키는 결과 초래.

   --->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은 국민이 일치단결해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국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응집력을 상실한 나라 즉, 국민총화가 불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 또한 돈만 있으면 양반 신분도 얻을 수 있어서 조선 개국 때 10% 미만이었던 양반이

  조선 말기에는 최고 70%까지 이르러 세수의 부족과 군력의 부족 등으로 또 세금

  포탈을 위해 호적을 허위로 기재하는 것이 허용된 사회 전체에 영이 설 수 없는

  구조였다.

  특히 ‘음서제도’로 인해 조선 지배층이 대대손손 벼슬길에 나가면서 고관대작을 

  독차지하면서 악착같이 공부할 유인도 없어졌진 것도 조선의 대외감각을 무디게 한

  중요 원인이었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 17세기 초부터 난가쿠(蘭學)라 해서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오는

  서양 문물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을 정도였고, 페리제독을 통해 일본이 개항됨과 

  동시에 미국의 산업기술 능력이 도입되면서 일본은 일취월장하게 된다.

- ‘군사부일체’는 성리학의 주요 축으로 스승이라 할지라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는데

  비록 스승의 틀린 주장이라 할지라도 제자 입장에서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국가의 중요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었던 것도 조선의 큰 문제였다

  또 ‘방납 폐해’를 비판하면서 대동법을 제안한 송시열이 스승인 김집이 대동법을

  반대하자, 송시열도 입장을 바꾸며 대동법을 외면한다.

 

5) 기술 선진국이던 조선,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치다.

- 최석정의 ‘구수략(九數略)’이라는 수학책

- 세계 최초의 산탄대포(조란탄) / 세계 최초의 작열탄인 ‘비격진천뢰’라는 지연탄 및

  로켓탄인 ‘신기전’

- 기관총의 원형이라 불릴 수 있는 변이중의 ‘승자총통’

- 권총으로도 전환이 가능했던 세종 때 만들어진 ‘세총통’

- 획기적인 은 분리법인 ‘연은분리법’

- 괴테가 극찬했던 복식 부기인 고려시대 때에 창안된 ‘송도사개치부법’

위의 모든 결과물은 과학적이지 못한 건국이념으로 인해 기술자와 상인을 천하게 여기게 되었고 형이상학적인 방법론 때문에 발전시킬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답보 및 퇴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P 67)

 

6) 정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조선.

: 저자의 주장이 일견 맞는 이야기일수 있으나 정밀하고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 없이 우리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두 사건(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예로 들면서 ‘조선이 정보에 무관심해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는 일방적인 

  저자의 주장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패망의 여러 조건 중 특정 분야만 부각시키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평소 나의 관점과 다르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은 존중하나

  정리에서 제외하였음.

-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열두 차례 방문했지만 일본의 

  물질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이 일취월장한 것은 보지 않고 윤리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의 차이만 보았다. (P 79)

   ---> 결국, 일본발 위기요인이 축적되는 것을 방치하다 한일강제 합병을 초래한다.

 

7) 조선의 불찰로 탄생한 텐진조약

- 조선 붕괴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이 바로 ‘텐진조약’이다.

  텐진조약의 출발점은 ‘임오군란’이었다. 임오군란으로 인해 청국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자, 일본도 제물포 조약을 통해 일본공사관 경비 병력을 조선에 주둔시켰고,   

  갑신정변 과정에서 양국의 군대가 충돌하는 물의가 빚어져 텐진조약 체결.

- 주요 연관 사건을 연결해 보면,

  병인양요(1866)/신미양요(1871)/거문도 사건(1885)의 여파가 축적되고 조선 나름대로

  생존해 보겠다고 별기군을 창설(1881)하지만 관리 부실로 임오군란(1882이 발생하고 

  연이어 개화파에 의한 갑신정변(1884)의 여파로 러, 일간 벌어진 전쟁의 배상

  과정에서 ‘텐진조약(1885)’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 텐진조약을 근거로 청과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는데, 청군은 조정의 요청

  대로 ‘아산’으로, 일본군은 ‘인천’에 상륙했는데, 청군의 목표는 조선의 요구대로 

  농민군 진압이 목적이었으나 일본군의 목표는 조선을 장악하는 데 있었다.

   ----> 일본군은 조선에 주둔한 청군을 공격한 다음 청나라에 선전포고 후 청일전쟁을

           일으킴.

- 텐진조약은 조선과 종주국 청나라가 범한 과오와 실책의 결과물로,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청일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패가 되었다. (P 87)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

- 조선은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질서로 산업 기반을 형성하기 어려웠고 대외무역 금지로

  물질적으로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시한부 국가였다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지배층은 국가를 경영하는 인재집단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기득권을 맹목적으로 호하려는 패거리집단이라는 개념이 더 어울리는

  한심한 집단으로 전락했다. (P 99)

- 조선이 잘못된 건국이념과 재조지은이라는 왜곡된 중화사대주의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부재로 인해 망국의 길로 가는 것이 필연적이었다고 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정당화되고 식민지 근대론의 궤변성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P100)

   ---> 식민지 근대화론은 요시다 쇼인이 주창한 ‘정한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3장 전략적 사고를 위한 역사 다시 읽기

(논쟁이 필요한 역사적 사건에 관한 질문)

- 중대한 역사적 고비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자긍심이 아니라 어두운 역사로부터 

  냉철한 교훈에 입각해서 추출한 전략적 사고능력이다.


1. 고구려는 왜 백제의 위기를 외면했을까?

- 백제가 고구려의 숙적인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면 고구려 남쪽이 당나라 군대에    

  노출될 뿐 아니라 당나라와 신라의 원활한 교역으로 당나라의 군대가 강력해지는 

  반면, 고구려 안위가 염려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백제를 돕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당나라의 양동 작전에 말렸을 가능성

  둘째, 고구려 조정이 백제의 상황을 늦게 파악했다

  셋째, 백제의 구원요청을 안일하게 대응했다

  넷째, 이른 붕괴로 고구려가 손 쓸 틈이 없었다.


2. ‘신립’은 왜 ‘새재’를 버리고 ‘탄금대’로 갔을까?

- 주력이 기병으로 구성된 신립의 군대는 문경새재에서 싸우자는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병력을 충주 ‘탄금대’로 옮겨 배수의 진을 치고 달천령 평야에서

  싸웠다.

   ---> 신립 부대의 구성을 보면 주력이 ‘궁기병’으로 새재와 같은 산악지형에서는 

         쓸모가 적었고 갑자기 투입되다 보니 보급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새재보다

         평야를 택한 것으로 판단.


하지만 평야에서의 싸움에서 완패를 하는데 이유는 논밭으로 이루어진 땅 바닥이

질척거리고 지반이 약해 기병이 속도를 내기 어려웠고 조총의 위력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3. 명이 조선을 구했는가. 조선이 명을 구했는가?

-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낸 것은 조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명나라를 일본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사전 예방 조치적 성격이 강하다.

   ---> 명군이 주도적으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작전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사실이

         없다. 오히려 명 조정은 협상에 의한 해결을 추구하기 시작. (P131)

- 일본과 강화 협상을 하던 명군 장수 심유경은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명나라 군대에게 피하라고 통보한다. 결국 고립된 조선군과 조선 백성이

  몰살될 때 명나라 군대는 방관했다.

  또한 울산성에 웅거한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를 공격할 때 조선군이 선봉에 섰으나 

  통합 사령관격인 명군 지휘관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현장을 떠났다.

- 임진왜란 기간 중 총 100 여회가 넘는 전투 중 명군이 참여한 전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또 당시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는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명군에 의한 폐해가 심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간단한

  사실만 갖고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를 평가해 본다면 결국 조선은 명나라에 의해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명나라를 도와 준 것이고 우리의 힘으로 일본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P134)

 

4. 병자호란 때 조선군의 작전이 엉망이었던 이유?

- 조선은 청나라에 대한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다 예견된 청나라의 침공을 받는데 이에 

  대항하여 할 도원수 김자점은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거의 수수방관한다.

  그 결과, 도원수 김자점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파직되지만 다시 부활해 영의정까지

  오른다. 그는 ‘음서’로 관직에 진출한 문과 출신의 병조 하급관리였으나 인조반정에 

  참여, 반정공신이 된다.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하는 역할과 임진강 수비사령관을 담당한 것이

  군 경력의 전부다. 그는 효종시절 정치적으로 불리해지자 북벌계획을 청나라 조정에

  밀고하는 배신 행위를 서슴없이 행했던 기회주의자였다.

-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극심한 불안감에 병권을 함부로 내 편이 아닌 사람에게 

  내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반정공신이자 병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자점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인조는 왕자와 중전, 후궁들을 강화도로

  피신시키면서 강화도 수비사령관으로 문관이고 전투 경험도 전무한 ‘김경징’을 

  임명하는데 그 역식 반정공신이었는데, 현직 영의정 김류의 아들이었는데

  그 역시 ‘음서’로 관직에 진출한 자로 능력이 의심되는 자였다.

  결국 병자호란 때 인조가 갖은 수모를 당한 여러 이유 중 극명한 한 가지는 ‘음서출신'

   측근들로 인해 벌어진 사태가 주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5. 후기 조선통신사는 왜 중단되었을까?

- 후기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의 요청으로 1607년 이후 200년간 모두

  12차례에 걸쳐 파견되었으나 1811년 이후 중단된다. 그이유를 추측해 보면

1) 1811년 조선의 큰 기근과 평안도 지역에서 홍경래의 난 발생으로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고

2) 19세기 들어서 조선은 여러 가지 제도적 모순, 매관매직으로 인한 부패, 민란과 

    도적떼의 잦은 출몰, 사농공상으로 인한 산업의 피폐화, 양반 급증에 따른 국가

    재정의 어려움으로 많은 예산이 드는 통신사 파견이 어려운 상태였을 것으로 추측

    일본의 경우는 서구 열강과 잦은 교류를 통해 일본의 문화수준이 높아져 조선

    문화에 대한 동경심이 사라졌고, 자신의 문화 예술작품(그림, 도자기 등)이 유럽으로

    넘어가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면서 어느 순간 조선 문인들과 더 이상 대화하기가 

    힘들어졌음을 자각했을 것이다.

3) 조선은 해금정책으로 대외교역이 금지되어 있어 산업혁명의 물결에서 벗어나 있었고

   사농공상의 사회라 자체적으로 기술이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로 인해 통신사 교류가

   시작된 17세기나 200년이 지난 19세기나 조선에서 생산되는 물품 수준에 별 차이가

   없었고 새로운 발명품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 일본 지식인들은 조선 문화에 대한 존경보다 일본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고양

- 신분이 고착되어 있고 개인의 노력에 따른 보상과 신분 상승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였던 조선은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나라였기 때문이다.

 

6. 세계 유일의 자생 기독교인 조선 천주교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 조선의 천주교는 중국에 들어온 유럽 천주교 신부들에게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서학’이라 불리는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여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종교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P153)

- 서학을 연구하던 조선 선비 이승훈이 1784년 조선사절단의 일원인 아버지를 따라 

  북경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세례를 받아 한국인 최초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승훈이 조선으로 돌아와 동료를 신부로 임명한 후 미사를 집전하고 포교를 시작한

  것이 조선 천주교의 출발점이다.

- 조선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발전한 이유는 천국, 지옥, 연옥이 불교의 극락세계 또는

  염라대왕이 지배하는 지옥과 유사해 낯설지 않았고, 천주교 사제가 불교 승려처럼 

  결혼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정진하는 모습도 영향을 주었는데 가장 두드러진

  영향력은 우리 민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 설명의 열쇠이다.

- 조선의 강력한 통제사회에서 억눌려 잠자고 있던 한민족의 유연한 사고가 천주교에

  의해 다시 일깨워졌다고 보면 조선의 백성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천주교에 심취하고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한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7. 동학혁명 때 청나라에 원병을 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조정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는데, 조선의 원병 요청은 

  결과적으로 조선의 명줄을 끊은 결정타가 되는데 그 이유는

  첫째, 동학혁명은 탐관오리의 처벌이었고 일제 침략을 막는 것이었지 임금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다.

  둘째, 어느 일방의 조선 출병은 또다른 일방의 조선 출병을 의미하는 텐진조약 

         때문이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의 침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이 되었다.

-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이유?  

  첫째, 조선 조정이 텐진조약의 세부 내용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임오군란 때 청군 개입으로 일이 풀렸듯이 가볍게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생각하고 파병 요청

  셋째, 친일 세력이 고종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는데 실제로 일본군이 청군을 제압후

          일본정부의 입김 아래 친일파 내각이 등장해 갑오경장이 이루어진다.

  넷째, 내정 간섭을 일삼던 원세개가 청군 파병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크다.

- 조선의 고위관료들이 거세게 파병을 반대하면 파병 요청이 성사되기는 어려웠을

  텐데, 분명히 조선 조정의 일부 세력이 맞장구를 쳤기 때문에 파병이 성사.

 

8. 고종은 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을까?

- 을미사변으로 왕비를 잃은 고종은 친일내각을 견제하고 조선의 주권을 방어할 방도의

  일환으로 친러파 이범진과 이완용의 적극 건의에 따라 아라사(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러시아는 고종을 볼모로 조선 왕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에서

  상당한 이권을 챙긴다.

- '아관파천'을 통해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굳혔고 영국과 미국이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자 조선을 일본 지배아래 두는 것이 러시아 남진을

  저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만든 사건이다.

- 조선 조정, 특히 고종은 국제정치 감각이 무디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아관파천으로 친러국가로 오해받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거문도 사건 때 영국과 직접 대화했다면 국제질서를 지도하는 국가가 영국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크게 아쉽다.


9. [조선책략]이 청나라의 발등을 찍었을까?

- 『조선책략(朝鮮策略)』은 1880년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조선에 제시한 외교·

  개화 전략서로 당시 러시아의 남하와 열강의 세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이 어떤

  외교 노선을 취해야 하는지를 설명한 책으로 주요 내용은

  ① 친중국(親中國) : 청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해 조선의 외교적·군사적 안전을

                           확보한다는 전략.

  ② 결일본(結日本) : 일본과 관계를 맺고 협력하여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 대응.

  ③ 연미국(聯美國) : 미국과 연대하고 수교하여 러시아의 위협을 견제하며 서양

                           열강과의 외교 관계를 넓히자는 주장입니다.

- 『조선책략』은 조선의 독립과 안전만을 위한 순수한 조언은 아니었으며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고, 일본 역시 조선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조선의 개화와 외교적 대응을 촉진한 측면과 청·일의 이해

  관계를 반영한 측면이 함께 존재하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책략』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와 친교를 유지하고

  일본과 관계를 맺으며 미국과 연대하자는 전략을 중심으로, 서양과의 수교와

  근대화를 촉구한 책자다. (Chat GPT)

- 해당 작품은 청나라 이해관계에 입각해 저술되었고, 당시 세계의 중심 국가인 영국에 

  대한 언급이 소홀히 다루어진 작품으로 영국의 국제적 지위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고

  조선에게 영국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면

  ‘거문도사건’을 계기로 조선의 개화파가 영국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을 수도 있다.

- 청나라는 조선이 미국, 유럽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도록 주선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조선책략은 조선이 청나라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도록 만들려는 의도로

  기획되었지만 청나라에 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제4장 전략형 인재를 위한 역사 다시 읽기

(불편한 진실을 알아야 전략이 보인다)

 1. 삼국의 몰락

 2. 계백부대는 최후 결전을 벌인 결사대가 아니다

 3. 위화도 회군 4불가론은 궤변

 4. 파국의 씨앗이 된 임진왜란 논공행상

★ 5. 이겼다는 신미양요에 숨겨진 진실

- 미국 입장에서는 개항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는 조선 관료들의 경직된

  사고방식, 조선 백성들의 곤궁한 모습,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드는 조선군의

  감투정신에 놀라면서 조선 개항에 따른 무역에서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철수 결정

- 조선 입장에서는 이 전투를 승리로 둔갑시켜 버린다.

★ 6. 러일전쟁의 전쟁터가 된 조선

- 1904년 2월 일본 해군이 여순과 인천에 있는 러시아함대를 기습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 즉, 러일전쟁은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점임.

★ 7. 가쓰라 - 태프트밀약 전후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

-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 수상과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맺은 대화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기로 한 약속을 기록한 각서.

- 조선은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해 접견 요청을 하나 조선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외교권이 없으니 더 이상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거절.

- 일본은 가쓰라 - 대프트 밀약 2주 후 1905년 영국과 2차 영일동맹을 맺고 조선에 

   대한 권리를 영국에서 인정받았다.

★ 8. 원세개의 9년 전횡

- 원세개는 임오군란 때 대원군을 텐진으로 전격 압송해 임오군란으로 인한 혼돈

  상황을 일거에 정리하는 데 성공, 이에 고종은 갑신정변 때에도 원세개에게 다시 

  큰 신세를 졌다. 그러다 보니 청나라가 보낸 감시관에 불과하던 청년 그에게 코가

  꿰어서 원세개가 사실상 조선의 총독 노릇을 하게 된다.

★ 9. 항일 무장투쟁의 전술적 승리와 전략적 한계

- 청산리전투에서 승리한 선열들은 물론 중국 대륙에서 중국공산당, 국민당과 함께

  일본군과 싸운 선열들, 어려운 여건에서도 상해 임시정부 직할부대에서 활약한

  선열들과 그들을 지도한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희생과 노고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분들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를 확립하고 계승하는 데 있어 정신적 기반을

  확실하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임시정부를 이끈 지도자들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효과적으로 기획하고 조율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위의 소제목 앞에 붙은 ★표는 진정으로 우리 역사 교육 시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소제목들인데 해당 내용에 대해 세세히 정리하지 않은 이유는 

    내용이 민감하고 아직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판단이 정확히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제외한 것으로

    추후 해당 분야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나온다면 그때 가서 개인적으로 정리를 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작품 오류 수정의견 제시

 

- P204쪽을 보면 ‘미국 해군육전대의 스프링필드 전장식 소총 유효사거리가

  900m’라고 했는데, 이를 확인해 보니 아래와 같다.

· 스프링필드 모델 1855 : 유효사거리 약 365m (약 400야드)

· 스프링필드 모델 1861 : 유효사거리 180~365m (약 200~40야드)

탄환은 약 900m 이상에서도 치명적 위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는 통상적인 정확한

조준사격이 가능한 유효사거리와는 구분해야 한다. (Chat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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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의미 - 두려움 없는 은퇴, 여름날보다 충만한 인생의 가을을 위하여
폴 투르니에 지음, 강주헌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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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5

(50대 미만 7, 50대 이상 6)

세상은 2025년 기준, 7명 중 1명이 60세 이상(14~15%)이고 2030년 전후에는 60세 이상이 17%로 6명 중 1명, 2050년 전후로는 약 22%로 5명중 1명이 60세 이상이라고 

한다. (Chat GPT)

 

‘노년의 기준’을 몇 살로 보아야 할까?

이런 저런 환경적 조건과 생활환경에 따라 그 기준은 다를 것이며 또 이것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수학적 수치나 범위로 특정 나이대로 설정하기가 상당히 난해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 누구에게나 ‘노년’으로 가는 인생의 여정 길에서 반드시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장애물은 ‘은퇴’라 여겨지는데, 그것은 누구에게나 세월이 흐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또 살아있는 생명체로 사회활동을 해 온 사람이라면 반드시 받게 되는 자연이 청구하는 삶의 고지서가 아닐까?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되는 것도 그런데 인생 황혼 길에 ‘은퇴’까지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이는 비탄감에 또 어떤 이는 아쉬움과 허전함으로 만감이 교차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단어가 주는 묘한 자극(?)은 아마도 여러 감정과 회한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튼 위에서 언급된 ‘노년’이라는 단어와 ‘은퇴’라는 단어가 개개인에게 어떤 느낌의 형태로 다가오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해당 단어가 주는 의미를 너무 비관적,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해 또 다른 개인 발전의 토대로 만들 수 있도록 이를 행복하게 해석하고 활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모습과 자세를 견지한다면 남은여생이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거 박완서 선생님의 어느 에세이집에서 내용인데 십 수 년이 흐른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내용은 어느 지인의 딸 혼인 식장 한 귀퉁이에서 팔순의 선배가 혼인 식장(?)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쳐다보고는 중얼거리고 있어서 나중에 그 선배가 무엇을 하기에 저러나 하는 마음에 슬쩍 선배의 손에 들린 것을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영어 단어장’이었으며 그 단어장 외우는 모습을 보면서 노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듬해 그 선배를 잘 아는 또 다른 선배를 만나 단어장 외우던 선배의 안부를 물었더니 자신이 단어장을 우던 모습을 본 그해 말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해당 내용이 다가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돌아가신 단어장을 외우던 박완서 선생의 선배가 큰  스승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늘, 나는 그런 마음으로 갖고 노년의 시기에 찾아오는 ‘은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삶의 Tip을 전해주는 본 작품을 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 작품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강조하고 있지만 - 은퇴 후 삶의 정체 즉,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싶지 않다면 나와 관련되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분야가 있다면 꾸준히 계발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 집중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은퇴의 성공 여부는 은퇴하기 전에 자신의 개성을 얼마나 잘 계발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은퇴와 동시에 성공적인 개인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은퇴 시기보다 훨씬 빠른 50대 심지어 40대에라도 준비가 시작되어야 하며 노년의 준비를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일찍 시작해야 할 것을 작품은 강조하고 있다.


주한 미군 사령관의 동아시아 작전 지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지도와는 달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거꾸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생각의 중심에 한반도를 놓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아무리 막아도 막을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노년과 은퇴를 수동적, 패배주의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위에서 언급한 주한 미군 사령관과 같은 관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몰랐던 인생의 또다른 부분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고귀한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 작품은 사회생활을 할 때 씨앗을 먼저 뿌릴 것을 권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과거의 영화에 사로잡혀 있거나, ‘라떼’라는 의식을 갖고, 꼰대적 사고를 갖고 있는 한, 알찬 노년의

시간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야 한다.

 

은퇴는 노년의 시작일 수 있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조건은 과거를 잊는 데 있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직장에서는 관리자로서 명령하고 지시하는 권위적인 태도를 내려놓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말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하나 작품을 통해 귀한 조언도 한 가지 더 받았는데 노년에 가져야 할 두 가지 포인트로 “무관심”과 “종교로의 도피”를 권유하고 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튼 이 작품을 통해 노년으로 가고 있는 나의 삶이 더 알차게 될지 아니면 더욱 허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느 쪽이 되었던간에 모든 것은 나의 자세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은퇴 후 내가 꿈꾸었던 ‘독서’와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 너무도 행복하다.

누군가 이야기한다.

책 읽으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나이들어 근력 떨어지게 책상머리에 앉아 책 읽는다고 집에만 박혀 있지 말고 산으로, 들로 골프와 여행을 다니며 노년을 즐기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지금의 내가 더 좋은 것을 보니 몸은 노년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마음은 아직 중장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집에만 박혀 있지 않고 여타의 생활에도 적절한 시간을 배분하며 살고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들 

예를 들자면 독서와 글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지만 놀 때는 논다. 미치고 빡세게 논다. 


16명이 회식하면서 16인분 고기 시켜 놓고 누구처럼 혼자 6인분 처먹고서는 나는 그렇게 추접하지 않다며 뻔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누명을 쓴 것처럼 주접을 떨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수준 낮은 어느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추한 노년이 되고 싶지는 않다. 

만주 개장수는 때가 되면 개만 팔고는 조용히 떠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에게 의리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이며 착각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 1945년 맥아더 장군의 연설

“사람은 일정한 햇수를 살았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버리기 때문에 늙습니다. 해가 가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만 이상을 버리면 영혼이 늙습니다. 걱정과 의심, 두려움과 절망은 우리가 죽음을 맞기 전에 우리에게서 천천히 기운은 빼앗아가며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적입니다.“ (P365)

 

[1. 일과 여과]

- 노동이 없는 여가는 여가가 없는 노동만큼이나 영혼을 파괴한다. 노동과 여가는

  상호보완적이어서 우리를 한층 균형적인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노동)에 관해서는 훈련받지만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훈련받지 않았다.

- 여가활동과 노동은 분명히 다르다. 여가활동이 자유를 상징한다면 노동은 제약을        상징한다. (P 50)

* ‘여가활동’이란 긴장 완화와 휴식, 창조적 상상력과 자발성 등을 뜻한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절대적인 권리도 있어야 한다. (P245) 여가활동의 주된 묵적은 이익이나 유행 혹은 허영심의 충족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의 추구에 있어야 한다. (P251)

- 은퇴 후의 삶은 당사자의 문화 수준에 크게 좌우되며 여가시간을 지속적으로

  만족스럽고 유익하게 활용하게끔 해주는 것은 오로지 문화이다. 문화는 예술이지만 

  타인과의 관계이고 자연과의 교감이며 삶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P 17~18)

* ‘문화수준’이란 문화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은 배우고 이해하려는 의욕, 시도하고   

  지속하며 수정을 거듭해서 개선해 나가려는 욕망, 경험을 얻고 요령을 익히려는 의지,

  새로운 길을 뛰어들어 정신세계를 확대하고 시야를 넓히려는 욕심, 한마디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장하려는 욕망이다. (P218)

즉, 외적인 활동과 전문적인 활동을 조금씩 줄여가는 대신에 은퇴 후에도 계속할 수 있는 문화적 활동에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더 할애하는 것이 중요하다.

- 문화적 활동이란 자신을 계발해서 꾸준히 진보하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며, 직업

  활동을 끝낸 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P 17)

- 노년을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서 늙기 전에 문화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P 20)

- 은퇴는 후퇴가 아니라 개인적 성취를 향한 전진이다. (P30)

- 당신이 지금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노년과 은퇴 후에 맞을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 우리 사회는 의무가 아니라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선택한 행위보다 실용적인 노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P 58)

- 습관은 당사자가 삶과 세상에 대해 갖는 마음가짐과 관계가 있다. (P 68)

- 모두가 자신의 의무를 충실하게 해내기를 바라지만, 의무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의무에서 옆길로 일탈도 해보기를 권한다. (P 72)

 

[2. 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하여]

- 우리 사회의 질병은 심리적 문제로 인한 질병이다. 다시 말해 근원적인 이유가 심리적

  상태에 있는 물리적 증상(물질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과 도덕적 증상(갑갑증과 우을증)

  으로 나타나는 질병이다. (P 77)

- 노인이 경멸의 대상이 된 이유는

  1) 과거 사회에서는 노인이 희소했으나 오늘날은 노인의 수가 급증했고

  2) 최신 테크놀로지를 신속하게 배우기 때문에, 新 테크놀로지를 모르는 노인의

     조언이 필요 없게 되었고

  3) 세대가 짧아졌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고 한다. 그 결과 키케로가 ‘노년에 관하여’에서 언급한 찬사가 상실된 지 오래다.

 

* 키케로의 저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에서(도서출판 숲, 천병희)에서 발췌한 ‘노년’에 관한 이야기 (축약)

: 포도주가 오래되었다고 모두 시어지지 않듯이,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비참해지거나 황량해지는 것이 아니며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는 노년을 역설했다.

·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성격 탓이지 나이 탓이 아니다. 늙어서도 절제할 줄 알고 

  까다롭거나 퉁명스럽지 않은 사람은 노년을 잘 참고 견딘다. 

  반면에 무례하고 퉁명스러운 사람에게는 나이에 관계없이 인생이 괴롭다.

· 노년에 관한 최선의 무기는 학문을 닦고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미덕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훌륭하게 

  살았다는 의식과 훌륭한 일을 많이 행했다는 기억은 가장 즐거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 무지한 자들이 자신의 악덕과 과오를 노년에 떠넘긴다.

· 노년이 비참해 보이는 이유

  1) 노년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만들고 

  2) 노년은 우리 몸을 허약하게 하며

  3) 노년은 우리에게서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가며 

  4) 노년은 죽음애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 노년이 되어 가장 비참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

· ‘노망’이라는 노년의 어리석음도 모든 노인이 아니라 경솔한 노인의 특징이다.

· 노인 같은 젊은이를 좋아하듯, 젊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노인을 좋아한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육체는 노인이 되었어도 정신은 그리 될 수 없을 데니까

· 명망이야말로 노년의 더 없는 영광이다. 권위란 높은 관직을 역임한 뒤 노년이 

  되어서야 생기는 것으로 청년기의 모든 감각적 쾌락보다 더 값진 것이다.

· 권위란 명예롭게 보낸 지난 세월의 마지막 결실.

· 노년의 엄격함은 옳다고 보지만, 그것은 매사가 다 그렇듯 절제된 것이어야 한다.

· 노인이 죽음은 무시되어 마땅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수명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 노인들은 짧은 여생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까닭 없이 그것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 노년은 인생이라는 연극의 마지막 장인만큼 거기에서 기진맥진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 노년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했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일을 하게 되는 시기다.

- 제대로 된 삶의 철학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한 번뿐인 삶을 낭비하게 된다.

-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은 대부분 돌연한 쇠락에 이르기 전 삶의 내리막길에서 

  누렸다.(세네카)

- 노년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노쇠’와 ‘질병’이 아닌 죽음에 대한 ‘예견’으로 죽음을

  예견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잘못 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 일관된 삶의 철학을 가지면 죽음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일관된 삶의 철학이

          있는 사람은 삶에서 얻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얻으려

          노력하며 살 것이다.

- 스토아 철학자들이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 이유도 그날에 마지막 날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 하루에서 또 그 다음 날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 또한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라’고 외친 이유는 오늘 하루를 사는 사실에 감사하고

  남은 날을 허투루 보내지 않도록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라는 것으로 우리의 행동이

  아닌 행동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임.

 

- 위대한 국가는 젊은이들로 인해 흔들리고 노인들로 인해 유지되고 다시 세워진다.

- 우리는 인간보다 사물을 우선시해왔고, 인간보다 사물에 기반해서 문명을 건설했다.

  노인은 그야말로 인간에 불과하고, 노인은 더 이상 생산자가 아니라 인간이란

  점에서만 가치를 지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시되고 폄하된다. (P 83)

- 노인에게 주어진 원대한 사명은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에 따뜻한 인간미와 이타적인

  감정을 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노인들이 맡을 수 있다. (P 88)

- 유행에 대한 편견이 바뀔 수 있다면 사회적 편견도 바뀔 수 있다. 사회적 편견은

  개인과 사회적 집단 간의 관계를 해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P110)

- 노인에게도 상대적으로 젊은 성인의 심리와 다른 고유한 심리가 있으며,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더 성장하려면 사랑받고 이해받으며 자신의 의견이 경청된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P122)

- 우리 시대에 중대한 문제는 노인 인구의 증가로 노령화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이유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노인 폄하를 우리 문화의 한 특징이 아니라 자연법칙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노인 인구가 증가한다는 데 있다. (P128)

- 연령층 간의 접촉이 접촉이 활기차게 유지되지 않으면 모든 연령층의 성장이

  저해된다. 노인에게는 어린 아이만큼이나 청소년도 필요하다. 노인에게는 둘 모두의

  사랑이 필요하다. (P136)

- 노인도 인격적 실체가 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이 말을 걸고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노인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며 더 성장할 수 있다. (P141)

 

[3. 노인의 운명]

- 은퇴 후 여가활동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설정되어야 한다.

  1) 갑자기 일을 중단함으로써 생긴 공허감을 채우는 활동

  2) 일을 중단함으로써 고립된 사람에게 사회적 접촉을 시도할 기회를 제공하며

  3) 퇴행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인간다움을 지속적으로 계발하는 수단이 된다.

- 결혼 생활은 끊임없는 교환이며, 상대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삶이다. (P185)

- 고통은 남에게 전달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개인적인 커다란 시련은 고독이란

  비극적 감정에 의해 더 커진다. (P188)

- 많은 노인을 괴롭히는 외로움이란 비통한 문제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문명의 한계와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P196)

-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분노하며 저항하는 사람보다,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행을 더 쉽게 이겨낸다는 것은 보편적인 법칙이다. (P202)

- 노년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성향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일종의 돋보기에 불과하다. 

- 젊었을 때 비판하는 행위는 왕성한 생명력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난 늙어서

  비판하는 행위는 유약함의 증거여서 당사자를 더욱더 유약하게 만든다. 무기력과

  관련된 슬픔과 후회와 불안은 강박적으로 변한다.

  많은 노인들과의 대화는 거의 그들이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채워져

  있었다. (P229)

 

[4. 제 2의 삶 혹은 제2의 이력]

-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을 우리 사회에 재통합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변화와 사회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P238)

- 제2의 이력은 한창 활동할 때 씨가 뿌려져서 뿌리를 내린 식물과 같다. 그 식물이

  처음에는 천천히 자라지만 은퇴 후에는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것이다. (P243)

- 삶은 투쟁이기 때문에 여하튼 뭔가에 맞서 싸우는 노년이 아름다운 노년이다.

- 자신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게 아니라 본래의 인간적인 모습에

  있다. (P272)

- 나이가 들면,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하는 일에 담긴 정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아직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 목표가 없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실존적 고뇌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P312)

- 은퇴자들은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면의 무력감이다. (P315)

- 고통과 불행에 시달리는 노인은, 질병과 노화와 죽음이 있는 세상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단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반발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불평과 비판을 일삼고 자신의 한계와 허약함과 의존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5. 수용에 대하여]

-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내려놓기는, 나에게는 세상을 등진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폭넓고 더 깊이 세상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P320)

- 수용은 미완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미완성으로 끝났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P322)

   ---> 수용한다는 것은 삶 전체에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P338)

   ---> 노년의 즐거움을 맛보려면 불완전한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은퇴는 삶 전체가, 그것도 미완성으로 끝나는 죽음의 예고이다. (P325)

- 인간적인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 현실은 만들어지고 창조되는 것이다.

  미완성은 우리 존재의 일부이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죽음을 향해

  변하는 것이다. (P333)

-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P341)

- 인간은 진실을 추구하지만 진실을 회피한다. 또 인간은 진실을 회피하지만 끊임없이

  진실을 추구하기도 한다. (P345)

- 우리가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 식물처럼 무기력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 확신을 갖고 삶에 ‘좋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P350)

- 노화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고,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현실을 정면에서 맞닥뜨려야 한다.

- 죽음은 내 준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다.

   ---> 늙으면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지만 하나님만이 다가온다.

- 몸으로 산 사람의 노년은 쇠락이지만, 정신으로 산 사람의 노년은 찬란한 개화이다. 

- 노년이 요구하는 모든 포기는 몸과 관련된 것이지 마음과 정신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 노인은 직업과 사회의 경쟁 대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 폭넓은 관점에 마음을 

  열 수 있는데 노년의 의미는 즉각적인 이득으로부터의 해방, 마음의 문을 크게 

  열 기회로 해석될 수 있다. (P369)

- 과거의 관심사에 집착하거나 무기력에 빠지는 현상, 이는 노년에 실패하고 노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게 하는 주된 두 원인이다. (P374)

- 삶은 단계별로 사랑을 배우는 학교다.

- 모든 것을 놓아줄 때 모든 것을 다시 찾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서는 내려놓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내려놓기는 행동의 포기를 

  뜻하는 게 아니라 내 고유한 의지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뜻이다. (P403)


[6. 믿음]

- 죽음은 필요한 것이어서 설명 가능한 것인 동시에 이해되지 않는 불가해한 것이다.

  은퇴가 노년을 예고한다면 노년은 죽음을 예고한다.

- 인간은 질문을 받을 때가 아니라 상대가 귀 기울여 들어줄 때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이다. (P411)

- 우리가 죽음과 노년에 대해 거의 입에 담지 않는 이유는 죽음에 관련된 감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노년의 두려움을 몰아내려면 노년에 대해 가벼운 마음으로 숨김없이 얘기 할 수 

  있어야 한다. (P412)

- 죽음의 수용이 노년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P413)

- 죽음의 의미는 종교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은 성경과 교회의 

  설교에서 무시무시한 협박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평온한 사람은 은총과 

  관련된 약속만을 받아들인다. (P417)

-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강하게 보이려고 불안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인간의 유약함을 

  인정하고, 내적인 진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불안을 고백하는 것이다. (P420)

- 내가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존재하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존재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P424)

- 죽음은 인간에게 훗날 닥치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하는 

  시간이다.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 죽음은 우리 

  존재의 일부이다. 매일 우리는 죽음으로써 살아간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삶에는 가치가 있지만 미완성의 가치라는 걸 가르쳐준다.

-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 영생을 함께하는 삶이다. (P435)

 

작품에서 오탈자 찾기

- 76쪽 上 6줄

  우리나 약해서 ---> 우리가 약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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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ㅣ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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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정조 어찰첩 6첩 297통’

 

‘정조’는 개혁을 추진한 학자풍 군주(참고, ‘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著 참조)로, 

‘세종’과 더불어 성군 이미지로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러 역사적, 사실적 정황으로 보았을 때 그런 개혁가 이미지인 정조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만큼의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와 정조가 주고받았던 어찰첩(편지)이 발견되면서 그런 의심은 모두 소멸되었고 오히려 정조는 막후에서 그런

정적을 이용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노련한 정치가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정조의 어찰은 본질적으로 정치문건으로 정치현안을 지시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정치적 기능이 중심을 이룬 비공개를 전제로 한 ‘비밀편지’인데, 국왕은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 나아가 복잡 다단하게 얽힌 정치 과정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어가려 했음이 밝혀졌는데 아직도 그 진의를 정확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금번 작품은 어찰첩의 개괄적인 사항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는 사항으로 어찰 내용 하나하나를 분석한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어찰 내용과 관련된 당시 정치 및 경제 환경적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조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에 세세한 어찰 내용을 다루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리더는 ‘X'라는 것을 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비밀이 없는 요새 세상에 리더가 자신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좋은 의도로 생각되나 너무 잦은 문자질은 문자 내용과 관련된 중간 관리자들을 무용지물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진중한 처사라 느껴지지 않는다 할 것이다. 


과거의 어찰이나 오늘의 ‘X'나 같은 맥락이 아닌가 생각은 드는데 ‘X’라고 하니 웬지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여간 정조의 어찰이나 요즘 마구 날리는 'X'나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며 어찰첩 297편이 담고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리더와 리더를 따르는 자들간의 소통을 갈구하는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할지.........


- 어찰(御札)은 임금의 편지를 가리키며, 임금이 직접 쓴 글씨는 ‘어필(御筆)’,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은 ‘어제(御製)’, 세자나 세손이 직접 쓴 글은 ‘예필(睿筆)’. 직접 지은 글은

  ‘예제(睿製)’라고 하였으며 직접 쓴 편지는 ‘예찰(睿札)’이라고 하였다. 

  ‘돈유(敦諭)’란 임금이 교지를 내려 신하에게 명령하는 문서를 지칭하고

  ‘서계(書啓)’란 임금의 명령을 받은 신하가 일을 마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문서를 

  일컫는 말 (P 27)

- 심환지가 보유하고 있던 ‘어찰첩’의 형태상 특징은 거의 모두 겉봉투와 함께 ‘장첩’

  되었고

* 장첩(粧帖, 책처럼 아담하게 꾸며 만든 서화첩) 

   : 글씨나 그림 따위를 잘 보관하기 위하여 두꺼운 종이를 붙여 책처럼 꾸며 만듦

  각 겉봉투에는 어찰을 받은 날짜를 적은 쪽지(부전지)가 달려 있다. (P 16)

- 어찰은 귀한 유물이지만 국왕이나 왕비의 어찰이 실제로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 요행히도 어찰을 소장한 신하들은 그것을 조정에 바쳤고, 조정은 그들에게 

  그 대가로 벼슬을 내리거나 후한 포상을 해왔으나 그런 관례가 형성되자 툭하면 

  옛 임금의 어찰이라며 조정에 바쳐 벼슬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는 자들이 늘어나

  어찰의 궁중반납은 폐단이 될 정도였다. 그 폐단을 없애기 위해 어찰을 받지 않는다는

  명을 내리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P 74)

- 실록에 나타난 정조는 “진실한 선비의 전형이라기보다 국왕 지지세력 조차도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기만과 독단을 자주 사용했고“, ”자신의 국정 운영 방침에 반대

  하는 세력에 대해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공격 대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위협하곤 했다“

   ---> 정조는 어찰을 통해 신하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드리고 통제하고 자기 사람으로

         활용했다.(P 41)

   ---> 어찰이 정치문건이자 비밀편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편지가 ‘의문’을 나타내는

          ‘야(耶)’자를 흔히 사용했는데 이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묻는

          어투였다는 점이다. (P 88)

- ‘상소’는 신하가 국왕에게 의견을 개진하는 행위인 동시에 여론을 형성하고 정국의

   방향을 흔들기도 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행위였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서 고비

   때마다 상소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P 74)

- 정조가 자신의 의도대로 정국을 이끌려 했던 대표적 사건이 1797년 홍국영을 실각

  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상고’를 김종수가 올렸다고 하는 데, 실상은 정조의 

  하명에 따라 올린 상소라 하며 상소 초본을 아예 정조가 직접 지어서 보냈다고 함. 

                                                       

해당 작품을 읽으며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즉, 리더는 자신이 그 위치에 있을 때보다 리더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그 위치에서 내려온 뒤 자신에게 내려질 평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정조 어찰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집단의 리더들을 살펴보니 자신들이 퇴임 후 밀려올 평가에 대해 - 그런 비난을 무서워하며 평가를 의식한 행동이나 아예 평가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어느 정도 의식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 걱정을 안 하는 듯이 행동하는 리더들을 보면 대단히 우려스런 마음이 일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나의 절친한 후배가 해 준 이야기인데,

자신이 다녔던 회사에서 무소불위의 강력한 권력과 파워를 가졌던 비서실장이 있었는데, 그 비서실장은 지금도 일반인들에게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데 현역으로 활동할 때의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퇴임 후 그의 모습은 동네 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하면서 최근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퇴직 후 비서실장이라는 분은 여느 동네 노인처럼 공원 벤치에 홀로 나와 앉아 있곤 했었는데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분이 해당 장소에 거의 나오지를 않고 있다고 한다.

그 비서실장 밑에서 일했던 과거의 부하직원들이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면 ‘재수 없다’고 발길을 돌리거나 ‘왕 재수’라고 하면서 그와 의도적으로 마주치지 않으려 자신이 오던 길을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비서실장은 길에서 자주 만나던 과거 자신의 부하나 동료들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를 친한 후배로부터 전해 듣고는 거의 두문불출한다고 한다.

무슨 뜻이겠는가?


비서실장이 현직에 있을 때 강력한 힘을 자랑하며 무소불의의 권력을 휘둘렀고 항상 자신만이 최고라는 의식 속에서 살았었다. 현직에 있을 당시 모든 이들이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아림이 그에 대한 존경심 내지는 그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판단은 항상 옳다는 모습을 공공연히 공식 석상에서 보이고는 했는데 그렇게 자신이 내린 판단이 실수로

판명되었을 때에 그 자신은 어떠한 변명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하직원 탓만 했다고 한다.

그럴수록 그 부하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겉으로 웃으며 수긍했지만 이내 돌아서서는 비난의 독설을 퍼붓고는 했지만 아마 듣고서도 모른 체 했을 것이라고 한다.

비서실장 자신 권력은 영원할 줄 알았던 것 같고 언제까지 자신만이 조직을 가장 사랑하는 참 리더인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왔기에 자신이 그 위치에서 내려와야 하는 순간, 자신이 현직에 있을 때와 같은 동일한 대접을 주위에서 해 줄 것으로 알았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파악하고는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고 좌절했을 것이다.

아무튼 비서실장이든 누구든 자신이 뿌린 만큼 돌아오며 자신이 준만큼 돌려받는다는 평범한 진실을 이제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작금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는 기득권자들 사이의 여러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정신이 온전하고 건전한 국민의 생각과 의식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지금의 기득권들이 과거 야인시절 분탕질에 가깝게 난리치며 나라를 혼란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던 그대로 자신들도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사필귀정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의 힘을 후회 없이 맘껏 즐기면서 자신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모든 것은 힘의 논리에 의해 덮여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편이었던 세치 혀의 달인, 냄새의 달인, 오늘도 자신은 물론 온 식구가 과잉 조사를 받았다고 끝까지 우기는 두꺼운 안면 소유자와 배추 테크로 한 몫 잡은 어느 돌격대원 등과 같은 어제의 친위대들은 리더가 무슨 우려를 하고 있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가 더 크다고 자랑질로 연일 떠들겠지만 힘없는 민초들에게는 피로감만 쌓이게 할 뿐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무슨 일만 일어나면 분란의 단초를 제공하는 주인공’은 항시 분쟁을 초래하는 말과 행동으로 모두를 힘들고, 헷갈리게 만들어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SNS 뒤에 숨은 뒤 밖으로만 돈다.

그리고는 노름판을 전전하다 집에 들어온 어느 무능력한 가장이 ‘내가 너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 줄 알아?‘ 하는 식으로 집 식구들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일 잡도리 해 대고 있다.

그런 뒤 자신만이 집안을 걱정하며 살고 있는 정의롭고도 희생정신에 가득찬 인물인양 행동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될 경우 본인이 과거에 쌓았던 업적은 측근들이 무분별하게 쉴드치는 행동으로 인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간단하다. 

‘정도를 걷는 것’이고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된다.

모범을 보이고, 자신이 내뱉은 말과 일치되는 행동을 하고, 상생의 모습을 보이면 되고, 전과자들이 활개 치며 선량인척 행동하는 모습이 매스컴에 나오지 않게 했으면 좋겠고, 내로남불의 공직자들을 좀 더 발본색원해 지명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부동산 문제가 

안 잡히는 이유가 뭐고 주식이 어찌하여 개폭락하고 있는지 이를 설계한 자들을 불러내 따져보고 이해를 구하게 하고, 법과 상식을 벗어나 자신의 리더를 무조건 쉴드 치려는 측근들 솎아냈으면 좋겠고, 다수가 알고 싶어 하는 인물에 대해 소상히 밝히면  되고,

과거 정부의 특할비는 완전 없앴지만 지금은 왕창 있어야 하는 이유를 소상히 밝히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면서 재발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아무튼 답답하다. 

다수는 거창한 답변을, 완벽한 답변과 행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리더는 마치 우리 옆집 만주벌판 개장수처럼 행동하며 오늘도 모르쇠다.

아무튼 합리와 상식이 출장가고 비합리와 몰상식이 보초 서며 활개 치는 그런 세상이 아닌 모든 이들이 귀하고 평등한 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고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은 게 오늘을 사는 민초들의 마음인 것이다.

나는 그래도 아직 애정이 남아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일 나오는 내용을 들어보면 아마도 내가 이야기하고 희망하는 이루어질지가 암담하다.

측근들이 난리치는 것을 보면 한마디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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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서은국 외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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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정말 시간 남는 사람 5  

                                                                                              한가한 사람 6

                                                                                              바쁜 사람 3



‘세상에 좋고 나쁜 것이란 없으며, 오직 우리의 생각이 그것을 믿는 것이리라’

 

작품을 다 읽고 어떤 내용으로 정리할까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마주한 어느 신문의 컬럼에서 이런 자료가 눈에 들어와 올려 본다.

“스위스에서 어떤 노인이 자신의 여든 살 생애를 세부적으로 나눠 계산해 보았다고 

 합니다. 결과는 미로우면서도 씁쓸했습니다. 그중 일부를 보면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식사 시간 6년, 혼자 공상하며 낭비한 시간 5년, 담배

 피우는 데 1년, 세수하는 데 228일, 아이들과 노는 데 26일, 넥타이 매는 데 18일,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다린 시간 5년. 그중 행복했던 시간은 46시간이었습니다.

 행복을 위한 노력에 비해 결과가 너무 빈약하기만 합니다.“

신문 기사를 근거로 나를 비롯해 본 작품을 읽는 모든 이들은 결국 자기 인생의

‘46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또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것 밖에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억울하고도 무척 짜증나는순간이었다. 

그런 짜증을 극대화시킨 것은 작품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었던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저자는 후기 글에 이렇게 쓰고 있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나 승진, 해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경험하는 즐거움, 즉 행복인 것이다. 따라서 탁월한 선택이란 돈을 최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 즉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인생의 말년에 작품 제목처럼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고 싶었던 나’의 꿈과 희망을 해당 작품은 산산이 박살내고 있었다.

아무튼 작품을 읽으며 행복에 대한 나의 평소 지론을 확고히 하는 시간이었는데 내게

부여된 인생의 시간이 얼마나 부여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폼 나고, 멋지고, 신나고, 즐겁고, 재미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열심히 살 것이다!!!’

작품 정리....제목에 부합되는 내용은 아닐지라도 머리에 담아두면 좋을 듯해 정리해 보았다.

 

- 오직 인간만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이 과거에도 하지 못했고,

  현재 그리고 이후에도 할 수 없는 그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생각한다. 이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야말로 인간을 독특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특징이다. (P 29)

  ---> 인간의 뇌가 이룩해낸 최대의 업적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과 사상들

        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P 30)

  ---> 뇌는 일종의 ‘예견하는 기계’로 이 기계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지구상에 뇌가 처음으로 생겨난 것은 약 5억 년 전이다. 그리고 초기 영장류의 뇌로 진화하기

   까기 약 4억 3천만 년의 시간이 걸렸고, 7천만 년 정도의 시간을 거쳐 맨 처음 원인(原人)의 

   뇌로 진화. 그런 다음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약 2백만 년이 넘는 기간에 인간의 것과 

   비슷한 뇌가 전례 없는 급속한 성장을 겪으면서 그 부피가 두 배로 커진 것이다.

   이때 1.24파운드였던 ‘호모 하빌리스’의 뇌가 3파운드인 ‘호모 사피엔스’의 뇌로 변하게 

   되었다.

- 인간의 뇌의 한 부분인 ‘전두엽’은 건강한 성인이 자기 자신을 여러 시간에 걸쳐 확장

  된 존재로 여길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준다. (P 42)

   ---> 전두엽은 일종의 타임머신 같다. 우리는 이를 통해 현재로부터 빠져나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 우리의 뇌는 고집스럽게 우리를 미래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것인가?

  그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P 46)

- 우리의 뇌가 고집스레 미래를 상상하여 애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뇌는 우리가 경험

  할 것들을 통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P 51)

  ---> 사람들은 통제력을 행사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낀다.

- 행복은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해 우리가 편의상 이름붙인 단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 64) 

- 사람은 행복하길 원하고 행복 외에 바라는 모든 것은 대개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서 의미를 지닐 뿐이다. (P 68)

  ---> 사람의 의지는 행복 이외의 목적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 무언가를 선호한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더 큰 기쁨을 얻으려는 기대감으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거나 원하는 것“이다.

- 전통적으로 심리학자들은 인간 행동에 대한 이론을 행복이란 주제를 중심으로 정립해

  왔다.

- 행복은 고결한 삶의 결과물이 아니라 고결한 삶의 보상이며, 이 보상이 반드시 이 생

  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는 없다. (기독교 신학자들, P 71)

- 철학자들이 행복이라는 단어의 도덕적 의미와 감정적 의미를 뒤섞어놓았다면, 

  심리학자들은 행복에 담긴 감정적 의미와 평가적 의미를 뒤섞어놓았다. (P 73)

- 언어는 우리가 경험했던 것의 중요한 특징을 추출하고 기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우리가 나중에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해 준다.

                                                                                                     (P 78)

- 행복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과 남에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P 93)

- 칸트의 새로운 이상주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하는 경험은 우리 눈이

  세상의 이미지를 그대로 뇌로 전달할 때 일어나는 생리적인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지각현상은 눈이 보는 것들이 우리가 이미 생각하고 느끼고 알고 원하고 믿던

  것들과 합쳐지는 심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

  결국, 현실 지각은 감각 정보와 현존하던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합작품인

  것이다. (P129)

- 우리는 처음에 기억과 지각 경험을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이듯, 상상도 정확한 것으로

  가정하고 시작한다.

-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종종 우리 마음에 있는 맹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미래의 사건 그 자체에 대해 틀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 사람들은 미래를 상상할 때 자신의 상상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P145)

- 보통사람은 두 현상이 인과적으로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아내려 할 때, 대개 발생했던

  일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지만 발생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기억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언가를 심사숙고하는 행위는 ‘보는 것’에 국한되고, 보이지 않는 것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P147)

  ---> 우리가 선택할 때는 대안들의 '장점'에 주목하지만, 거부 결정을 내릴 때는 주로

        대안들의 '단점'을 고려한다. (P149)

- 아주 먼 '과거나 먼 미래의 사건'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사건이 발생했던 '이유'나 

  발생하게 될 이유를 '추상적'으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으나, '가까운 과거나 가까운 

  미래사건'을 생각할 때는,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혹은 '앞으로 어떻게 발생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P156)

- 나이가 지긋한 과학자가 어떤 현상에 대해 가능하다고 진술한다면 그 말은 십중팔구

  옳다. 하지만 그가 어떤 현상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범하는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거의 대부분 

  미래가 현재와 굉장히 비슷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클라크의 제1법칙, P167)

- 인간의 뇌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낄지 그리고 어떤 것을 무시해버릴지에 대해 엄격한

  우선순위를 갖추고 있다. (P180)

- 우울증의 징후 가운데 하나는 미래를 예측할 때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182)

- 상상은 현재의 경계를 쉽게 뛰어넘지 못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상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동시에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P184)

-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면서 경험하는 정서는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

- 시간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므로 상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어떤 추상적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추상적인 것과 비슷한 ‘구체적인 사물’을

  떠올려 그것으로 추상적인 것을 대신한다.

  그것은 공간으로, 시간을 공간적인 것으로 상상한다고 한다. (P187)

- '습관화‘를 이기는 한 방법은 다양한 경험을 해 보는 것이며, 또다른 방법은 반복되는

  경험 사이사이의 시간 간격을 늘리는 것이다. (P191)

- 우리가 미래의 느낌을 예측하려고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느낌을 그 시작점

  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더 미래가 현재와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P199)

- 사람의 뇌는 자극의 절대 강도에 민감하지 않다. 오히려 뇌는 ‘차이’와 ‘변화’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 사람들이 절대 강도보다 상대 강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성은 무게, 밝기, 

  부피 등과 같은 물리적 속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치, 재화, 부와 같은 주관적인 

  속성에서도 나타난다. (P201)

- 나란히 놓고 비교할 때 발생하는 가장 위험한 사실 중 하나는, 비교 대상이 되는 여러

  대안들은 서로 구별하도록 해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주의를 끈다는 

  점이다. (P208)

- 역사가들은 역사상의 인물들을 현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성을 가리켜 

  현재주의라 표현한다. (P213)

-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생각은 미래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예측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 경험하는 현실이 매우 강력하고 생생해 그에 기초한 미래는 현재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주의는 우리가 미래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과,

  현재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깨닫기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P214)

-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엄연히 현실과 이상 사이의 타협이다. 즉, 우리는 명백한 현실과

  낙관적인 환상의 적절한 조합을 경험하고 있다. (P231)

- 우리가 원하는 결과에 부합하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판단할 때 울리는 

  ‘불공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결론을 내리게 해주는 정보에 대해

  서는 관대하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훨씬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다. (P245)

- 우리의 현실 왜곡은 우리의 경험이 본질적으로 모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한 사실을 접하면 그것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잘 기억하며, 

  그 사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도 관대하게 적용한다. (P248)

-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은 그것이 정직하게 얻어진 결론이라고 믿어질 때만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을 조작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하고, 

  그 결과를 즐길 때는 의식적으로 한다. (P251)

-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선택들은, 그 선택으로 미래에 경험하게 될 후회의 크기를 

  예상하는 방법에 따라 결정된다. '후회'란, 우리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가 우리가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고 느낄 때 경험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행동은 미래의 후회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결정된다.

                                                                                                   (P256)

  --->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했던 것보다 하지 않았던 것을 훨씬 

         더 많이 후회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는 행동하지 않은 것보다 행동한 것에 대해 

         훨씬 더 쉽게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자유가 제공해주는 유익은 쉽게 상상하지만 자유 때문에 오히려 훼손될 수 

  있는 즐거움은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 기억은 경험의 중요한 요점만을 골라 보관하는 편집자로, 우리가 기록을 다시 읽고 

  싶어 할 때마다 그 요점들을 사용해 매번 기억을 재구성한다. (P282)

- 흔하지 않은 이례적인 사건들을 잘 기억하는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는 주범 중 하나이다. 우리의 뇌는 사실과 이론을 결합하여 과거 사건에

  대한 추측을 만들어내고, 동일한 원리로 사실과 이론을 결합해 과거에 경험했던 

  감정을 추측한다.

- 우리가 ‘내일’ 어떻게 느낄지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오늘’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보면 된다. (P326)

 

책으로부터

-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는 독사 이빨보다 날카롭다. (세익스피어,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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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말실수 - 조선의 역사를 바꾼, 개정판
이경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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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말이 당신의 입안에서 돌고 있을 때, 그 말은 당신의 노예이지만 일단 입 밖으로 튀어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 (탈무드)

 

위 문구는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정치권은 물론이고 크던, 작던 특정 집단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라면 이 문구가 던지는 의미와 뜻을 정말 가슴 깊게 되새기며 자신의 행동거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지침으로 새겨 볼 금언이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하지만 작금의 세상은 전과자들이 판을 치고 똥 묻은 놈이 묻은 이들을 타박하는 

세상이고 그런 리더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보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나는 언젠가 지금의 여당이 야당시절 종횡무진 난리를 치면서 정권을 향해 막말과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퍼부을 때 그들도 언젠가 입장이 바뀌어 ‘동일하게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 적이 있었는데,

작금의 우리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말의 잔치를 보고 있으면 내가 과거에 주장했던 방식으로 그들이 던졌던 무책임한 발언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모습들이 재연되는 모습과 

분위기를 보면서 내가 예측한 내용대로 상황이 전개되어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치 수준이 나 같은 평범한 범인도 예견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낮아졌음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누구 편을 들고 누구를 질타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아무리 정권욕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동네 시정잡배들처럼 막말을 쉽게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것도 책임지지도 못할 말에 대해 ‘카더라’ 수준으로, 면책특권 그늘 뒤에 숨어서 난리를 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나는 항시 이야기했다.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이유가 뭔지를 생각하라고.....점잖지 못한 수준 이하의 인간들로 인해 그들이 생각 이 혹은 정권욕에 급급해 툭하고 내뱉은 저질 발언들로 인해 

앞으로 십 수 년간 이 땅은 바람 잘날 없이 시끄러울 것이 예상된다 할 것이다.

그런 단적인 예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법을 수호하는 대법원장에게 막말을 해 대고,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장군들이 통수권자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내란 

세력’운운하는 막말을 쉽게 날리는 인간들은 정신이 나가도 한 참 나간 인간들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반드시 그들이 입으로 쌓은 업보는 입으로 되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다보면 큰 재난을 거치며(임진왜란, 한국전쟁 등) 역사적 증거가 많은 부분이 소실되고 왜곡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예기치 않은 역사적 굴곡점에서 그런 소실되거나 변형된 증거로 인하여 이상하게 석되고, 판단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간혹 

눈에 들어오고는 했었는데 그동안 역사적 지식이 짧았던 내가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몇몇 가지 사실은 내가 너무 무식했기 때문인데

그런 의문 중에서 몇몇 가지를 본 작품을 통해 다소 해소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학창 시절 배운 내용 중 ‘태종의 외척 정리사건’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권을 물려 줄 때 왕권을 강화한다는 이름으로 외척을 강하게 정리

하면서 세종의 삼촌들인 ‘민씨 일가’를 거의 도륙에 가까운 정리를 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처가 식구들을 ‘박살’냈다는 이야기다.

학창 시절 나는 태종이 아무리 왕권을 강화하고 외척을 정리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껏 했겠지 그렇게까지 험악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태종의 와이프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그의 형제들을 정리해 자신의 후임자 권력을 강화해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가식구들을 박살냈다고 하는 이야기는 처가 식구들이 태종에게 

씻을 수 없는 커다란 미운털이 박히는 행동을 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잠깐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왕권까지 빼앗다 시피해 왕이 된 그가 처갓집까지 박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라는 즉, 배은망덕의 극치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작품을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태종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확인하고는 그간 내가 가졌던 의문의 상당부분을 해소했다.

 

또 하나의 의문점(?)아닌 의문점으로 다가온 것은 ‘남이 장군’에 관한 사항이다.

학창 시절, 내가 살던 지역에서 북한산 넘어 사시던 친척 집을 한 달이면 한 두 번 정도 주말에 놀러가게 되면 반드시 ‘세검정’이라는 곳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 부근을 지나게 되면 ‘남이 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기록된 입간판을 지나곤 하였는데 당시 

나는 남이 장군이 어떤 인물이며 누구의 후손인지 또 무엇을 한 사람인지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친척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데면데면 입간판을 쳐다보기만 

했지 그 분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마주한 역사 속에서 마주한 남이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아사리 정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 안타까움 그 자체였고 아쉬움을 크게 남는

시간이었다.


추가적으로는 ‘사도세자’와 관련된 죽음의 배경에 관한 사실과 우리 정치권의 아귀다툼의 원조격인 이조전랑임명권에 관한 동서 분당에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심의겸’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튼 심의겸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조선 시대의 ‘의겸’이나 허무맹랑하고도 

무책임하게 터트려 온 나라를 벌집 쑤셔놓은 듯 난리를 치게 만든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지금의 ‘의겸’이나 하여간 문제의 단초를 제공하는 데 일가견 있는 인간들이 아닐 수 없고 지금도 사과 한마디 없이 고개 빳빳이 들고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뻔뻔함의 극치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하여간 뭐가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회기 중 주식 투자하던 놈도 그렇고 돈 봉투 받고 뿌렸다 문제 되었다 기사회생 한 놈, 툭하면 같이

일했던 비서관들로부터 난도질 당하는 집단과 성 비위 문제가 터지면 이를 문제 삼는 집단에 대해 ‘내란 세력,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외치며 물타기 하는 집단을 보면 아무튼 답답한데 그런 놈들이 좋다고 응원하는 인간들을 보면 도대체 그들은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지 또 그들의 육체위에 달린 머리를 장식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며 그런 집단에 대해 싸워야 할 집단은 오늘도 주판알 튕기며 자신의 몫만 

챙기려하는 모습을 볼 때 이 땅의 정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 밖에는 없다.

한마디로 한심한 백치 인간들의 향연장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언급된 대표적 역사적 진실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전문적인 역사책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행위이기는 하나 그에 앞서 본 작품을 구매해 읽는 것도 좋을듯하여 

강추하는 바이다.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쉽게 알 수 없었던 숨겨진 기타 이야기

1) 정도전의 활약상을 보면서 든 생각은 

    ‘한 고조 유방이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다’

    라는 문구가 떠오른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잘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작금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설익은 진보들의 계엄 잔존세력 소탕 타령을 보면

    위의 문구가 절로 떠오르고 있다.

2) 줄을 잘못서 한직으로 내 몰리며 절치부심하던 중 태종의 처남 민무질에 빌붙어 

   기회를 엿보던 ‘이무’라는 작자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경언’이라는 작자의 행태를 보면 작금 이 땅에서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어느

   ‘새 한 마리’와 ‘드라이크리닝 집 딸’이 생각나는 듯했으며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날아라 슈퍼 보드 속 주인공 부캐를 지닌 어느 여인도 떠올랐다.

3) 생육신의 신하 신숙주 아들 ‘신정’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식은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생각 그리고 부모들이 아무리 자식을 올바른 길로 가르치려 해도

   자식은 자신이 타고난 성향대로 간다는 사실을 통감했는데 이 내용을 읽으며 

   영조시대 우의정이면서 희대의 도박꾼이었던 원인손이 생각났고 그의 아들 ‘원재명’

   이도 생각났는데 왜 그 사기꾼 부자의 이름이 떠올랐는지 잘 모르겠으나 작금의 

   혼란한 우리 정치판에 그들이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이 크게 들고 있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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