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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ㅣ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추천 권유도 3
‘정조 어찰첩 6첩 297통’
‘정조’는 개혁을 추진한 학자풍 군주(참고, ‘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著 참조)로,
‘세종’과 더불어 성군 이미지로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러 역사적, 사실적 정황으로 보았을 때 그런 개혁가 이미지인 정조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만큼의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와 정조가 주고받았던 어찰첩(편지)이 발견되면서 그런 의심은 모두 소멸되었고 오히려 정조는 막후에서 그런
정적을 이용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노련한 정치가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정조의 어찰은 본질적으로 정치문건으로 정치현안을 지시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정치적 기능이 중심을 이룬 비공개를 전제로 한 ‘비밀편지’인데, 국왕은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 나아가 복잡 다단하게 얽힌 정치 과정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어가려 했음이 밝혀졌는데 아직도 그 진의를 정확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금번 작품은 어찰첩의 개괄적인 사항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는 사항으로 어찰 내용 하나하나를 분석한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어찰 내용과 관련된 당시 정치 및 경제 환경적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조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에 세세한 어찰 내용을 다루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리더는 ‘X'라는 것을 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비밀이 없는 요새 세상에 리더가 자신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좋은 의도로 생각되나 너무 잦은 문자질은 문자 내용과 관련된 중간 관리자들을 무용지물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진중한 처사라 느껴지지 않는다 할 것이다.
과거의 어찰이나 오늘의 ‘X'나 같은 맥락이 아닌가 생각은 드는데 ‘X’라고 하니 웬지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여간 정조의 어찰이나 요즘 마구 날리는 'X'나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며 어찰첩 297편이 담고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리더와 리더를 따르는 자들간의 소통을 갈구하는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할지.........
- 어찰(御札)은 임금의 편지를 가리키며, 임금이 직접 쓴 글씨는 ‘어필(御筆)’,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은 ‘어제(御製)’, 세자나 세손이 직접 쓴 글은 ‘예필(睿筆)’. 직접 지은 글은
‘예제(睿製)’라고 하였으며 직접 쓴 편지는 ‘예찰(睿札)’이라고 하였다.
‘돈유(敦諭)’란 임금이 교지를 내려 신하에게 명령하는 문서를 지칭하고
‘서계(書啓)’란 임금의 명령을 받은 신하가 일을 마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문서를
일컫는 말 (P 27)
- 심환지가 보유하고 있던 ‘어찰첩’의 형태상 특징은 거의 모두 겉봉투와 함께 ‘장첩’
되었고
* 장첩(粧帖, 책처럼 아담하게 꾸며 만든 서화첩)
: 글씨나 그림 따위를 잘 보관하기 위하여 두꺼운 종이를 붙여 책처럼 꾸며 만듦
각 겉봉투에는 어찰을 받은 날짜를 적은 쪽지(부전지)가 달려 있다. (P 16)
- 어찰은 귀한 유물이지만 국왕이나 왕비의 어찰이 실제로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 요행히도 어찰을 소장한 신하들은 그것을 조정에 바쳤고, 조정은 그들에게
그 대가로 벼슬을 내리거나 후한 포상을 해왔으나 그런 관례가 형성되자 툭하면
옛 임금의 어찰이라며 조정에 바쳐 벼슬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는 자들이 늘어나
어찰의 궁중반납은 폐단이 될 정도였다. 그 폐단을 없애기 위해 어찰을 받지 않는다는
명을 내리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P 74)
- 실록에 나타난 정조는 “진실한 선비의 전형이라기보다 국왕 지지세력 조차도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기만과 독단을 자주 사용했고“, ”자신의 국정 운영 방침에 반대
하는 세력에 대해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공격 대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위협하곤 했다“
---> 정조는 어찰을 통해 신하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드리고 통제하고 자기 사람으로
활용했다.(P 41)
---> 어찰이 정치문건이자 비밀편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편지가 ‘의문’을 나타내는
‘야(耶)’자를 흔히 사용했는데 이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묻는
어투였다는 점이다. (P 88)
- ‘상소’는 신하가 국왕에게 의견을 개진하는 행위인 동시에 여론을 형성하고 정국의
방향을 흔들기도 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행위였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서 고비
때마다 상소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P 74)
- 정조가 자신의 의도대로 정국을 이끌려 했던 대표적 사건이 1797년 홍국영을 실각
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상고’를 김종수가 올렸다고 하는 데, 실상은 정조의
하명에 따라 올린 상소라 하며 상소 초본을 아예 정조가 직접 지어서 보냈다고 함.
해당 작품을 읽으며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즉, 리더는 자신이 그 위치에 있을 때보다 리더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그 위치에서 내려온 뒤 자신에게 내려질 평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정조 어찰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집단의 리더들을 살펴보니 자신들이 퇴임 후 밀려올 평가에 대해 - 그런 비난을 무서워하며 평가를 의식한 행동이나 아예 평가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어느 정도 의식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 걱정을 안 하는 듯이 행동하는 리더들을 보면 대단히 우려스런 마음이 일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나의 절친한 후배가 해 준 이야기인데,
자신이 다녔던 회사에서 무소불위의 강력한 권력과 파워를 가졌던 비서실장이 있었는데, 그 비서실장은 지금도 일반인들에게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데 현역으로 활동할 때의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퇴임 후 그의 모습은 동네 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하면서 최근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퇴직 후 비서실장이라는 분은 여느 동네 노인처럼 공원 벤치에 홀로 나와 앉아 있곤 했었는데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분이 해당 장소에 거의 나오지를 않고 있다고 한다.
그 비서실장 밑에서 일했던 과거의 부하직원들이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면 ‘재수 없다’고 발길을 돌리거나 ‘왕 재수’라고 하면서 그와 의도적으로 마주치지 않으려 자신이 오던 길을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비서실장은 길에서 자주 만나던 과거 자신의 부하나 동료들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를 친한 후배로부터 전해 듣고는 거의 두문불출한다고 한다.
무슨 뜻이겠는가?
비서실장이 현직에 있을 때 강력한 힘을 자랑하며 무소불의의 권력을 휘둘렀고 항상 자신만이 최고라는 의식 속에서 살았었다. 현직에 있을 당시 모든 이들이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아림이 그에 대한 존경심 내지는 그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판단은 항상 옳다는 모습을 공공연히 공식 석상에서 보이고는 했는데 그렇게 자신이 내린 판단이 실수로
판명되었을 때에 그 자신은 어떠한 변명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하직원 탓만 했다고 한다.
그럴수록 그 부하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겉으로 웃으며 수긍했지만 이내 돌아서서는 비난의 독설을 퍼붓고는 했지만 아마 듣고서도 모른 체 했을 것이라고 한다.
비서실장 자신 권력은 영원할 줄 알았던 것 같고 언제까지 자신만이 조직을 가장 사랑하는 참 리더인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왔기에 자신이 그 위치에서 내려와야 하는 순간, 자신이 현직에 있을 때와 같은 동일한 대접을 주위에서 해 줄 것으로 알았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파악하고는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고 좌절했을 것이다.
아무튼 비서실장이든 누구든 자신이 뿌린 만큼 돌아오며 자신이 준만큼 돌려받는다는 평범한 진실을 이제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작금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는 기득권자들 사이의 여러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정신이 온전하고 건전한 국민의 생각과 의식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지금의 기득권들이 과거 야인시절 분탕질에 가깝게 난리치며 나라를 혼란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던 그대로 자신들도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사필귀정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의 힘을 후회 없이 맘껏 즐기면서 자신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모든 것은 힘의 논리에 의해 덮여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편이었던 세치 혀의 달인, 냄새의 달인, 오늘도 자신은 물론 온 식구가 과잉 조사를 받았다고 끝까지 우기는 두꺼운 안면 소유자와 배추 테크로 한 몫 잡은 어느 돌격대원 등과 같은 어제의 친위대들은 리더가 무슨 우려를 하고 있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가 더 크다고 자랑질로 연일 떠들겠지만 힘없는 민초들에게는 피로감만 쌓이게 할 뿐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무슨 일만 일어나면 분란의 단초를 제공하는 주인공’은 항시 분쟁을 초래하는 말과 행동으로 모두를 힘들고, 헷갈리게 만들어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SNS 뒤에 숨은 뒤 밖으로만 돈다.
그리고는 노름판을 전전하다 집에 들어온 어느 무능력한 가장이 ‘내가 너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 줄 알아?‘ 하는 식으로 집 식구들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일 잡도리 해 대고 있다.
그런 뒤 자신만이 집안을 걱정하며 살고 있는 정의롭고도 희생정신에 가득찬 인물인양 행동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될 경우 본인이 과거에 쌓았던 업적은 측근들이 무분별하게 쉴드치는 행동으로 인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간단하다.
‘정도를 걷는 것’이고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된다.
모범을 보이고, 자신이 내뱉은 말과 일치되는 행동을 하고, 상생의 모습을 보이면 되고, 전과자들이 활개 치며 선량인척 행동하는 모습이 매스컴에 나오지 않게 했으면 좋겠고, 내로남불의 공직자들을 좀 더 발본색원해 지명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부동산 문제가
안 잡히는 이유가 뭐고 주식이 어찌하여 개폭락하고 있는지 이를 설계한 자들을 불러내 따져보고 이해를 구하게 하고, 법과 상식을 벗어나 자신의 리더를 무조건 쉴드 치려는 측근들 솎아냈으면 좋겠고, 다수가 알고 싶어 하는 인물에 대해 소상히 밝히면 되고,
과거 정부의 특할비는 완전 없앴지만 지금은 왕창 있어야 하는 이유를 소상히 밝히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면서 재발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아무튼 답답하다.
다수는 거창한 답변을, 완벽한 답변과 행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리더는 마치 우리 옆집 만주벌판 개장수처럼 행동하며 오늘도 모르쇠다.
아무튼 합리와 상식이 출장가고 비합리와 몰상식이 보초 서며 활개 치는 그런 세상이 아닌 모든 이들이 귀하고 평등한 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고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은 게 오늘을 사는 민초들의 마음인 것이다.
나는 그래도 아직 애정이 남아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일 나오는 내용을 들어보면 아마도 내가 이야기하고 희망하는 이루어질지가 암담하다.
측근들이 난리치는 것을 보면 한마디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