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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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5

   

작품을 접하면 든 생각은 사례로 든 내용이 외국 서적을 그냥 번역하다 보니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은 드나 너무도 한국적 현실이 감안되지 않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를 활용해 협상에

임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작품을 평해 보았을 때 저자의 이론적 주장은 일상적인 비즈니스적 협상에선 활용할

수는 있겠으나 복잡다단한 여러 상황이 깔려 있는 협상에서는 저자의 방식대로 상대와 협상

했을 때 절반의 성공은 고사하고 그 반의 반도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단편적인 예로 한국적인 현실이란 이렇다.

은행에 장기대출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대출 이자를 잘 내던 대출인이 어느날 은행을

찾아가 그간 이자를 잘 냈으니 싼 이자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면

은행이 바로 하고 바꿔줄까요?

그것이 안 된다고 하여 작품에서처럼 싸게 해 준 사례는 없나요?

혹은 그 담당자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제3자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어찌될까요?

또 그런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창구에 앉은 은행원이 고분고분 응해 줄까요?

아마도 그렇게 물어보거나 행동하는 사람을 마치 외계인 쳐다보듯이 할 것입니다.

 

얼마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은행에 찾아가 마이너스 통장의 연장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월급장이가 아닌 퇴직자라서 은행에 별도의 거래 실적이 있어야 연장 혹은 신규 거래가

가능하다고 하여 나는 십 수 년간 이 은행에 월급을 맡겨 왔고 거래 실적도 우수한데 퇴직을

이제 했는데 퇴직후의 무슨 거래 실적이 있겠냐구 반문했더니 상냥하던 은행 직원의 표정이

굳어지며 어떤 개그프로에서 나오는 유행어로 나는 그건 모르겠고, 거래 실적이나 퇴직 후

소득 신고한 근거를 내면 내가 원하는 마이너스 통장의 연장을 해 줄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갖고 오기 전에는 절대 불가하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들하고 무슨 협상을 하겠는가.

- 이래서 내가 은행들이 외국에 매각되고 직원들이 구조조정 왕창 당한다고 살려달라고

  읍소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는 팜플릿을 돌리면 나는 절대 안 받는다 -

 

한국적 현실에서의 협상은 뒷골목 재래시장이나 인간적인 정이 넘쳐나는 그런 곳에서나 가능

하지 큰 거래에서는 절대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로 굽실대고 아부하고 갖은 아양을 다 떨어야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왜 그런가? 이유는 딱 한가지다.

헌법 위에 뗏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법이 아무리 원칙에 입각해 판결을 내려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떼로 몰려와 지랄들을 치는데 무슨 원칙과 기준이 소용이 있겠으며 협상의 원칙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조건 떼를 쓰고 억지를 부르는 데 당할 재간이 없어 그 어떤 원칙도 이론도

필요 없는 게 한국적 협상 현실이다.

 

그럼에도 저자께서 이론적으로 제시하신 기본적인 협상의 컨셉은 잘 잡아 놓은 듯하며 작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사례는 참고만 할 뿐 우리의 현실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완전 쪼다로 불릴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하였으면 한다.

난 작품을 통해 작품의 핵심을 한 줄로 축약해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협상의 상대를 항상 진실

되게 대하라는 것이었다.

 

나도 직장생활 30년 가까이 하면서 지상전, 공중전, 수중전, 동굴전, 화생방전, 세균전, 게릴라전,

등 안 해 본 비즈니스 전투가 없을 정도로 별의별 전투(협상)를 해 보았는데

- 현직에 다닐 때 나의 업무가 또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런 전투에서 살아남아 정년을 한 직장에서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상대와의 협상에서

내가 보여 주었던 진실성이 그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진실성과 버금가게 정말 중요한 것은 협상의 상대에 따라 전개

되어야 하는 전략과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것과 협상의 장소에서 상대가 전하는

말투와 표정을 읽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 개인 혹은 공인과의 협상 그리고 동료와의 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각종

시민단체 혹은 이익단체는 물론 커뮤니티 운영자와 파워 블로거 등과의 협상에서 각각 어떠한

전략을 수립해 협상에 임하는 가에 따라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와 만나던 간에 잘난척 조금 보태서 내게 약간의 돈 뇌물성 돈이 아닌 내가 상대로

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경비 - 만 쥐어주면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만 빼고 뭐든 다 할 자신이 있다고 항시 이야기하는데 이런 영재적 협상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저자께서 주장하신 12가지 원칙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써라

    4. 모든 상황은 제작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9. 의사 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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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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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저자께서 자신의 작품을 읽고 쓴 나의 서평을 읽으시면 불같이 화를 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또 독자의 한 사람으로 문학을 위한다면 할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여기에 나의 의견을 싣는다.

아무튼 작품을 덮으며 든 생각은 뭐랄까 꼭 집어 이야기하기 뭐하지만

 

'2% 부족한 작품이었다

 

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라면 '이래서 그렇습니다'라고 할 이야기는 없으나 분명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내용이나 줄거리가 빈약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크게 든 그런

작품이었다작품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리 속에 맴돈 것은 생뚱맞게도 내 초등학교 시절

'도자기'얽힌 에피소드였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는 부모님이 애지 중지하던 '유리 꽃병 도자기'가 있었다.

몇 학년 때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학급 미화 당번이었던 나는 선생님께 얼마 있으면 있을

'학급 미화 점검'에 대비해 학급 간부들과 함께 학급을 꾸며 놓을 것을 지시 받았는데, 과거 학창

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학급 미화는 학급 학생들이 참여해 자신의 집에 있는 물품을

들고 오거나 선생님의 호주머니 혹은 간부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갹출해 꾸미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준비 형태였는데,

당시 우리 집 형편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 때문에 나는 현금보다는 집에 있는 물건 중 교실

미화에 쓸만한 물건을 들고 가기로 결심을 하고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어머니께서 애지 중지

하시던 '유리 꽃병 도자기'였던 것이다.

 

우리 집 '도자기 유리 꽃병'엔 꽃이 항상 꽂혀 있었다.

거칠디 거친 아들만 넷을 키우시던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정서를 순화시키면서 화사하게

웃으시거나 콧노래를 부르시던 순간이 바로 그 꽃병 앞에서 꽃을 장식하실 때였기 때문에 나는

그 꽃병이 꽃병 이상의 마력을 우리 모친에게 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또 꽃병

앞에 서신 모친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어린 나이에도 항상 느꼈기

때문에 그 꽃병이 우리 집에서 또 모친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 꽃병을 학급 미화 소품으로 가져 가기로 나는 결심했던 것이다.

그냥 들고 나올 수가 없어서 집 식구들이 전부 외출한 틈을 이용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꽃병을 들고 학교로 그 꽃병 도자기를 들고 가서 당당하게 담임 선생님 교탁을 장식해

선생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도자기 꽃병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신 모친께서 강력한 용의자인 나를 취조하자 나는

미화 점검이 끝나면 바로 가져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부모님의 성화를 벗어 날 수 있었다.

 

환경 미화점검이 끝난 어느 일요일 오후 학교에 몰래 들어가 내가 갖다 놓은 꽃 병을 훔쳐오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유일하게 받았던 칭찬이 그 꽃병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선생님께 알리고 그냥 가져 오면 그 칭찬이 무효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방법을

택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에 찾아간 교실에서 나는 도자기 꽃병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토요일 학교가 끝날 때 선생님 자리 위에 있던 꽃병을 확인하고 집으로 왔는데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꽃 병이 예뻐 보여서 아마 누군가 가져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 온 나는 도자기를 찾아오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해 버렸다.

"꽃병을 들고 나오다 학교 담장에서 떨어트려서 깨져 버렸다고"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내 답을 듣는 순간 엄마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실망의 빛은 십 수 년이 흐른 지금도 또 그

꽃병이 나의 모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고 있었던 어린 나는 순간 온 몸이 굳었고 커다란

죄책감에 사로 잡힐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장난이나 실수로 인한 것이었을 경우는 상당히 화를 내시던 모친께서는 꽃병을 다시는 찾아

올 수 없다는 소리에도 담담히 웃으시기만 하셨고 더 이상 내게 어떤 화도 내지 않으셨으나 다만

그 날 이후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잔잔하게 퍼지던 그 웃음기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꽃병을 다시 집으로 들고 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져 버렸으며 꽃병에 대한 관심은 나와

부모님 그리고 우리 학급의 친구 모두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품을 다 읽고 덮은지 상당히 시간이 흘렀으나 기억 속에서 반추될 수 있을 만한 임팩트로 다가

온 소 작품은 미안하지만 하나도 없었다. 한 편으로는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구심

마저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만 작품을 뒤적이다 해당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일부 문장인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 차츰 멀어지게 된다. 내 고통이

 보다 커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 당장 나를 압박하며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27)

 

라는 문구만을 여기에 올리게 되는데 이것만이 유일하게 내가 이 작품을 읽었을 것이라는 증거로

자리 매김할 뿐이다.

 

'도자기'란 무엇인가 거칠게 다루면 쉽게 상처 받기 쉬운 물건 아니겠는가.

비록 인간이 자연 생태계의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세상을 살면서

쉽게 상처 받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 그런 인간들 모두는 결국 형태만 달리하고

있는 또 다른 [도자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온갖 개별 사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또 다른 형태의

박물관이 아니겠는가.

결국 작품집 [도자기 박물관]은 아주 아주 서민적인 어느 이름 모를 소시민의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였고, 상처받기 쉬운 이름 모를 인간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 선상에서 작품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아도 좀 더 임팩트 있는 소재, 이야기 전개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느낌을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오히려 '현길언'님의 '나의 집을 떠나며'가 더 작품 제목에

부합되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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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박상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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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작품은 400년 전부터 100여 년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조선 사절들이 어떻게 일본 사회를

관찰했고, 일본의 식자층과 어떤 교류를 했는지 또 그들의 사회상을 통해 무엇을 감지했는지를

조선 사절단(?)의 시각으로 탐구 정리한 내용으로

첫째는 일본의 어느 부분에 대해 위화감을 느꼈고, 그 위화감이 어디에서 유래를 했는지

둘째는 일본의 어떤 점에 긍정적인 인식을 보였는지

셋째는 일본에서 배우고 실용화할 만한 것과 조선 후기에 사회개혁을 주장한 지식인들의 담론을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탐구하는

넷째는 양국 문인들 사이에 어떠한 갈등이 있었는지

다섯째 문자를 통한 인간적 교류가 조선 문인들의 정신세계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는지

(위의 시각은 저자의 시각으로 그대로 옮겨 보았다....작품을 읽고 느끼는 사람들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고찰한 내용으로 많은 일본 관찰기를 짧은 작품으로 축약하다 보니 부분적으로 미진한 부분도

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개인적으로는 일본인의 특질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한 작품이 아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도 서로 마주 앉아 뭔가를 논하기가 껄끄러운 이웃인 일본, 일본인에

대하여 선조들이 남긴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껄끄러움이 언제부터 왜 생겼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여러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당시 일본이 시행하고 있던 관직의 구임제세습제를 비롯한 장인 우대정책이 심도깊게

논의되던 시기에 우리 선조들은 주자학파당 싸움으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부끄러움은 둘째치고 그들의 정책적 혜안에 부러운 생각만 들었다.

특히, ’장인 우대정책의 경우 오늘날 기술 일본의 토대를 마련해 준 단초를 보는듯하였다.

오늘의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르고‘,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면을 보이고있는 전형적인

이류국가의 특성을 보이고 있는데, 작품을 읽다보니 그런 특징이 어제오늘 갑자기 생긴 특질이

아니라 수백년 전부터 그들 민족성에 내재되어 있던 DNA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문풍(文風)‘에 언급된 내용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일본에 사절단으로 파견된 사행원들은 가는 곳마다 글과 시문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수많은

일본인들을 연일 대하다보니 피로가 누적되어 사절단 고유의 업무를 추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다른 업무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 추후 이런 일만 전문으로 대응하는 제술관이라는 직책이 만들어졌을 정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행원들은 어렵게 자신들을 찾아와 시문을 간청하는 사람들에게 헛걸음을

시키고 싶지 않아 전심을 다해 대응하지만 짧은기간에 많은 양의 시문을 전하다 보니 일본인

그들에게 전해주는 일부 내용이 부실했다고 한다.

당시 사행원으로 갔었던 홍세태라는 분은

필답집이 금세 간행되는 일본을 보면서 자신이 남긴 글이 누군가에게 비평받을 가능성을 생각

한다면 진땀이 난다

고 토로했지만 물리적으로 이를 막지 못했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부 질이 떨어지는 시문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사행원들의 이런 고충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던 일본의 식자층들은 관대하지 않았고 자신들

위상을 높이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식자층 중 대표격인 오규우 소라이와 제자들은

사행원들과 주고받은 시문집을 한데 엮어 문사기상’(問槎畸賞)을 간행하는데, 그의 제자 중

타나카 토오꼬오라는 인물이 서문에 조선 사절단을 이렇게 언급하였다.

지리소(支離疎)의 턱은 배꼽에 묻히고 상투는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애타타(哀駝它)

추한 얼굴로 천하를 놀라게 한다

지리소란 불구를 애타타는 추남을, 문사(問槎)는 조선통신사를 기상(畸賞)은 기이한 글을

감상한다“(P 249)“

 

전체적인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다른 설명은 하지 않겠다.

나는 위의 구절을 몇 번씩 읽으면서 일본인의 특질이라는 것이 어제오늘에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 고래로부터 민족적 DNA에 내재되어 있는 부류들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그런 잡스런 인간들의 수준 낮은 혈기방장함에 일희

일비하지 말고 과거 일본을 다녀와 따스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려 했던 선조들의 마음으로

일본의 오늘을 알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기록하신 본 작품을 읽으며 따스한 눈길과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려 한다.

어쨌든 여기에 부분별로 정리해 보았다.

 

[삶과 죽음]

 

1) 정유재란 당시 포로가 되어 일본에서 억류 생활을 했던 강항에 의해 관찰된 일본인은

    낙사오생(樂死惡生)’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인식하였으며 당시 조선이 주희의 생명관에 영향

   받은 호생오사(好生惡死)’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부류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항상 세 자루의 칼을 차고 다니며 긴 칼은 남을 죽이는데, 중간 것은 방어하는데, 작은

   것은 자살용으로 지니고 다녔다.(P 28)

2) 조선 문인들이 일본인을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이 경생(輕生)’이다.

   이 말은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인을 묘사하는 상투적인 형용사가 되었다.(P 33)

   전국시대 일본에서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무사의 정체성이었다. 일본의 군기소설인

   태평기에는 무사의 도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이름을 중시하는 것을 의로 삼는다라는 말도

   보인다.(P 31)

3) 야마모또 조오초오의 하가꾸레에서는 무사도란 죽음을 깨닫는 것이다.

   생과 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죽음을 선택하면 된다 즉, 자신이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언제나 염두에 두며 살아야 한다.(P 32)

4) 명나라 문인 제갈원성이 쓴 양조평양록에서 일본인들은 흉악하고 교활하여 신의가 없고

   성질이 탐욕스럽고 간사하여 삶을 가볍게 여기고 사람 죽이기를 좋아한다라고 했다.(P 34)

5) 어려서부터 권력자의 집에 붙어 밥을 얻어먹기 때문에 부모와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정이

   없이 자라서 가족에 대한 유대 의식의 결여가 삶에 대한 집착의 결여로 이어지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P 38)

6) 전국시대에는 과감하게 죽는 것을 칭송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구적(仇敵)을 죽이고 자결한 사람에 대해 참다운 대장부라고 감탄하면서 애석히 여기지

   않았고 그 자손에게 너는 과감하게 죽은 사람의 후손이다라고 하여 지위 높은 사람과 혼인

   할 수 있게 하였다.(P 39)

7) 1600년대에 명절인 단오에 수 천 명의 남자들이 한 곳에 모여 두 조로 나뉘어 서로 싸우기도

   하고 평소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복수를 행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 행사를 보며 일본의 국속

   (國俗)은 사람을 잘 죽이는 자를 대담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한다고 보았다. 이런 현상은 부부간,

   부자간, 형제간에도 적용이 되어 가족이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P40)

8) 1617년 일본에 다녀온 이경직은 눈 한번 흘긴 것도 반드시 보복하고, 말 한마디에도 시기를

    부려 사람 죽이는 것을 능사로 삼고, 굽히지 않는 것을 장기로 여긴다라고 했다.(P 42)

9) 조선 문사들이 가장 큰 혐오감을 느낀 대상은 타메시기리할복이다.

   타메시기리란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체를 시험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P43)

[원 한]

 

1) 임진왜란 170년 후, 일본인들은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수괴이자 역수 로  

   불리우는 등 당시 나라를 멸망시킨 그에 대한 원망이 일본인의 의식에 남아 있는 한 같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으나 일본이 대륙침략의 길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토꾸가와 막부가 붕괴하고 메이지 정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이다.(P 55~57)

 

2) 1596코니시키 유끼나가의 신하 요시라의 증언을 보면 히데요시가 일본에서 얼마나 원망

   을 사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P 59), 조헌의 항의신편을 엮은 안방준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일본의 민간에서는 히데요시는 조선에는 일시의 적이나 일본에서

   는 만세의 적이라는 이야기를 있다고 하였다.(P 61)

3) 1603년 에도막부를 개창한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외교관계를 재개하기 위한 국서에

   평적(平賊)’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는 히데요시를 얕잡아서 하는 말이다.(P 62)

4) 에도시대의 지식인들은 대체로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을 정당한 행동으로 보지 않았다.(P 67)

   코오자이 시게스께라는 병법학자도 히데요시를 전쟁만 일삼는 포악한 군주로 보고 있었다.

   명분없이 조선을 침략하여 전쟁을 반복했기 때문에 결국 토요토미 일가 전체가 멸망했다는

   것은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P 69)

   * 토요토미가 죽은 후 쿄오또에 토요꾸니신사가 세워졌고 인근에 조선에서 가져온 조선인의

     귀를 매장한 미미즈까가 있다고 한다.

5) 어지러움이 히데요시 시대에 극에 달하여 사람들은 모두 염고징창(厭苦懲創)‘의 뜻이 있었다.

   ‘염고징창염고는 싫어하고 괴롭게 여긴다는 뜻이고, ‘징창은 뉘우치고 교훈을 삼는다는

   뜻이다.(P79)

 

[제 도]

 

1) 조선 문인들이 남긴 일본 견문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일본의 정치제도 및 사회

   구조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강항의 경우 적중봉소라는 상소문에서는 일본의 지리, 경제,

   정치제도를 상술하면서 수많은 조선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P 85)

2) 전통적으로 조선은 병농일치제였으니 일본의 경우 기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병사가 되고, 우둔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농민이 되는 병농분리제였다.(P 86)

   --->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군사제도를 개혁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이런

          관찰 보고서가 나왔다.

3) 국가의 근간이 백성에게 있는 이상 국가운영의 목적은 양민에 있다는 것이 조선 사대부들

    기본적 정치관이다. ‘양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사회구조는 조선 사대부의 정치

    이념에 위배되는 것이었다.(P 97)

4) 토꾸가와 정권은 조선통신사를 조공사절로 위장하면서 일본 전국에 막부의 권위를 과시했고

    (P100), 혈기 왕성하고 적개심 충만한 매서운 무사들을 수하로 거느린 다이묘들을 통합하고

   정권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토꾸가와막부의 과제였다.(P102)

5) 백성은 병, , , , 승이 있는데, 오직 중과 공족(귀족)에만 문자를 해독하는 자가 있고

   그 나머지는 비록 장관의 무리라도 한 글자도 알지 못했다.(P105)

6) 일본은 과거로 인재를 뽑는 법이 없고 벼슬은 대소에 상관없이 모두 세습이어서 세습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에 대해 제대로 실무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았다.(P107)

7)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가 종료되며 봉건제가 자취를 감추었는데 일본이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타 국가와 전쟁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 세습제가 오래 유지되어

   사회에 정착한 결과 사람들이 그에 반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P110)

 

[통 치 법]

 

1) 도꾸가와막부는 정치적인 불안요소가 두가지를 안고 있었다.

    하나는 히데요시 시대의 충성스런 부하들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둘째는 천황을 받들어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 중심의 국가를 만들기를 원했다.(P 127)

2) 전통적으로 조선 사대부들은 신분제가 정착한 상태를 이상적인 사회로 보았으나 자기실현의

    욕구나 분수를 넘어 기존 계층질서를 거스르려는 욕심을 가지지 않는 일본인의 심성이

    토꾸가와체제를 밑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P 125)

3) 교묘한 법술로 다이묘오를 통치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막부의 붕괴를 예상하고 있다.

    다른 이유가 아닌 심복여부에 달린 것으로 보았다.

    ,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서로 의구심을 품고

    상대의 동향을 엿보는 그들의 모습을 본 것이다.(P 129)

4) 일본은 보직의 세습제를 보편적인 제도로 알았지만 중요 자리인 로오주우’, ‘경도소사대’,

    대판성대등과 같은 주요 보직은 선별하여 등용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정치제도 중 조선의

    관심을 끈 것은 구임제(久任制, 직책을 오래 맡기는 제도)’였는데, 이 제도에 대한 건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P 132)

 

[사치와 번영]

 

1) 사행원들이 묘사하는 풍요로운 일본은 과장된 부분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선 사절들은

   당시의 일본을 풍조가 오염된 나라로 보았다.(P 147)

2) 막부가 각지의 번주들에게 다이묘오 야시끼(무사들의 주거지)에서 마음대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우둔하게 만들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P 149)

3) 도꾸가와 막부의 재정은 다이묘오가 세금을 거두는 곳 외에 따로 직할지에서 세금을 거두어

    풍족하게 했고(P 151), 막부는 광산지역을 직할지로 하여 관리를 파견해 직접 지배(P 152)

    했는데 비록 왜황이라도 감히 간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정사를 맡은 관료들이 각기 영지를 부여받아 그 영지에서 걷는 세금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품울 조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P 152)

4) 일본인들의 식사량은 적었으며 무사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평소 두끼 밖에 먹지 않았다고

    한 반면, 당시 조선인들은 하루에 먹는 식량으로 그들의 3일분 식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P 159)

5) 조선이 일본의 해외무역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18세기 들어서로 그 때까지 조선은

    중국과 일본간의 중개무역을 통해 이익을 거두었다. 16세기부터 일본은 해외무역을 활발히

    전개해 나가사끼를 비롯한 3개 지역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그 이익이 감소한 반면 반대로

    일본은 풍요로운 삶을 구가했다고 한다.(P 163~169)      

[기 술]

 

1) 에도 시대에 일본을 다녀온 조선 사절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 일본의 기술로서

    일본 서기를 보아도 일본 기술 가운데 상당수가 한반도에 기원을 갖고 있다.(P 175)      

    일본은 예부터 외국에서 숙련 기술자를 불러 일본 국내에 정착(P 177)시킨 반면, 조선은

    표류하면 그곳에서 배를 새로 만들어 돌려보냈는데, 여기에 도착하면 모두 부수어 그 법을

    본받으려 하지 않았다.(P 201)

2) 일찍이 일본에서는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장인에게 천하일(天下一)’의 칭호를 부여하면서

    기술을 장려했다고 하며, 비록 그의 기술이 자기보다 꼭 낫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를 찾아가서 스승으로 모신다.(P 180)

3) 사행록을 보면 일본 백성들이 사는 일반 가옥의 구조에 관심이 많았고 민가를 관찰한 경험의

    축적은 이용후생을 주장한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도량형의 통일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P 187)

 

[문자 생활]

 

1) ‘문자란 한자를 말하고 초량의 통사란 쓰시마의 통역을 말하는데, 중요한 사항은 한문 필담

   으로 처리하고 사소한 일은 통역을 통했는데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15세기 경에는 사절들은 구어에 의한 소통보다는 한문에 의한 소통을 선호했다.(P 205)

2) 왜인 중에서 글에 능하다는 사람도 단지 언문을 사용할 뿐 문자에 대해서는 전연 알지

   못했으며 오직 승려무리만 경서를 읽고 한자를 안다.(P 207)

3) 17세기 전반에 기록된 사행록에서 사행원들의 소통은 대개 승려가 담당했는데, 이는 중국에

   다녀온 승려들이 불교 경전을 비롯해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입하면서 활발한 문화활동을

   전개한 결과이다.(P 213)

4) 임진왜란 때 히데요시는 조선에서 수많은 서적과 더불어 활자인쇄에 필요한 자재와 기술을

   가져갔으며, 조선에서 가겨간 인쇄술을 토대로 많은 책이 간행되었다.(P 217)

   이 결과 일본인들은 조선 사행원들이 남긴 시와 필담집을 한 달 이내에 출판했다.(P 219)

5) 사행원들에게 가장 곤란한 것은 시도때도 찾아와 글과 시문의 평을 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를 대응하기 위해 제술관이라는 직책을 만들었을 정도라고 한다.(P 221)  

6) 일본은 과거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문사들에게는 영달의 길이 아예 차단되어 있었다.

   아무리 독서와 글쓰기에 힘써도 비참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조선통신사와의

   시문교류는 자신의 이름을 일본 전국에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P 223)

[문 풍]

 

1) 에도시대에는 승려에 한정되었던 한문능통자가 급증, 한문으로 글을 쓰고 경서를 읽고 중국

    고전에 소양을 쌓은 지식인들이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P 247)

    일본의 문풍을 선도한 인물이 오규오 소라이아라이 하꾸세이이다.(P 248)

2) 1711년 오류오 소라이와 그의 제자들이 조선 사행원들과 주고받은 수창시를 모아 문사기상

    (問槎畸賞)이라는 문집을 발간하는데, 소라이 제자 타나까 토오꼬오가 서문 중에

 

지리소(支離疎)의 턱은 배꼽에 묻히고 상투는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애타타(哀駝它)는 추한

 얼굴로 천하를 놀라게 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지리소란 불구를 애타타는 추남을, 문사(問槎)는 조선통신사를 기상(畸賞)은 기이한 글을 감상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P 249)

---> 조선 사절의 시를 혹평하고 자기 학파 문인들의 시를 극찬하는 것이 소라이학파 문인들의

      특징이었다.(P 252) 그들은 당시 조선 선비들이 사문난적으로 폄하하는 반주자학적 풍조를

      이끌고 있었다.(P 260)

3) 조일 양국의 문인 등이 나눈 필담 자료를 보면 주자학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조선 사절과

    주자학을 비판하는 일본 문인 사이에서 이루어진 논쟁이 도처에 기록되어 있다.(P 262)

[교 류]

  

1) 서동문(書同文)이라는 말은 조선이 중국과 문자를 공유하면서 중화의 문물을 수용했음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동문이라는 말에는 중화중심주의적 함의가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동문 의식이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위계적 세계관을 전제로 성립된 관념.(P 278)

2) 조선 사절이 일본에 파견된 이래 가장 활발한 문학교류가 이루어진 것이 계미통신사 때로

    사행록에 많이 언급된 네 명의 문인이 키무러 켄까도오’, ‘카메이 난메이’, ‘나와 로도오’,

    지꾸조오 다이뗀이다.(P 279)

3) 일본이 소라이 숭배자들을 향해 주자학의 정당성을 타이른 원중거(조선 사절)’를 당연시

    했듯이, 왕세정과 이반룡의 고문사학에 경도한 소라이를 해동부자로 숭배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조선 사대부의 입장에서는 가소럽게 여겼다.(P 297)  

 

[문화와 풍속]

 

1) 유교를 신봉하는 조선의 입장에서는 불교를 믿거나 신도식 의식을 치르는 등 유교적 의례가

    하나도 없는 일본을 미개한 것으로 인식했다.(P 312)

2) 일본인의 종교생활을 묘사하는 데서 가장 중요시한 것은 신도이다. 천황이라는 존재가 일본의

    토착신앙과 연결되면서 일본인의 종교적 신앙심 위에 군림함을 확인했다.(P 317)

3) 강항과 후지와라 세이까의 만남은 일본에 주자학이 유입되는 큰 계기가 된다.(P321)

4) 풍속 가운데 조선 사절들이 가장 혐오한 것이 동성혼(同姓婚)‘이성양자(異姓養子)‘

    제도였다.(P 329)

5) 일본을 유교화를 위해서 조선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이익이다.(P 338)

    일본은 동아시아의 유교세계에 포섭하는 것은 최선의 비왜책이었다.(P 340)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일본에 관한 재미난 상식]

1) 저팬(japan)의 어원은 치팡구(Cipangu)’.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등장한 최초의 외국어 표기다.

2) 한중일 삼국에서 일본이 통칭된 것은 8세기 초로 이전에는 달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 '왜'에서 '일본'으로 국명이 바뀐 것이다.

   ‘라는 이름은 난쟁이’, ‘단구라는 의미로 일본인들도 그렇게 불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3)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황제 측천무후가 일본 사절에게 일본으로 개명을 지시하여

   그 때부터 일본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중국 역사서 사기정의(史記正義)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 황제까지 로비를 통해 설득시켜 국명까지 바꾼 나라다. 독도를 자기 것으로 우기는데는 

   다 이유가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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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유정옥 지음 / 소중한사람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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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내가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다고 주위에 이야기했을 때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던

기억이 나며 그 현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를 아는 다수가 주님의 어린 양으로 거듭나고 있는 나를 어찌보고 생각하던지 그것은 나를

바라보는 개개인의 문제고 나는 작품을 통해 나만의 기독교적 삶을 지향할 뿐이다.

 

최근 나는 2014년 실업자 생활을 하던 어느날부터 시작한 성경 필사를 완성하였다.

컴퓨터 시대를 살다보니 모든 문서를 자판으로만 작성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던 나였기에 성경을

손으로 직접 쓰려고 하니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손목과 손가락의 세밀한 근육, 나중에는

손바닥까지 아파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한 두 번 든 것이 아니었지만 내 생애 최초로 내

스스로 정한 신성한 목표였기에 이를 달성해야겠다는 - 솔직히 이제껏 살아오면서 뭐하나

제대로 완성한 적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 책임의식이 나를 끝까지 이끌어 준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성경을 필사했다고 하나님이 나를 더 이뻐해 주실 것이라는, 남들이 알아 줄 것이라는 그런

생각보다는 나도 이제 누군가 종교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뭔가 하나 정도의 이야기

를 할 수 있는 소재를 만들었다는 안도감이랄까 그런게 생겼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성경을 필사하면서 나를 끊임없이 격려하고 같이 힘들어 해 준 와이프한테 고마울 따름이다.

그녀는 작품의 제목처럼 내가 울고 싶어 할 때 같이 울어 준 그런 여자였다. 그녀는 단순히 내가

필기의 고통을 호소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 측면에서 내가 울고 싶을 때 함께 울어주고

달래 주는 인물이었다.

내가 읽으며 감동했던 눈에 들어오는 문구를 정리해 보면

- 기다리고 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걷는 길이 가장 멀리 갈 수 있다.

- 우리는 하나님께 이미 이 돈을 받았으니 당신은 하나님께 갚으세요.

-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는 내가 준 것에 대해 갚을 길이 없는 자에게 주어야 한다.

- 내가 앞만 보고 달려갈 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너의 눈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나, 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라고 나의 분주한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는 우리 인생의 길이 언제나 달려야만 전진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그 자리에 멈추어서는

  것이 곧 전진하는 것임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 금이나 은을 위하여 살지 말고 성경 말씀을 따라 살라

- 그 사람이 너의 두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지?

- 어머니는 죽었어도 기도는 죽지 않고 남아서 반드시 응답된다.

- 나는 너희들과 너희들의 후손들을 위해 돌을 던질 뿐이다. 내 눈앞에는 여전히 바닷물이어도

  언젠가는 너희들이 밟을 땅이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용서하니까 그게 바로 용서지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뭐가 용서인가?

- 사람이 잘 되려면 해롭게 하려고 온 사람까지 오히려 돕는 자가 되고 사람이 안 되려면

  도우려고 온 사람까지 오히려 해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 돈도 부서지고 건강도 부서지고 자존심도 부서져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곁에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있으면 그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이고 네 곁에 금은보와와 천하가 다 있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다 없는 것이다.

 

주님을 영접한 이후 내게 펼쳐지는 감사은혜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일단의 무지

몽매한 사람들, 주님을 가슴에 두고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러한 간증을 요망한 자기

최면이요 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내가 일상에서 항상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어쨌든 말로만 이런저런 은혜와 감사에 대해 이야기를 주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하기 전에 몸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해 본다.

주님은 이런 나의 행동을 아시기 때문에 오늘도 나를 보고 웃고 계심을 나는 믿고 있고

또 믿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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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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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저자는 작품 속에서 아래와 같은 화두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 욕망이 건강한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감시하고 비난하게 된다

- 성공의 사다리를 오른다는 것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방에 자신의 욕망을 감추어 두고

  반복하여 자물쇠를 채워 나가는 과정이다

- 살아 있는 이야기는 대개 욕망과 규범의 갈림길에서 나온다

-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의 성공과 실패, 한계를 참고하되 앉아서 자신들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르쳐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상기의 문구를 간단히 읽고 넘길 문장같이 보이지만 생각이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뭔가

느끼는 게 많은 문구라는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왜 하필

작품의 제목에 '소망'도 아니고, '희망'도 아닌 약간의 탐심이 묻어나는 듯한 세속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작품 제목에 붙였는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뭔가가 있을 듯한

호기심을 갖게 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 저변에 짙게 깔려 있는 유교적 생활에 의해 뿌리깊게 길들여진 가식적

생활 자세의 한 모습인 위장된 '겸손'을 벗어 버리라는 의미로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의 길지 않은 인생사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욕망]이 정상적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강요된 '겸손'이라는 허구적 모습으로 위장되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함과 동시에 진정한

자신의 참 모습을 도출하고 분석해 보여 주어 위장된 삶을 살아온 자신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말 것을 당부하기 위해 이런 제목의 작품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 저런 이야기 중 나의 이목을 집중시킨 문구는 바로 이것이었다.

[욕망을 감추고 살다 보니, 남의 숨겨진 욕망이 자꾸 눈에 밟혀서 상대방의 욕망을 들춰내고

 난도질하는 데 귀신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는 대목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웃었다. 이 문구는 실로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져 준

문구였다고 생각했으며 나는 크게 공감하였다. 문구 내용을 성실히 증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상황이 바로 작금의 우리 '정치판'이라고 생각했다. 서민이야 죽던 말던, 엄한 것 갖고 난리를

치는 우리의 정치판 말이다. 글을 보고 혹자는 그럴 것이다.

'엄한 것'이라니.....그러면 민생들의 피 눈물 닦아 주는 법안처리나 민생처리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회의원에게 무엇인지 '엄한 것'의 내용을 따지는 그들에게 묻고 싶을 따름이다.

 

부시와 대통령 자리를 놓고 선거전을 벌였던 아름다운 패배자인 미국의 대통령 후보 '엘 고어'

고뇌에 찬 행동을 우리의 위정자들은 알고 있는지 그저 한 숨만 나올 뿐이다.

그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 우리 민초들은 어디에서, 누구를 믿고 살라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이제 선거와 관련된 제반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안을 놓고 치열한 논리 싸움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상대를 꺽어 내리지 못해 안달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바로 저자가 이야기한

[욕망을 감추고 살다 보니, 남의 숨겨진 욕망이 자꾸 눈에 밟혀서 상대방의 욕망을 들춰 내고

 난도질하는 데 귀신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이 글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작품에서 언급된 문구들

- 욕망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자기를 가로막는 '경계선'이 많으면 그 선을 슬쩍 우회할 길을

  찾기 마련입니다.

- 본질적으로 모방욕망은 자유와 발전을 만들어 내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동물

  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가 경쟁과 폭력을 낳는

  까닭입니다.

- 우리 사회 모든 욕망의 중심에는 학벌이 있습니다. 희생양 매카니즘이 적용되는 출발점도  

  당연히 학벌입니다.

- 희생양을 잡아먹는 대신 그들을 보호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인데 우리 나라는 기자와

  검사들에게서 이런 윤리와 책임 의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 희생양이 만들어질 때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돌팔매질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사랑과 연대의 공동체를 일구어 내는 출발점은 바로 규범에 대한 의심이다.

- 지랄총량의 법칙?

- 뭐든 너무 집요해 질 때는 집요한 사람 자신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놀라운 관점, 총명함을 그냥 칭찬해주면 되는 건데, 방어적으로 칼을 휘두르다

  상대방을 다치게 하면 곤란하다

- 직장 상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 관계를 끝장 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절교할 수 있는 용기이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행복할 수 있다. 혼자서도 행복 하려면 내면이 안정되고 튼튼해야 한다.

- 신사일 수 있는 핵심 요건은 지식, 매너, 자신감, 이웃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돈입니다.

  그냥 돈이 아니라 물려받은 돈입니다. 물려받은 돈 만이 품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 품위를 기초로 신사들은 규범을 만들어 냅니다.

- 한 인간의 인격은 그가 살아온 과거 경험의 총합입니다.

  상대방의 과거까지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다.

- 규범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싸이코 패스 못 지 않게 위험하다.

- 규범은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규범이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가 규범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주어진 규범에 맹종하는 태도는 근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 자기 내면의 소리에 정직한 사람, 손을 뻗어 원하는 것을 붙잡고 거기서 행복을 얻은 자유로운

  사람,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만큼 큰 기쁨인 것이다.

- 너무 쉽게 돌을 집어 들지 말자, 고백에 귀 기울이는 문화를 만들자

- 죄를 밝히고 처벌하되, 그가 잘못한 것 이상의 책임을 뒤집어 씌워 돌로 쳐 죽이는 희생양

  제의를 중지하자

- 예수께서는 첫 번째 돌이 갖는 엄중한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모방 욕망이 폭력의 방향으로

  폭발하는 것을 막고 그 역의 방향, 즉 비폭력으로 에너지를 전환시켰습니다.

- 고백을 들어 줄 귀가 없는 사회에서는 고백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고백이 없는 곳에서는 성찰이 아니라 사냥만이 힘을 얻습니다.

 

 

   잡지식들

- 인간은 강렬하게 욕망하면서도,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지 못한다. (르네 지라르)

 

- 스캔들은 '스칸달론(Skandalon)'이라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인데,

  이 말은 길을 가다가 '부딪히면 넘어지는 돌'이라는 원 뜻을 갖고 있다.

 

- 나치의 친위대와 히틀러 유겐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후고 보스의 작품

 

* 해당 독후감은 지난 2012년에 작성했던 내용으로 내용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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