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LOW(더 플로) - 시대의 운명을 내다본 사람이 부를 거머쥔다
안유화 지음 / 경이로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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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2


작품을 읽다 짜증을 내 본 일이 거의 없는데 작품을 중간쯤 읽으며 짜증스런 느낌이 올라와 

작품을 완독하고 정리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를 통해 돈을 벌려면 중국이 길이고, 진리니 중국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라

 특히 중국에 빌붙어 먹고 사는 조그만 나라인 한국은 나의 이 말을 새겨들어라

다른 이들은 작품을 어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이런 결론으로 받아들였다.

저자가 이런 글을 썼다고 해서 내가 역으로 특정 국가를 지정해 디스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일으키는 추접한 그들의 질 낮은 행동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반성 없이 돈에 환장한 사람들에게 밑밥 던져주듯 경제 관련 서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온 통

중국의 장밋빛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어 작품판 국뽕의 결정체라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하고 

있다.


생각해 볼 점은 지난 2010년 기준 자료라면서 14억 명 중국 인구의 43%6억 명이 

월 소득이 1,000위안(17만원)이하 - 만약 최근 자료가 있었다면 저자는 그 자료를 제시했을

터인데 최신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도 2010년 수준의 생활이 중국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거나 뭔가 켕기거나 공문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가 없어 그걸 것으로 예측해 본다 - 라고 하면서 이런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이 있음에도 

경제적 잠재력이 왕성하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주장(P223)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 하겠다.


이런 주장에 대해 중국의 빈곤층이 언제까지 못살고 힘들게 살겠느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중국 경제력의 기반과 잠재력을 그런 인구까지 계산하며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역으로 저자의 논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빈곤하지 않은 나머지 8억 명이 있기 때문에 시장의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은 남의 떡 이야기이고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전자의 중국내 휴대폰 점유율이 한 때는 25%에 이르었으나 지금은 0% 가까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과 중국 시장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점이 많은 대목이 아닌가 생각하며

자신들 마음에 안 든다고 툭하면 희토류주요 원자재를 갖고 또 약한 주변국에 대해서는 

군사력으로 겁박하며, 가난한 국가에 대해서는 돈 빌려주고 해당 국가의 주요 인프라를 독점하는 그런 중국을 기준에 두고 전략과 전술을 세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참으로 가소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해당 작품을 중국뽕의 결정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얼마 전 각종 법위반으로 연일 법정에 출두하고 계신 불세출의 법인카드 사용의 능력자이신 어느 분과 만남에서 주접떨던 중국 대사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너무도 많아 저자가 우리나라에 살면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우리를 낮추어 보는 내용이 나를 심각하게 자극했는데 이로 인해 작품을 읽고 수 일이 지났지만 해당 작품에 대한 독후감을 쓰기가 정말로 거북했고 짜증났다.


또 하나 신문을 읽다 알게 된 저들의 비열한 행위(중앙 20231118)인데 중국은 한국 언론을 가장해 미국과 일본에 대한 가짜뉴스를 대량 생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의 도입부를 인용해 보면

중국 업체가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 사이트 38개를 만들었고, 미상의 배후 세력이 

이를 통해 친중, 반미 콘텐트를 유포해 국내 여론 조성에 악용했다고 국가정보원이 

13일 밝혔다

이게 중국이 우리를 악용하려는 민낯이다.(P354의 저자의 주장에 대한 반대 현상)


큰 땅덩어리의 중국이 언제부터 인지 세계무대에 본격 출현하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알겠지만 이렇게 수준 낮은 행동을 지속한다면 위상은커녕 세계인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고 세계 경찰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이 좋은 일을 하면서도 가끔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왜 그렇게 욕을 먹고 있는지를 냉철히 분석하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순수 경제적 관점에서 저자의 관점을 배우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앞 쪽을 제외하고는 읽을 가치가 큰 작품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내 심정을 긁어 놓은 대표적인 내용을 찾아보니 너무도 많아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눈에 거슬리는 내용만 간략히 추려서 독자의 반론이라는 제목으로 내 의견을 올려 보았는데 너무 많아 일부만 발췌했다.

(독서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데 짜증도 나고 실망도 났지만 인내를 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런 내용이 너무 많아 별도로 메모를 하였고 내 생각이 틀렸는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앞으로 저자의 그 어떤 내용도 이제는 접하지 않기로 했고 조만간 저자께서 미국의 어느 대학으로 높은 인사가 되어 떠난다고 하는데 빨리 한국을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크게 든 시간이었습니다

이유는 책을 읽어보시면 압니다. 완전 중국 국뽕이며 알게 모르게 한국을 낮추어 보고 있었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P246 ~ 252쪽의 근자감에 찬 중국 자화자찬

* 저자의 주장은

1) 중국 정치인들은 경제 정책을 잘한다.

2) 중국 공무원들의 역할이 효율적으로 작동해 왔다.(P363, 437쪽에서도 동일하게 자랑질)

3)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통한 각 지역간의 교류와 융합이 활성화되어 중국이 단일 개방시장이 

   되었다.

 

* 독자의 반론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의 자료를 믿지 않는다. 이유는 내가 여기서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경제와 중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국가자료에 대해 조작을 예사롭지 않게 하는 중국 공무원들이 어떤 근거로

유능하고 경제 정책을 잘 해 왔다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그들은 인구가 많아 내수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고 미국의 오판으로 WTO에 가입을 계기로 

국제 시장에 얼굴을 조금 들게 된 것 뿐이지 원천적으로 기존의 선진국들처럼 각고의 노력과 

실패에 기반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얻어진 결과가 아니고 산업 스파이질과 무차별 저가정책

으로 또 국가의 지원 정책에 힘입은 무분별한 공세로 오늘의 그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정책을 잘해서 그랬고공무원들의 노력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 점에 동의하기

어렵다.

 

또 중국 경제의 대부분이 고질적인 꽌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뒷집도 알고, 앞집도 

아는데 어째서 저자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중국 경제의 성장 배경에 대해 

아름답게만 포장하려는지 모르겠다.

중국에 들어가 성공했다는 기업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경제인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나는 성공 사례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유수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 마저 중국에 대한 시장 조사를 잘못

해서, 중국인들 마음을 사로잡는 마케팅을 잘못해서 기업이 실패했다는 주장은 일부 맞을 수도 

있겠으나 전체 맥락으로 볼 때는 그것은 일부이지 마치 전체인듯한 이야기는 맞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2차전지 분야에서 선두에 서게 된 이유는 그들의 기술력에 기반한 것일까?

과거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중국에 진출한 2차전지 업체를 차별하고 괴롭혔는지를 거기에 덧붙여

핵심기술 인력은 또 얼마나 빼 돌렸는지를.....지금은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일류 기술에 대해 과거

그들이 해 왔던 저열한 방식으로 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까지 당한 기업들이 

동일하게 당할지 한 번 지켜볼 노릇이다.

저자가 P342쪽에서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와 추세의 흐름을 먼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역설하고 있는데,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왔다. 과연 그럴까?

그보다는 중국의 유력자들과 꽌시를 구축해라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데 이게 더 정확한 이야기 아닐까 생각하는 데 저자의 생각은 어떠신지?

구글은 왜 중국에서 막혀 있고, 중국인들이 한 때 그렇게 자랑했던 마윈은 왜 사라졌는지를 

뿐만 아니라 지난 2022년 발간된 레드 룰렛(데즈먼드 슘 , 알파미디어)이라는 작품을 읽었는

지를 읽었다면 아니 작품의 내용의 일부를 알고 있으시다면 학자적 양심에 따라 아무리 자신의

조국이라도 이런 내용으로 자신의 조국을 일방적으로 두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데 어찌 

생각하시는지?

 

참고로 나는 중국에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작은 중소기업의 법인장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우리의 일부 공무원들도 그렇지만 중국 공무원들이 투철한 사명의식 속에서 일처리를 제 때

정확인 해 준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은 거제도인지 어디서 야인 생황을 하고 계시는 

김정운 교수가 명강사로 이름을 날릴 때 하던 말투가 있지요...

해 봤어 안 해 봤으면 말하지마 난 해 봤어’ 

나도 이런 말을 저자에게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P290 ~ 302 . 중 갈등의 미래

* 저자의 주장은

1) 중국의 제조업과 기술력이 급신장했다.

2) 미국의 대중국 기술 견제는 오히려 미국 기술개발의 지속성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

3) 개방되고 투명한 제도 하에서 교류하고 아이디어를 마음껏 나눌 때 많은 혁신이 나오며

   폐쇄적이고 교류를 막는 모든 조치는 결국 진보가 아닌 후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 독자의 반론

저자의 주장을 3가지 사항으로 요약해 보았는데,

1)번 사항은 어느 정도 인정을 하지만 상대국이나 경쟁업체 및 선진업체 기술 도용이나 절도만 

  근절해 준다면 100% 인정하겠다.

2)번 사항은 글쎄라고 밖에는 할 이야기가 없다

  중국이 일본과 미국 나아가서는 주요 거래국들이 마음에 안 들면 전가의 보도처럼 쥐고 

  흔드는 희토류수출 제한을 예로 들어본다면 결코 2)번에서 언급된 주장은 일부 맞을 수는 

  있으나 꼭 들어맞는 이야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일본이 우리의 기를 누르기 위해 반도체 주요 원료 3개 품목을 수출제한 걸었다가

  큰 코 다친 예가 있을 것이고, 미국에 희토류 수출금지 걸었다가 미국이 국내에서 채취 가능한

  희토류 조사를 한 결과 중국만큼의 희토류가 있음을 확인한 좋은 사례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지만 그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가 아니기

  에 여기서는 이쯤 해 두려고 하며 관련되는 내용은 유튜브에 너무도 많이 나와 있으니 식견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독자들이 찾아서 들어보면 저자의 이야기가 왜 국뽕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상기 3)번 항은 중국에서 할 이야기가 아닌 듯 한데.....

291쪽에서 저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화웨이의 기술적인 문제를 공론화

하고 있는 입장에서 언제까지 신뢰성 있는 기술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저자는 중국이 투명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는 사회인 듯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견해 - 내가 중국을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만은 - 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P317, 346, 354쪽에 언급된 한국대책 지적질의 극치

* 저자의 주장은

- 317쪽을 보면,

  누군가에게 휘둘려 움직이는 바둑알이 되지 말아야 한다. 냉정하게 주변 판세를 읽고 흐름을 

  분석해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중략)....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크고,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나라인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흐름을 모르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분위기에 휩쓸려 행동하면

  안 된다대만 문제는 자칫 한국의 국운을 결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346쪽에서는

  윤석열정부가 보여주는 대중관계는 과거 정부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중국이 예전만큼 한국 제품을 사주지 않으면서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 수준이 

  심상치 않은 단계까지 와 있기도 하다. 미국만 바라보며 너무 의존해도 안 되고, 중국을 

  외면하며 밀어내도 안 된다.

 

- 354쪽에서는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동맹국들을 도구로 이용하는 전략에 이용되는 우려가 존재한다.


* 독자의 반론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아녀자의 지적질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대만 편을 들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드는 것이고 홍콩의 자유화를 위한 동조를

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하는 것인데 어디다 대고 바둑알, 국운을 운운하는지 모르겠으며

우리가 우리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싸드를 배치하던 미사일 갖고 공놀이를 하던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남의 나라 이야기하지 말고 중국은 핵 갖고 발광하는 북한 놈들하고 결별이 먼저가 아닐까?

왜 이런 여염집 수준의 분석을 하는 여인한테까지 우리의 외교방식에 대해 지적질을 당해야

하는지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는 이전 정부의 헛다리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이 자신들을 왜 밀어내고 있고, 홀대하고 있는지를 중국 자신들은 전혀 모르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자와 맹자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세계인에게 도덕적 귀감이 되는 성현들을 그토록 많이 

배출한 중국이 이렇게까지 인간의 기본 도리와 국가간 지켜야 할 기본 양식이 무너진 후손을 

갖게 될 줄은 고인이 된 성현들도 지하에서 한숨을 내 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국에 이용당할 것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더 이용하려는 중국을 불러들이고 싶은 생각은 나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음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기본적 양식이 살아 숨 쉬는 중국이 되지 않고는 말이다.

  

P320, P332 노골적인 중국 홍보 내용

* 독자의 반론

본 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지난 2017년에 마르테 셰르 갈퉁스티그 스텐슬

’ 라는 인물이 공동 집필한 ‘49가지 단서로 예측한 중국의 미래라는 작품과 연결시켜 읽어 보면 저자의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웬만한 코미디 프로보다 재미난 책이다.

 

P417에 대해

* 저자의 주장은

  모든 기업의 운영 과정이 스마트화, 디지털화, 자동화, 모바일화로 가는 단계에 와 있다.

  중국이 천명한 중국식 현대화전략도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 정책이다.

  테슬라는 왜 중국에 들어갈까? 그 이유는 빅테이터에 있다.


* 독자의 반론

맞는 말이지만 해당 주장의 출발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점이 많이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중국이라는 나라가 과거 어떤 이유와 근거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그렇게 많은 

각종 데이터를 축적하려는 아주 멋드러진 생각을 했을까?

인민을 위한 인민의 국가라고 한다면 먹고 배도 부르지 않을 데이터 수집에 열중하는 것보다 

인민이 배부르고 등 따스웁게 하는 경제적 활동에 더 집중해 데이터 수집할 시간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노력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경제발전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는 상태에서 중국의 수뇌부들과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이 목적도 이유도 불분명하게 데이터 수집에 열중했다

미래 사회는 데이터가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니 이를 모아야 한다고 예측해 데이터를 모았다

과연 그랬을까.

홍콩에서 시위를 하는 학생이 그 다음날이면 해당 학생의 부모에게 자녀의 시위 참여를 자제

시키는 메시지가 날아간다고 한다. 상해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외지인들은 반드시 안면 인식기를

통해야만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전세계 안면 인식기 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중국이라고 

한다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테슬라가 활용한다고 중국으로 달려갔고 이런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세계를 향해 밑밥을 뿌리고 있다.

일본군이 중국에서 벌였던 731부대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P445 

인도를 완전히 까고 있는데 완전히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 독자의 반론

저자가 뭐라고 인도를 그렇게 끌어내리고 있는지 참으로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생각 못한다는

이야기는 이런 경우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도를 너무 낮추어 보지 맙시다.




인터넷을 뒤지다 이런 글이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출처 : 경기신문의 기자의 창’ 20220526)

 

()’변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자연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에서 규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주역(周易)이다영어로 번역된 주역의 책 제목이 ‘The Book of Change’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역에는 64()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8개의 괘가 서로 돌아가며 짝을 지어 64개의 괘를 만들어낸다. 64개의 괘 중에 첫 번째 괘가 바로 중천건괘(重天乾卦)’. 하늘을 뜻한다.

태극기 왼쪽 윗부분에 있는 모양이 2개 겹친 모습을 갖는다.

주역은 이 괘에 대해 용()을 가져와 설명한다. 선거철에 자주 듣게 되는 단어인 

잠룡(潛龍)’주역의 중천건괘에 대한 설명에서 등장한다.

네 가지의 용이 등장하는데 잠룡과 함께 현룡(見龍), 비룡(飛龍), 항룡(亢龍)이 그것이다.

처음 등장하는 용이 잠룡이다.

물에 잠겨 있는 용을 말하는데 양수 가득한 어미의 자궁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용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직 용이 아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용은 현룡이다.

이제야 눈에 보이는 형태를 지녔다는 뜻이다. 청소년기의 용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비룡이다드디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용의 모습이다

이제 진짜 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용이 있다. 항룡이다. 너무 지나치게 높게 올라간 용이다.

주역의 설명은 항룡유회(亢龍有悔)’,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하게 된다라는 뜻을 지닌다.

주역의 충고는 매우 간명하다. 모든 사람은 용이 될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모두가 용이 되지는 않는다. 잠룡이 성급히 나대다가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그라지기도하고 현룡이 함부로 날뛰다가 상처만 입고 쓰러지기도 한다. 비룡이 되어 멋지게 날아오르지만 무리하게 너무 높게 오르려 하면 항룡이 되어 후회하게 된다.


오늘의 중국이 자신들의 인구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약간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국제질서를 자신의 입맛으로 재단하고 윽박지르는 항룡이 되지 않도록 자중자애해야 할 것을 저자는 먼저 이야기 했어야 함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푸른 창천을 휘젓고 높이 나는 용이되고저 노력하는 것은 알겠지만 너무 높이 날지 않기를

중국의 고전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진정한 국뽕이라면 제3자적 시각으로 비평과 칭찬이 균형을 갖추어 

분석하는 것이 올바른 학자적 시각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여간 본 작품은 앞 100쪽 안으로는 읽을 만하고 뒤쪽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그저

구런 작품이라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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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셀프 - 현재와 미래가 달라지는 놀라운 혁명
벤저민 하디 지음, 최은아 옮김 / 상상스퀘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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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0대 이하 750대 이상 5


본 작품을 읽으며 느끼고 있으나 이런 이야기를 누구도 듣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문화계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히 걱정이 되어 몇 가지 우려 사항을 적어보면


첫째, 마케팅 방식이 현대 문명의 상징인 SNS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좋은데, 작품을 

       직접 들춰보지 못하는 제품의 특성을 이용하여 작품에 대해 너무 과대 포장되어

       홍보하고 있어 가뜩이나 독서 인구가 얇은 국내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주어서 책을

       멀리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고

둘째, 세상이 힘들어 그런 것인지 스스로에게 힘을 주라는 메시지형의 작품이 많이 

       나타나고 있으나 내용 자체가 과거에 나온 여러 유사 작품과 거의 비슷비슷해 

       어떤 측면으로 해당 작품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 고민되고

셋째, 누구나 유치원에서 배웠음직한 내용을 마치 절대적인 인생의 교본처럼 위장하고

       있는데 대부분 현대인들이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데, 이런 희망 고문식내용만을

       열거한 작품을 언제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할지 궁금했고 나아가서는 그나마

       있는 얄팍한 독서 인구가 이런 작품으로 인해 더욱 더 얇아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들었고

넷째는 나의 관점으로 작품을 이해했을 때, 작품은 시종일관 미래의 나와 연결되는 

      ‘현재의 나’, ‘도전하는 ’, ‘준비하는 나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데,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품이 주는 내용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현실이 버거워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

      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HOW'에 대해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를 바탕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는 있었으나 구체적인 방향이 흡족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개인적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다.

      1982년 미국에서 레이 붐붐 맨시니와 권투 경기에서 사망한 김득구선수가

      정신 상태가 나태해 링 위에서 시합하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분은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어 유명을 달리

      하셨을 터인데 마치 김득구 선수가 정신 상태가 준비가 부족해 패배 후 유명을 

      달리한 듯한 내용으로 본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누낌이 든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에서의 만족할 만한 해법

      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냥 무턱대고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준비하라고만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남고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이라는 무서운 적맨시니와도 같은 존재를 만나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방법론적인 것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완전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

그나마 작품의 초입부분에 나오고 있는 문구

당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됐다고 상상하라. 그러면 지금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는 문구를 보고 열 받았다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해서든 견뎌낸다.‘

는 문구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작품을 어렵게 끝까지 독파했다.

 

하지만 해당 작품보다는 지난 2019년 읽었던 희망의 귀환(차동엽 , 위즈앤 비즈)’이라

는 작품을 읽고 3가지 핵심 키워드 문구를 제시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다시 옮겨 보는 게 작품을 통해 느낀 소회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첫째, 사소한 것 하나라도 붙잡고 이것이 희망이다라고 외쳐라

둘째,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끈기죽마고우, ‘경험현명한 조언자, ‘신중

       ‘형님으로희망수호신으로 삼으라

셋째,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그리고 희망을 외부에 걸지 마라

       우리 자신이 희망이다.

라는 문구로 작품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최근 출간되어 조용히 인터넷을 장식했고 지금도 열심히 홍보에 열중인 작품

모든 삶은 흐른다(로랑스 드빌레르)’라는 작품도 그런 류에 속하기는 하나, 결국 나같은

중 늙은이가 읽기에는 수준이 좀 그렇다는 생각이 크게 든 작품으로 대학생들이나 사회

초년생들이 읽거나 범위를 확장해 50대 이전의 중년까지 포함해 본다면 그런대로 읽어 볼만한 작품으로 판단하고 있다.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 과거(19세기 ~ 20세기)심리학결정론에 입각해 오늘의 삶은 자신의 과거를

  재조합한 삶이라 규정하였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인간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 무수한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과 미래의 가능성

  을 깊이 생각할 수 있다는 존재임이 확인되면서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능력인 전망

  (prospection)' , 인간이 어떤 일을 하든 그 행동은 미래의 예측을 동력으로 삼는데

  인간의 모든 행동과 행위는 장기적 또는 단기적 목적에 좌우된다는 견해로 인간의

  모든 행동은 개인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목표 지향적이다.

 

- 인간에게 있어 많은 요소 특히, 두려움, 부정적 생각, 단기적 시각 등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한다따라서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비전과 사랑을 토대로 목표를 세울

  때 우리는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사는 길로 들어선다. 미래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곧 우리가 나아가야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 배움은 뇌의 예측 능력에 최신 정보를 제공해 그 능력을 향상하는 과정이다.

 

- 미래의 나와 연결될수록 현재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1) 행동과 태도를 좌우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2) 모든 목표는 접근 또는 회피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3) 미래의 나와 연결되면 현재를 수용하고 사랑하며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다.

  4) 미래의 나와 연결하는 것이 현재의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5) 장기적인 미래의 나와 연결하라

     그러면 오늘 더욱 훌륭하고 탁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 ‘전념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술이며, ‘정체성은 자신이 가장 전념하는

  모습이다정체성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전이다. 미래의 나에 전념한다면 그

  과정에서 직면하는 모든 일은 우리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준다.

 

[PATR 1.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7가지]

-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희망이다.(세스 고딘)

- 미래를 기대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빅터 플랭크)

- 인간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반드시 미래에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해서든 견뎌낸다.

-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은,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목적과 의미의 

  부재다.

 

위협 1.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현재는 의미를 잃는다.

- 목적이 없는 현재는 감옥이다. 목적이 없는 삶은 과거의 생각이나 자살 충동, 그 밖에

  다른 심각한 문제들에 갇혀 있는 삶이다. 목적의 결여는 수명을 단축하는 반면, 목적을

  갖는 일은 수명을 평균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 현재 사건은 미래의 결과와 연결되어 있을 때 의미가 생기며 목표가 없는 곳에서 

  인간은 소멸한다.

- 희망이 없다면 투지를 발휘하는 게 불가능하다.

  ‘투지란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이며 희망을 자신이 추구하는 게 무엇이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굴곡을 헤쳐 나가게 해주는 에너지원이다.(앤젤러 더크워스)

- 희망은 방법이다

  희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방법이 있다. 희망은 승산을 따지지 않는다.

- 원대한 희망을 이루려면 집중과 믿음, 행동이 필요하다

  이때 희망은 의지이자 방법이다.

- 원대한 희망을 지닌 사람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실패를 다른 실행 가능한 

  접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피드백으로 받아들인다.

- 인생의 명확한 목적이 없으면, 당신의 뇌는 핑계를 찾는 데 집중할 것이다.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요인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임.


위협 2.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스토리는 미래를 위협한다.

-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발생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감정이입을 해주는 증인이 

  없을 때 내면에 머무는 감정이 트라우마다.(트라우마 전문가 피터 레빈’)

- 현실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단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며,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려고만 한다.

- 우리에게 과거는 기본적으로 의미. 과거 사건과 관련해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그 과거의 의미가 달라진다.

- 과거의 스토리는 미래의 목표와 희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그 스토리를 주로

  만드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 과거가 현재의 의미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재가 과거의 의미를 만든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 고통과 상처는 목표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교사가 된다.

  가장 힘겨웠던 순간들이 삶의 진정한 교훈을 주며, 숭고한 일에 전념하게 만든다.

- 모든 경험을 개인적 성장의 계기로 전환할 때 비로소 유익이 생긴다.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당신의 손에 달렸다.

   ---> 당신이 경험의 주인이지, 경험이 당신의 주인은 아니다.

- 부정적인 과거는 미래를 제약한다.

 

위협 3. 주변 환경을 인식하지 못하면 당신은 아무 길이나 가게 된다.

-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 다섯 명의 평균 모습이 바로 당신이다.(짐 론)

- 당신에게 입력되는 정보가 당신의 관점을 결정한다. 관점은 결과를 결정하며, 결과는    미래를 결정.

- 우리가 환경을 만들고 통제하지 않으면 환경이 우리를 만들고 통제한다.

   ---> 현재 상황을 벗어나 미래의 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면 자신을 그 방향으로 

         끌어 당길 환경을 만들어라. 당신이 찾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 당신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주는 환경을 설계하라.

- 당신이 원하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라. 그것이 현재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이다그리고 미래의 나를 행동의 동력으로 삼아라.

- 깨어 있음(마음 챙김)을 통해 우리는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다.

- 당신이 맺는 인간관계는 거래적이 아니라 변혁적이어야 한다.


위협 4. 미래의 나와 단절되면 근시안적 결정을 내리게 된다.

- 유익한 결정을 내리는 첫 단계는 미래의 나와 연결하는 것이다.

- 현재를 더 나아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래를 더 크게 설계하는 것이다.

- 미래의 나를 향해 가는 것보다 미래의 나를 현재로 끌어오는 게 더 수월하다.

- 미래의 나와 연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위협 5. 시급한 문제와 사소한 목표가 당신의 발목을 잡는다.

- 사람들 대부분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고 만다.

-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중요한 일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다.

- 질문을 다르게 해야 혁신적인 생각에 불을 지피고, 새로운 각도로 세상을 보게 된다.

   --->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꿀 때 당신이 보는 세상이 달라진다

          추구하는 것을 바라보라그러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 우리의 눈과 귀는 우리의 뇌가 찾고 있는 것만 보고 듣는다.

   ---> 당신의 능력 이상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

 

위협 6.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당연히 패배다.

- ‘심리학에서 용기란 숭고하고 가치 있는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를 말한다.

- 용기란 긍정적인 변화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위협 7. 성공이 실패의 기폭제가 될 때가 있다.

- 사람들은 대부분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자멸의 길로 간다.

- 성공한 사람이나 조직이 한 번 성공 후 큰 성공을 다시 거두지 못한다.

- 고난은 강한 사람을 만든다. 강한 사람은 좋은 시절을 만든다

   좋은 시절은 약한 사람을 만든다그리고 약한 사람은 고난을 만든다.


[PATR 2. 미래의 나에 대한 진실 7가지]

- 인간에게는 자신이 이루어낼 의미 있는 사명이 필요하다.(빅터 플랭크)

- 사람이 목숨을 걸 일을 찾지 못하면 살 자격이 없다.(마틴 루서 킹)


진실 1. 당신의 미래가 현재를 이끈다.

- 세상을 성공적으로 탐구하려면 사물의 본질적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

(아리스토텔레스)

- 목적론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목표나 미래 지향적인 어떤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다.

- 창의성은 지능적인 설계를 통해 다듬어지지 않은 재료를 구체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

- 약한 사람은 운을 믿고 강한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믿는다.(랠프 월도 에머슨)

- 명확한 목표는 행동에 방향과 목적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 구체적인 목표는 몰입의 방아쇠를 당기는 필수적 요소다.

- 미래가 현재를 이끈다.

 

진실 2. 미래의 나는 예상과 다르다.

- 과거와는 많이 변했지만, 미래에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 경력의 막다른 길 환상

- 현재의 나는 일시적이다. 이 진실을 알면 용기를 얻어 성장 마인드 셋을 기를 수 있다.

- 미래의 내가 달라질 거라는 전망이 있으면 현재의 나를 품위 있게 만들 힘이 생긴다.


진실 3. 미래의 나는 피리부는 사람이다.

- 시간은 당신의 친구 아니면 적이다. 시간을 당신을 성장시키거나 아니면 당신의 

  결점을 폭로한다.

- 미래의 나는 현재의 결정이 쌓이고 쌓여 생긴 결과다.

-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미래의 당신이 갚아야 할 비용 아니면 미래의 당신에

  대한 투자다.

- 투자하면 전념하게 되고 전념하면 결과를 얻는다.

- 지금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나는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진실 4. 미래의 나를 생생하고 자세하게 그릴수록 더 빠르게 발전한다.

- 미래의 나로 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측정할수록 목표를 향해 더 빠르게 발전한다.

- 프로처럼 기술을 배워라. 그래야 예술가처럼 그것을 깨부술 수 있다.(피카소)

- 미래의 나를 자세하게 그릴수록 미래의 나는 더 훌륭해진다. 목표와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구체적이고 측정할 수 있게 만들어라. 그러면 그 과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달성해 더 빨리 발전할 것이다.

 

진실 5. 미래의 나의 실패가 현재의 나의 성공보다 낫다.

- 습관대로 살아가면 현재의 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의도적인 연습을 하면 

  자신이 바라는 미래의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진실 6. 성공하려면 미래의 나에 진실해져야 한다.

- 무엇보다 진실한 자아를 가져라(윌리암 셰익스피어)

- 우리는 장애물을 만나서가 아니라 덜 중요한 목표가 뚜렷하게 보여서, 진정한 

  목표에서 벗어난다.

- 자신의 진정한 열망과 믿음에 진실한 태도를 나타내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성취를 

  이루었어도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 성공은 자신이 바라는 미래의 나에 진실한 때만 이룰 수 있다. 자신의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가느냐만이 성공의 유일한 척도이다.


진실 7. 신에 대한 견해가 미래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 신에 대한 견해가 미래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 신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신이 인간의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를 비롯해 모든 일을

  통제하고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 신은 인류의 부모이며, 모든 인간은 문자 그대로 신의 자녀이자 후손이라는 믿음이다.

- 신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주었다.

 

[PATR 3. 미래의 내가 되는 7단계]


- 생각을 명료하게 다듬어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단순한 생각에

  도달하면 산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스티브 잡스)

-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결정하는 일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단계 1. 현실에 맞는 목표를 명확하게 세워라.

- 세련미의 절정은 단순함이다.(클레어 부스 루스)

- ‘지금 당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목표로 정하라.

- 가장 탁월한 수준으로 성공하는 기업은 3개를 초과하는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

- 미래의 나를 성장시키려면 미래의 나에게 투자해야 한다.

- 10배의 성과를 올리려면 집중과 단순함이 필수다.

 

단계 2. 덜 중요한 목표를 제거하라.

- 행동은 미래의 나에 대한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행동을 보면 무엇을 전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전념하고 있는 일은 결과로 나타난다.

- 미래의 내가 되는 2단계는 덜 중요한 목표들을 제거함으로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 미래의 나로 이끌지 않는 모든 일은 덜 중요한 목표다.

- 미래의 나를 실현하려면 자신의 목적에 100% 전념해야 한다. 목적과 정체성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장 전념하고 있는 것에 정체성이 있다.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진다.

- ‘완벽함이란 추가할 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는 제거할 것이 없는 상태이다.

 

단계 3. 필요에서 열망으로, 열망에서 앎으로 나아가라.

-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건, 필요에서 열망으로, 열망에서 앎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 믿음이란 이미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플로렌스 신)

- 무언가 좋은 것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미 그것이 당신의 것임을 알려

  주려고 신이 보낸 증거이다.(덴젤 워싱턴)

- 감사는 무언가를 받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감정이다.

  보통 우리는 무언가를 받은 다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감사라는 감정에는 감사한 일이

  이미 일어났다는 신호가 들어 있다. 따라서 감사하거나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받은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중략...) 원하는 것을 받으려면, 지금 미리

  감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P222)

- ‘정체성은 개인의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과 믿음으로 구성된 자아에 대한 체계적인 

  개념.

- ‘믿음이란 이미 받았다는 것을 알고그에 따라 행동하는것이다. 믿음은 앎이고

  앎은 그와 일치하는 발전적인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먼저 미래의 내가 돼라. 그다음 미래의 나로 행동하라.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라.

- 완전히 전념하는 순간 신의 섭리도 함께 한다. 전념하기 시작하면서 꿈도 꾸지 못했던

  뜻밖의 사건과 , 물질적 지원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단계 4.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요구하라.

- 신이 지쳐서 당신을 축복할 때까지 조르라.

- 무언가를 요청한다는 것은 그것에 전념한다는 뜻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말고

  직접적이고 대범하게 요청하라.

 

단계 5. 미래의 나를 자동화하고, 시스템화하라.

- 시스템화란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최대한 저항이 없는 상태로 자동화해서

  일상적인 행동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 효과성은 적절한 일을 하는 것이고, 효율성은 일을 적절하게 하는 것이다. 효과성이 

  언제나 먼저여야 하고, 그 다음이 효율성이다. 미래의 나를 시스템화한다는 말은 

  바라는 결과를 자동화하고 아웃 소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주의와 에너지를 

  원하는 곳에 쏟을 여유를 자신에게 주어야 한다.

- 너무 많은 선택지를 갖고 있으면 집중과 전념이 어렵다.


단계 6. 미래의 나의 일정을 관리하라.

- 돈과 인간관계, 목적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려면 먼저 시간의 자유를 획득해야 한다.

- 당신은 어떤 일의 결과가 아니라 결과의 원인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과거, 현재

  미래의 나에 대한 주도권을 키워나갈 수 있다

   ---> 일정을 관리하라, 시간의 주도권을 잡아라.

 

단계 7. 완벽하지 않더라도 공격적으로 완수하라.

- 승리하는 사람은 언제나 포기한다. 그들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일을 포기할 줄 안다.

- 덜 중요한 목표를 포기하라. 당신을 미래의 나라는 산에 가까이 데려다주지 않는 일을

  전부 포기하라과거의 내가 투자했다고 해서 그 일을 붙잡고 있지 마라

  미래의 나로 살게 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포기하라.

- 예술은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버려질 뿐이다. 끝내려면 당신이 한 일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 80% 하려고 할 때는 결과를 얻지만, 100%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여전히 고민만 

  하게 된다.(80%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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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위안 - 어느 날 찾아온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기까지, 개정판
론 마라스코 외 지음, 김설인 옮김 / 현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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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작품에서 저자도 자신의 작품을 슬픔이라는 주제로 걸러내어 엮은 일종의 여행담이라

했는데전체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문구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잠재적인 슬픔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데 예기치 못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그런

슬픔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 반면, ‘슬픔에 백기를 들고 재기를 꿈꾸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멸의 길 혹은 무기력증 환자로 몰고 가는 인간 군상들도 상당히 

있음을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보아 왔다.


작품을 읽고 난 결과,

다른 사람은 어찌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 내게 다가왔던 슬픔 내지는 절망감에서

빠져 나왔던 과정을 유추해 보니 그런대로 슬픔이라는 질곡의 터널을 누구보다 

슬기롭게 극복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솔직히 머리가 나빠서인지 그런 종류의 감정이 오래 가지를 못하는 점도 있다 -

개개인에게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여러 종류의 슬픔은 아무래도 부모와의 이별만큼 

큰 것은 없다 하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나의 이런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래도 비혼주의나 독신주의적 삶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해지다 보니 

과거와 같은 감정적 가치 기준이 마치 절대 선인 것처럼 이야기했다가는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일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후배 중 자식이 없어 애완동물 중 토끼를 자식

만큼 사랑하며 기르던 후배가 있었는데, 그 토끼가 노쇠해 죽었다.

그 후배는 회사에 휴가까지 내 가면서 애완동물 전문 장례업체를 통해 성대한 장례를

치러줬다시간이 흘러 그런 사정을 모르는 또 다른 후배가 우연히 알게 된 토끼의 

죽음을 비아냥거렸다가 절교’ 당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후배는 비아냥거리는 친구에게

너는 네 자식이 죽어도 그렇게 비아냥거릴 것이냐

며 우수에 찬 목소리와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세상이 변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아버님을 모신 현충원에 어머님을 함께 모시면서 다짐했던 각오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모친이 살아생전 부친을 현충원에 모시기 전 일시적으로 모셨던 공원묘원에 성묘를 간 적이 있었는데당시 공원묘원 입구에서 술 취한 어느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 젊은이는

얼마 전 어머니를 이 공원묘원에 모셨는데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어 매일 찾아오고  

 있다

면서 울먹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계셨던 모친이 겉으로는 효자로군요하셨지만

돌아서면서 내게는 나지막이

애처롭기는 하다만 살아 계실 때 잘하지 죽은 뒤 무슨 소용이 있나

라고 읖조리는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그럼 나는 어찌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백점짜리 효도는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내 

환경과 수준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한 효도의 과정을 거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님을 아버님과 함께 모시고 온 다음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절대 모친을 그리워는 하되 울지는 않겠다.

진정으로 돌아가신 모친께서 내게 원한 것은 굿굿하게 살아가는 장한 모습이지 

언제까지 슬퍼하며 모친을 그리워하는 자식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

고 지금도 그 판단은 확고부동하다.


나도 자식이고 사람인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친이 그립거나 다른 일로 슬픔이 극에 달하는 경우가 인간이기에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슬픔과 외로움이 교차되는 경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가끔 혼자 속으로 되 뇌이는 노래가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읖조리는 가사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내 나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아실만한 정미조라는 분이 부른 

휘파람을 부세요라는 노래다.

가사를 음미해 보면 나름 내가 어떻게 슬픔을 외로움을 극복해 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휘파람을 부세요 >

  제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외롭다고 느끼실 땐 두 눈을 꼭 감고 /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 소리에 꿈이 서려 있어요 / 휘파람 소리에 사랑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가 그리울 땐 두 눈을 꼭 감고 /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 소리에 꿈이 서려 있어요 / 휘파람 소리에 사랑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가 그리울 땐 두 눈을 꼭 감고 /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슬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런 부정적인 단어가 우리 뇌리 속에서 요동치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품은 이를 극복하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마음 

자세고 그런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각오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그런 능력을 배가 시키는 사람이 되어 길지 않은 인생을 즐겼으면 한다.

 

[슬픔의 무게]

- 슬픔은 무거움이다. 슬픔(grief)의 어원은 무겁다는 뜻의 중세 영어 'gref'에서 온 

  것으로 사람들이 슬픔을 말할 때 가장 흔하게 쓰는 형용사는 참을 수 없는이다

  슬픔은 참아야 할 무엇이자 짊어져야 할 무거움인 것이다.

- 슬퍼하는 사람은 자신을 내리누리는 그 모든 결코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삶을 

  재정리해야 한다.

- 슬픔은 슬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삶은 한 잔의 커피처럼 소소한 것들로 연결된다. 모든 관계는 서로 관련이 있는 

  특이한 성벽들이 뒤섞여 이루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큰 것들이 살짝 뒤섞이는 게 

  아니라 작은 것들이 마구 뒤섞이는 것이다.

- 죽음은 우리에게 다가올 때 남겨질 사람의 삶에서 사소한 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 삶은 사소한 것들이다. 그런데 슬픔은 그 사소한 것들을 비틀어서 떼어내 버린다

  죽음은 사소한 것들을 베어내 버리고 난 뒤 그 자리를 공허감 대신 가능한 고통의 

  무게로 채운다.

- 슬픔은 저항할 수 없는 고통의 실체다.

- 슬픔에 빠지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밀려든다. 그러니 이 해묵은 

  상처들에게 발목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집단이 누군가를 도우려는 과제를 제대로 이행하고 싶다면, 돕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단서를 얻고 그 단서를 자신의 직관과 비교하여 판단해야 한다.

-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에게는 유창하지만 달콤하기만 한 말보다는 어눌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 이기적인 사람이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 물건을 훨씬 더 산다.



[정직한 대면]

- 슬픔은 날것의 진실로부터 맹공격을 받는 일이기에 진실 자체와 맺고 있는 관계를 

  바꾸지 않고서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정직은 진실의 모든 측면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태도다

   슬픔에 관한 한 자신을 파멸시킬지 모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똑바로 쳐다보라

- 오랫동안 슬픔에 젖어 지내는 사람은 큰 고통을 못 느낀다기 보다는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 말은 병든 마음을 고치는 의사다.

-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진실과 맺은 관계다

  하지만 그 관계는 정직한 말을 소리 내어 말할 때에만 유지된다.

- 슬픔을 이야기하라.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슬픔을 말하라. 빈 뒤뜰이나 샤워 커튼에

  대고 슬픔을 이야기하라. 혼자 있는 차 안에서, 숲 속을 걸으면서 슬픔을 큰 소리로 

  외쳐라. 이것이 슬픔의 토로다.

- 아무도 내게 슬픔이 두려움과 너무도 흡사한 느낌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C.S. 루이스)

- 인간 진화의 산물인 패닉은 분명 우리 내면의 원시인에게 재난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기 위해 일어나는원초적 감정이다.

- 패닉상태에서 도움이 안 되는 인간 유형은 행동가들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용기를 강요된 품위라고 정의했다.

- 죽어가는 사람과 죽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는 이는 패배자다.

- 수치스러움을 기꺼이 견뎌내는 능력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품위다.

-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슬픔에 빠진 이에게 입증할 수 없는 말은 절대하지 말라.

  예를 들어 상투적인 말(시간이 약이에요), 근거 없는 확언(그분은 더 좋은 곳으로

  갔어요, 당신은 이 어려움을 이겨낼 거예요), 진부한 격려(걱정 말아요 괜찮을 

  거예요, 신이 천국에 새로운 천사가 필요해 데려간 거예요), 진부하고 엄숙한 말 

  (모두 신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에요)

  반면에 당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겠어요

- 희곡 집단 청원에서 인정 많은 교구사제가 위로를 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이야기

  한다.

  “위로는 슬픔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슬픔이 얼마나 위로할 길 없는 것인지 깨닫도록

   시시하게 들려야 하네. 위로할 길 없는 슬픔은 사람을 고귀한 지위에 올려놓지

   고귀해졌다는 이 느낌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이 대부분의 비극을 이겨내는 거야

   그러니 사제인 자네의 임무는 뭔가 어리석은 말을 해서 평범한 슬픔을 위로할 길 

   없는 고귀한 감정으로 끌어올리는 걸세

- 사람들은 보통 너무 세게 혹은 너무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을 직관적으로 

  불신한다.

- 슬플 때는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이 지킬 수 없는 큰 약속보다 낫다.

- 슬픔에 잘 대처하고 싶다면 정직해지고, 마음을 터놓고, 솔직해지고, 진심이 돼라.

- 슬퍼하기는 회복의 과정이지 망자에게 보여줘야 할 자책의 의식은 아니다.

-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한 줌의 정직함이 한 덩이의 고기보다 더 가치 있다.

- 감상주의자들은 자신을 슬프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 고인에 대한 존경은 지나치게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고인에 대해 장엄하게 쓰려고 하지 마라.

  대신 의미를 잘 전달하는 수수한 말 한마디와 정곡을 찌르는 묘사를 찾는데 힘쓰는 게

  더 낫다.

- 프로이트는 유머가 절망과 싸우는 심오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았다. 농담을 

  사회가 억압한 금지된 사고와 감정을 표면화 할 수단으로 보았다.

  따라서 유머를 고통받기를 거부하고, 장아의 불패를 역설하며, 쾌락의 원칙을 당당

  하게 옹호하는 태도라 불렀다.

-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단정한 처신을 기대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아홉 가지 위안] 휴식, 스포츠, 자연, 탐닉, 연대, 냉소, 일상, 독서, 정의(正義)

- 염려를 표현할 때는 실질적인 도움이 위로의 말보다 훨씬 낫다.

- 자연은 슬픔이 일으키는 문화의 위협을 겪고 난 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다.

- 인간은 타인에게서 안정감을 얻는다.

- 슬플 때는 집단의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자기 집단을 과시하려는 욕구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위로가 되는 연대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체적 안전이나 편안함과 

  관련이 깊다.

- 슬픔을 겪을 때는 안전감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비극과 슬픔을 겪으면 아무런 

  방패막이도 없이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 편안함(Comfort)란 말은 fort(성채)에서처첨 튼튼한을 의미하는 'fortis'가 어원이다.

  편안하다는 것은 성채 안에 있는 것처럼 안심이 된다는 뜻이다.

- 슬픔이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은 분노다. 냉소는 분노를 방출하는 하나의 방법. 냉소는

  희망의 반대다.

- 슬픔은 가장 침착한 인간에게 흔들림을 가르쳐 준다.(안티고네 작품 중)

- 모든 중독증의 밑바닥에는 자괴감과 수치감이 자리한다.(P 30)

- 슬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당연하게 여기는 그날그날의 소소한 활동과 기분

  상호작용에서 크나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 일상적인 일은 슬픔에 빠진 사람을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 일상적인 역할을 하게 한다.

- 불행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곤경에 대처하는 정확한 방법과 그 결과가 중요.



[슬픔의 흔적]

- 슬픔은 자기 이야기를 바꾸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변화시키는데,

  흔히 그 변화는 도발적이고 혁신적이다.

- 슬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심리적 특전은 슬픔이 에메모호함을 이해하게 해주고 

  삶의 진실이 절대 하나가 아니라 적어도 둘, 보통은 그 이상임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 슬픔을 겪은 뒤 자신과 통합해야 할 가장 더러운 두 가지는 죄책감과 자기연민이다.

- 슬픔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또 그 사람과 함께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 사람 없이 살아야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다.

- 슬픔은 과거 회귀적이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슬픔에 

  빠지면 과거로 돌아가 선사시대 인류처럼 더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 애정이 깃든 몸짓과 말 외에 남자에게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중대한 것은 울음이다.

- 비극이 벌어지면 남자들은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표창을 받비만 여자들은 옆으로 

  밀려나 있다가 정말 험하고 지저분한 일을 맡아 처리한다.

- 고인을 존경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 나는 당신과 등을 꼭 붙이고 살던 사람입니다.

- 모든 것이 와해됐을 때도 파편들을 모아 자신을 떠받칠 의미를 만들거나 최소한 

  죽지 않게 하는 것은 의미이다. 이런 의미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들이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의미를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슬픔에 빠져 있을 때는 의미가 소망을 정면으로 강타한다는 것이다.

- 죽음은 삶을 끝내지만 관계를 끝내지는 않는다.

- 사람이 죽으면 그 원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뇌 속에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 당신이 느끼는 모든 슬픔을 잊어버릴 방법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 인생에 존재했던 기억마저 삭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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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천국 - 세상을 뒤집은 골로새서 다시 읽기
브라이언 왈쉬 & 실비아 키이즈마트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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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종교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다거나, ‘신앙에 대해 심각한 개인적 사유를 깊이 있게 해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는 종교를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자 하는 마음

으로 해당 작품을 대했다가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 작품을 고를 때 이런 류 작품인지

전혀 몰랐다. 나는 그저 단순한 성경의 심도 있는 이해를 돕는 새신자를 위한 길라잡이 수준의 

작품으로만 이해했고 선택했다 -

언젠가 내가 종교에 심취해 내가 믿고 의지하는 개신교에 대해 깊이 있게 마주하게 된다면 아마도

오늘 접한 작품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에 몰두하면서 제국’ - 부가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이야기를 하면서 생뚱맞게 제국

대한 설명은 작품을 읽어야 무슨 뜻인지 알기에 여기서 생략 - 에 맞선다는 이유로 현실 저항론을

나름 제시하고 있는 저자의 얇은 식견에 대해 놀라울 뿐이었으며 저자가 제시한 대응논리라고 

하는 것이 목소리만 키우고 난리병을 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각종 이권 단체들이 보이는 일상적인 저급한 저항 논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종교의 사회 참여가 어느 선에까지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심각히 고민을 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제국을 국가로 국한해 인식했지만 작품에 몰입해 보니 꼭 그렇게 제한된 영역으로 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자, ‘선량’(?)이라는 양두구육의 탈을 쓰고 저급한 

무뇌아들이 집단 거주하다 시피 활동하고 있는 여인들(‘여의도 인간들의 약칭, 내가 만듦)제국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제국에 대한 느낌과 관점이 강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 곳곳에서 정의의 이름을 걸고 지랄병 수준으로 난리를 치는 인간군상들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이 추악한 모습으로 난리치는 행태를 보면서 제국이 어떤 

특정한 형태가 아니었음을 확인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대중들을 가짜 뉴스로 가스라이팅하는 

저급한 인텔리들의 광란에 가까운 난장의 본부요 제국의 핵심 본부가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음을 확인하고는 적이 실망과 함께 등골이 오싹해 옴을 느끼고 있다.

조만간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 밝혀지겠지만 통계조작을 통해 나라의 정책을 호도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한 인간들이 우리의 또 다른 제국이었음을 확인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작금의 언론에서 통계 조작의 주역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인간들 대다수는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추악한 제국의 설계자들 대개가 과거 한 때 주주총회 시기만 되면 매스콤에 등장해 그저 잘난 체하며 자신이 이 시대의 소액 주주의 대변자인 척, 국민 세금의 지킴이 인 척, 자신들이 찍은 기업의 대표들을 면박 주는 정의의 사도로 한 시대를 구가하였는데, 어느날 자신들이 

자신들이 비난하였던 권좌에 오른 후 그들이 비난했던 방식으로 그들 역시 제국을 만들어 왔던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유대인에 의해 끝까지 추적당해 재판정에 서야만 했던 유대인 몰살의 원흉이자 가스실의 충복독일인 아이히만을 통해 나타난 악의 평범성이 우리 사회 곳곳에 

정의의 이름으로, 역사 심판의 이름으로,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은폐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이 시대에 진정한 추악한 제국이 누구이며, 어떤 집단을 이야기하는지를 또 어떤 형태로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진정한 추악한 제국의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그 종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메두사와도 같은 

머리를 하고는 '진지전'을 펼치고 있으며 오늘도 상대의 허를 공격하기 위해 위장한 채 도광굴기

와도 같은 재림의 순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문제는 그 근원이 되는 두목의 행방이 묘연

하다는 것이다.

언제는 도로 공사와 관련된 곳에서, 대북사업 관련 자금 조사 뒷 배경으로,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된 듣도 보도 못한 여러 인물들을 정쟁의 소재로 삼게 만들면서 뒤에서 사주하거나, 일본과의

지소미아 협상연장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면서 또 오염수 방출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회와 매운탕

먹으며, 중국이 난리치는 우리의 사드 뒤에서 활동한다는 소리도 있는데 하여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막강한 뒷배가 조종하는 세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두목은 요사이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는데 잘 모르겠다.


참고로 골로새서는 주후 60~64년 경 지진으로 파괴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발굴된 적이 없는 도시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추악한 제국도 그들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제국은 이런 모습이다라고 발굴되거나 밝혀진 적이 없다. 항상 그들은 약자를 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1장 상황의 재발견 : 골로새서와 로마제국

- 골로새서와 같은 성경을 읽을 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시대와 정신은 무엇인가를 질문해

  야 한다. 우리가 필연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이 텍스트로 들고 와야 하는 질문, 위기, 기회는 

  어떤 것들인가? 우리에게 이런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다면 성경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우리를 향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P 28)

  ---> 현대의 문화적 맥락에서 성경 텍스트를 읽으려면 그 맥락에 대한 세계관적 분석이 필요한

       데 그것은 성경적 세계관에 흠뻑 젖은 것이어야 한다.

- 오늘날 현재의 혼란과 병리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할 때 우리는 좌절한다.

  포스트모던 자체가 어떤 것을 정의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차라리 이 개념을 정의되기 보다는 묘사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P 32)

- 포스트모더니티는 모든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이라 정의할 수 있다.(P 34)

- 도덕적 불안감과 더불어 모든 거대 서사와 전체성의 체계에 대한 불신을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문화는 합리주의 이후의 문화이다.(P 36)

- 어떤 신념 체제를 강요하는 것은 다른 대안들을 억압하는 패권주의일 뿐이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징은 모든 선택 안을 열어놓는 것, 곧 새로운 경험, 관점, 의례

 신념들을 어떤 식으로든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P 37)

-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성경을, 구체적으로 골로새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성경을 변화된 환경에서도 목소리와 힘을 가진 힘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P 39)

- 한 종교가 적극적으로 세계를 개종시키고 변화시키려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자원이

  바로 이미지. 세계화가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을 변화시키는 일이다.(P 44)

- '제국은 특정한 가정들에 뿌리 박은 강력한 신화에 의해 종교적으로 정당화되고, 민중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제국의 이미지를 유포함으로써 유지된다.(P 47)

- 제국의 특징은 전체주의와 동질화에 반기를 드는 포스트모던 사상과 문화의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티는 다양성과 타자성을 경축하는 반면, 제국은 헤게모니와 동질화로

  점철되어 있다.(P 48)

- 포스트모더니티는 소비주의 제국을 위협하는 사조가 아닌 그 제국을 호위하는 이데올로기다.

- 소비자 중심에 맞춰진 하나님, 포스트모던 시대에 만들어 낸 하나님, 진열대에서 고를 수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부를 수 없다.(P 53)

- 우리의 상상력이 제국의 소비주의에 사로잡히고, 자기를 정당화시키는 제국의 신화와 수사학에

  젖어 있는 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위기의 깊이를 결코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P 56)

 

 

2장 골로새서와 세계화

- 당대의 관용어로 표현하는 등 그 시대에 맞게 번역한 해석의 결과물을 탈굼(targums)이라 

  하는데 이는 텍스트를 길게 의역한 것을 일컫는 히브리 말이다.(P 60)

- ‘신약구약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신약구약의 귀로 들어야 한다.(P 68)

- ‘샬롬의 의미는 안녕이라는 뜻도 있지만 우리가 맺는 모든 삶, 관계에서 오는 축복, 윤택함

  풍성함 조화의 의미도 담고 있다.(P 68)

-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진실로 안다는 것은 그 앎의 대상과 성실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

- 성경적 의미에서 진리는 공동체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될 때 혹은 육화될 때에라야

 알 수 있다.

-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지혜의 언어는 내세지향적인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창조 세계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방식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P 77)

 

 

3장 골로새서 당시의 상황 : 제국 분별하기

- 예수는 유대인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요 유대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의 구원자(P 83)

  뿐만 아니라 죄 사함과 평화는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예수는 온 땅을 정의롭게 다스리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P 85)

- 예수가 가져오는 화해는 그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성취한, 거기에서 모든 악을

 모두 짊어졌기에 가능하게 된 평화로 예수의 평화는 가진 자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P 87)

- ‘제국은 경제적 탐욕과 욕망을 시민의 미덕으로 추앙하는 반면,

  바울은 그런 생활 방식을 우상숭배로 치부한다.(P 101)

- ‘미국이라는 제국은 경제적 진보와 세계적 통제에서 구원을 찾고 있는 반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둔 구원, 제국의 한 희생자 안에 자리 잡은 역사적 주권,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 참된 번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고대 세계에서 평화와 번영의 이미지가 불평등과 폭력의 현실을 가린 것처럼, 광고에 투영된 

  현대의 이미지들은 우리의 생활 방식이 낳은 노동 착취와 불평등, 국제적 폭력을 가리고 있다.

 

4장 제국 안에서 열매 맺기

-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뿌리를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제국의 하나였던 이집트의 노예

 였다는 사실에서 찾는다.(P 108)

- 이스라엘의 믿음의 두 기둥인 유일신 신앙과 선택 교리는 '창조''출애굽' 이야기에 기초한다.

  이 세상의 여러 민족들을 속박 아래 두려는 바빌로니아 제국과 그 제국의 신들의 맞은 편에 

  유일한 하나님 곧,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하늘과 땅의 통치자가 계신다.

  그리고 그 곁에 선택 교리가 있다. 오직 홀로 참되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 백성을 이집트, 곧 이스라엘 자손을 죽이고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던 제국의 손에서 구출

  하셨다는 믿음이 바로 이 선택 교리의 핵심이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열방의 빛으로 

  온 세상의 복으로 부르셨다이 두 기둥이야말로 성경 이야기 전체를 떠받치는 토대다.(P 108)

- 성경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향을 따라가 보면, 제국의 문제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의 의식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아 제국의 삶의 

  방식과 반대되는 삶을 살라고 부름 받는다. 제국은 자기 힘과 헤게모니를 상징하는 이미지에 

  골몰하는 데 반해이스라엘은 그와 반대되는 공동체에서 그와 반대되는 실재를 드러내도록 

  부름 받는다.(P 109)

- 이스라엘의 제국적인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그들을 그 땅에서 추방시키는 것이었다.

                                                                                                            (P 111)

- 누가복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예수가 행했거나 말했던 거의 모두가 제국에 대한 

  그리고 제국의 작동 방식에 대한 종말론적 도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P 115)

- 이스라엘 역사와 성경은 창조 세계를 풍성하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증언하며 그리고    구속의 하나님, 피조물과 이웃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또 다른 사회 윤리를 실천하는 

  삶에 대해 증거한다.(P 120)

- 예수의 복음은 정의와 희생적인 신실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P 124)

- 언약에 대한 신실함은 결국 온 세상에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 줄 터인데,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예수 이야기를 알고 있던 자들에게 바울의 말은, 제국의 윤리와는 다른 

  대안적 윤리를 따르라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그 대안적 윤리란 곧 예수 안에 뿌리를 둔 

  그리고 십자가를 통한 그 화해의 사역에 근거한 윤리를 말한다.(P 125)

 

 

5장 제국을 뒤집는 시와 상상력

-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질병은 상상력을 감퇴시킴으로써 우리를 둔감하고 타성에 젖게 만들어

  상상력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것. (P 139)

- 권력을 진리로 숭상하는 문화에서 우리는, 가장 연약한 자들을 섬김으로써 진리가 십자가 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섬김의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문화에서 우리는 진리의 

  가시적 구현체인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세우는 복음 전도와 예배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P 149)

- 우리는 우리의 삶의 구조가 제국의 우상 숭배적 영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지, 아니면 이 모든 

  삶의 구조를 창조한 주인,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주도되는지 물어야 한다.                                                                                                                  (P 155)

- 그리스도인은 다른 분의 통치를 받는 신민으로서 메시아의 보좌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 

  나라의 영역에서 살고, 가이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난 그 

  권세로 인생을 이끌어가는 이들이다. (P156)

- 기독교 공동체가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포기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한다현재의 억압적인 구조에 대한 무관심은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P159)

-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새로운 세계가 조성될 것을 상상하는 공동체다(P160)

- 이원론적 세계관, 곧 신앙과 삶, 교회와 문화, 신학과 경제학, 기도와 정치, 예배와 일상을 서로

  분리 시키는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을 사회문화적 세력과 무관한 것으로 만든다. 제국이 기대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신앙이다. 또한 삶의 나머지 영역, 곧 공적 영역에서 작동하는 상상력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제국의 요구이다. (P161)

 

 

6장 진리체제와 진리의 말씀

- 참된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고, 제국이 계속 확장되면서 온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듯이 진리의 말씀도 계속 자라면서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P 167)

- 골로새서는 몇 쪽 안 되지만, 그 안에서 우주의 본질, 인간학, 악에 대한 문제, 악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분명한 선언 등에 관한 근본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세계관 텍스트로서 독자와 청중에게 삶에 대한 비전을 제공한다.

  따라서 세계관은 삶에 대한 비전에 그치지 않고, 언제나 삶을 위한 비전이기도 하다.

   “세계관은 그 추종자들에게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는 세계에

   대한 묘사인 동시에 그 공동체에 가장 근본적인 가치들과 규범들을 제공하는 세계를

   위한 처방이다.” (P 168)

-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세계관은 세계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마치 세계의 진면목인 것처럼

  주장한다세계관의 언어는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이른바 정통의 보호자 구실을 해서 당신을 

  울타리에 가두고 창의성을 억압하고, 다른 관점에 대해 문을 꼭 닫게 만들고, 획일성과 동일성을

  강요한다.(P169)

- 골로새서가 이스라엘과 예수 이야기에 근거한 삶에 대한, 그리고 삶을 위한 포괄적 비전을 제시

  하는 세계관 텍스트라면,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P 170)

- 골로새서를 특정한 우주적 - 사회적 - 인류학적 질서의 타당성과 궁극적 진실성을 선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골로새서는 세계관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P 171)'

-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과연 그것이 믿을 만한 것인지, 아니 그것이 삶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P 172)

- 진리란 만들어지고 생산되는 것으로 그 생산 과정(모든 생산이 그렇듯이)에 권력의 강제력, 억제

  장치가 작동한다.(P 173)

- 성경 이야기 전반에 걸쳐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피조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 자신도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계신다.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그 폭력으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고 애통하는 하나님이시다. (P 182)

- 하나님 구속 사역의 대상으로 어떤 특정한 민족을 대상으로 한 이유는 열방이 빛이

  되고 모든 피조물과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화해를 증거하는 중재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P 183)

- 성경 이야기는 전체성을 띄고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창조 세계 전체를 향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려준다. 성경 이야기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전체화와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P184)

-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는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니라, 그 아들이 받은 폭력,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워진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가 골로새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P 186)

- 악의 세력들을 패배시킨 것은 거창한 모습의 신적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연약한 죽음(P187)

- 예수의 부활은 권력의 파괴적 힘을 포용한 희생자의 죽음이 바로 권력의 지배에 결정적인 

  종말을 가져왔으며, 권력자의 주장, 비난, 억압적이고 분열적인 영향력은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힘에 의해 전복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린 희생자의 힘이었다.

                                                                                                                 (P 187)

- 십자가는 약함이 강함을 이긴 승리요, 사랑이 미움을 이긴 승리였다. 십자가는 예수가 악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최악의 짓을 하도록 허용하되 악의 논리로 되받아치지 않기로 결심함으로써

  성취한 승리로 악의 세력이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에도 예수는 여전히 악에게 패배당하지 

  않았다그분은 온 세상의 악의 무게를 끝까지 짊어지셨고 마침내 그것을 견뎌내셨다."(P 188)

- 그리스도는 가해자에 의해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피해자로서 그 대적의 폭력과 배척을 모방

  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 대적을 용서하고 자기 속에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P 189)

- 골로새의 헛된 진리 체제는 배타성과 배제를 특징으로 삼는 데 반해, 복음은 포용과 용설르 

  근간으로 삼아 이방인과 유대인,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 야만인과 스구디아인, 종과

  자유인 모두를 껴안는다.(P 192)

 

 

7장 진리란 무엇인가?

- 제국은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진리란 수사를 뛰어넘은 것이며 권력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호소하고 있다.(P 196)

- 골로새서가 제시하는 세계관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이다.(P198)

- 이성에 패권을 부여하고 그것이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신념은 다른 모든 

 신념을 짓밟는다.(P202)

- 합리성을 신봉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는 첫째, 우리의 헌신의 대상은 예수이지 합리성이 아니며

  둘째는 합리성을 신봉하는 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이성에 대한 신봉은 교회 역사에서 교회의 상상력을 탈취한 가장 나쁜 우상숭배 중 하나이다.

- 객관주의는 사물의 진면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저 바깥에있는 대상에 대해 우리가 명제와 

  진술과 보고서를 작성함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P206)

- '지적인 교만이란 자율적인 인간의 사유가 일종의 세속적인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거만한 자신감을 말한다.(P210)

- 지식은 사랑의 행위, 곧 상대방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 그를 포용하는 동시에 상대가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를 포용하도록 허락하는 행위(P213)

- 근대성이 저지른 불경죄는 이성을 재판관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신앙을 이성의 판결에 순복시키고 하나님의 주권이나 성경의 권위를 믿는

  믿음을 이성에 근거해서 정당화하고 있다면 정말 무엇이 최고의 권좌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종 권위를 갖고 있는 걸까요? 이성이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요?

  성경은 이를 우상이라 부릅니다.(P214)

- 어떤 이론을 시험할 때 사람은 자신의 복잡한 신념을 그 안으로 끌고 오는데 이를 통제신념

  이라 한다

-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 실망과 적대감을 느낄 때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이 어렵다.(P221)

- 진리가 우리의 삶과 그것을 증언한다고 주장하는 공동체를 통해 구체화되지 않으면 그 진리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P 222)

- 교회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그 진리의 구현체가 되지 못할 때 다른 세계관이 

 우리에게 더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복음은 교회의 역사적, 문화적 삶을 

 통해 타당한 모습으로 구현될 때에라야 진정한 지식이 되며, 그렇게 되면 다른 

 지식들은 헛된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P223)

 

8장 충실한 즉흥 연기와 거짓 숭배

- 신명기는 매일 매순간이 율법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P228)

- 우리가 지금 즉흥 연기에 충실하려면 성경적 인생관으로 완전히 무장하고 성경 시대 이후에

  펼쳐진 교회 역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P229)

- 성경을 진지하게 읽는다는 것은 그 이야기의 취지에 충실하고 그로 인해 일관되고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229)

- 안전성과 유연성, 충실성과 창의성, 일관성과 혁신이야말로 이야기 형태의 텍스트가 오늘날 

  우리에게권위를 지니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요건이다.(P230)

-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의 일부라고 할 때, 즉흥 연기를 하는 제자의 삶은

  첫째는 성경(골로새서)에 푹 빠지는 것이고, 둘째는 세상에 푹 잠기는 일이다.(P231)

- '우상앞에 절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을 넘겨주어서그 우상이 설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해석하는 것이다.(월터 브루구만, P243)

 

 

9장 탈퇴의 윤리

- 포스트모던 시대의 윤리적 태도를 대변해 주는 또다른 현상은 허무주의다.(P257)

- 포스트모던 사조를 따른다는 것은 그런 궁극적 신념이 자리잡을 공간이 영구적으로 비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P259)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그것은 그리스도의 합법적 통치에 마음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키라는 의미다. 우리의 인생관, 세계관, 삶의 

  방향을 하나남의 오른편에 계신 천상의 그리스도가 통치하도록 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통치로 현재 삶의 모든 차원이 변혁되도록 하는 것이다.(P268)

- 바울은 절대적 도덕법이 아니라 관계 중심적 윤리를 우리에게 제공한다.(P271)

- 그리스도인이 특정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본인의 유익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관계 때문이다.(P271)

- 우리는 특정한 이야기를 채택하고 또 그 이야기에 의해 우리의 삶이 채택되는 것이 바로

  골로새서의 핵심이다.

- 땅의 것을 죽이라는 바울의 명령은 당신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제국의 상상력과 실천의 흔적을

  죽이라는 뜻이다.(P277)

-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주로서 창조 세계를 구속하고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다시 오시는 분이다.(P283)

- 폭력적인 감정은 폭력적인 언어를 낳는다.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를 품고 타인을 객체화시키고

  악마로 취급할 때, 비방과 욕설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P285)

- 오늘날 기독교가 맞은 윤리적 위기의 핵심은 바로 제국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10장 공동체의 윤리

-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적 풍조 중 하나는 모든 대안에 대한 개방성이다. 이 지점에서 

  포스트모던 다원주의는 세계적 소비주의와 만난다.(P294)

- 바울은 교회를 제국을 대체하는 대안 공동체로 묘사했다.

-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는 반드시 용서가 필요하다. 바울은 용서라는 단어를 한 문장에서 세 번

  씩이나 사용했다. 사람들이 바울이 권면하는 미덕을 옷 입지 않고 악덕의 옷을 입고 있을 대

  그것을 치유하고, 화해하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정죄가 아니라 용서공동체란 끊임

  없이 용서를 베풀면서 서로를 참고 견디는 곳이다.(P303)

-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없으면 공동체는 그런 미덕을 갖출 수 없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P306)

-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그 창조주께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P307)

-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에 토대를 두고 그 사랑을 반영하는 공동체이다.(P310)

- 경제주의의 우상숭배를 비난한다고 해서 경제생활에서 물러나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경제주의라는 것은 창조 세계에서의 인간 활동의 선한 차원 - 경제적 교환 행위 -을 절대화시킨

  것이다.(P324)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된다는 것은 생태학적 자비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334)

- 바울은 골로새 공동체에서 우상과 새긴 형상을 모두 버리고 창조주의 형상에 따라 새로워

  지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그런 갱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바울은

  편지 내내 용서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P337)

-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내주를 다음의 세 가지와 연계시킨다.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침’,

  ‘감사’ 예배가 그것이다.(P341)

- 감사는 은혜의 문법으로 하나님의 피조물을 귀하게 보살피는 행위를 낳는다

  ‘은혜는 감사를 낳고감사는 보살핌을 낳는다‘(P342)

- 왜 그리스도를 좇는 공동체가 생태학적으로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공동체는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찬송하는 예배 공동체이기 때문이다.(P344)

* 328쪽의 농산물 조작에 대한 반대논리, 가공식품에 대한 매입 반대, 즉흥 요리법 매입

  반대 등등 겉으로 보면 맞는 듯하나 한꺼플 벗기고 보면 답답한 초등학생 수준의

  주장이라는 게 나의 판단임.

 

11장 해방의 윤리

- 우리는 융통성 있게 윤리를 견지하고 가부장제와 관련해서도 제국의 경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최상이다.(P353)

- 사랑의 가부장제 이것이 바울 선생의 주장이다.

- 안식과 자유는 종이나 자유인을 불문하고 남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 제국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인 이 가부장제에 대해 바울 선생은 이제 그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가정으로 대체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P366)

* 370쪽의 저임금의 봉제공장의 대응 논리, 노동 착취에 대항하는 방법과 372쪽 텔레비전

 없애자는 논리와 아이들 육성에 문제가 있으니 학교도 없애자는 논리 그리고 아이들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자는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함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는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므로 제국의 체제에 저항하는 존재가 되도록 

  키워야 한다

  는 정신나간 주장을 읽자니 나도 모르게 썩소가 나오면서 미친놈소리가 절로 

  나왔다.

 

12장 고난의 윤리

- 화해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다. 그렇기에 이 복음을 따르는 것, 곧 폭력의 세상에서 다른 

  주권을 선포하는 길에는 고난이 따른다.(P391)

- 교회를 그리스도의 이라고 부른다. ‘이라는 은유가 교회예수동일시하고 있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교회그리스도의 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여전히 몸을

  입고 계시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몸, 곧 공동체가 생명을 주시는 그분의 현존인 것이다.(P394)

- 바울의 주된 관심사는 공동체가 믿음 안에서 성숙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통해 제국의  

  낙관주의와 거만함에 반대되는 급진적 소망을 받았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쓴 목적은 바로 공동체로 하여금 그 소망에서 떠나지 말라고 권면하기

  위함이었다.(P399)

  

                                                             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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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5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다.

페이지는 125쪽으로 그리 부담되는 길이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작품완성의 배경에 대한 세밀한 

이해가 부족하였고, 여인들 간의 구도가 머리에 확실히 잡히지를 않아 읽기를 몇 번 포기하다 

오기가 생겨서 작품에 대해, 저자에 대해 갖은 욕을 하면서 여러번 시도 끝에 주변의 방해가 

없도록 외국에 출장간 길에 해당 작품만 달랑들고 나가 포기하지 못하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완독을 마쳤다.

본 작품을 읽고 어떤 소회를 남긴다는 것 자체가 이별다운 이별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살아온 

나에게는 무슨 말은 한다해도 가식적인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기에 더 이상 작품에 대한 언급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그래도 작품에서 언급된 두 문장이 지금도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다.

 

여인에 대한 사랑함을 표현하는 극치의 두 문장

1. 내가 이 생에 감사한다면 그건 네가 있기 때문이다.

2. 당신이 떠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삶을 사랑할 것.

3. 사랑을 말할 때 사랑의 단어가 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겁거나

  가벼운 말심각하지 않은, 절대 심각하지 않은 무겁거나 가벼운 말, 눈물과 웃음이 

  필요할 뿐이다.

4. 죽은 자들에게 말하는 방법은 수 천 가지가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단 한 가지 뿐이다.

이라는 네 문구인데, 어느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이런 문구가 만들어졌는지는 작품을 직접 읽으

시면서 내가 왜 이 문장을 추전했는지를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함께 느끼시기 바랍니다.

 

외국의 이런 작품을 읽으며 우리에게도 이런 류의 작품이나 사실적 사랑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하면서 자료를 조사하던 중 과거 신문에 났었고 외국에서도 극찬을 받았던 사랑 이야기의 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1998년 경북 안동의 고성 이씨이응태(1556~1586)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쓴 한글 애도문미투리가 나왔는데,

이것은 당시 전염병으로 남편이 죽자 남편의 쾌유를 빌면서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함께 나온 애도문은 부인의 지극 정성 병간호에도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을 담은 애도문으로 밝혀졌는데, 이 애도문을 여기에 

소개하면서 작품의 소회를 대신하고자 하며 아래에 편지 내용을 옮겨 보았다.

 

원이 아버님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했지요 그런데 어찌 

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 없이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 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이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으며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 한갓 그곳에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내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 적습니다.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보여주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속에 당신을 볼 수있다고 믿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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