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천국 - 세상을 뒤집은 골로새서 다시 읽기
브라이언 왈쉬 & 실비아 키이즈마트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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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종교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다거나, ‘신앙에 대해 심각한 개인적 사유를 깊이 있게 해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는 종교를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자 하는 마음

으로 해당 작품을 대했다가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 작품을 고를 때 이런 류 작품인지

전혀 몰랐다. 나는 그저 단순한 성경의 심도 있는 이해를 돕는 새신자를 위한 길라잡이 수준의 

작품으로만 이해했고 선택했다 -

언젠가 내가 종교에 심취해 내가 믿고 의지하는 개신교에 대해 깊이 있게 마주하게 된다면 아마도

오늘 접한 작품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에 몰두하면서 제국’ - 부가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이야기를 하면서 생뚱맞게 제국

대한 설명은 작품을 읽어야 무슨 뜻인지 알기에 여기서 생략 - 에 맞선다는 이유로 현실 저항론을

나름 제시하고 있는 저자의 얇은 식견에 대해 놀라울 뿐이었으며 저자가 제시한 대응논리라고 

하는 것이 목소리만 키우고 난리병을 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각종 이권 단체들이 보이는 일상적인 저급한 저항 논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종교의 사회 참여가 어느 선에까지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심각히 고민을 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제국을 국가로 국한해 인식했지만 작품에 몰입해 보니 꼭 그렇게 제한된 영역으로 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자, ‘선량’(?)이라는 양두구육의 탈을 쓰고 저급한 

무뇌아들이 집단 거주하다 시피 활동하고 있는 여인들(‘여의도 인간들의 약칭, 내가 만듦)제국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제국에 대한 느낌과 관점이 강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 곳곳에서 정의의 이름을 걸고 지랄병 수준으로 난리를 치는 인간군상들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이 추악한 모습으로 난리치는 행태를 보면서 제국이 어떤 

특정한 형태가 아니었음을 확인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대중들을 가짜 뉴스로 가스라이팅하는 

저급한 인텔리들의 광란에 가까운 난장의 본부요 제국의 핵심 본부가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음을 확인하고는 적이 실망과 함께 등골이 오싹해 옴을 느끼고 있다.

조만간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 밝혀지겠지만 통계조작을 통해 나라의 정책을 호도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한 인간들이 우리의 또 다른 제국이었음을 확인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작금의 언론에서 통계 조작의 주역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인간들 대다수는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추악한 제국의 설계자들 대개가 과거 한 때 주주총회 시기만 되면 매스콤에 등장해 그저 잘난 체하며 자신이 이 시대의 소액 주주의 대변자인 척, 국민 세금의 지킴이 인 척, 자신들이 찍은 기업의 대표들을 면박 주는 정의의 사도로 한 시대를 구가하였는데, 어느날 자신들이 

자신들이 비난하였던 권좌에 오른 후 그들이 비난했던 방식으로 그들 역시 제국을 만들어 왔던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유대인에 의해 끝까지 추적당해 재판정에 서야만 했던 유대인 몰살의 원흉이자 가스실의 충복독일인 아이히만을 통해 나타난 악의 평범성이 우리 사회 곳곳에 

정의의 이름으로, 역사 심판의 이름으로,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은폐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이 시대에 진정한 추악한 제국이 누구이며, 어떤 집단을 이야기하는지를 또 어떤 형태로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진정한 추악한 제국의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그 종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메두사와도 같은 

머리를 하고는 '진지전'을 펼치고 있으며 오늘도 상대의 허를 공격하기 위해 위장한 채 도광굴기

와도 같은 재림의 순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문제는 그 근원이 되는 두목의 행방이 묘연

하다는 것이다.

언제는 도로 공사와 관련된 곳에서, 대북사업 관련 자금 조사 뒷 배경으로,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된 듣도 보도 못한 여러 인물들을 정쟁의 소재로 삼게 만들면서 뒤에서 사주하거나, 일본과의

지소미아 협상연장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면서 또 오염수 방출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회와 매운탕

먹으며, 중국이 난리치는 우리의 사드 뒤에서 활동한다는 소리도 있는데 하여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막강한 뒷배가 조종하는 세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두목은 요사이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는데 잘 모르겠다.


참고로 골로새서는 주후 60~64년 경 지진으로 파괴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발굴된 적이 없는 도시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추악한 제국도 그들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제국은 이런 모습이다라고 발굴되거나 밝혀진 적이 없다. 항상 그들은 약자를 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1장 상황의 재발견 : 골로새서와 로마제국

- 골로새서와 같은 성경을 읽을 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시대와 정신은 무엇인가를 질문해

  야 한다. 우리가 필연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이 텍스트로 들고 와야 하는 질문, 위기, 기회는 

  어떤 것들인가? 우리에게 이런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다면 성경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우리를 향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P 28)

  ---> 현대의 문화적 맥락에서 성경 텍스트를 읽으려면 그 맥락에 대한 세계관적 분석이 필요한

       데 그것은 성경적 세계관에 흠뻑 젖은 것이어야 한다.

- 오늘날 현재의 혼란과 병리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할 때 우리는 좌절한다.

  포스트모던 자체가 어떤 것을 정의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차라리 이 개념을 정의되기 보다는 묘사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P 32)

- 포스트모더니티는 모든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이라 정의할 수 있다.(P 34)

- 도덕적 불안감과 더불어 모든 거대 서사와 전체성의 체계에 대한 불신을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문화는 합리주의 이후의 문화이다.(P 36)

- 어떤 신념 체제를 강요하는 것은 다른 대안들을 억압하는 패권주의일 뿐이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징은 모든 선택 안을 열어놓는 것, 곧 새로운 경험, 관점, 의례

 신념들을 어떤 식으로든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P 37)

-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성경을, 구체적으로 골로새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성경을 변화된 환경에서도 목소리와 힘을 가진 힘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P 39)

- 한 종교가 적극적으로 세계를 개종시키고 변화시키려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자원이

  바로 이미지. 세계화가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을 변화시키는 일이다.(P 44)

- '제국은 특정한 가정들에 뿌리 박은 강력한 신화에 의해 종교적으로 정당화되고, 민중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제국의 이미지를 유포함으로써 유지된다.(P 47)

- 제국의 특징은 전체주의와 동질화에 반기를 드는 포스트모던 사상과 문화의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티는 다양성과 타자성을 경축하는 반면, 제국은 헤게모니와 동질화로

  점철되어 있다.(P 48)

- 포스트모더니티는 소비주의 제국을 위협하는 사조가 아닌 그 제국을 호위하는 이데올로기다.

- 소비자 중심에 맞춰진 하나님, 포스트모던 시대에 만들어 낸 하나님, 진열대에서 고를 수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부를 수 없다.(P 53)

- 우리의 상상력이 제국의 소비주의에 사로잡히고, 자기를 정당화시키는 제국의 신화와 수사학에

  젖어 있는 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위기의 깊이를 결코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P 56)

 

 

2장 골로새서와 세계화

- 당대의 관용어로 표현하는 등 그 시대에 맞게 번역한 해석의 결과물을 탈굼(targums)이라 

  하는데 이는 텍스트를 길게 의역한 것을 일컫는 히브리 말이다.(P 60)

- ‘신약구약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신약구약의 귀로 들어야 한다.(P 68)

- ‘샬롬의 의미는 안녕이라는 뜻도 있지만 우리가 맺는 모든 삶, 관계에서 오는 축복, 윤택함

  풍성함 조화의 의미도 담고 있다.(P 68)

-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진실로 안다는 것은 그 앎의 대상과 성실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

- 성경적 의미에서 진리는 공동체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될 때 혹은 육화될 때에라야

 알 수 있다.

-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지혜의 언어는 내세지향적인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창조 세계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방식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P 77)

 

 

3장 골로새서 당시의 상황 : 제국 분별하기

- 예수는 유대인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요 유대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의 구원자(P 83)

  뿐만 아니라 죄 사함과 평화는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예수는 온 땅을 정의롭게 다스리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P 85)

- 예수가 가져오는 화해는 그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성취한, 거기에서 모든 악을

 모두 짊어졌기에 가능하게 된 평화로 예수의 평화는 가진 자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P 87)

- ‘제국은 경제적 탐욕과 욕망을 시민의 미덕으로 추앙하는 반면,

  바울은 그런 생활 방식을 우상숭배로 치부한다.(P 101)

- ‘미국이라는 제국은 경제적 진보와 세계적 통제에서 구원을 찾고 있는 반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둔 구원, 제국의 한 희생자 안에 자리 잡은 역사적 주권,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 참된 번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고대 세계에서 평화와 번영의 이미지가 불평등과 폭력의 현실을 가린 것처럼, 광고에 투영된 

  현대의 이미지들은 우리의 생활 방식이 낳은 노동 착취와 불평등, 국제적 폭력을 가리고 있다.

 

4장 제국 안에서 열매 맺기

-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뿌리를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제국의 하나였던 이집트의 노예

 였다는 사실에서 찾는다.(P 108)

- 이스라엘의 믿음의 두 기둥인 유일신 신앙과 선택 교리는 '창조''출애굽' 이야기에 기초한다.

  이 세상의 여러 민족들을 속박 아래 두려는 바빌로니아 제국과 그 제국의 신들의 맞은 편에 

  유일한 하나님 곧,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하늘과 땅의 통치자가 계신다.

  그리고 그 곁에 선택 교리가 있다. 오직 홀로 참되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 백성을 이집트, 곧 이스라엘 자손을 죽이고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던 제국의 손에서 구출

  하셨다는 믿음이 바로 이 선택 교리의 핵심이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열방의 빛으로 

  온 세상의 복으로 부르셨다이 두 기둥이야말로 성경 이야기 전체를 떠받치는 토대다.(P 108)

- 성경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향을 따라가 보면, 제국의 문제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의 의식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아 제국의 삶의 

  방식과 반대되는 삶을 살라고 부름 받는다. 제국은 자기 힘과 헤게모니를 상징하는 이미지에 

  골몰하는 데 반해이스라엘은 그와 반대되는 공동체에서 그와 반대되는 실재를 드러내도록 

  부름 받는다.(P 109)

- 이스라엘의 제국적인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그들을 그 땅에서 추방시키는 것이었다.

                                                                                                            (P 111)

- 누가복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예수가 행했거나 말했던 거의 모두가 제국에 대한 

  그리고 제국의 작동 방식에 대한 종말론적 도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P 115)

- 이스라엘 역사와 성경은 창조 세계를 풍성하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증언하며 그리고    구속의 하나님, 피조물과 이웃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또 다른 사회 윤리를 실천하는 

  삶에 대해 증거한다.(P 120)

- 예수의 복음은 정의와 희생적인 신실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P 124)

- 언약에 대한 신실함은 결국 온 세상에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 줄 터인데,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예수 이야기를 알고 있던 자들에게 바울의 말은, 제국의 윤리와는 다른 

  대안적 윤리를 따르라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그 대안적 윤리란 곧 예수 안에 뿌리를 둔 

  그리고 십자가를 통한 그 화해의 사역에 근거한 윤리를 말한다.(P 125)

 

 

5장 제국을 뒤집는 시와 상상력

-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질병은 상상력을 감퇴시킴으로써 우리를 둔감하고 타성에 젖게 만들어

  상상력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것. (P 139)

- 권력을 진리로 숭상하는 문화에서 우리는, 가장 연약한 자들을 섬김으로써 진리가 십자가 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섬김의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문화에서 우리는 진리의 

  가시적 구현체인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세우는 복음 전도와 예배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P 149)

- 우리는 우리의 삶의 구조가 제국의 우상 숭배적 영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지, 아니면 이 모든 

  삶의 구조를 창조한 주인,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주도되는지 물어야 한다.                                                                                                                  (P 155)

- 그리스도인은 다른 분의 통치를 받는 신민으로서 메시아의 보좌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 

  나라의 영역에서 살고, 가이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난 그 

  권세로 인생을 이끌어가는 이들이다. (P156)

- 기독교 공동체가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포기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한다현재의 억압적인 구조에 대한 무관심은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P159)

-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새로운 세계가 조성될 것을 상상하는 공동체다(P160)

- 이원론적 세계관, 곧 신앙과 삶, 교회와 문화, 신학과 경제학, 기도와 정치, 예배와 일상을 서로

  분리 시키는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을 사회문화적 세력과 무관한 것으로 만든다. 제국이 기대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신앙이다. 또한 삶의 나머지 영역, 곧 공적 영역에서 작동하는 상상력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제국의 요구이다. (P161)

 

 

6장 진리체제와 진리의 말씀

- 참된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고, 제국이 계속 확장되면서 온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듯이 진리의 말씀도 계속 자라면서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P 167)

- 골로새서는 몇 쪽 안 되지만, 그 안에서 우주의 본질, 인간학, 악에 대한 문제, 악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분명한 선언 등에 관한 근본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세계관 텍스트로서 독자와 청중에게 삶에 대한 비전을 제공한다.

  따라서 세계관은 삶에 대한 비전에 그치지 않고, 언제나 삶을 위한 비전이기도 하다.

   “세계관은 그 추종자들에게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는 세계에

   대한 묘사인 동시에 그 공동체에 가장 근본적인 가치들과 규범들을 제공하는 세계를

   위한 처방이다.” (P 168)

-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세계관은 세계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마치 세계의 진면목인 것처럼

  주장한다세계관의 언어는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이른바 정통의 보호자 구실을 해서 당신을 

  울타리에 가두고 창의성을 억압하고, 다른 관점에 대해 문을 꼭 닫게 만들고, 획일성과 동일성을

  강요한다.(P169)

- 골로새서가 이스라엘과 예수 이야기에 근거한 삶에 대한, 그리고 삶을 위한 포괄적 비전을 제시

  하는 세계관 텍스트라면,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P 170)

- 골로새서를 특정한 우주적 - 사회적 - 인류학적 질서의 타당성과 궁극적 진실성을 선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골로새서는 세계관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P 171)'

-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과연 그것이 믿을 만한 것인지, 아니 그것이 삶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P 172)

- 진리란 만들어지고 생산되는 것으로 그 생산 과정(모든 생산이 그렇듯이)에 권력의 강제력, 억제

  장치가 작동한다.(P 173)

- 성경 이야기 전반에 걸쳐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피조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 자신도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계신다.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그 폭력으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고 애통하는 하나님이시다. (P 182)

- 하나님 구속 사역의 대상으로 어떤 특정한 민족을 대상으로 한 이유는 열방이 빛이

  되고 모든 피조물과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화해를 증거하는 중재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P 183)

- 성경 이야기는 전체성을 띄고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창조 세계 전체를 향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려준다. 성경 이야기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전체화와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P184)

-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는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니라, 그 아들이 받은 폭력,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워진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가 골로새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P 186)

- 악의 세력들을 패배시킨 것은 거창한 모습의 신적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연약한 죽음(P187)

- 예수의 부활은 권력의 파괴적 힘을 포용한 희생자의 죽음이 바로 권력의 지배에 결정적인 

  종말을 가져왔으며, 권력자의 주장, 비난, 억압적이고 분열적인 영향력은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힘에 의해 전복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린 희생자의 힘이었다.

                                                                                                                 (P 187)

- 십자가는 약함이 강함을 이긴 승리요, 사랑이 미움을 이긴 승리였다. 십자가는 예수가 악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최악의 짓을 하도록 허용하되 악의 논리로 되받아치지 않기로 결심함으로써

  성취한 승리로 악의 세력이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에도 예수는 여전히 악에게 패배당하지 

  않았다그분은 온 세상의 악의 무게를 끝까지 짊어지셨고 마침내 그것을 견뎌내셨다."(P 188)

- 그리스도는 가해자에 의해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피해자로서 그 대적의 폭력과 배척을 모방

  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 대적을 용서하고 자기 속에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P 189)

- 골로새의 헛된 진리 체제는 배타성과 배제를 특징으로 삼는 데 반해, 복음은 포용과 용설르 

  근간으로 삼아 이방인과 유대인,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 야만인과 스구디아인, 종과

  자유인 모두를 껴안는다.(P 192)

 

 

7장 진리란 무엇인가?

- 제국은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진리란 수사를 뛰어넘은 것이며 권력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호소하고 있다.(P 196)

- 골로새서가 제시하는 세계관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이다.(P198)

- 이성에 패권을 부여하고 그것이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신념은 다른 모든 

 신념을 짓밟는다.(P202)

- 합리성을 신봉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는 첫째, 우리의 헌신의 대상은 예수이지 합리성이 아니며

  둘째는 합리성을 신봉하는 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이성에 대한 신봉은 교회 역사에서 교회의 상상력을 탈취한 가장 나쁜 우상숭배 중 하나이다.

- 객관주의는 사물의 진면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저 바깥에있는 대상에 대해 우리가 명제와 

  진술과 보고서를 작성함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P206)

- '지적인 교만이란 자율적인 인간의 사유가 일종의 세속적인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거만한 자신감을 말한다.(P210)

- 지식은 사랑의 행위, 곧 상대방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 그를 포용하는 동시에 상대가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를 포용하도록 허락하는 행위(P213)

- 근대성이 저지른 불경죄는 이성을 재판관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신앙을 이성의 판결에 순복시키고 하나님의 주권이나 성경의 권위를 믿는

  믿음을 이성에 근거해서 정당화하고 있다면 정말 무엇이 최고의 권좌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종 권위를 갖고 있는 걸까요? 이성이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요?

  성경은 이를 우상이라 부릅니다.(P214)

- 어떤 이론을 시험할 때 사람은 자신의 복잡한 신념을 그 안으로 끌고 오는데 이를 통제신념

  이라 한다

- 우리는 공동체 내에서 실망과 적대감을 느낄 때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이 어렵다.(P221)

- 진리가 우리의 삶과 그것을 증언한다고 주장하는 공동체를 통해 구체화되지 않으면 그 진리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P 222)

- 교회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그 진리의 구현체가 되지 못할 때 다른 세계관이 

 우리에게 더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복음은 교회의 역사적, 문화적 삶을 

 통해 타당한 모습으로 구현될 때에라야 진정한 지식이 되며, 그렇게 되면 다른 

 지식들은 헛된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P223)

 

8장 충실한 즉흥 연기와 거짓 숭배

- 신명기는 매일 매순간이 율법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P228)

- 우리가 지금 즉흥 연기에 충실하려면 성경적 인생관으로 완전히 무장하고 성경 시대 이후에

  펼쳐진 교회 역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P229)

- 성경을 진지하게 읽는다는 것은 그 이야기의 취지에 충실하고 그로 인해 일관되고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229)

- 안전성과 유연성, 충실성과 창의성, 일관성과 혁신이야말로 이야기 형태의 텍스트가 오늘날 

  우리에게권위를 지니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요건이다.(P230)

-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의 일부라고 할 때, 즉흥 연기를 하는 제자의 삶은

  첫째는 성경(골로새서)에 푹 빠지는 것이고, 둘째는 세상에 푹 잠기는 일이다.(P231)

- '우상앞에 절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을 넘겨주어서그 우상이 설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해석하는 것이다.(월터 브루구만, P243)

 

 

9장 탈퇴의 윤리

- 포스트모던 시대의 윤리적 태도를 대변해 주는 또다른 현상은 허무주의다.(P257)

- 포스트모던 사조를 따른다는 것은 그런 궁극적 신념이 자리잡을 공간이 영구적으로 비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P259)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그것은 그리스도의 합법적 통치에 마음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키라는 의미다. 우리의 인생관, 세계관, 삶의 

  방향을 하나남의 오른편에 계신 천상의 그리스도가 통치하도록 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통치로 현재 삶의 모든 차원이 변혁되도록 하는 것이다.(P268)

- 바울은 절대적 도덕법이 아니라 관계 중심적 윤리를 우리에게 제공한다.(P271)

- 그리스도인이 특정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본인의 유익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관계 때문이다.(P271)

- 우리는 특정한 이야기를 채택하고 또 그 이야기에 의해 우리의 삶이 채택되는 것이 바로

  골로새서의 핵심이다.

- 땅의 것을 죽이라는 바울의 명령은 당신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제국의 상상력과 실천의 흔적을

  죽이라는 뜻이다.(P277)

-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주로서 창조 세계를 구속하고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다시 오시는 분이다.(P283)

- 폭력적인 감정은 폭력적인 언어를 낳는다.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를 품고 타인을 객체화시키고

  악마로 취급할 때, 비방과 욕설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P285)

- 오늘날 기독교가 맞은 윤리적 위기의 핵심은 바로 제국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10장 공동체의 윤리

-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적 풍조 중 하나는 모든 대안에 대한 개방성이다. 이 지점에서 

  포스트모던 다원주의는 세계적 소비주의와 만난다.(P294)

- 바울은 교회를 제국을 대체하는 대안 공동체로 묘사했다.

-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는 반드시 용서가 필요하다. 바울은 용서라는 단어를 한 문장에서 세 번

  씩이나 사용했다. 사람들이 바울이 권면하는 미덕을 옷 입지 않고 악덕의 옷을 입고 있을 대

  그것을 치유하고, 화해하고,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정죄가 아니라 용서공동체란 끊임

  없이 용서를 베풀면서 서로를 참고 견디는 곳이다.(P303)

-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없으면 공동체는 그런 미덕을 갖출 수 없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P306)

-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그 창조주께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P307)

-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에 토대를 두고 그 사랑을 반영하는 공동체이다.(P310)

- 경제주의의 우상숭배를 비난한다고 해서 경제생활에서 물러나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경제주의라는 것은 창조 세계에서의 인간 활동의 선한 차원 - 경제적 교환 행위 -을 절대화시킨

  것이다.(P324)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된다는 것은 생태학적 자비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334)

- 바울은 골로새 공동체에서 우상과 새긴 형상을 모두 버리고 창조주의 형상에 따라 새로워

  지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그런 갱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바울은

  편지 내내 용서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P337)

-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내주를 다음의 세 가지와 연계시킨다.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침’,

  ‘감사’ 예배가 그것이다.(P341)

- 감사는 은혜의 문법으로 하나님의 피조물을 귀하게 보살피는 행위를 낳는다

  ‘은혜는 감사를 낳고감사는 보살핌을 낳는다‘(P342)

- 왜 그리스도를 좇는 공동체가 생태학적으로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공동체는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찬송하는 예배 공동체이기 때문이다.(P344)

* 328쪽의 농산물 조작에 대한 반대논리, 가공식품에 대한 매입 반대, 즉흥 요리법 매입

  반대 등등 겉으로 보면 맞는 듯하나 한꺼플 벗기고 보면 답답한 초등학생 수준의

  주장이라는 게 나의 판단임.

 

11장 해방의 윤리

- 우리는 융통성 있게 윤리를 견지하고 가부장제와 관련해서도 제국의 경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최상이다.(P353)

- 사랑의 가부장제 이것이 바울 선생의 주장이다.

- 안식과 자유는 종이나 자유인을 불문하고 남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 제국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인 이 가부장제에 대해 바울 선생은 이제 그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가정으로 대체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P366)

* 370쪽의 저임금의 봉제공장의 대응 논리, 노동 착취에 대항하는 방법과 372쪽 텔레비전

 없애자는 논리와 아이들 육성에 문제가 있으니 학교도 없애자는 논리 그리고 아이들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자는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함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는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므로 제국의 체제에 저항하는 존재가 되도록 

  키워야 한다

  는 정신나간 주장을 읽자니 나도 모르게 썩소가 나오면서 미친놈소리가 절로 

  나왔다.

 

12장 고난의 윤리

- 화해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다. 그렇기에 이 복음을 따르는 것, 곧 폭력의 세상에서 다른 

  주권을 선포하는 길에는 고난이 따른다.(P391)

- 교회를 그리스도의 이라고 부른다. ‘이라는 은유가 교회예수동일시하고 있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교회그리스도의 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여전히 몸을

  입고 계시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몸, 곧 공동체가 생명을 주시는 그분의 현존인 것이다.(P394)

- 바울의 주된 관심사는 공동체가 믿음 안에서 성숙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통해 제국의  

  낙관주의와 거만함에 반대되는 급진적 소망을 받았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쓴 목적은 바로 공동체로 하여금 그 소망에서 떠나지 말라고 권면하기

  위함이었다.(P399)

  

                                                             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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