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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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선생의 이야기를 읽거나, 듣다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영 안 좋은 경우가 왕왕 있다.

그것은 아마도 빈틈이 없는 논리와 막히지 않고 술술 풀리는 말씀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왜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선생의 말씀을 읽거나, 듣다보면 그간 잊고 살았던 나의 무식함을 자각하게 해 주기도 하지만 그 무식함을 스스로 보충하게 만들어 도전하게 만들지만 이내 그 높은 벽을 

인식하고는 곧바로 좌절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짜증이 난다

하지만 선생의 작품에 손이 자주 가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수업으로 명명된 본 작품의 내용 역시 기존에 그 분이 가지셨던 기존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으로 마지막을 정리하고 계시다.

작품에서 여러 말씀을 하고 계시지만 유언처럼 하신 말씀 중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는 말씀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구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서평이 짧아 그분에 대한 존경심이 낮거나 그분의 가르침이 가벼웠다고 지레짐작하지 말고 선생을 아는 많은 이들이 본 작품을 직접 읽으며 작품 행간에 숨겨진 그분의 숨결을, 그분이 남겨진 이들에게 하시려고 했던 말씀을 직접 파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선생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려 했던 기프트를 찾으셨으면 합니다.

 

- 풀을 뜯어먹는 소처럼 독서하라.

- 덮어놓고 살지 말라.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고 있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우리 시대가 감쪽같이 덮어놓고 있는 게 무엇이라 

  생각하나그것은 죽음이네......죽음이란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유리그릇.

- ‘()’이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으로, 나의 운은 항상 남의 운과 연결되어

  있기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면 예외 없이 좋은 운이 들어온다.

   --->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난 운이다.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 그리스적 운명론이란, 있는 힘껏 노력하고 지혜를 끌어 모아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는 것.

   --->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세계가

         있다.

-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지혜의 출발이다.

- 인간이 노력할 수 있는 세계에 운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

- 질문이란 자기 모순적이고 연약한 인간이 미스터리한 세계와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며 내가 낮선 타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 두려움은 무서움이라기보다는 다른 세계로 확장되기 직전의 긴장과 떨림에 가까웠다.

- 빈자들은 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이웃의 부탁을 선선하게 들어주는 한편

  부자들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 없기에 이웃을 신뢰하지도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 생각을 다루는 인지론’, 실천을 다루는 행위론', 표현을 다루는 판단론인간으로 

  풍부하게 누리고 살아가려면 이 세 가지 영역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 과학과 예술이 대립하는 이유는, 과학은 모든 것을 비인간으로 가정하고, 예술은 

  모든 것을 인간으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 젊었을 때는 관심이 최우선이었고, 사오십 대는 관찰이고, 늙어지니 관계만 

  남는다.

- 육체의 명료성과 지각의 명료성은 가뭄에 비 내리듯 서로의 상호성으로 몸을 적셔 

  늦지 않게 우리를 지혜의 바다로 이끈다.

- 인간은 지우개 달린 연필이야. 연필은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있고, 지우개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있잖아.

- 박쥐가 걸리던 코로나도 인간이 걸리고, 닭이 걸리던 조류인플루엔자도 인간이 걸려,

  그럼 무엇으로 짐승과 사람을 구별할까? 그것은 눈물이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고난을 통해서만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다.

-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이다.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작품을 읽으며 불현 듯 든 생각이 있다아니 정확한 이야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다.


돌아가신 선생을 비롯하여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스님 등과 같이 한 시대의 사표와도 같으셨던 분들이 살아생전 우리의 민생을 이끄는 정치인들을 향해 따끔한 가르침을 

주신 적이 있었던가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내 기억 속에 없는 것을 보니 - 있었어도 아마 큰 임팩트가 없어 기억되지 못할 수 있다 -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마지막 수업은 정작 필요한 인간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어야 하는데....

그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인간으로서의 기본 함량이 부족한 일부 

인간들이 저 잘났다고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 저기 세치 혀를 놀리며 시대의 지식인양, 

서민의 대변자인양 난리치고 있는 아주 우스운 형국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수준 낮은 모습을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으로 착각하고 자신들이 뽑은 정치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대리 만족하고 있는 한심한 지역구민들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최진석 교수(, 서강대 철학과 교수)라는 분이 최근 집필하신 건너가는 자라는 작품의 35쪽에 보면

유권자들의 책임이 더 막중합니다. 정치는 시민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라는 문구가 있는데, 작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더욱 큰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는 자칭 핫 한 인물들을 뽑은 지역구민들이 더 문제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질 낮은 지역 구민들은 함량 미달의 정치인들과 야합해 망언과 수준 낮은 굿판을 오늘도 신나게 벌이고 있지만, 누구도 그런 행동을 질타하거나 자제시키기는커녕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으며 그런 난맥상의 결과가 심화되면 자신에게 큰 이득이 될 것으로 착각한 무리들은 자신들이 법이고 진리인양대다수의 서민 고통은 외면한 채 난맥상을 오늘도 철저히 즐기고 있는 형국이다.

함량 미달 정치인들을 뽑은 지역구민들과 난맥상을 즐기는 이들에게 위에서 언급한 

교수님의 작품 말미에 나와 있는 문구

고삐(철학)를 잡지 않고 현실만 중시하는 태도로는 한 걸음도 건너 갈 수 없습니다.‘

를 전하고자 하는데, 무식한 나도 이 문구는 이해되는데 여의도 멤버들도 이해했으면 한다

여간 내 지역구에 한심한 인간이 뽑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저런 상황에 실망하다 우연히 발견한 참다운 인간 구분 방법에 관한 하나의 팁을 여기에 공개하고자 한다.


최근 모 야구선수 마약류 투약과 관련된 기사를 보다 파악한 사실인데 - 남들은 어찌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소름이 돋았음 - 문제가 된 선수의 문제 의약품 투약 전 모습과 투약 후 체포된 직후의 모습을 비교 해 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또 특정 정치인과 지리한 싸움을 이어가며 네가 틀렸고 내가 맞니 아니니 하고 외치는 어느 인물에 대해 폭로 전, 후의 모습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비교해 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현재의 이슈 인물의 진실성을 정확히 알려면 해당 인물의 과거와 현재의 인물 

사진을 비교해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한 번 해 보시기를 권유하는 바이다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있다.

워낙 안면이 두꺼워 변화가 잘 감지되지 않는 인간들이다.

매의 눈으로 이들을 살펴보니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잘 웃는다는 특징이 있는데 특히 자신이 불리할 때마다 더욱 잘 웃는다.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표와도 같으신 분들은 두꺼운 안면의 소유자들을 대상으로 

마지막 수업을 하셨어야 한다.

제발 자중하고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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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질문법 - 최고들은 무엇을 묻는가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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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한 달에 한 번 정도 중고서점을 탐방하는 버릇이 있다. 거기서 우연히 마주한 작품이다.

나름 의미가 있는 내용의 작품이었는데....왜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였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이런 작품이 우리 독서계에서 선택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을 잘 안 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내게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고, 독서 시간이었다.

 

작품은 큰 틀에서 두 가지 사항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불치하문(不恥下問)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둘째는 수치불문(羞恥不問)으로 모르면서 묻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라였다.

그러면서 아래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1)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며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며

2) 삶은 문제를 내주고 언제까지 풀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알아서 문제를 내고 알아서

   문제에 답을 해야 한다. 문제를 푸는 건 쉽다. 문제를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면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면 나머지는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질문이 중요한 것이다.

3) 생각하지 않으면 질문할 수 없다. 반대로 질문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은 질문을 받는 순간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나만이라도 위와 같은 생각을 정리해 살아가고자 하며 우리 여의도에서 입만 열면 국민의 대표라고 외치시는 분들에게 공부 좀 하라고 이 책을 정중히 권하는 바이다.

 

- 행복은 누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 자기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질문이 중요하다.

- 변화(變化)를 위해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

  첫째, 정말로 변화를 절실히 원하는가?

  둘째, 변화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가?

  셋째, 새로운 생활 습관을 만들 수 있는가?

  변화는 내가 간절히 워하는 것으로부터 온다. 싫어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것, 간절히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목표가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비극의 씨앗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목표는 잠재력

  을 발휘하게 한다잠재력은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 사람간의 벽을 없애는 방법이 바로 인사하고, 질문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것이다질문은 연결이다.

- 대인관계의 출발점은 상대에 대한 관심이다. 관심을 갖는 것은 최고의 사교 도구이다.

  그런데 관심과 관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는 데 그것이 바로 질문이다.

- 우리 사회가 냄비처럼 끓었다 식었다는 반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식과 식견의 

  부족 때문이다.

-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확실한 방법은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 성공하는 리더의 필수 덕목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 성공하는 질문의 전제조건 1) 겸손, 2) 상대에 대한 존중, 3) 자기 훈련

- 지시 받은 사람은 팔과 다리만을 사용하지만 질문 받은 사람은 머리를 사용한다.

- 고수의 생각법

  ▶ Key Point 1 관점의 경직화 현상 배제

   : 외부인의 관점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사의 제품을 바라보라

     ---> 1) 진실되게 경쟁사와의 장단점을 소비자 눈높이에서 비교 분석해라

            2) 소비자의 관점으로 질문하라


  ▶ Key Point 2 시간의 축을 바꾸는 질문을 하라

   : 결정은 현재를 기준으로 하지만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질문을 하라

     즉, 미래의 자신이 지금의 결정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 1) 환갑이 되었을 때 아이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2) 현재의 삶이 팍팍하다고 늙어서까지 팍팍하게 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힘이 있는 지금 더 팍팍한 삶을 사는 게 어떤지?


  ▶ Key Point 3 이렇게 질문해 봐라

     1)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물으라

       EX)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봐. 왜 그렇지요?, 이게 맞는

            말입니까다시 한 번 정확하게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2) 정확히 묻고 넘어가라

       EX) 그게 무슨 뜻이지?, 핵심이 뭐야?, 왜 그렇지?

     3) 나라면 어떻게 할까? , 비난대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

     4)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뭘까?

     5) 정말 중요한 게 뭘까? 이 일을 왜 해야 할까


  ▶ Key Point 4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보라

    EX) 힘들게 하는 부하 직원에 대한 역질문 

          : 당신이 그 시절엔 상사의 지시를 잘 들었습니까?


  ▶ Key Point 5 항시 노력하라

   1)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하여 질문하라. ---> 좋은 질문은 호감을 낳는다

   2) 공부하지 않고, 아는 게 없고, 무식하기 때문에 질문을 못한다.

   3) 궁금증을 갖고 가지 말고 즉시 질문하라 ---> 마음의 공간을 여는 최고의 기술

   4) 누군가를 만날 때 목적성을 없애려 노력하라

   5) 원하는 것을 질문하라

   6)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경청을 잘해야 한다.

 

진부한 이야기로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확인하고 싶고 되새기고 싶은 내용이 있어 여기에 정리해 보았다.

 

- 좋은 팀워크를 만들기 위한 행동규범

  1)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중요하다고 굳게 믿어야 한다

  2) 주어진 일이 자신과 조직 전체에도 중요하다 믿어야 한다

  3) 팀의 분명한 목표와 개인의 명확한 역할이 있어야 한다

  4) 팀원들이 서로 신뢰해야 한다

  5)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야 한다


-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 위해서는

  1) 직원이 발언하는 도중 말을 끊지 마라

  2) 직원의 발언을 요약해 다시 언급한다

  3)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흔쾌히 인정하라

  4) 참석자 전원에게 발안 기회를 주어라

  5) 곤경에 빠진 팀원에게 좌절감을 털어놓도록 독려할 수 있어야 한다

  6) 개인적 비판금지, 갈등은 공개적으로 토론하여 해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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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자리로 - 영광의 그분과 거룩한 발맞춤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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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 종교 관련자  7,  일반신도 2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분의 작품으로 이전에도 저자의 작품 몇 권을 접해 보았었던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난해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거의 매 쳅터를 3~4번씩 읽으며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은 여정이었고 완독은 

했지만 무엇을 읽었고, 저자의 주장이 무엇인지 내가 정리한 아래 요약 사항을 읽어 

보아도 기억이 잘 나지를 않으니 성공한 독서의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하기가 상당히 

미안할 정도이다.

종교적 소양이 나처럼 그다지 높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본 작품을 쉽게 선정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짜증부터 날 수 있으니....

 

 

[ 1. 내 기도가 통하는지 검증할 수 있는가?]

- 모든 일이 사람들이 기도한 대로 되지는 않는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그 사실로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기도의 효력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기도는 요청이기 때문이다.

- 생각 없는 기도는 천국에 상달되지 않는다. 말로만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 주신다. 그분이 기도에 응답

 하시는 것은 그 계시에 따르는 부수적 결과이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 그분이 행하시는 일도 알 수 있다.

- 하나님이 기도를 만드신 목적은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유발하는 존재로서의 특권을 부여

  하시기 위해서이다.(파스칼)

- 내 기도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이 보완될 일은 없다

 즉 그분의 전체 목적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목적이 실현되는 방식은 피조물인 우리가 하는 행동에 따라 달라지며,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 기도는 자동판매기가 아니다. 마법이 아니다. 하나님께 건네는 조언도 아니다.

 다른 모든 행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하는 행위도 끊임없는 하나님의 행위와 분리되서는 

 안 된다모든 유한한 존재가 어떤 일을 유발하는 행위를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행위 안에서만

 존립한다.

- 가망성이 전혀 없던 우리의 기도가 승낙되어도 성급히 자기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비약

  해서 결론짓지 않는 게 좋다. 우리가 강하다면 그분이 우리를 덜 살살 대하실지도 

  모른다우리가 용감하다면 그분이 우리를 격전지로 보내 훨씬 적게 지원하시면서 

  훨씬 위급한 진지를  방어하게 하실지도 모른다.

-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드릴 대상이자 그의 안에서 그가 기도하도록 추동하시는 분이다

  즉 도달하려는 목적지이자 원동력이시다. 아울러 그분은 목적지로 향해 가는 길 내지는 

  다리이시다.

 

[ 2. 하나님이 내 필요를 이미 다 아시는데 굳이 왜 구하는가?]

- 기도의 효력은 일단 나타났다 하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모두 뛰어넘는다.

  그래서 기도를 들어주시거나 거부하실 재량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이 조건이 없다면 우리는

  기도 때문에 망할 것이다.

 

[ 3. 기도가 짐스러운가?]

- 기도를 할 때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생각도 실어야 한다.

- 아침 기도를 아직 아무 것도 하기 전이니 오늘 하루를 흠 없이 시작하게 하소서와 같이 드려라.

 

[ 4. 시시콜콜 내 일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건 염치없는 일인가?]

- 우리가 숨김없이 기도 내용을 다 내놓으면 하나님이 지나친 부분을 알맞게 조정해 주신다.

- 질서가 바로 잡힌 사고방식은 기도로 구할 복이지 기도하기 위해 꾸며 입는 옷이 아니다.

- 하나님께 유치한 것을 구할 줄 모르면 아마 큰 것도 쉽게 구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고상해서도 안 되나 우리가 작은 일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위엄

  보다는 우리의 체면 때문이다.

 

[ 5. 기도와 하나님의 섭리는 어떻게 맞물리는가?]

- 자연의 모든 사건은 자연법의 작용이 아니라 모두 앞서 일어난 사건이 낳은 결과이다.

- 창조의 순간에 하나님은 최초의 사건을 법칙의 틀에 넣어 시동을 거셨고, 그리하여 자연사

  전체를 정해 놓으셨다. 역사의 모든 부분을 내다보고 그렇게 의도하신 것이다.

  ---> 결국 모든 물리적 사건은 수많은 목적에 부합하도록 이미 결정된 상태다.

- 하나님은 우주를 먼 옛날에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 순간(매순간) 창조하고 계시다.

- 어떤 일은 정말 내 선택에 달려 있다. 나의 자유로운 행위가 우주의 형성에 기여한다

 이 기여는 영원 속에서 또는 창세전부터이루어졌으나 다만 순차를 따라 특정 시점에 내게 

 인식될 뿐이다---> 모든 사건이 예외 없이 기도 응답임을 믿어야 한다.

-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들으시되 무조건 다 구하는 대로 주시지는 않는다.

- 일이 기도한 대로 되는 경우 당신의 기도는 늘 거기에 기여했다. 일이 반대로 되더라도 당신의

  기도는 무시되지 않고 참작되었다. 다만 당신의 궁극적 유익과 온 우주의 유익을 위해 거부

  되었을 뿐이다.

 

[ 6. 기도하려면 병적이리만치 내 죄를 성찰해야 하는가?]

- 자신의 아는 결점을 꾸준히 직시하고, 변명 없이 하나님 앞에 가져가 진지하게 용서와 은혜를 

  구하며 힘닿는 한 더 나아지기로 결심할 때 치명적 결점도 서서히 눈에 들어 온다.

- 자신의 죄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를 벌충하려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생각한다.

- 자신의 죄를 제대로 알고 회개하려는 진지한 시도는 결국 홀가분하게 짐을 더는 과정이다.

  ---> 치통이 있어 치과에 가야 할 때와 썩은 이를 뽑고 나서 개운한 통증이 점차 가라앉고 

       있음을 알 때의 차이와도 같다.

 

[ 7.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할 덫은 무엇인가?]

- 기도를 하려면 자기 속에 막연한 감정이 아닌 의지와 지식에 올바로 집중해야 한다.

- 기도자의 시선이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에게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 기도 중에 영혼의 속살이 다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 기도는 솔직한 회개를 기본으로 하는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거짓 영성을 조장하지 말라.

- 이웃이나 우리의 원수를 외면하여 모든 관심의 중심이 자기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 8. 기도를 꾸준히 실천하려면?]

-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낳는 것은 성령의 실재 임재이지 임재의 느낌이 아니다. 임재 의식은 

  덤으로 선물이며, 주실 때 감사하면 그뿐이다.

- 양손에 짐이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짐이 늘 죄나 세상 염려는 

  아닐 겁니다. 우리의 방식대로 그분을 예배하려는 조급한 시도도 때로는 짐이 되니까요.

  가장 단골로 기도를 방해하는 잡념은 중대한 내용이 아니라 잠시 후에 하거나 삼가야 할 일과

  같은 자잘한 내용이다.


[ 9. 적당히 내 것을 챙기며 기도하는 것이 가능한가?]

- 하나님은 우리의 거듭되는 실패에 무한히 자비로우시지만, 고의적 타협을 용납하기로 약속하신

  적은 없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실 것도 결국은 다름 아닌 그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자신을 주실 수 있으려면 우리가 아집을 버리고 영혼을 그분께 드려야 한다.

- 그분은 사랑이시며 복을 주셔야만 하기에 권한도 절대적이다. 그분이 복을 주시려면 우리가 

  그분의 소유가 되어야만 한다.

- 위와 같은 사상에 경각심을 일깨운 말들

  1) 만일 하나님을 얼마나 섬길지에 대해 그분과 함께 계약서를 작성한다면, 결국 양측의 서명을

    모두 다 당신이 한 셈이다.

  2) 마지막 날에 많은 사람이 거부당하는 이유는 구원에 시간이나 정성을 전혀 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덜 들여서이다.

  3)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대신 무엇을 선택했든 결국 아무런 차이가 없다.


[10. 어떻게 진짜나로서 진짜 그분앞에 설 것인가?]

- 모든 기도에 앞서 우리는 “‘진짜 나로서 진짜 당신께 말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 주님, 우리의 기도를 그대로 듣지 마시고 어눌한 은유를 주님의 천의무봉으로 통역하소서

 

[11. 다윗처럼 즐거이 기도하려면?]

- 빛들의 아버지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하나님의 교훈을 알게 

  된다고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은혜를 베푸셔서 날마다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믿음이 자라고 아버지의 

  거룩한 말씀을 더욱 깨닫게 하소서


[12. 기도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똑똑히 주시하는 한 늘 희망이 있지만, 문제가 없는 척한다면 희망도 

  없다.

- 아버지여, 저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제가 너무 무모해서 제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고집하지도 말게 하시고, 너무 소심해서 꼭 필요한 노력을 그만두게도 말게 하소서.


[13.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가운데 기도하고 있는가?]

- 하나님께 다가가되 그분을 종착지와 목적이 아니라 경유지와 수단으로 대한다면

 사실은 그분께 가는 것이 아니다.

 

[14. 고난이 영혼에 유익하다는데 고난을 면하려고 기도해도 되는가?]

- 고통스러운 경험이 주는 유익이란 고난당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긍휼이 샘솟아 자비의 행위로 연결된다.

- 고난의 구속 효과는 주로 반항 의지를 누그러뜨리는 성질이 있다. 본래 고행을 실천하면 의지가

  더욱 강해지지만, 고행이 유익하려면 (치열한)의지를 단속할 수 있어야 한다.

- 환난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평소에 합법적 방법으로 힘써 자신의 본능적

  악을 삼가고 본능적 선을 추구했어야 한다.

- 하나님의 경우든 인간의 경우든 절대적 뜻과 상대적 뜻을 구분해야 한다.

  절대적인 뜻을 품고 치아를 뽑는 사람은 없지만, 만성 치통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이를 뽑겠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뜻이다. 마찬가지로 피조물이 겪는 최소한의 고통조차도 결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은 아니지만 다른 대안보다는 차라리 그게 그분의 뜻일 수 있습니다.

 

[15. 구해도 하나님이 거듭 안 된다고 하실 때 어떻게 할 것인가?]

- 불안은 죄가 아니라 고통이다. 모든 고통처럼 불안도 생각하기에 따라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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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전쟁, 역사 그리고 나, 1450~1600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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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2


작품 서문에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와 우리의 

구분선을 찾아보고그 둘은 어떤 점에서 갈라지는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진정한 나는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 8)

이라고 언급했는데, 본 작품을 읽은 다른 독자 분들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이런 내용

을 어찌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위와 같이 밝힌 내용을 완벽히 찾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 들 수 있겠으나 전체적인 내용이 중언부언이고 확인된 사실에 대한 서설이 너무 많았고 그마저도 중복된 채 이야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점으로 인해 완전히 실패한 독서의 시간이었다고 자평하고자 한다.

내가 이렇게 밝히는 이유 또 한가지를 추가해서 든다면 이전 작품 독서 후 남긴 후기에서도 밝혔던 것과 유사하게 저자가 자신의 논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언급하고 있는 여러 고전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너무 부족했기에 아쉬움이 더 크게 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history)우리가 기억할 만한 것들의 이야기인 반면, ‘개인사(lifestory)’는 내가 기억할만한 것들의 이야기로, 르네상스 이전과 이후의 역사 속에 나타난 여러 사실들을 어떤 입장에서 기록하였는지를 저자는 심층 분석하고 있다.


회고록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혹은 그때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기록할만한 것들을 쓴 문헌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회고록을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바라본 최초의 근대인이 남긴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20세기의 전쟁 회고록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자아에 대한 성찰을 기록한 것으로서, 이때 개인은 근대인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인데 반해, 민족 영웅담은 민족 전체, 우리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작품은 이 큰 틀에서 전개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초번에 언급된 내용이 후반부로 갈수록 중언부언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거나 뭔가 획득할 만한 깨우침을 던져주는 작품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우리의 여의도에서 활개치는 찌질한 인물들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짜증나는 독서

시간이었다.


- 회고록의 정의에 대해 가장 광범위한 연구를 한 사람은 쿠페르티(Kuperty)'인데 그는,

  역사적 담론과 개인적인 담론의 조합, 역사와 개인사의 조합이 바로 회고록의 정의라    주장하면서 회고록의 특징으로

  1) 불명예를 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 행동을 변호하기 위해  

  2) 회고록 저자가 과거에 수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3) 일인칭 단수 시점의 집필 방식이 많은 이유는 중요성이나 파급효과 보다는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서술이 많았다는 것이고

  4) 집필에 따른 연대기적 틈새를 지적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 중심의 이야기가

     중심이며

  5) 가장 중요한 의미는 역사와 개인사의 조합이었다.

-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문학으로 보고, 문체나 글의 재미가 진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독자를 속일 의도가 전혀 없는데도 허구적인 내용을

  목격담처럼 포장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따라서 목격담과 진실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을 읽다

  보면, 진실의 생산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한 글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 73쪽의 권위확보라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몽뢱실록에 관한 내용으로 이를 자세히 곱씹어 보면 오늘의 우리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작태가 어느 정도 파악될 것이라 생각된다.

- 르네상스 시대 전사 귀족들의 머릿속에서 진실과 가장 깊게 연관된 것은 목격담이 

  아니라 명예였다.

   ---> 자신이 직접 보거나’,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뛰어난 사람들이 들려주거나 

         기록한 일

   ---> ‘믿을 만한 사람이란 보통 귀족과 동의어로 귀족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은 목격담이 아니라 명예였다.

   ---> 회고록 저자가 믿을 만한 사람의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고 쓴다면

         그것은 명예로운 사람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뜻이지 그 사람이 믿을 

         만한 목격자라고 확신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 르네상스 시대의 회고록 저자들과 역사가들이 진실만을 말한다고 맹세한 것은 

         대개 거짓말을 자제하겠다는 뜻이다.

-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에 맞서 반박하려면 반드시 손에 무기를 들고 피를 흘려야 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에 거짓말은 가장 흔한 결투 사유였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을 정당화하고 글의 권위를 확보

  하기 위해 목격담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은 지독히 반()개인주의적인 문헌으로 저자들이 자기만의

  독특한 고생담을 언급하지 않거나 개인의 감정보다는 집단의 감정 표현이 우선시 

  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20세기 회고록 저자들은 자신이 군대라는 조직과 갈등을 빚었던 사건에 초점

  을 맞추거나 군대나 국가의 이해관계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각각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평가한다.

  ---> 르네상스 시대의 부대는 일부 중요한 부대들만 빼면 대부분 개인들이 임시로 

        모인 집단으로 각자가 자기만의 목적을 위해 싸우고 군대 전체를 묶어주는 

        공통의 정체성이 없었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만연했던 파업과 반란 때문이다.

-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경험이 아니라 사실이 글의 

  바탕이라는 점이다.

  20세기 회고록 저자들, 특히 계급이 낮은 군인들에게 전쟁의 진실이란 곧 경험적인

  진실을 의미한다따라서 20세기 회고록의 권위는 사실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며중요한 사건을 목격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것을 전달하는 목소리에 좌우된다.

- 20세기의 서구인들에게 전쟁은 실제로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 조차 낯선 일이었고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그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이해시키는 것이 회고록 저자들의 

  임무였던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회고록 저자들과 독자들은 전쟁을 낯선 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아니라 전쟁에 갓 입문한 사람들,

  , 동료 귀족이나 병사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

- 회고록 저자들이 무엇보다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전쟁의 이미지였다.

- 르네상스 시대 전사 귀족들에게 역사기억할 만한 것은 서로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그들은 기억할 만한 것이란 무엇보다는 명예로운 행동을 뜻하며 이런 

  행동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고 보았다.

- 20세기 회고록에서는 행동이 본보기이고 사람이 독특한 존재인 반면,

  르네상스 시대 회고록에서는 사람이 본보기이고 행동이 독특한 존재였다.

- 인문주의에 따르면, ‘진정한 역사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뿐만 아니라 그 과정과 

  이유도 보여주어야 했다.

-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회고록 저자에게 은 그가 말을 타고 무기를 들 수 있게

  되었을 때, 무훈을 세워 역사의 주인공이 될 잠재력을 갖췄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 20세기 회고록 저자들은 역사에서 독립한 자율적인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회고록 저자들은 역사 속에서 자신이 수행한 역할을 통해 자신을 

  규정했다.

- 르네상스 사대에 회고록 집필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기리는 것이었다.

  또 저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딱 하나,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만이 중요했다.

- 역사는 원인과 결과의 모음의 되고, 명예는 차후에 미친 영향력의 문제가 된다.


  * 책의 페이지에 비해 정리한 내용이나 서평이 짧다는 것은 별 볼일이 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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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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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본 작품을 완독한지 몇 주가 흐르고 있다. 나는 작품을 읽고 내용보다 저자 및 작품에 대해 상당히 실망해 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 작품 평을 하지 않고 있다가 기억이 가물

가물해 잊지 않기 위해 서평을 기록한다..

언제까지 우리 역사의 아픈 면을 갖고 황구라님께서 이런 작품을 계속 쓰실지 모르겠지만 그냥 안타까울 뿐이며 지난달인가 언제인지 영국에서 있었던 부커상대상에서 

탈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해당 작품을 탈락 시킨 외국인들도 아마

한국의 대 작가님이신 황구라님께서 노동자 문제를 갖고 언제까지 우려먹으려고 이런 작품을 또 썼을까?’

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신문의 컬럼을 그대로 옮겨보았다.


[광화문·] 황석영의 조용한 귀국과 K문학

세계는 K문학 주목할지 몰라도 정작 대중은 외면한 지 오래

현장 중심 글 쓰는 작가들이 한국 문학 돌파구 열어주길              2024.05.31.

 

'철도원 삼대'(영제 'Mater 2-10')는 수상 불발로 큰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지난주 문화예술 뉴스 중 하나는 영국 부커상이었다.

작가 황석영(81)철도원 삼대로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상은 받지 못했다. 런던으로 떠나기 한 달 전에 그는 예외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차기작 계획 등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많은 매체가 주목한 발언은 

이런 것이었다. “두근두근하다, 이번에는 꼭 받을 것 같다, 다음에는 노벨상....”

 

원로 작가도 욕망에 서슴지 않을 수 있다

왜소해진 문학의 시대, 이런 사자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상을 소망했던 그의 야심과 상대적으로 쓸쓸한 귀국은, 한국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원래 문학상은 시대정신과 운이 작용하는 법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상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주최 측의 의지도 크다. 뮤지션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줬던 스웨덴 

한림원과, 힌디어·불가리아어 등 한 번도 인연 없던 언어의 작품에 월계관을 씌운 최근 2년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기억하라.

이런 차원에서는 K문학의 수상 기대도 무리는 아니다.

순수예술 지상주의자들은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기생충’ ‘방탄소년단’ ‘오징어게임등 대중문화 트리오의 대활약 덕에 한국 문화에 대한 영미권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지 않은가.

 

문제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평가하는 현주소다.

지금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며 추천하는 당대의 한국 문학은 무엇인가. 소름 끼치는 

순발력과 상상력으로 다른 문화예술이 의식하지 못하는 지점을 선취(先取)하던 과거의 영광은 제쳐두고라도, 평범한 한국인들이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한국 문학은 어느 

정도나 생산되고 있나문인이 지식인과 동의어였던 일제강점기나 자발적 문청(文靑

쏟아지던 1980·90년대까지와의 비교는 언감 생심이더라도, 지금·이곳의 먹고사는 문제를 OTT 드라마나 웹툰보다 한국 문학이 제대로 다룬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2000년대 들어 한국 문학은 성소수자, 젠더 문제, 내면의 자의식 탐구, 판타지·SF 장르 소설 등 특정 분야에서는 적지 않은 성취를 보였다. 문제는 이런 유가 지배종이 되었다는 점이다그 장르가 열등하거나 의미 없다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 당대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문학이 희귀해졌다는게 문제다.

어쩌면 현대사회를 경고하는 잠수함의 토끼나 탄광의 카나리아 역할에서도, K문학은 이미 다른 장르에 추월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구 대비 문예창작과가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졸업생들이 급변하는 현대를 입체적으로 경험하는지는 의문이다.

문과 전체가 문송합니다라고 자조하는 현실에서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당연히 악순환이다.

직업 최전선의 체험이 없으니 내면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평범한 독자는 떠나고 소수 열혈 독자만 남는 반복 말이다.

 

문체를 감탄하며 읽는 문학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현장과 이야기 중심의 작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글 잘 쓰는 전문 직업인들의 문학 진출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소설 쓰는 의사소설 쓰는 용접공, 소설 쓰는 건축가, 소설 쓰는 

과학자.... 최근 소설가 장강명이 소위 월급사실주의를 표방하며 여러 작가들과 함께 

엮은 단편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실린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자신의 직업과 현장이 녹아있는 현대의 

한국 사회가 거기 있었다.

인터넷 시대, 책을 읽지 않는 세태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라면 읽을 만한 작품을 썼으니 이래도 안 읽을래 하는 패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문학이 죽었다고 우는 소리 하기 전에. 한국 작가들의 건투를 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며 황 작가님의 금번 작품은 솔직히 실망스러움 그 자체였다.

황색도, 빨간색도 아닌 다시 말해 이것도 잡고 싶고 저것도 잡고 싶은 마음에서 작품을 만드신 것 같다. 작품 내용에 대한 것만을 갖고 이야기한다면 차라리 과거에 발표했던 여울물 소리가 더 가슴에 와 닿았으면 닿았지 요번 작품은 실망 그 자체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실망이 너무 크다. 그래서 작품을 평할 생각이 하나도 없고 구매한 작품을 중고시장에 내다 팔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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