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를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추천권유도 9

 

작품은 나에게 생뚱맞게도 [하인리히 법칙]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1930년대 초 미국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H. W. 하인리히가 '사고나 재난은 발생 전에

여러 차례 징후가 나타나므로 이에 대한 분석과 준비를 통해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징후에 관한 법칙으로 오늘날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이론으로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는 법칙을 말하는데,

그는 수천 건의 사례 분석을 통해

'사고는 예측하지 못하는 한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여러 번 경고성

징후를 보낸다

고 주장하며 이를 [1 : 29 : 300의 법칙]으로 정립한 이론인데, 나는 작품 속에서 근대사의

여러 편린들의 애환과 뒷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 모든 것이 518년 이씨 조선을 끝내 망국으

로 이끈 어떤 단초처럼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이유에서 주장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조선 망국의 배경을 '서인'과 후예인

'노론'이 조선을 시대 착오적인 방향으로 이끈 단초로 1623인조 반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거나 역사적 사실의 인과 관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작가의 그런 주장에 뭐라 반박할 근거도 마땅하지 않아 그저 답답할 따름으로

저자의 주장을 그냥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렇다면 여타의 다른 단초들은 무엇일까?

나는 과거에 독서일기를 작성하며 주장을 했지만 조선 망국의 원인에 대해 어떤 변명이나

누구를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그래도 누군가 역사적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나 '사건'을 들어 보라고 묻는다면 여러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은 바로 멀리는 '송시열과 그 일파' 및 '고종'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작품의 주제가 근대이기 때문에 송시열과 관련된 이야기는 배제하겠다 - 

 

제일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 대원군에 대한 반발심'에 기인한 것으로서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고종은 아버지인 대원군에 대한 이유 없는 반발심으로 어떤 사안이 벌어지면 깊이

있는 성찰대신 아버지가 추진했던 모든 것을 반대로만 이끌려 했었다는 점이다.

특히 작품을 통해 처음 확인한 사항으로 작품 61쪽을 보면, 고종의 명으로 '신헌'이라는

인물이 주도가 되어 일본과 '한일 수호조규'를 체결하는데, 이에 대한 체결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수호 조약의 체결 과정 속에 담긴 배경이 [하인리히 법칙]에서 이야기하는

큰 사건의 또 다른 단초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1876년 고종은 격렬한 반발이 예상됐던 것과는 달리 개방에 적극적이었다. 고종은 대원군

의 모든 정책을 뒤집는 것을 정책의 대강으로 잡았고, 일본이 내미는 13개 조약문에 대한

세밀한 검토도 없이 무관 출신인 신헌에게 전권을 위임한다. 신헌은 국가적인 중차대한

사건에 대한 전권을 사양하며 세부지침을 고종에게 요구하였으나 고종은 이를 거부한다.

따라서 신조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일 수호 조약'이 체결

되는데 조약은 일본의 안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한반도의 일본 병합이 이루어졌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하인리히 법칙]의 직접적인 단초가 되는 것은 '고종의 성향'에 기인한

것으로 고종을 한마디로 '정확한 심중'을 파악 할 수 없는 대표적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종의 대표적인 이중적 성향이 바로 나라 잃은 백성들이 독립 운동을 펼치자 이를 적극

지지하면서, 뒤로는 관료들에게는 독립운동 진압 명령과 함께 해당 부대를 격려하는 등의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었으며, 망국으로 이끈 '을사오적'을 처단해 줄 것을 요청하며 애국

충신들이 줄줄이 자결하자 그 후손들에게 '충신'이라며 각종 휘호와 상을 내리면서 한편,

을사오적들에게 난세에 훌륭한 일들을 수행하였다고 ''을 내리는 이중적인 통치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 이런 이중적 통치 스타일이 [하인리히 법칙]의 최종 결과론적인 사건인 '조선 병합'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에 나타난 사건을 통해 과거에 일어났던 우리 민족의 치욕적인 역사적 사실 속에

숨겨진 [하인리히 법칙]에 부응하는 단초들에 대해 살펴 보았다면,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속에서 또 다른 [하인리히 법칙]의 원리에 적용

당할 사건의 단초는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장난이 아니다.

[하인리히 법칙]을 아는지,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알고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눈만 뜨고 정치인들이 만나기만 하면 ‘4대강 다툼’, ‘강정마을 해군 기지 설치 반대’,

툭하면 거리로 산으로, 들로 나가서 '산 자여 따르라'를 목 쉬게 터져 부르지를 않나,

사사건건 화제의 일만 터졌다 하면 시위하시는 분들에게 힘을 주시고자 나서시는 신부님,

목사님, 수녀님, 스님들, 대를 이은 음서제도를 꿈꾸는 공기업의 자녀 특채 의혹들, 무더위

속에 절전을 감수하게 한 일부 몰지각한 공기업 직원들의 행태, 고위층 고매하신 분들의

성접대 사건, 역사 교과서가 왜곡 되었다고 연일 난리를 치고 계시는 고매한 학자님들,

철거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골프 치시다 잡히시는 분, 우리의 멀쩡한 자식 40여명이 몰살

당했는데 원인은 좌초에 의한 폭발이라고 우기시는 분들, 그저 장난으로 이야기한 것을

갖고 '반란죄'로 몰아가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우기시는 어느 여전사분과 국민을 대표

하라고 뽑아 놨더니 위대한 지도자 동지를 결사 옹위해 보자는 색깔이 불분명한 집단들,

슈퍼 갑의 횡포와 비정규직의 자살이니 하루도 빠짐 없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음에도 모든

이런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시는 위정자가 득실거리는 지구상에서 그 어느 곳보다

가장 찝찝하고 개운치 않은 사건이 연일 터지는 그런 나라이다.

이 모든 사건이 끝 모를 방향으로 모든 사건들이 달려가고 있지만 어느 하나 나서서

진정은커녕 오늘도 거리로 나서서 천막 안에서 농성을 되풀이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또 다른 결과물을 도출하려는 [하인리히 법칙]의 또 다른 단초가 아닐까?

무엇을 하자는 이야기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를 말렸다가는 너도 '같은 놈'이라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덤벼드는 게 일상화 된 우리의

현실을 바라 보면서 사회의 구성원이자 어느 정도 책임을 부여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로서는 해 볼만한 게 별로 없다.

일본의 수상이라는 대동아 전쟁 전범의 외손주라는 색히나 그 나라의 도지사가 위안부

문제, 핵 오염 물질 방출 문제 등에 대해 헛지랄, 헛소리를 해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오히려 그들보다는 모든 문제는 '다카키 마사오' 자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난리를 치는

나라인데 어느 누가 무서워하겠는가?

나는 작품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한일 합방을 기점으로 앞에 나타났던 여러 불쾌한 사건은 '한일 합방'이라는 정점으로

치닫는 증상들이었고, 그 이후에 벌어진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사항은 '한일 합방'

버금가는 새로운 [하인리히 법칙]의 또 다른 단초가 생성되고 있는 사항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지도자 집단이라면 과거의 잘 못을 바로 잡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닥쳐온 문제, 펼쳐질 문제에 대해 국민의 뜻을 모아 발전적인

방향으로 대처해 보겠다고 발 벗고 나서는 위정자 한 분이라도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작품 속에서 언급된 [하인리히 법칙]의 여러 단초들

 

[고종의 오판]

 

- 러일전쟁은 190428일 일본이 요동반도 남단의 여순항을 기습 공격해 일어난

  전쟁으로 인천 앞바다에 있던 러시아의 '바라크함' '코리예츠함'을 격침시킨 그 다음날

  정식 선전 포고를 했다.

 

- 212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한국 영토의 무제한 징발권을 명시한 '한일

   의정서'를 이지용(외부대신 서리 및 육군참장)과 함께 고종에게 강요함.

 

- 고종은 러시아의 전력을 믿고 러시아의 승리를 점쳤으나 일본은 '아카시 모토지로'라는

  인물의 첩보 공작으로 러시아 내부를 분열시켜 불리한 전세임에도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카시는 스위스로 망명해 있던 '레닌'에게도 접근하여 19051월 러시아 혁명의 도화

  선이 된 '피의 일요일 사건'에도 깊이 간여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 모든 활동에 소요되는

  자금을 군부에 요구해 얻어 냈는데 작전금은 당시 100만엔으로 현재의 화폐 가치로

  400억엔(54,000억원)정도였다고 한다.

 

[을사늑약과 고종의 이중 행보]

 

- 러일전쟁 직후 고종은 이승만을 미국에 밀사로 파견하지만 이미 일본으로 마음이 돌아선

  주미 공사 김윤정의 비협조와 미국(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영국(영일 동맹)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승인'받았기 때문에 이승만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포츠머스 강화 조약'을 주도한 루스벨트는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 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방한 직전 송병준이 주축이 된 '일진회 선언'을 발표하는 데,

  '한국이 부강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아 '을사늑약'을 체결해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겨준다.

  조약 체결의 주역은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으로 소위 '을사 오적이 이들이다.

      

[고종의 이중적 행보의 여러 증거들]

 

을사오적에 대한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와 자결자들이 속출하자 고종은 이들에게 시호와

    훈장을 내리는 동시에 을사오적들에게도 힘을 합쳐 국사를 잘 돌보라고 격려를 하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고종의 통치의 한 특징이 '밀지 정치'인데 의병은 고종이 몰래 내린 밀지에 따라

     거병하고, 이를 진압하는 부대는 고종의 공개된 명령에 따라 진압에 나셨다고 한다.

 

헤이그 밀서 사건으로 통감 이토가 고종에게 책임을 묻자, 고종은 '짐은 그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고 모두 헤이그에 있는 자들이 밀서를 위조한 것'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국제정세]

 

- 고종과 고종이 보낸 밀사들은 일본이 빼앗은 한국의 외교권을 되돌려 받는 것이 '평화'

   고 생각했지만 열강들이 충돌하지 않고 약소국을 차지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였다.

 

[헤이그 밀사 파견에 따른 후유증]

 

- 송병준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황에게 사과하든지 대한문에 나가 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항복하든지 선택'할 것을 강요

 

- 이완용은 칼을 빼 들고 고함을 지르며

   '폐하께서는 지금이 어떤 세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협박했고 대신들도 물러날

    것을 종용했다고 함.

 

- 고종은 자신의 자리를 황태자에게 물려주고 대리청정을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일제와 친일 내각이 억지로 '양위식'으로 둔갑시켜 고종과 황태자가 불참한 가운데 식을

   거행해 고종의 시대를 끝내게 한다  

 

[일본의 이토가 헌법을 만든 순간부터 시작된 아시아의 고통]

 

- '대일본 제국은 만세일계 천황이 통치한다'(1)'메이지 헌법 3조에서는 '천황은

   신성하며 침범할 수 없다'는 조항과 훗날 아시아인들에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는 빌미를

   제공하는 단초가 된 제12조의 '천황은 육, 해군의 편제 및 상비군의 숫자를 결정한다'

   조항은 군부가 내각에서 통제권을 벗어나 천황에게만 소속된다는 통수권 개념으로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빌미가 된다.

 

[이토 히로부미의 추도식과 고종]

 

- 이토 히로부미 장례식에 내각 대신들의 강권에 못 이겨 고종은 조문한다.

 

[우리 영토의 확정]

 

- 간도는 현재의 중국 길림, 요령성 일대의 '서간도'와 두만강 북부 '북간도'의 통칭으로

   따라서 서간도를 평안북도에, ‘동간도(북간도)’를 함경도에 편입시키고 관리를 임명해

   간도에 상주시켰고, 현지의 백성들조차도 대한제국에 세금을 납부하였다.

 

- 일제는 190994일 북경에서 '간도에 관한 청일협정'을 맺어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신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 주었다.

 

[대표적인 친일파의 발언들]

 

- '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은

   ⦁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결국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옮기는 것

   ⦁ 조선 국민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서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일이다.

  라는 망발의 극치를 했다고 한다 ---> 이 색히 작품을 괜히 봤다

 

[매국 협상 30분만에 500년 조선을 팔다]

 

- 일본은 1909년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한일 합방을 앞당기는 계기로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미 이토가 그 해 4월 총리대신 가쓰라, 외무대신 고무라와 3자 회합을 통해

   한국 병합을 찬성했고, 일본 각의는 7월 한국 병합에 관한 건을 통과시켰다.

 

[일본이 통치권을 빼앗은 직후 한 행위]

 

'토지 조사법'같은 법을 제정해 일제의 물적 수탈 기반을 만드는 일

     ---> 한반도 땅의 40%를 찬탈한다.

각종 고시 제정을 통한 민중의 반발을 누르는 일

은사금 지급을 통한 기득권층을 상대로 한 회유 정책

또한 일본 내각은 '시정방침'이라는 것을 발표, 한국에는 일본 헌법을 시행하지 않고

'대권'에 의한 통치 즉, 일왕의 자의에 의해 다스리도록 했다. 특히 일왕의 위임을 받은

조선 총독이 제령으로 직접 통치하는 지역이었는데 일왕의 칙령 제324호 제1조는

'조선에서 법률을 요하는 사항은 조선 총독의 명령으로 규정할 수 있다'로 명시,

이는 한국을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총독부의 '행정명령'을 어기면 재판 없이 구속되거나 벌금이 부과되고 심하면

'태형'까지 맞아야 했다. 일제는 '독립운동은 상놈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선전을 펼친

결과, 양반 사대부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선각자들의 독립운동]

 

- 조선의 병합과 아울러 세상을 원망하던 양명학의 대가인 이건승과 이건방은 자결을

  택하는 대신 후학 양성에 힘을 쏟는다.

  , 교육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식아래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인다. 뿐만 아니라

  정원하, 이상룡, 홍승헌, 이상설, 이회영, 이관직 선생 등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 활동하신

  분들이다.  

 

[경학사의 태동과 그 의의]

 

- 조선인들의 자치와 독립운동을 위한 '경학사'라는 민간 조직을 만들었는데, 경학사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표방하였는데, 경학사는 대한민국이란

   민주공화정제의 뿌리가 되었다.

 

- 1911년 큰 흉작으로 경학사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렵게 되었으며 1912년 새로운 한인 자치

  조직인 부민단이 신흥무관학교와 같이 새로이 조직된다.

      

[신흥군관학교]

 

-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원인 중 하나는 군사력의 열세이다.

   조선의 군사력은 1802년 노론의 영수인 영의정 심환지가 정조가 창설한 장용영이

   폐지되면서 결정타를 맞는다.

 

- 이회영 선생은 신흥군관학교 설립을 가장 먼저 앞장서 제창하신 분이다.

   이때 군사 교육 계획에 참여하신 분들이 김형선, 이장녕, 이관 등 세 분으로 신흥무관

   학교의 신()자는 신민회에서 떠온 것이고 흥()자는 다시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교명을

   지은 것인데, 중국인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최초엔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출발.

 

[경제적 수탈과 3.1운동]

 

- 일제가 실시한 조선 토지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수조권(收租權)을 무시한 데 있었다.

   세금을 거두는 권리인 수조권이 왕실 또는 국가기관에 있는 토지가 공전, 개인에게는

   '사전'이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대다수의 토지를 국유지화하면서 이 소유가 궁극에는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되면서 경제적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 일부 친일 사대부와 모리배들이 마을의 공유지를 사유지라 신고를 하고 조선총독부는

   이를 식민통치의 근간으로 삼기 위해 특혜처럼 인정해 주는 일이 많아져 민족간의

   분열을 획책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노렸다.

 

- 토지 조사사업이 끝난 이듬해 전 민족적인 3.1운동이 일어난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님.

 

[민족사학의 말살과 회사령]

 

- 우리 사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인 '사학법' 문제도 일제시대부터 태동된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 한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통치가 어렵다고 판단,

   일제는 교육시스템 및 허가 방법을 철저하게 장악해 1906'사립학교령'을 발표해

   한국인들이 신청한 1,217개교 가운데 42개교만 인가하고 1,175개는 퇴출시켰던 반면

   당시 조선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이 설립한 종교 사학은 778개교 전부를 인가해 줌.

 

- 사학에 갈 수 없게 된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당'을 찾기 시작하자 일제는 다시 1918

   '서당규칙'을 공표해 서당도 통제하기 시작한다.

  

- 일제는 민족 자본이 형성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회사령'을 발표한다.

   1914년 회사령 발표 이후 국내에 설립된 회사수는 109개였는데, 자본금 규모는

   1,790만원 으로 일본인은 회사수가 68(지본금 919만원) 내국인 회사는 21(자본금

   178) 일본인과 합동으로 설립한 회사는 20개사(자본금 610만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역시 3.1운동을 촉발시킨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1920년에 폐지된다.

 

[쌀 소동과 3.1운동]

 

- 일본은 '영일동맹'을 무기 삼아 유럽 전선에 직접 참전하지도 않고 막대한 이익을 본

  수혜국이 된다. 일본은 19148월 독일에 선전 포고하면서 독일 조차지였던 중국

  산둥반도의 교주만을 점령하고 청도를 차지한다.

  이를 계기로 '채무국'이었던 일본은 '채권국'으로 탈바꿈하게 됨과 동시에 농업 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바뀌면서 쌀 생산량이 감소하자 일본내 민심이 흉흉해지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조선 총독 데라우찌는 국내에서의 곡물 수탈에 더 혈안이 된다.

   

* 임시정부 이후의 사건에 대한 사항은 작금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에 관한 관점의

  다양화로 또 일부 '다름''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학자들이 많아 나마저 '이것이

  옳고, 저것은 틀리다'는 이야기로 새로운 불씨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여기서는 자제하려

  한다.

  분명한 것은 역사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과 그 관점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이야기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신만의 논리와

  주장을 이야기하는 무리가 많아 개인적으로 좀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돼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기타 지식]

 

- 세종실록 30(1448) 대군은 60, 제군 및 공주는 50, 2품 이상은 40, 3이하는

   30칸으로 주택 규모를 법제화하였다.  

 

- 전통 사대부 출신인 홍양호는 일본에 가는 통신사 일행에게 벗나무 묘목을 부탁해

   서울 우이동을 벚꽃 경승지로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 본 독후감은 지난 2013년에 작성되어 싯점상 내용이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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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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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9

 

슬픔이 우리를 짓누를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기독교인이거나 종교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본 질문을 보면 참으로 원론적이고

도 원초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만의 독선과 아집의 세상에 빠져 잘난 척 하고 살다가 겨우 주님을 영접해 살기 시작한지

십 수년이 안되어 종교적 신념이 아직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를 비롯한

대개의 신자들은 자신이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특히 삶이 또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고 느낄 때 서두에 언급한 질문을 절대자이신 주님께 던져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 온 답은 아마도 '묵묵부답'이었을 것이며 그런 상황을 당하고 나면 꼭 한다는

소리가 '신은 없다'거나, '신은 나를 버렸다' 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절대자를 믿어 온

스스로나 절대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비난 혹은 조소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이 작품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자기 삶에서 가장 충격적인 슬픔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마비되는 상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그러한 마비상태를 일어서고자 하는 '한 사람'의 주의 깊은 시도

를 적나라하게 펼쳐 놓은 기록이라고 작품 해설서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나는 이 점에 절대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는 바이다.

 

작품 속에서 나오고 있는 결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가 불완전한 탓에 '사랑'이라는

혜택을 누리는 대신 그 대가로 사탄이 주는 고통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작품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작품 여러 곳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 보게 하는 문구가 여럿 나온다.

 

- 행복할 때는 행복에 겨워서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 행복해서

   그분이 우리를 주장하시는 게 간섭으로 여겨지기조차 하는 그 때, 우리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그 분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면 두 팔 벌려 환영을 받을 것이다.

 

- 만약 하나님이 '사랑의 대용품'이었다면 우리는 그분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 버려야

   옳다

 

- 내게 종교적 진리에 대해 말해 주면 기쁘게 경청하겠다.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말해 주면

   순종하여 듣겠다. 그러나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모른다'

   나는 의심할 것이다.'

 

- 과거는 과거이며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시간 그 자체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며,

   천국이란 '이전 것은 지나가 버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뇌의 깊이가 남다른 분의 짧은 이야기이지만 그 어느 작품집보다 신앙적, 심리적 성찰의

깊이가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래의 단락은 내가 작품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단락으로 모두 음미했으면 해서 여기에 옮겨 보았다..

[왜 사람들은 모든 괴로움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고 확신하는 걸까? 기독교 세계에서

  도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그리고 동방에서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녀(작품 저자의 부인)가 안식한다고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다른 것은 제쳐 두더라도, 남은 사람을 이토록 괴롭게 하는 이별이 떠나는 사람에게는

  왜 고통스럽지 않단 말인가?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 품 안에 있기 때문이다'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하나님 품 안에 있었으며 나는 하나님의 손이 그녀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봐 오지 않았던가. 우리가 육신을 벗고 나면 하나님이 갑자기 더 다정하게 대해

  주시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왜인가?

  하나님의 선하심이 일관성 없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다가 말다가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이승의 삶에서 그

  분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보다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보다 더한 고통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가 말이다. 만약 일관성 있게 고통을 주시고자 한다면, 죽은 후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주실 수 있으리라. 어떤 때는 '주여 주를 용서하소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때는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 그러나 우리의 믿는 바가

  진실이라면, 하나님은 그렇게하지 않으셨다.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셨던가]

                                                                                                                  (50~51)

 

작품을 읽으며 나 역시 우리들에게 부지 불식간에 다가 올 수 있는 '슬픔'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짧게 해 보았다. 작품의 결론처럼 죽음으로 인해 찾아온 '슬픔'이란 어떤 행위의

종결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사계절의 변화처럼 '우리 생의 한 과정'이라는 작가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사계절이 순환하듯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사랑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죽음으로 인해 다가 오는 이별을 인생의 끝으로만 여기지 말고 인생의

한 과정 자체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결론을 내릴 수 있게 오늘을 감사하며

충실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약하기 그지 없는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순리이고 살면서

주님께 의지한다면 그러한 삶의 모습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한없는 사랑, 한없는 관심을

보이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작품을 읽고 나름대로 내린 작품의 결론이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 우연히 듣게 된 찬송가 310장이 지친 몸으로 하루를 열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장으로 나서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3. 왜 내게 성령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4. 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 곳도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작품의 서평을 덮으려는 순간 우연히 마주한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읽은 글인데 작품의

주제와 너무도 맞아 떨어져 여기에 옮겨 본다.

 

"우리가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과 직접 가서 마주하는 실제 모습은 크게 다르다.

 사진은 '관점'을 가지고 봤고, 직접 가서 목격하는 것은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광경이 눈에 보이는 현상 그 자체를 말한다면, ‘관점은 그 광경을 어떤 입장과 의미를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왜 똑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불평하는데 어떤 사람은 감사와 기쁨이 넘칠까요.

 전자는 광경을 봤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 광경을 관점의 눈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바라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광경이 달라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광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광경을 해석하는 관점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광경에 붙잡혀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불행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광경을 경험하고도 해석, 즉 관점이 다르니까 그래도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 끌려가 고생하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은 식량을

 구하러 온 자기 형제들을 보고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45:7)

 

라고 고백합니다.

왜 오늘 요셉의 신앙이 아름답습니까.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형제들 앞에 이렇게 고백

했어야 합니다.

"형님들이 나를 시기 질투해서 팔아 버려 고생하다 이 곳 애굽까지 끌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저도 안 찾으시고 뭐 하셨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광경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 아픔을 영광의 면류관으로 바꾸는 믿음의 관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광경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 역시 두려움과 괴로움 속에 살아간 날이 더 많겠지만, 그가 다시 목에 힘을 주어

하나님이 먼저 나를 이 곳으로 보냈다고 고백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광경을 믿음의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광경을 보면 억울하고 섭섭하고 두려워

집니다. 그런데 믿음의 관점으로 보았기에 도리어 '용서''감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저절로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때문에 평생 상처를 끌어 안고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만났을 때, 광경을 믿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눈을 갖는 것입니다.

그 고난으로 인해 성장하게 될 것을 보는 눈이 있으면 조금은 그 아픔을 기쁨으로 넘겨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믿음의 관점으로 살기에, 고난 중에도 인내할 수 있으며,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봅니다. 믿음의 관점이 없을 때에는 나의 실패와 무능력함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믿음의 관점으로 나의 실패도, 나의 약함도 간증하게 하시고, 선교의

도구로 삼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 오산 하늘 땅 교회 이재학 목사님 칼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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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8

 

결혼을 해 보지 않았으면 말하지 마라. 이론과 실제가 완전히 다른 게 결혼 생활이다.

하지만 스님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결혼해 본 사람처럼 맞기는 한데 내 관점으로는 스님

의 말씀이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법륜 스님이 실제 결혼을 하셨던 경험이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작품을 읽어 본 결과, 약간

현실적인 극복 방법이 결여되어 있는 듯하여 여기에 소감의 포인트를 두어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작품을 읽은 결론부터 정리해 보면

상대의 덕을 보려는 결혼은 이 세상에 없으니 꿈꾸지 마라

내가 먼저 베풀면서 살아보자, 상대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상대는 내가 가꾸어야 꽃을 피울 수 있음을 명심하라

 

누구나 결혼 직후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상대방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는 데 솔직히 채

한 달도 안 걸리는 게 보통의 결혼 생활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가끔 신혼부부들이 매스콤에 나와서 혹은 신변잡기식으로 '방구를 텃네, 안 텃네'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는 하는데 나는 속으로 웃는다.

미안하지만 방구를 트기 전에 상대는 벌써 귀하의 민 낮과 잠버릇을 통해 또 술버릇과

카드 돌려 막기를 보면서 이미 귀하의 실상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데 방구 트는 유무는 그런

실상을 자세히 평가하는 데 일부 가감의 요소가 될 뿐 상대를 평가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상대를 파악한 직후부터 각각의 상대들은 고뇌에 찬 시간을 갖기 시작하면서 결혼과 상대

에 대한 환상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기 시작한다.

여기에 상대의 결정적인 '실수'가 수반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듯 고뇌에 찬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리도 센스 없고, 무덤덤하며, 기념일도 기억 못하고, 반찬 못하는 건 기본이고

맛도 없고, 집은 또 왜 이리 어질러 놓고 사는지, 뭘 그리 잊어버리고 사는 게 많은지, 카드

는 왜 그리 펑펑 쓰는지, 허구헌 날 술과 담배 그리고 무슨 놈의 친구는 그리도 많은지....

등등등 정상적인 배우자들이라면 그런 상대를 바라보며 그래도 내가 선택한 배우자니 잘

살아보자라는 다짐을 하는 게 일반적 배우자 일 것이지만 그런 다짐도 잠시 이내 허망한

현실 세계로 돌아와 배우자를 원수의 원흉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결혼 초창기에 갖는

평범한 배우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서설은 빼고 내가 극복한 사례를 통해 예비 신혼부부들의 자세를 들려 주고자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하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며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뿐이다.

 

결혼 삼십년 가까이 된 나는, 오십 중반인 나의 아내를 시고 때도 없이꽃순이’, ‘귀염둥이’,

깜찍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있건 말건 누가 듣건 말건 가장 사랑스런 용어를 써가며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처음에는 와이프조차도 이런 나의 호칭에 완강히 거부감을 갖고 반발을 했으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내가 내 와이프를 이리 부르는데 누가 뭐라하겠는가!

이런 호칭도 시간이 흐르면서 거부감이 덜하기 시작해서 인지는 모르나 어느새 아내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의 그런 애틋한 부름에 응답한다.

이제는 '꽃순아(깜찍아, 귀염둥아)‘라고 부르면 혹은 이라고 답을 하면서 사랑 가득

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면 이상하리만치 내가 부르는 대로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깜찍하고 귀엽게 보일 수가 없다. 이상하리만치 그렇게 된다. 한 번 해 보시라!!!

 

우리 부부사이도 법륜스님의 말씀과도 같은 위기가 왜 없었겠는가.

위기의 원인은 대개가 돈, 자식, 가족간의 불화 등등으로 어떤 가정에도 있을 수 있는 그런

문제였으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위기였다.

나는 처음에 문제가 불거지면 문제의 본질에 관계없이 아내와 약간의 연관성만 있으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석은 철저히 외면한 채 실컷 배우자만을 탓했었다.

시간이 흐르며 내가 아내에게 했던 말도 안되는 패악질을 검토해 보니, 대개의 문제 원천은

아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그간 나의 그런 못 된 버릇을 고치기

시작했다. ,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문제의 원인 분석과 함께 문제를 바라 보는 마음

자세를 다시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가장 중요한데 내가 체득한 가장 합당한 자세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개념이었고, 배우자가 연관된 문제일 경우 반드시 나의 배우자'

가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문제에 대처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모든 문제는 다 풀려 있었고, 부부간의 애정도 더 깊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더욱 가속화시킨 생각은 나만이 이러하지는 않을 것이고 대체적으로 남편들이

라면 다 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어느 날 몸이 아파 누워 있는 아내를 쳐다

보면서 내가 결혼 할 당시 이 여자에게 무엇을 결혼 약속으로 이야기했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내 자신이 그렇게 나빠 보일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마치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분별한 공약을 남발해 유권자들에게 욕을 먹는 행위를 나 자신도 연애 과정에서 이미 했었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늙거나 병들어 수발을 받게

된다면 나의 아내가 보복을 해도 내가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으며 아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와이프의 행동이나 말투, 집안 정리가 맘에 안 들면 현장에서 바로 독설

날리는 게 나의 주특기였는데,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니 와이프가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가 이야기를 하면 자기 의사는 아예 포기를 하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 상세한 이야기는 가정 문제이기 때문에 생략 -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말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결국에는 모친으로부터 에미

보다 마누라를 더 챙기는 변절자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며 나는 모든 생각의 중심에 아내

최우선으로 두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항이 있지만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를 중심으로 변화된 이야기를 해 보면,

아내가 멀리 가거나 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내가 돌아와 할 일이 없도록 온

집안을 정리해 놓는다거나 주말이면 온 집안을 뒤져 정리할 것, 지저분한 것을 전부 치워

놓는 게 나의 일상이다.

그렇게 해 놓으면 아내는 '수고 좀 했네요' 하고는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본다.

처음에는 신경질도 났고, 짜증도 났지만 내가 그런 가사 업무를 분담해 아내가 편해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뿌둣해진 것은 물론이고 내 스스로가 너무도 대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것도 있다.

마누라가 가끔 미술 관련으로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나는 해외에서 쓸 돈을 종류별로 구분

해서 준비를 시켜서 아내가 편하도록 준비를 하는데 같이 갔던 여행자들이 그렇게 돈을

준비해 온 와이프를 부러워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는 같이 간 사람들을 상대로 환전상 노릇까지 해서 간단한 차액을 챙겨 오기도 하는

, 여행지에서 일어난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심히 즐거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면 이

역시 뿌듯해지고는 한다.

아무튼 당신의 아내가 남편이 마련해 준 조그마한 준비로 기뻐하고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 행복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머리를 감고 나면 그 흔적을 반드시 욕실 바닥에 남겨 놓는다.

그 대표적인 특징이 머리카락인데 겉으로는 멀쩡하고 깨끗하게 보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드시 하수구가 막히거나 지저분해 지는데나의 주특기는 여기서 발휘된다.

아내를 위해 나는 이런 정리를 분기마다 해 주는데 완전히 새 집의 하수구처럼 정리를 완벽히 해 준다. 참고로 나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다. 나로 인한 막힘 현상이 절대 아니다.

또한 요란한 식사를 한 날에는 설거지를 내가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더 힘이 세고 설거지를 잘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잘하는 사람이 집 안 일을 먼저

하면 행복은 절로 찾아오지 않겠는가. 아내도 사람이다.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을 수

있다. 그녀에게 완벽한 여자, 아내, 부인, 엄마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부족한 것을 메우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둘을 부부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 상대를 감시하라고 부부로 만들어

준 게 아니다.

나는 아내의 조력자이지 감시자지적질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아내와 동료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탓할 시간, 불평 불만할

시간이 없다. 매일 매일이 재미나다. 나라고 왜 아내로부터 받는 실망으로 화나는 일이

없겠는가?

역지사지하는 심정으로 생각해 보면 아내 역시 나 때문에 화나는 일이 왜 없겠는가?

, 담배, 여자 문제 등 하지만 그녀 역시 내게 화를 내지 않는다. 나를 믿기 때문이다.

남들은 퇴직하고 집에 있으면 부인이 얼마 안 가 "당신은 친구도 없냐?"

"당신을 삼식이라고 동네 사람이 욕한다" 등으로 짜증 낸다고 하는데 나는 밖으로 나가면

문 밖까지 따라 나와 오늘은 안 나가면 안 돼?’라고 묻는데 어찌 불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냥 좋을 뿐이다. 상대를 여자로 보는 것도 좋지만 나의 도움이, 손길이 없으면 금방 무너

져 버릴 연약한 상대로 보면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 질 것이다.

나의 아내는 연약하다(중거: 내 몸무게의 반이다). 그래서 아침이면 항시 힘들게 일어난다. 그런 힘든 기색이 보이면 만사 제쳐 놓고 전신 안마를 시작한다. 마지막엔 아기들에게 해

주는 쭈쭈쭈까지 해 준다. 마누라를 거의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아주 행복하다. 상대가 행복해 하는 데 더 이상 뭐가 필요한가?

퇴직을 했기에 취직이 될 때까지 조금 남은 퇴직금을 쪼개 생활한다.

그러다 보면 생활이 빤하다 그래서 나는 항시 외친다. ‘아껴써!’.

그러나 아내의 물품 구매력은 항시 왕성하다.

어디서 뭐를 했는지 꼭 초과해서 돈을 쓰고는 들어온다.

그러면 내가 짜증을 내면 항시 웃으며 답한다.

내일부턴 꼭 약속 지킬게아내의 늘어진 스타킹을 바라보면 나는 더 이상 뭐라 하지

않는다. 그녀가 쓴 곳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식구의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또 바라

보면 웃는다.  

내일도 약속 안 지키면 뽀뽀가 백대다그러면 또 이야기한다.

내일도 약속 못 지킬 것 같은데.....’ 둘이 배를 잡고 뒤집어 진다.

우리 부부의 이런 모습을 매일 보는 큰 녀석이 장가를 빨리 가고 싶다고 난리도 아니다.

자기는 더 잘 할 수 있다고.....능력도 없으면서...ㅋ ㅋ ㅋ

아무튼 아무리 고매한 철학자, 사상가가 와서 기똥찬 주례사 골백번을 해도 결혼 생활의

주체자인 본인들이 스스로 느끼고, 깨우치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도 다 소용이 없음을 알아

야 할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을 존경하라.

그리하면 세상의 어떤 주례사 골 백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을터이니... 결혼도 안 해 보신 분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처럼 애 셋 낳고 열심히 그리고 매일 매일이 즐거운 결혼 유경험

자가 말하는 것이니 꼭 새겨 듣기 바랍니다.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의 화두만 정리해 보면

 

- 막상 결혼해서 살다보면 내 기대가 무너지듯이 상대의 기대도 무너짐

-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 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문제 없음

   ---> 기대고 싶은 마음을 갖고 결혼하는 것은 절대 금물

 

- 윤리나 도덕에 묶이지 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인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라

 

- 부부는 함께 살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모른다

-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 편에서 이해하고 마음 써 줄 때 감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상대에게 맞추려면 가장 먼저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업이니 사주니 궁합이니 하는 것들의 뿌리는 욕심에서 나옵니다.

   이 욕심의 뿌리를 뽑지 않고 드러난 모습만 가지고는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 인생에서 만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또 다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 다른 사람하고는 원수가 잘 안되는데 부부지간에는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은 데, 이는

  서로의 욕심, 서로의 기대가 커서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니 실망도 큰 것이다.

-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 아닌 줄 아는 게 진리입니다.

  이해관계로 뭉친 사이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타인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 상대를 바꾸는 게 쉬울까 내가 바뀌는 게 쉬울까

 

- 상대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그려 놓고 왜 그림과 다르냐고 상대를 비난합니다.

 

- 도움이 필요할 때 돕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사랑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 상대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데 바라보는 내 눈이, 마음이 달라져서 상대를 웬수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 내가 사랑하니까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라, 이렇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사랑의 권리는 있지만 그 대가로 사랑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미워하면서 살면 나만 손해다

 

- 이미 떠나 버린 상대를 미워하면서 사는 것은 아직도 내 인생의 주인이 그 상대인 것이니

   참회함으로써 내 인생에서 그를 지워야 한다. 그때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장애고,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면 개성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행복한 편집광은 타인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

 

- 나의 감각들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는 무엇인가가 나의 세계다.(헬렌켈러)

  

- 천재는 스스로 터득하고 수재는 배운다

 

-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구할 때는 우연이라는 선물이 필요하다.

 

- 고난과 고통은 재수없는 사람에게만 찾아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의 삶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하려 할수록 고통의 강도는 더욱 커지고 스트레스만

   높아진다.

 

-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무도 날 대신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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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추천권유도 9 

  

중학교 시절인지 고교시절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형님 책장 위에 꽂혀있던 이 분의

작품(어떤 전설)을 보고 손이 쉽게 가지를 않았다.

그 이유를 확실히 기억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당시 내가 처음 마주한 그냥 무명 작가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또 작가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몰라 그랬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이가 들어 우연히 접하게 된 - 나는 작품을 어떤 선전이나 타인 추천에 의해 작품을 고른

것이 아니라 읽고 싶어서 선택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태백산맥이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을 통해 접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분의 해당 작품을 어떤 이상한 인간들이 이념적인 잣대로 작품을 예단하고, 폄하하는 모습에 굉장히 분노하면서 또 작가님이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나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 보다는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문학 작품을 낡아빠진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의 한심한 작태를 조소하기

위해 작가님을 더욱 더 가까이 두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다.

나는 도 아닌 그냥 보수적인 느낌이 강한 일개 독자였는데 잘 읽고 있는 좋은

작품을 갖고 뭐라 뭐라 궁시렁대는 인간들이 정말 역겨워 미치는 줄 알았다.

일련의 쓸데없는 인간들이 벌인 이념논쟁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은 한마디로 문학자도 모르는 인간들이 벌인 작태라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과거 한 때, ‘태백산맥과는 다른 관점이기는 하나 차세대 리더를 꿈꾸던 유명

여성 정치인이 특정 문인을 두고 곡학아세니 하며 비난을 퍼붓던 모습이 교차되면서

속으로 웃고 말았는데

 

본 작품은 그 사건을 비롯한 작가로 왕성한 활동할 당시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하고 계신

, 읽는 대목 대목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밀려왔음을 이 자리

를 통해 밝혀두고자 한다

나는 작가의 대표작을 갖고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뭔가를 잡아 내려고 발버둥쳤던 소인

배들과 극단적인 애국주의 부류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회사 생활할 때 벌어졌던

에피소드가 있어 여기에 소개해 보고자 한다.

과거 한 때 - 지금도 일부 그런 인간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 건전한 소비자를 가장한

블랙 컨슈머들이 크게 활개를 치던 시기가 있었는데, 블랙 컨슈머로 추정되는 소비자가

벌였던 재미난 이야기이다.

어느날 소비자가 클레임을 걸어 왔는데,

당사의 제품인 자신의 휴대폰으로 임종 직전의 자신의 부친 유언과 그 장면을 녹화해 놨는

데 휴대폰 불량으로 이것을 재생할 수 없게 되었으니 보상해 달라는 클레임이었다.

사건을 접한 회사는 정말 황당했다.

임종을 앞 둔 부모를 자식이 영상으로 촬영했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녹음까지 했다는 내용

을 듣고 아연 실색했었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일념 하에 각종 사례를 뒤져서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이려고 했는데,

도대체 소비자가 당사의 보상안에 만족을 못하고 회사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보상안에

대해 사사건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종국에는 회사가 망가진 파일에 대한 가격을 산정하지 못하겠으니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

께서 직접 합당한 금액을 요구해 보라고 했더니 그것을 왜 자기가 해야 하냐고 우리에게

짜증을 부린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를 피해 금액을 산정할 것인지 해결책이

있으면 알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내에 한계에 다다른 회사는 소비자를 향해서 역공을 펼치게 되었다.

, 그렇다면 소비자가 부친의 유언을 휴대폰에 녹음, 녹화했다는 증거가 정말로 있냐고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 웬만한 파일은 복원이 가능하다 - 역으로 추궁을 했더니 더 이상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작품을 읽는데 왜 이 사건이 떠올랐을까?

세상이 어찌 변해가고 있는데, 죽은 레닌스탈린을 환생시켜 뭘 어쩌자고 그랬는지

참으로 씁쓸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작품을 갖고 작가의 사상성을 의심해 낡아빠진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 작자들과

휴대폰 속의 유언 내용이 삭제되었다고 우기는 소비자와 같은 부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작가님의 대화 내용은 작가님의 입장에서 바라 보신 시대와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대화들로 생각되었으며 두고 두고 음미

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었다는 생각되었다.

 

작가께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시대의 산소로서의 작가 본인이 갖고 계신 사상의 한다면을

여기에 간추려 보고자 한다.

 

-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이며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이며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만 간추려 놓은 기록으로 작가는 역사를 몰라서는 작품을 쓸 수 없지만,

   역사가는 문학을 몰라도 역사를 연구할 수 있다.

- 역사를 포괄하지 않고는 대작을 탄생시킬 수 없다.(어느 외국 평론가)

 

- 미술과 음악에 비해 문학이 민족적인 색채가 훨씬 강한 이유는 언어는 인간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고 적극적이기 때문.

 

-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진실)이다.

 

- 말로 지은 원한은 백 년을 가고, 글로 지은 원한은 만 년을 간다(중국)

 

-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위하여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고 맞서야 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으로 그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작품으로 지키고 실현하는 것이 곧 진실

   이다.

 

- ‘진실만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 밖에 없으며 기득권을 향유

   하는 보수 세력과는 갈등하고 맞설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소설의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의 실현이고 하다.

 

-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

   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글 잘 쓰는 기술은 애초에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

   그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으로 이를 비율적으로 굳이 표현한다고 하면 다독 4, 다상량 4,

   다작 2의 비율이라 할 수 있다.

 

- 또 좋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사전을 가까이 하라.

 

- 사전은 단어의 뜻과 개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닳아지도록 부지런히 펼치는 것이지

   암기의 대상이 아니다.

 

- 세계적인 천재 첼리스트였던 카잘스는 아흔을 넘어서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이를 궁금하게 여긴 질문자가 대가이시면서도 왜 그리 연습을 줄기차게 하느냐고 묻자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라는 답을 했다고 한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 가장 뛰어난 능력은 지치지 않는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단어에서 만성(晩成)’이라는 단어는 오래 걸린다는 뜻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의미도 있다.

   , 크게 되려면 오래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능력 있는 작가, 역량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느냐

   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했느냐로 결정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인물은 제각기 개성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전형성(역할, 사건, 상황, 그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되도록 꼭 어울리는 생생히 살아 있는 것 같은 요소를 지닌 인물을 이야기

   한다)을 갖추어야 한다.

    

 작가는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이라는 대작을 남기면서 약1,2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데, 동일한 인물이나 동일한 성격을 지닌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하며 작가 자신

     의 성씨와 같은 사람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러시아 문학의 백미로 꼽히

     는 전쟁과 평화한 편에 약 600명의 등장인물이 나타나고 있다. 

 

- 인물 탄생의 노하우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을 유심히 보기입니다.

 

- 작가는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어야만 바르고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다.

 

-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의 발견,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민족의 비원인 통일의 자각, 민족의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한 친일파 문제.

 

- 작품은 제목이 그 작품의 절반을 결정짓고, 첫 문장이 나머지 절반을 결정짓고, 끝 문장

   이 그 나머지 절반을 결정 짓는다.

 

- ‘민족주의를 폐기해야 할 구시대 유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질의에 자본 제국주의

   국가는 약소국이 소유한 그 강적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무력을 쓸 수는 없으니 그럴듯한 논리 개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족주의

   의 폐해와 시대착오를 강변하는 폐기론입니다. 자본 제국주의 강대국이 집요하게 공략

   하는 민족주의 폐기론을 바로 약소국의 정신 무장 해제 전법입니다.”

 

- 우리 나라 최초의 국비 유학생이었던 윤치호는 미국에 고작 3년 동안 머물고 돌아와 평생

   영어로 일기를 쓴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며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저항해봤자 아무

   소득이 없으니 강한 나라가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게 상책이라는 발언을 했다.

 

- 작가는 반드시 작가가 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깊고 깊은 고심과 몰두가 쌓여야만 영감

   은 분출하는데, 영감이란 고심의 깊이와 몰두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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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쉐이크 -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추천권유도 6

   

나는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싶고, 글을 쓸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내가 살아 오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 싶어서 또 인생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 편의 멋진 연극같은

생각이 들어 내가 감동했고 느꼈던 생각과 경험을 타인들과 공유하고 싶어 글 쓰기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나의 글을 누구도 보거나,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먼 훗날 내 자손 혹은 완전한 타인이

나의 글을 읽고 어떤 조상이, 어떤 이름 모를 무명 작가가 인생을 살면서 이런 점을

느꼈고, 감동했었구나 하고 생각 정도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휘갈겨 쓰기가 뭐해서 이런 저런 글쓰기 공부 차원에서 이런 작품을

골라 읽게 되었다.

 

금번에 고른 작품을 포함해 작가로서의 기본 소양에 관한 여러 권을 섭렵했지만 뭔가가

부족한 듯하여 또한 작가로서의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더욱 더 조련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해당 작품을 선택해 읽어 보았는데, 내가 이제까지 읽은 글쓰기와 관련된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본 작품의 저자께서 나의 이런 글을 읽어 보면 웃겠지만...ㅋㅋㅋ)

 

아무튼 저자의 생각 중에서 내가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름 정리해 본다.

 

좋은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넓게, 가장 자주, 가장 빨리, 가장 깊게 스스로를

흔들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적으로 공감하며 여기에 첨언을 한 개 더 한다면

 

"깨달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는작가의 주장에 완전 공감하는 바이며 작가의 강조점을 정리해 보면

 

첫째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공부가 수반되어야 한다.

-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바로 쓰지 마라.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 준비단계 : 초고단계 : 퇴고단계 = 1:1:1의 비율로 시간을 할애하라

 

둘째 오감훈련을 부지런히 하자.

-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오감으로 감싸는 연습을 해 보는 게 중요하다.

- 인간을 오감으로 감싸 두는 것이 그 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장 빠른 길이다.

- 공간을 오감으로 휘감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답사이며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은 직접 그 장소에 가 봐야 파악이 가능하다.

- 시각에 의한 부분을 줄이고 미각, 후각, 촉각에 의지한 부분을 확대하라.

 

셋째 목적성을 가져라.

- 이야기를 잘 만들려면 누구에게, , 어떤 형식으로 얼마나 길게 할 것인지 명확히

  설정하라

- 이야기의 핵심은 소통이다.

 

넷째 100권의 책, 10권의 공책을 사라

  - 까뮈의 유려한 문체와 독창적인 구성, 무거운 주제와 세련된 호흡은 천재성에서 비롯

    되었다기 보다는 일곱 권의 공책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자신만의 도서실을 만들고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작품에 쓰일 소재를 연구

    하기 위해 100권의 서적은 사서 읽고, 연구해야 한다.

   - 10권의 공책의 활용법은

   1) 기자수첩 

   2) 독서록

   3) 몽상록 : 이야기하고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 놔라

   4) 습관론(등장인물)

   - 곧바로 등장인물을 이야기 속에서 다루다 보면,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계속

      나오고, 그땐 그 인물의 습관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습관으로 메워 버린다.

   - 작가는 습관이 탄생한 과정과 습관의 의미 등을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함

   5) 답사기(소재가 되는 배경에 관한 사항) : 답사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전체의 절반임

   6) 이야기를 위한 공간(작품에 사용될 소재)

   - 이야기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쓰는 것이다.

   - 이야기를 만들 때는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으로 나누어 진행 연월일시로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 객관적 시간이라면 개개인의 마음에 따라 그 길이와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 주관적인 시간이다

   - 어떤 사물과 상황은 이야기 속 주인공의 개인사와 맞물려 그들이 살아온 특정 시간에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것들은 미리 설정해야 한다.

   - 이야기를 만들 때는 처음과 끝을 함께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라.

   - 어떤 이야기의 시작점은 그 앞 이야기의 끝 점에서부터 비약하는 순간을 잡는 것이

      좋다.

   - 예상 밖의 결말이기는 하되, 그 결말이 시작과 교묘하게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이야기꾼의 역량이다.

   - 이야기 전개 방식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이야기꾼의 개입 없이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 주장을 펼 때는 문장을 짧게 끊어 칩니다.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서 먼저 갖추어야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자세.

     즉, 활을 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궁수의 자세이다. 테크닉 몇 개로 완성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세상에 없다. 이야기를 만드는 자기만의 자세가 없다면 진정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 결과물을 갖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의 그가 취한 자세를 점검하고

      교정하는 게 중요하다.

   - 이야기란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과 내용 속에서 탄생하는 것으로 좋은 이야기꾼

     이 되기 위해서는 오감 훈련을 반드시 열심히 해야 하고, 그 훈련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육감'을 개발하는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7) 단어장 

   8) 주제록

   9) 소품기(작품에 사용될 소재들

  10) 한결같음의 힘

 

- 개인적인 일과도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시간'으로 나누어서

   활동하라

 

- 반복과 단순함만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

 

작가가 주장하는 [그물망 퇴고법]

   1. 이야기의 큰 흐름을 고쳐라

   2. 캐릭터를 고친다.

   3. 갈등을 따라 초고를 고친다

   4. 공간을 따라 초고를 고친다.

   5. 시간을 따라 초고를 고친다

   6. 주제를 확인하라

   7. 문장을 고치라

로 기술되어 있으나 이 내용만 갖고는 절대 알 수가 없으니 이 글을 읽는 모든 작가 

지망생이나 글 쓰고자 하시는 분들은 작품을 꼭 사서 읽어 볼 것을 강추합니다.

(저는 작가나 출판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 다사(多思)는 정신을 죽이고 포식은 육식을 죽인다.

 

-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나 역시 하나의 육체 노동자이다.(엘버트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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