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꼴레르 : 세상을 지배할 '지식인'의 새 이름
유영만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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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자연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런데 유독

사람만이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재능을 발견하기 보다는 남과 비교해 타인을 따라 잡으려

한다.

'남보다' 잘하려 하지 말고 '이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제목처럼

[브리꼴레리]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위의 문구로 나는 작품을 읽은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싶은데,

여기에 첨언해 작품이 이야기하고, 저자가 주창하고 있고 [브리꼴레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자세를 강조한 작품이었다고 본 작품을 이해하고자 한다.

 

작품에서 여러 이야기가 제시되고 있으나 나는 3가지 측면에서 저자가 주장한 핵심 키워드를

정리하고 이해하였는데,

첫째는 [브리꼴레리], 둘째는 '전문가의 자질', 셋째는 '통섭의 중요성이다.

 

먼저, [브리꼴레리]에 관한 사항으로서,

본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두 회사의 사례를 통해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 회사는 '엔론''사우스웨스트 항공'이다.

두 회사 중 '엔론'은 맨킨지의 조언을 듣고 당대 최고의 인재만 채용했다가 결국 파산해 버리고

'엔론'MBA 출신 인재 한 명 없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성공할 수 있는 원동력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두 회사를 성공과 실패로 이끈 결정적인 요소로 바로 [브리꼴레르]를 들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지능지수나 학업성적은 혼자서 열심히 할 때 나타나는 지표로 회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집단은 뛰어난 인재의

독창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브리꼴레리]의 기본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브리꼴레르]가 무엇인가? 저자가 임의로 정리해 놓은 정의도 있으나 작품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그의 기본 요건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먼저 그들은 이질적 정보를 융합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지식 연금술사'이자 색다른 도전을

즐기면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스스로 알아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진정한 [브리꼴레르]가 되기 위해서는

  1) 끊임없이 변화되는 분야간의 차이를 탐구해 나가는 인재

  2) 학문적 통섭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융합을 추구

  3) 주어진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을 찾는 모범생이기 보다 모험가에 가깝고

  4) 책으로 배운 논리적 사고보다 몸으로 배운 야생적 사고 소유

  5)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임기 웅변력을 발휘해 관객이 요구하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재즈연주자적 성격의 소유자

  6) 냉철한 판단력과 함께 따뜻한 가슴 그리고 과감한 추진력을 겸비한 전문가

  7) 실천적 지혜로 무장한 행동하는 인재

  8) 즐길 수 있는 재능을 찾아 최고 경지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

  9) 하나의 정답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다양한 현답을 추구 한다

이를 영어 단어로 정리해 보면, Crisis, Challenge, Change, Chance, Creativity, Concept,

Confidence,, Consistency, Collaboration, Connection

, 10C를 갖춘 인재를 이야기한다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전문가의 자질''에 대한 것으로 개인적으로 저자가 제시한 시각에 상당히 공감가는 

주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오늘날은 전문가(specialist) 보다는 전인(whole man)을 요구하는 시대로 작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는 전문가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전문성만이 최고

이며 나머지 지식은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자만과 교만, 거만과 오만 방자한 태도에서 비롯

되는 문제라고 보여진다. - 아주 전적으로 동감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게 나의 관점이다 -

특히 전문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보게 해 준 내용(66~67)은 두고 두고 읽어 보고 음미가

필요한 대목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자신이 믿는 것을 진실로 만들려는 노력이 무엇이 진실인지 밝히려는 노력보다 강해질 ,

전문가들이 밝혀 낸 진실이란 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권위 있는 거짓말이 된다. '니체'

말했던 대로 무엇이 진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그것이 진리로 받아 들여지는지 그 진리가

저항하거나 담보하고 있는 가치나 입장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진리에는

진리를 밝히려는 주체의 권력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모든 진리는 휘어져 있다'

한 이유도 진리에는 특정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그들의 이해 관계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푸코'도 같은 맥락에서 '모든 지식은 정치권 권력을 담고 있다'고 했다. 정치적 영향력 관계에서

벗어난 순수한 진공 속에서는 지식이 태어나지 않는다. 다양한 지배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지식 가운데 권력 다툼에서 승리한 지식만이 통용되기 때문이다.

해당 지식이 어떤 권력집단의 의지와 이해 관계를 반영하는지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략)..... 비록 전문가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전문가에 버금가는 식견과 안목,

전문성의 질적 수준과 전문적 지식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혜안은 지닐 수 있다. 그것이 전문적

문외한이 판치는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따라서 전문가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자기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과 더불어 전체의 그림과 각 영역의 관계를 그릴 수

       있도록 부단히 접목 가능성을 탐구하는 노력이 있는 자

둘째, 이전 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

셋째, 전문성을 축적한 사람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목과 자질을 갖춘

       인격적 존재

넷째, 가슴으로 공감,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냉정함, 객관성 그리고 공정성을 유지

       하려 끊임없이 고뇌하는 실천적 지혜를 습득하고 있는 사람

다섯째,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 보다 비판의 빵을 나눠 먹을 줄 아는 사람

여섯째, 기술적 탁월함과 더불어 윤리적 책임의식을 갖고 도덕적으로 재무장된 사람이

          '진정한 전문가'

참고로 모든 것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잡사'의 경쟁력은 잡학 지식의 풍부함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설득력에 의해 결정된다.'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했던 내용은 '통섭의 중요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 '통합'이 물리적 합침이라면 '융합'은 화학적 합침이고, '통섭'은 생물학적 합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다른 학문간의 공감과 소통, 융합과 창조가 멋지게 일어나려면 자기 학문 우월주의와

타 분야에 대한 무관심을 버리고 낯선 문화를 탐구하려는 여행자의 태도를 겸비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융합은 분야가 다른 전공이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한 가지

틀에 갇힌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때 일어나는 것으로 융합의 꽃을 피우기 위해 우리는 박식가인

동시에 개척자가 되어야 하며 융합은 깊이를 추구하되 넓이를 동시에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미래의 인재는 있는 정보나 지식을 그대로 습득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 자신의 문제

의식이나 목적 의식에 맞게 재편성해서 색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는 이들을 칭하는 말이다.

상당히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을 읽으며 저자의 학식과 방대한 독서량에 저의기 놀라기는

하였으나 뭔가 찜찜함이 배어나는 느낌이었다.

너무 짧은 지면에 저자의 상당한 지식 내지는 상식을 기술하려다 보니 저자의 의도가 백화점

식으로 나열되는 듯한 느낌도 있었고, 뭔가는 전달하기는 해야 하는데 저자의 속은 답답하다

보니 생뚱맞은 단어가 튀어나와 당혹스러웠다.

 

특히 264쪽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간주관성''간주체성'이라는 단어는 작품의 전후를 찾아봐도

어떤 의미로 쓰여졌는지, 그 단어가 갖는 어떤 의미인지 아무 설명 없이 진행이 되다 보니 약간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할 것이다.

 

오늘날 모든 대학이나 회사들은 자신의 사람을 뽑을 때 '지혜' 아닌 '지식'이 많은 사람을 선호해

왔고 지금도 겉으로는 '지혜'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은 정말 좋은 내용과 설명으로 이루어져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 내지는 지침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으나 자칫 내용의 방대함에 놀란 이들에게 반감도 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작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기 보다는 대학 새내기들 혹은 회사신입 및

중견사원들의 '직장생활 일류화 전략 교재' 정도로 추천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

 

작품을 읽다 우연히 접한 어느 신문의 기사를 읽었는데 여기에 옮겨 보면

"국내 페이스북 이용 인구가 1000만 명 시대, SNS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이른바 'SNS 스트레스'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향후 큰 사회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

어느 50대 여성이 자신의 아들이 외국 명문대학 두 곳에 동시에 붙은 합격증 사진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가 동창 페친들로부터 질투 섞인 싸늘한 침묵을 체험했다고 한다.

SNS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그들이 보는 SNS의 꼴불견은 심한 자기자랑 막말

비방 트집 허세 힘들고 우울하고 불쌍한 척 3종 퍼레이드 갖가지 명언과 인용구로

담벼락을 도배하며 훈수 두려는 태도 등이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작품이 나름 의미 있었다고 생각되는 데, 나는 왜 갑자기 이 신문 기사가 생각났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든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오늘도 무한 경쟁을 펼치며 뛰고 또 뛰고 있는 자기만의 필살기를 준비하는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읽어

봄직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얻은 잊고 있었던 상식과 지식들

- '메시업'이 다양한 정보를 뒤섞고 버무려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지식의 편집술이었다면,

  ‘지식의 연금술'은 자신의 전문 분야와 다른 전문분야의 개념 혹은 지식을 융합하는 것이다.

 

- 지식습득의 가장 강력한 원천이 바로 다독, 다상량, 다작이다.

 

- 당동벌이(黨同伐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

 

-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

 

- 세상을 파악하는 방법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머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손이다. 손은 마음의 칼이다. 그것이 세상을 바꾼다.

     (야콥 브르노브스키)

 

- 존재는 실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행동은 입보다 더 크게 말한다.

  말은 약속하지만 행동은 결정한다.

 

-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무엇을 알고 있느냐, 무엇을 믿고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행동으로 실천 하느냐이다. (존 러스킨)

 

- 기회란 아무에게나 오지만 아무나 잡지는 못한다. 오랜 기다림을 인내심으로 참고 견디면서

  철저한 준비를 한 사람에게만 다가오는 행운이자 선물이다.

 

- 지혜는 지식을 반복해서 축적하는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발현된다.

  지식은 정보를 실제 문제 상황에 적용하면서 느끼는 깨달음의 결과 탄생한다.

  정보는 자료를 구조화, 체계화하는 가운데 일정한 틀을 갖추게 된다.   

 

- '인 액션''온 액션'의 차이는 '인 액션'이 행위를 하면서 이전의 행위를 숙고해 보고 다음

  행위의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이라면 '온 액션'은 행위결과를 추후에 반성해 보는 것이다.

 

- 리좀(rhizome)'이란 생물학에서 수평으로 뻗어 나는 뿌리 줄기를 지칭하는 말로, 위계나

  이원론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 나가면서 새로운 지식을 탄생시키는 사고 방식을 뜻한다.

  따라서 리좀은 끊임없는 접속과 접목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생산해 내고 낯선 지식을 융합해

  내는 부단한 창작과정이다.

 

- 재능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시도뿐이다.

 

- 인류의 한계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력의 한계다

 

- 전문 지식과 기술의 탁월성과 윤리적 자세 그리고 전문성을 활용하는 도덕적인 행위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레테'라 했다.

 

- 검도에서는 전문가에 이르는 단계를 수파리(守破離) 3단계라 설명한다.

  첫째 수()란 기본과 원칙을 연마하는 단계

  둘째 파()란 기본기를 근간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기술을 창조하는 단계

  셋째 리()런 기절초풍할 기운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단계

 

- 과학계에서의 공적은 처음 아이디어를 낸 자가 아닌 세상을 납득시킨 자에게 돌아간다

                                                    (찰스 다윈)

 

- 엘랑비탈은 도전에 대한 응전을 통해 인간과 문명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

 

- 진리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진리는 언제나 '사이'에 흐르고 있다.

  진리가 경계를 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진리는 편협한 생각에 물들어 자기 분야,

  자기가 그어 놓은 경계 안에서만 통용되고 만다.

 

- 전문가들은 진실을 밝히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들이

  진실인지 입증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믿는 것이

  진실이다. 아니면 그들의 경력이나 지위, 연구자금을 최대한 조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진실이다.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데이비드 프리드먼)      

 

- 일상에서 경이를 만나는 10가지 습관

   1) 질문이 바뀌지 않으면 답이 바뀌지 않으며, 답이 바뀌지 않으면 내 삶도 바뀌지 않는다.

   2) '상식'에 젖어 '식상'하게 살아가는 사람보다,

      '상식'에 시비를 걸어 '몰상식'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라

   3) 전공에만 관심을 두고 경계 안에 매몰되기보다 전체를 아우르면서 경계 사이를 넘나들어라

   4) 전대미문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관계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엮고 뒤섞으며 창조를 즐겨라

   5) 이것과 저것 중에서 양자택일하지 말고 이것저것 모두 끌어 안으라

   6) 저가 생각만 떠벌이면서 호통치지 말고 다른 의견도 수용하면서 소통하라

   7) 사심을 품고 환심을 사기 보다 초심을 잃지 않고 뒷심을 발휘하라

   8) 도전에 한계를 두고 도망가지 말고 한계에 도전해 도약하라

   9) 머리 굴리며 고민만 하지 말고 이리저리 시도하면서 고통 체험을 즐겨라

  10)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룰 팔로워(rule follower)보다는 먼 길에서 딴 세상을 만나는

       룰 브레이커(rule breaker)가 되어라.

 

   - 책에서 언급된 '책 저술의 비법'(18~19) 

[책 쓰는 과정은 다양한 정보를 편집하는 과정이자, 다른 분야의 지식과 다각적 접목을 시도하면

 서 지식을 융합하는 과정이다. 책은 결국 지식의 연금술사가 되어 다양한 지식을 나의 문제의식

 과 목적의식에 맞게 뒤섞고 버무리고 용해 시켜 색다른 지식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주변에 산재한 다양한 개념과 문장을 엮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전까진 관계없다고

 생각되었던 개별적 개념이나 문장도 새로운 관계로 다시 부각된다. 이것이 곧 지식융합이다.

 새로운 책은 기존의 책 사이에서 탄생된다.

 책을 읽고 다른 책을 또 읽으면서 읽은 책과 책 사이에 나의 생각이 흐를 때, 또 다른 책을 구상

 할 수 있다. 모든 책의 내용은 저자의 문제의식과 논리적 흐름에 따라 이전 책의 내용을 편집

 하면서 탄생된 메시지다. 완전히 새로운 책은 세상에 없다.

 모든 책은 기존 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고민

 한 내용이 용해돼 탄생된다. 또한 책을 쓰는 과정은 그 자체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학습여정이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관련 분야 책을 족히 20~30권은 xhd독하고 기존 책들이 공통으로 주장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문제의식과 사연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기존 책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나 간과하고 있는 한계나 문제점을 포착해 내가 책을

 쓸 때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글 쓰는 일은 생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아이디어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과정이다.

 창작은 다양한 체험, 방대한 독서, 색다른 일상이 융합되어 한 편의 글로 완성되는 과정이고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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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 밑줄 긋는 여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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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작품을 읽으며 불현듯 언젠가 읽고 또 읽었던 류시화 님의 어느 시 제목이 내 머리 속에서 파란

불을 밝히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시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로 해당 제목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간혹드는 생각이

'이 세상에 나는 혼자이고, 혼자일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나를 엄습하고는 했었던 기억이 새롭게 났기 때문이다.

나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분이 이런 내 글을 읽고 '당신이 언제나 혼자라구?' 웃으며 반문하거

나 반평생을 같이 살고 있는 와이프가 펄쩍 뛰면서 이 무슨 호랑이 풀 뜯어 먹는 소리냐고 한

소리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였었다

 

는 점이다.

제가 얼마 전 읽었던 차동엽 신부님의 '잊혀진 질문'이라는 작품을 읽다 보면 [고독]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 떠 밀려서 당하던 외로움을 이제 좋아서 즐겨 보는 것이다. 고독은 외로움의 변형일 뿐이다.

- 외로움은 '홀로 혼자'이기에 위로와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고독]'더불어 혼자이기

  에 더 이상 위로와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외로움은 타인의 고통을 품지

  못하지만 [고독]은 타인의 고통을 품습니다.

  타인과 어울려 살고 있는 인간들 모두는 혼자가 아닌 듯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볼 때는 모두가

  언제나 늘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친구가 많으며, 사회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등의 이유를 대면서 자기는 결코 혼자였던 적도 혼자일리 없다는 강한 부정을 하고 살고있다고

 

나도 한 때는 그랬었다.

친구와 또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고독할 시간이 전혀 없는 진짜 인기가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둘러 싼 여러 허상이 벗겨

지면서 나는 혼자일 수밖에 없었고, 혼자였다. 절대 [고독] 속에 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나를 항시 따라

다니는 내 '그림자(허상)'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림자(허상)로 인해 나는 항시 혼자가 아닌 듯 착각

을 했었던 것이다. 그림자가 존재할 수 없는 공간으로 가 보라. 고독과 함께 심연 깊은 곳에서

부터 밀려오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느껴 보아라.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 외에 그 어떤 생각

, 사고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서 따라 다니는 '그림자'(허상)로 인해 외로움을,

[고독]을 느끼지 못했음에도 마치 자신이 고독할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자기를 대신해 줄 수 없을 때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그런 [고독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허망의 그림자조차도 초대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그런 시간과 장소로 몰고 가고 있었다.

언제부처 인지 나도 그런 순간을 자주 마주하고는 한다.

그런 [고독] 속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낮선 선술집에서 술을 초대했고, 시간을 불렀으며, 사람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그런 시간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

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나를 그런 사고 속으로 몰고 간 [고독]의 초대에 응하게 되었다.

혹자들은 이야기 한다.

고독해 봐야 자신의 모습이, 위치가, 관계가 어디에 있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이다. 삶에 급급한 현대인들은 물론 나 역시 고독할 시간이 없었다.

살기가 바빴고 또 현실이 급했기 때문이다.

[고독]을 불러들이면서 나를 돌아 볼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독]과 끊임없는 대화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주인인 내가 초대한 에게 묻는다.

'힘들지?'

초대받은 는 답한다.

'그래, 너무 힘들어. 하지만 희망은 있어

주인인 내가 답하고 또 묻는다.

'네가 갖고 발견한 희망이 뭔지는 몰라도 열심히 뛰어 봐 좋은 날이 오지 않겠어?‘

초대받은 나는

'그래 알았어...열심히 뛸 테니 잘 보고 응원해 줘'

이런 대화가 자주 있다.

[고독]이라는 친구를 불러들이지 않으면 이런 대화를 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힐링이 되어 감을 느끼고는 한다.

이런 대화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거나 허공에 감자를 먹이는

그런 날이 연속될 것이고 끝내는 목숨을 끊거나 도피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좀 더 나은 자신을 위한다면 또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작품의 제목처럼 '혼자인

내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스스로에게 [고독]이라는 친구를 초대해 심연 깊은 곳으로부터 또 다른

나를 불러 냉철한 자기 점검을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제는 간만에 기도원에 간 마누라 때문에 부부침대에서 혼자 잤다.

예전에는 옆에서 초저녁부터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자는 마누라가 그렇게 미웠는데 어제는 왜

그리 보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나의 변덕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회사일이다, 친구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술 먹고 늦게 들어와 기계적인 취침과 기상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오다 모처럼만의 외출로 혼자 있게 돠어 부부 침대에 혼자 누워 있으려니

불현듯 나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다 지쳐서 숱한 날을 홀로 잠들었을 마누라가 생각난다.

무서웠고 심심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마누라가 없는 빈 방에 혼자 누워 있으려니 심심했고 무서웠

. 내가 이럴진대 마누라는 어땠을까? 혼자인 내가 혼자인 내게 물었다.

'혼자 있어 보니 네 옆에서 자는 사람 입장이 생각되냐?"고 말이다.

이전에는 혼자 있는 게 싫었고, [고독]이라는 단어 자체도 싫어했다.

바쁘게 살아도 모자란 판에 [고독]이 무슨 배부른 헛소리인가 하면서 헛웃음만 짓고는 했었던

그 옛날이 나를 비웃는 듯하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혼자라는 단어는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과 전혀 별개로

어느 순간 불현듯 각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그런 단어임을 나는 오늘 확실히 확인하였다.

진정한 내가 ''답기 위해서는 혼자인 내가 혼자인 에게 끊임없는 질문과 함께 스스로를 돌아

보는 성찰의 여백을 항시 열어 놓아야 부지불식간에 슬쩍 다가오게 되는 [고독]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짓누르는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게 됨을 알게 한 그런 날이었다.

그게 바로 혼자인 내가 혼자인 나에게 던져 준 지혜였다고 생각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부담없이 접하게 된 작품을, 부담 없이 기록해 두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는

, 그런 가벼운 마음은 이내 더 큰 무게로 나를 은근슬쩍 찍어 누른다. 어쨌든 독후감을 대충

쓰려다 [고독]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품이 던져 주는 문구들

-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도, 그 느낌을 오래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것도 능력

- 여든이 넘어서도 쳐다만 봐도 좋은 여자로 남고 싶고, 성공한 할머니보다는 행복한 할머니,

  존경받는 할머니보다 사랑받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의 버킷리스트)

-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과감히 던져 버리고, 제발 좀 뻔뻔스러워져야 한다.

- 인간은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것이 아닐까?

- 불륜은 괴로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이 아닌 비밀이 되어야 하니까.

  일상을 나누는 그런 소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니까.

-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의 괴로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일상을 공유하지 못하면, 서로가 서로의 일상이 되지 못하면, 사랑은 끝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의 비밀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투명 인간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 슬럼프는 '배터리가 10퍼센트 미만입니다'같은 경고 메시지 아닐까?

  위험하니 충전하라는, 스스로 좀 돌봐주라는.

- 뭔가를 선택할 때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를

  원하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네 마음 다 알아'라는 말처럼 엄청난 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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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9

- 정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까르페 디엠'이 정답이다 -

 

오늘 이 작품을 팔두로 연속해서 몇 권 정도 사색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선정해 읽기로

하였는데 헌데 초장부터 완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짧은 지식의 소유자인 나는 이 작품으로 인해 절망하고 말았다.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시간이 곧 나를 고문하는 시간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찌 사는 게 진정한 삶인지 연구하기 위해 작품을 골랐는데....젠장 성격만 더 나빠지게

만든 작품이다.

 

몽테뉴의 ''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썼다는 '수상록'을 들춰 본 적이

없으니 저자가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내용을 소 닭 쳐다 보듯이 대했으니 독서

하는 시간은 바로 답답함의 극치였다. 그렇다고 맨날 접하는 만만한 내용만 접한다는 것은

독서에 임하는 나의 자세에 대한 모독이요 내 정서 함양 측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참고 또 참으려 본 작품에 도전하게 되었다.

 

작품은 몽테뉴의 [에세(수상록)]가 쓰여지게 된 배경을 작가 나름대로 시대적, 환경적 요인

분석과 함께 몽테뉴의 가족 환경과 비교하면서 작품이 집필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나 역시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 작품의 소재인 '에세'가 쓰여지던 시기에 우리 극동아시아는

어떠했는지를 한, , 일 삼국의 국가 환경적 분석을 통해 나름 비교해 보았다.

[중국]'명나라'의 시대로 지배층들의 부패로 국권이 많이 손실되어 있었고 또한 북쪽은

몽고족과 여진족이, 남쪽에선 왜구가 침입해, 나라가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던

시기였으며, [조선]은 선조 즉위 이후 사림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서, 신진 사림(동인)

기존 사림(서인)으로 나뉘는 붕당을 거치며 정국이 불안했던 시기였고, [일본]은 수 백 년

간의 전국 시대로 전쟁에 익숙해진 '다이묘'들과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중국 대륙 정벌을 꿈꾸며 전쟁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던 시기로 파악되었다.

동양에서의 이런 상황과는 크게 다르지 않게 몽테뉴의 국가인 프랑스 및 서부 유럽은

'종교 분쟁''개혁'과 프랑스 내전은 물론이고 고대 철학의 재등장으로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는 그런 시대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에세'가 쓰여지던 시기는 동서를 막론하고 혼란의 시기 그 자체였다고 판단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신권'의 약화로 '왕권'으로 이행되던 시기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사상이 싹텄고 국가적 잠재력이 어떤 형태로든 외적으로 표출되던 그런 시대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와 책자를 추천하고 있는 여러 싸이트를 조사해 보고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모르는 나로서는 저자가 분석하는 내용이 더욱 어렵게 다가와 독서 그

자체가 내게는 큰 노역일 수 밖에 없었다. 겨우 마음을 다 잡고 읽고 읽은 내용을 스스로

복기 해 보면 각 CHAPTER의 소제목이 바로 작가가 이야기하려던 내용을 축약해 놓은

것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고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작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남들이 각자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사람이 [미셸 에켐 드 몽테뉴]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는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간결하게 적어 내려갔다고 하며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사물과 정신 상태를 포착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묘사하였다고

한다. 또 그는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이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였던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즉 올바른 삶 또는 명예로운 삶뿐만 아니라 완전히 인간적이고 만족스럽

, 풍요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결국 몽테뉴는 추상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사례마다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또

대처 할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여러 에세이를 통해 말해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 그의 수상록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읽어 보지 않아 뭐라 이야기하기 그렇다 -

 

어쨌든 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는 [에세(수상록)]의 저자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가 쓴 유일 무이한 작품으로, 전체 3권으로 구성된 산문 수상집이다.

고금의 다양한 단편을 인용하고, 윤리적ㆍ역사적인 의견을 제시하며, 자신의 비판을 더한

감상문 형식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집필 시작 초기에는 짤막한 장의 글이 주를 이루었으

, 점차로 충분한 이론을 제시한 글이 등장한다.

특히, 스토아 철학, 회의주의적 사상, 쾌락주의적 사상을 거쳐 여태까지의 사상을 모두

포괄하여 인간 한계를 긍정하고 존중하는 삶의 탐구가 담겨져 있다. 20년간의 집필, 107

이라는 긴 글을 통해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던지고 있는데, 이것은

회의주의적 발언이 아닌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이루어진 상대주의, 패러독스,

인간에 대한 관용이 표현된 것이며 후세의 과학주의ㆍ민주주의의 원천이 되었다.

(네이버의 지식인)

작품은 총 20개의 소단위별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이는 몽테뉴가 주었으리라고 짐작되는

해답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각 소제목별로 저자가 분석한 내용 중 가장 소제목에 근접한

내용이라고 판단되는 것만을 축약해 보았다.

 

1.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 몽테뉴가 좋아했던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을 자주 연습하면 죽음이 실제로 닥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죽음을 잘 대비하면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죽음은 단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겪게 되는 몇 가지 나쁜 순간에 불과하며

   죽는다는 것은 죽음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죽음은 잠드는 것처럼 어디론가 떠내려 가는 것이다

 

- 죽음은 대비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없는 몽상이다.

 

- [수상록]에서 그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 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알려 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

 

- 이 세상은 가볍게 스쳐 지나가듯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사는 것이 좋다

 

2. 주의를 기울여라   

- 몽테뉴, 그는 우리의 마음이 생각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흘러가는지 깊게 생각한 인물

 

- 인생은 이해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몽테뉴)

 

- 나는 머물러 있는 존재를 묘사하지 않는다. 그 과정을 묘사한다.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

  로 지나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 순간 변화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 몽테뉴가 관찰한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우선 자신의 존재를 관통하는 인생의 강이었다.

   인생은 종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상기 시켜 주기 위해 멈추지는 않는다.

 

- 꽉 움켜쥐지 않으면 인생이 당신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나 꽉 움켜쥐더라도

   인생은 당신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3. 태어나라 :

* 몽테뉴 가문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데 일곱 형제였던 몽테뉴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 의해 '라틴어'를 배우는 집에서 위탁 양육되었다고 한다.

- 라틴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뿐 아니라 근대 문화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는 언어다.

   아버지 '피에르'는 아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특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사라진 고대 그리스 로마의 낙원으로 이어 주는 연결 고리이자 개인적으로

   는 성공적인 미래와 연결된 길이었다.

   아버지의 교육 방식은 전반적으로 그에게 남다른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인생 초기에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교육을 받은 그는 의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면에서 자기 자신의 길을 따라가는,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그의 아버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였던 것이다.

 

- 아버지는 '맹렬하게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교육 방침이었는데 이는 몽테뉴 평생의 신조였다.

- 몽테뉴는 본능적인 모성애를 자제하고 외부 인사를 아들의 스승으로 초빙하라고 조언

   했다.

 

- 아버지를 능가하기 위해 기를 쓰면 안 된다. 그리하면 건강을 해친다.(몽테뉴)

  

4. 책을 많이 읽되, 읽은 것을 잊고 둔하게 살아라 

- 몽테뉴는 '사적인 행동과 성향'의 관점에서 공적인 사건을 다루는 타키투스의 역사관을

   좋아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는 그리스의 전기 작가인 풀루타르코스였다고 한다.

 

- [에세]에는 풀루타루코스의 저서에서 거의 한마디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긴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다. 몽테뉴는 책에서 훔친 내용을 다른 상황에 슬쩍 끼워 넣거나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바꾸기도 했다.

 

- 그는 책을 사람처럼 대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였는데, 독서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책을

   읽다가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나는 그걸 놓고 고민하지 않고 그냥 건너 뛰어 버린다.

   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 했다.

 

- 배운 것을 될 수 있으면 잊어버려라 그리고 우둔한 사람이 되라 이 두 가지 말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몽테뉴가 주는 최상의 해답이다.

 

- 느림과 건망증은 그런 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현명한 답이다.

 

5. 사랑과 상실을 이겨내라  

- 몽테뉴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애티엔 드 라 보에시'는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르네상스 시대에는 동성애를 하는 기색만 보여도 사람들이 경악했지만 남자들은 사랑에

   빠진 십대 청소년들처럼 편지를 주고받곤 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동성애를 즐긴 것이

   아니라 그리스와 라틴문학에 젖어 들어 고상하고 이상적인 우정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두 사람의 유대 관계는 철학의 정점이었다.

   남자들의 우정의 대표적인 사례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잘생긴 친구 '알키비아데스'

   우정이었다. 몽테뉴 역시 '라 보에시'와 그런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몽테뉴는 '우리의 우정은 그것 이외에는 다른 사례가 없으며, 그것 외에는 비교할 수

   있는 사례가 없다'고 하였다.

 

- 라 보에시의 '자발적 예종론'은 몽테뉴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는데, 협력을 피하고

   각자 양심을 지키라는 '자발적인 예종론'[에세]의 한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몽테뉴의 사상에 가깝다.

 

   즉, 이 논문은 습관, 자연 관점, 우정에 대하야 이야기하고 있는데. [에세]에서도

   전반적으로 이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논문은 내면적 자유가 정치적 저항에

   이르는 통로라고 강조하는데, 이는 바로 몽테뉴가 취한 입장이라고 한다.

   특히, 습관적인 권력에 대한 그 책의 설명은 [에세]의 핵심 주제가 되는데, 라 보에시가

   죽은지 십여 년 후, '자발적 예종론''그에 대항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프로테스탄트 

   과격파의 선전물 형태로 다시 등장하여 프랑스 군주에 맞선 반란을 선동하는 책으로

   이용된다

 

- 현명한 사람은 오랜 친구를 대신할 수 있는 새 친구들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귈

   수 있어야 한다.

 

- 존경할만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늘 지켜보고 있는 관객이라고 상상함으로써

   가치관의 수준을 높이라.(세네카)

 

6. 작은 요령을 부려라  

- 가지고 있는 것들이 지겹게 느껴지면 그것을 모두 잃어버려 절실하게 그리워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풀루타르코스)

 

- 시야를 깨끗이 유지하고 세상을 현실 그대로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인생이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세네카)

 

-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모든 일을 현실 그대로 받아 들여라.

   그러면 인생이 평온할 것이다.(에픽테토스)

 

- 아무리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정확하게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몽테뉴가 '알맞게'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걸작'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 몽테뉴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요령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에도

   이용하였는데 그의 작품 [에세]는 바로 슬픔과 고독을 다스리는 데 이용한 방법의

   부산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7. 의문을 품어라   

-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소크라테스)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다(피론 회의주의자들) 이렇듯 피론주의는 인생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모두 단

   한마디로 처리해 버린다.

   이것을 짧게 줄여서 그리스어로 '에포케(epokhe)'라고 하는 하는데 이를 해석하면

   '나는 판단을 보류한다'라는 뜻이다.

 

- [에세]가 초판에 성공을 거둔 이유가 스토아주의와 에피쿠스주의 그리고 회의주의

   덕분이었다.

 

- 몽테뉴의 위대한 제자이자 적대자인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로서 그가 쓴 [팡세]작가

   자신을 위한 책이지 누구에게 겁을 주려 쓴 작품이 아니다.

   그는 몽테뉴의 [에세]가 위험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고 열정을 쏟아 부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는 피론 회의주의자들을 두려워했다.

 

- 몽테뉴는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 게으름, 옹졸함, 치졸함 등과 같은 본성을 관용적이고

   해학적인 시선으로 보았던 반면, 파스칼은 이러한 본성에 대하여 데카르트보다 더 심한

   공포감을 조성하였다

 

- 몽테뉴는 니체가 갈망했던 것처럼,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후회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포용하면서 인생을 잘 경영할 줄 알았다,

 

8. 나만의 뒷방을 마련하라  

- 우리는 완벽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자기만의 뒷방을 마련해 두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 은둔처, 고독을 확보해야 한다

 

9. 즐겁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라  

- 우리에게는 투과성과 사회성이라는 기질이 있어서 서로 교감하고 어울리며 살아간다.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관점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이 바로 진정으로 '남들과 흥겹게 어울릴 수'있는 능력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10. '습관'이라는 잠에서 깨어나라  

- 루소가 [에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빌려다가 쓴 책이 '에밀'로 루소의 '고백록'

   [에세]와 다른 점이 [에세]가 모든 사물과 사건을 단번에 포착하는 방식으로 기술된 반면,

   '고백론'은 어린 시절부터 생애의 자취를 따라가며 이야기 체로 쓰였다는 차이가 있다

 

-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다소 반항적이지만 개방적인 해답인 '습관의

   잠에서 깨어나라'는 초기 낭만주의 시대부터 차츰 민중을 선동하는 슬로건, 더 나아가

   혁명적인 슬로건으로 탈바꿈하였다.

 

11. 절도 있게 살라   

- 진정으로 인간적인 인간이 되려면 단순히 평범한 방식이 아닌 보통 방식으로 해야 한다.

 

12. 인간성을 지켜라  

- [에세]에 매료된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츠바이크라는 인물이 에세에서 추출해 낸

   '여덟가지 자유

    1) 자만심과 우월감에서 벗어나라 

    2) 신념, 불신, 확신, 파벌 의식에서 벗어나라

    3) 습관에서 벗어나라 

    4) 야망과 탐욕에서 벗어나라

    5) 가족과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라 

    6) 광신에서 벗어나라

    7) 운명에서 벗어나라,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라

    8) 죽음에서 벗어나라.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의지에 좌우되지만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13. 아무도 한 적이 없는 것을 해 보라   

- 각 사물이 지닌 수백 가지 요소와 변모 중에서 나는 한 가지만 택한다.

   때로는 그것을 겉만 보고 핥아 보고 때로는 표면을 쓸어 보고, 때로는 뼈까지 꼬집어

   본다. 찔러 볼 때도 있지만 넓게 찌르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깊이까지 깊숙이 찔러본다.

   내가 가장 자주 즐기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다.

 

14. 세상을 보라

 

15. 너무 잘하지는 마라   

- 몽테뉴의 피론주의 신조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귀를 빌려 주되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인품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었다.

 

16. 철학적인 사색은 우연한 기회가 있을 때만 하라  

- 몽테뉴는 철학자나 현자나 웅변가나 도덕군자인 것처럼 행세하려고 펜을 들지 않았지만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그저 솔직하고 단순하면서도 거침없이 털어

   놓음으로써 독자들에게 철학자이자 현자이고, 웅변가이자 도덕군자의 모습을 보였다.

 

17. 성찰하되 후회하지 마라

 

18. 통제를 포기하라  

- '마리 르 자르 드 구루네'라는 여인은 몽테뉴와 아무 연관도 없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몽테뉴의 유작을 위해 노력한 인물로 거의 양녀처럼 행동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잃은 [에세]에게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몽테뉴의 유고를

   모아 책을 출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책을 위해 싸우고 그 책을 수호하고, 홍보하였으

   며 [에세]를 비난하는 기색만 보이면 언제든지 싸워 굴복시키겠다고 경고까지 했던

   인물이다.

 

- 고전은 각자의 마음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동시에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19.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  

-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이 찾기 어려운 방법으로 자신의 결점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쇠퇴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도 한계가 있는 인간에 불과하다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20. 인생 그 자체가 해답이 되게 하라  

-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터무니없는 기적을 기대하지 않고 평범하고 질서있게 사는 것이며

   인생은 그 자체의 목표이자 목적이 되어야 한다.  

 

- 이미 흘러가 버린 의식의 흐름 한 줄기에 매달리지 말라 관점과 상황에 따라 생각이나

   느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만물이 '끊임없는 흔들림 속에 존재하는데 인간의 생각이

   한결같이 한 곳에 너무를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각종 홍보 자료를 보면서 '순 뻥'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조용히 앉아서 주제를 나름대로 파악해 보니 어느 정도 선전한

   내용이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한 번은 읽어 볼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전제조건으로 몽테뉴의 [수상록] 읽기를 먼저 권하고 싶다.

 

작품을 읽고 난 현재,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삶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으나 내가 본 작품을

통해 한가지 분명한 느낀 것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마주치는 경구 중에 하나인 바로

[까르페 디엠]이 아닌가 생각한다.

,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그리 중요하다고는 볼 수 없고, 미래는 앞으로

다가 올 것이기에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미래를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해서

라도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 하고 그외 나머지 결과는 신에게 맡긴

다는 의미의 그 단어가 바로 정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후감을 마무리하면서 '사족'을 하나 단다면 과거 정권에서 장관까지 지내며 종횡무진

활동하던 분이 정계를 은퇴하며 본 작품과 동일한 제목의 책을 내신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말이다.

작품을 읽고 났더니 다른 분이 그런 질문을 했다면 답을 할 수 못했겠지만 바로 그 분의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귀하처럼만 살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말이다.

 

    책으로부터 얻은 나름의 지식

 

- 린케스테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제거하려고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고 전군

   앞에서 자기 입장을 변호하는 연설을 한 인물이다.

 

- 이탈리아에서는 맥도널드 햄버거의 로마지점 개설을 반대하는 운동을 계기로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되었다.

 

- 1550년대에는 국내외 칼뱅교 신도들에게 위그노(Huguenot)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는 종교개혁 초기에 망명한 개혁주의자 중 일파를 가리키던 말로서 '공모자'라는 뜻이

   있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 앙리 4세가 역사에 기여한 업적 중에는 '낭트 칙령'이 있다. 1598413일 선포된

   이 칙령은 종교 분열로 가라진 양편에게 모두 양심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그 이전에 회유하기 위하여 체결되었던 각종 협정과는 달리 이 칙령은 한동안

   성공적으로 시행되었다.

   프랑스는 종교 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나라에서 형태가 각기 다른 두 개의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최초의 서유럽 국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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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재발견 -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500년 고려 역사를 만나다
박종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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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작품을 읽은 후 3주가 지나고 있다.

작품 속에서 마주한 고려사 일부 내용이 내가 학창시절 배운 내용과 일부 달랐기에

또 그동안 우리 민족이 외세에 대항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알고 있었던 일부 내용이

자랑이 아닌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일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나는 쉽게 독후감

작성에 다가서지 못하게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최근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역사 과목 국정화문제가 내가 작품으로부터 알게 된 일부 잘못된 부분으로 인해 나를

더욱 독후감 작성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그런 논쟁을 갖고 국정화가 좋다, 아니다하고 다툼을 일삼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 어느

신문의 논설위원이 이야기하였듯이 망가진 배를 앞에 두고 자기가 운항을 책임지면

잘 할 수 있다고 떠드는 모습처럼 내게 비춰져 씁쓸함만 더해졌기에 이 역시 나를 쉽게

독후감 작성에 돌입하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작품을 통해 내가 실망한 부분은 일전에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언급했었던 '대몽 항쟁'

시기에 나라의 지도자들었던 무신들이 보여준 치졸한 처사에 대한 사항이었다.

그들은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국가와 백성을 위해 솔선수범해

노블리스 오블리주와도 같은 행동을 왜 보여주지 못하였느냐 것이다.

당시 권력을 잡았던 무신들이라고는 하지만 배운 집안의 후손들이었을 것이고, 문신

수준은 아니더라도 관료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사서삼경도 읽고, 충효를 논했을

것이고, 공자왈 맹자왈을 떠들며 갖은 허세, 없는 허세를 다 부려가며 백성 위에 군림

하면서 난리를 쳤을 터인데 어째서 나라가 어렵고, 백성이 힘들어 할 때 그들은 자신들

의 안위 그리고 영달만을 추구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왔다

- 있는 동네에 임대주택이 못 들어오게 하고, 임대주택 아이들이 자신의 아파트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장애인 시설이 자신의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의석수만을 늘리려는 우리의 선량들의 모습은 무신들이 행했던

그런 치졸한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반문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

고려는 잘 아는 바와같이 태조 왕건으로부터 시작(918)되어 33대 공양왕(1392)

이르기까지 47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였으며, 1170년에서 1272년까지

무신에 의해 통치되던 국가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25대 '충렬왕'부터 30대 '충정왕'까지

칭키스칸의 원나라 지배를 받았던 국가였다는 것을 작품과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런 유구한 역사 속에 감춰진 우리 고려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역사

과목의 국정화 추진은 문제가 있는 주장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아직 완성도 되지 않는 분야를 무조건 자율이라는 이름하에 민중사학자들이 주체가

되어 외치고 있는 주장에 근거해 교육을 시켜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남한의 민족주의사학과 북한 역사학이 접목돼 생겨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일종인 민중사학, 그 이념을 추종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아직도 대한민국의 건국

부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획일화된 이념을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버금가는 민중사학적 관점에서 그 어떤 역사가 또다시 변질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나는 반대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개인적인 생각은 십 수 년이 흐른 어느날 우리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덤벼든 무지랭이 민초가 우연히 알게 된 우리의 숨겨진 역사를 보면서 오늘 나와 같은

혼란을 겪게될 경우 우리의 찬란한 역사 그 어떤 것도 믿지 않을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것은 몰라도 역사만큼만은 네 편, 우리 편으로 갈라서지 말고 역사와 후손

앞에 당당할 수 있게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거기서 나온 중론을 모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학자적 양식이 있는 분들을 엄선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측면에서

다루어진 내용으로 교과서가 집필되어 후세 교육에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께서 나름의 연구 끝에 반드시 짚어 봐야할 역사의 주요 변곡점이라 여겨지는

29꼭지에 대해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시다고 생각되었는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현대인들이라면 한 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경우는 비록 주마간산식 고려사에 대한 탐구였지만 작품을 통해 또 새롭게 알게

사실은 광종(4)’대에서부터 현종(8)’에 걸쳐 이루어진 개방정책으로 귀화인이

급증하면서 단일민족으로 부르기에 부적합할 정도로 많은 외부인들이 고려로 귀화해

국력이 전성기였다는 사실은 로마가 주변국을 속국으로 삼으며 능력 있는 속국인들을

로마에 중용해 강대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에 비견될 수 있다는 사항은 외국인 노동자 100만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새겨 볼 만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주변국(거란 및 송나라)과 벌였던 여러 외교전략과 협상술은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우리의 외교관들이 배워야 하는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던 작품이다.

아무튼 본 작품을 통해 고려 관련 작품이 나오면 주제별로 찬찬히 정리해 볼 필요성을

크게 느낀 그런 시간이었으며 작품 말미에 언급되고 있는 기황후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개인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기에 이 작품에서는 언급하는 것을 자제하였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몽골은 왜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나’(김윤회, 역사의 아침)라는

작품을 통해 그녀의 삶과 사랑 그리고 행동을 연구해 여기에 정리할 예정이다.

 

작품으로부터 얻은 지식

 

- 고려의 국호는 고려(901), 마진(904), 태봉(911)으로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고려라는 국호는 고구려의 역사와 영토를 계승하려 했던 궁예의 뜻으로 지어졌으며,

   마진(摩震)’은 범어 마하진단(摩河震旦)’의 약칭으로 마하크다’, ‘진단동방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마진(摩震)’대동방국을 의미하는 뜻이며,

   태봉(泰封)()’는 천지가 어울려 만물을 낳고 상하가 어울려 그 뜻을 같이

   한다는 뜻이고, ‘()’은 봉토 즉, 영토를 의미한다.

   따라서 태봉(泰封)’은 서로 뜻을 같이해 화합하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왕건은 후백제의 근거지인 나주전투에서 승리해 궁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일약

   2인자로 올라서게 되는데, 나주는 일본과 중국으로 연결되는 황해 해상 물류의

   거점이자,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길목이었기 때문에 나주전투의 승리는 궁예가

   견휜의 후백제국을 압도하는 국면을 만들게 된다.

   이의 뒷배경에는 왕건의 제1비인 신혜왕후와 제2비인 장화왕후의 집안이 당시

   유력한 해상세력이었던 것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 927년 왕건의 팔공산 전투는 왕건의 40년 싸움꾼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패배지만

   오히려 최후의 승자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 전투다.

   이 전투에서 왕건은 자신의 심복 신숭겸김락은 물론 5천여 명의 군사를 잃지만

   견휜이 왕건과 연대하려는 경주를 침공해 신라 국왕을 살해하는 등 정통 왕조 신라에

   잔악한 행동을 하자 군소 실세들이 견휜에게 등을 돌리고 존왕주의를 내세워

   끝까지 신라를 정통왕조로 존중한 왕건에게 지지를 보내게 되는 계기된다.

 

- 왕건은 개태사(충남 연산)를 지어 견휜을 최후까지 영웅으로 배려했다.

 

- '고려판 왕자의 난

  태조 왕건 제1비인 신혜왕후에게 후사 없자, 2비인 오씨로부터 낳은 아들을 태자로

  삼으려 하나 다른 호족에 비해 세력이 약해 이를 주저하게 되어 박술희, 왕규 등과

  같은 후견인을 내세워 후사(혜종)를 잇게 하는데 이로 인해 태조의 바람과는 다르게

  호족 세력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며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혜종 등극 3년 만에 병석에 눕자 차남 (3,정종)’와 삼남 (4,광종)’는 왕위를

  노리고 거사를 준비한다. 왕규는 배다른 형제 요와 소에게 음모가 있음을 알고 이를

  혜종에게 알지만 혜종이 이를 무시하자 오히려 왕규는 태조의 16번째 광주원군

  내세워 왕위에 앉히려 하다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정종을 등극시키게 되고 만다

 

- 광종은 중국계 귀화인 중 능력 있는 인물을 받아 들여 사회 각 방면에 활용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과거제도를 도입한 쌍기이며 고려사에 기록된 귀화인 중 두드러진

  인물만 40명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고려는 관료 엘리트뿐 아니라 외국인 기술자도 정책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고려에

  항복한 거란 포로 10명 중 한 명은 기술자인데 그 가운데 기술이 정교한 자를 뽑아

  활용해 이들로 인해 고려의 그릇과 옷 제조 기술이 더욱 정교해졌다고 한다.

  11세기 중엽 문종(1046~1083)은 송나라 진사 출신인 장정이라는 인물이 귀화하자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타산의 돌이라도 나에게는 쓸모가 있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등용해 고려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다.

 

- 고려 현종 때 고려에 귀화한 이민족 주민의 총수는 약 17만 명으로 12세기 고려

  인구를 200만 명으로 추산했을 경우 약 8.5%의 인구가 이민족으로 구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우리 역사의 특징 중 하나로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고 있는

  단일민족론을 재검토 해 할 근거가 되고 있다.

 

- 본관과 성이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편화된 건 고려왕조 때부터이다.

  , 고려 초기 지배 계층은 왕조 건국에 협조한 대가로 중앙정부로부터 성씨와 본관을

  받은 계층으로 구성되었다. 성씨와 본관의 소유는 곧 중앙과 지방에서 지배 계층임을

  과시하는 증표이기도 했으며 이후 점차 중국의 씨족제도를 모방하여 성씨를 반포하며

  일반 사람들도 성을 갖게 되었다

 

1) 안동 권()씨의 유래

  권씨는 김행(金幸)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김씨는 신라의 대성(大姓)이었다. 김행이

  복주(안동)를 지키고 있던 중 태조가 신라를 치려고 복주에 이르니, 김행은 천명이

  그에게 있음을 알고 고을을 바치고 항복하자 태조가 기뻐하며 씨 성을 내렸다.

 

2) 이천 서()씨의 유래

  왕건이 남쪽을 정벌하기 위해 지금의 경기 이천 부근 남한강에 이르렀을 때 이곳 출신

  서목(徐穆)이란 사람이 이섭(利涉, 강을 건너는데 도움을 주었다)’했다고 해서 그곳을

  이천군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이천을 본관으로 하는 서()씨 또한 여기서 유래한것

 

3) 경주(慶州)의 유래

  935년 신라 경순왕의 항복에 고무된 왕건은 수도 계림경사스런 고을이라는 뜻의

  경주(慶州)로 명칭을 바꾼다.

 

- 토성분정 정책(본관제)은 단순히 지방세력에게 본관과 성씨를 부여하는 제도를 뛰어

  넘는 정책으로 초기에 토성을 부여 받은 계층은 지방 유력층으로 백성층이라 했다.

  백성은 보통 사람들이란 지금의 뜻과 다르게 성씨를 받아 지배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계층이란 뜻으로 958(광종 9) 과거제는 본관과 성씨 사용이 일반인 계층까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1055(문종 9)에는 씨족록에 올라 있지 않은 본관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 고려 500년간 왕실의 자손이 번창하지 못한 원인을 근친혼에서 찾고 있는데

  근친혼은 당시 왕실 및 왕권의 안정과 강화를 위해 고려 왕실이 택한 불가피한 조치

  였는데, 4대 광종은 근친혼을 한 첫 국왕이며 8대 현종에 이르러서야 왕실 외부

  가문으로부터 이성(異姓) 후비가 들어오지만 왕권과 왕실이 점차 안정화되어 가자

  유력 가문의 딸을 맞아들여 외척 가문을 왕실의 울타리로 삼으려 했다.

 

- 태조 왕건이 직접 작성한 훈요십조는 고려 왕조 존속 기간 내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기준과 근거로 활용되었는데,

  8조에서 언급되고 있는 지역적 문제점(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 밖의 산과 땅)

  다룬 이야기는 고려에 가장 저항이 심했던 후백제 수도인 전주를 포함해 공주 홍성

  지역의 인물들을 등용할 때 금지할 것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지 이를 현대에까지

  적용하여 지역적 차별을 유도하는 것은 문제 있는 행동이다.

 

- 고려사회는 하나의 이념과 사상이 강조된 사회가 아니라 다양성이 존중된 다원사회로

  태조 왕건이 불교와 음양 사상을 강조한 것은 전쟁에 시달린 민심을 달래 주려는 것일

  뿐 이를 통치이념으로 삼으려 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행사가 팔관회로 이는 불교행사인 연등회와는 달리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로 고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민심과 사회를 결집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통합 기능을 수행한 축제행사였다.

 

- 고려가 송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자국과 관계를 맺게 하려는 것이 거란의 침입 목적

  임을 알아차린 서희는 두 나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압록강 주변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그 지역을 고려의 영토로 돌려 줄 것을 제안하여 관철시켰다.

 

- 고려 문종은 영토를 잠식하려는 거란의 위협을 제어하고 송나라의 책봉을 받아

  국왕과 왕실의 권위를 높여 문벌귀족을 억누르려 했다. 송나라 또한 고려와 연합해

  당면한 거란의 영토 침해 행위를 견제하여 했다.

  일제 식민학자들을 비롯한 일부 역사가들에 의해 사대주의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던

  이들 국가와의 책봉 -조공 관계는 실상은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는 자국의 안전과 실리를 추구하는 냉엄한 국제질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때 형제맹약은 실리외교의 또 다른 모습이다.

 

- 예종은 부왕인 숙종을 기리기 위해 천수사의 건립을 산하들이 반대하지만 윤관을

  앞세워 이를 관철시키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지만 윤관의 죽음으로 사면초가에

  빠진다.

  예종은 당대 최고의 문벌인 인주(인천) 이씨인 이자겸의 딸을 비로 맞아들여 이들과

  손을 잡고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

  따라서 이자겸을 외척으로 삼아 왕권은 보장 받지만 왕실과 왕권 강화를 괴한 부왕

  숙종의 부국강병은 포기해야 했다. 이에 따라 숙종 정책에 반대한 문벌 귀족 세력이

  득세하고 외척이 발호하는 길을 터주는 모양세가 된다.

  이자겸은 예종 사후에 아들이자 외손주인 인종에게 다시 두 딸을 출가시키며 왕권을

  압도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이자겸의 부상에 부담을 느낀 인종은 이자겸의 측근인

  척준경을 동원해 이자겸을 제거하지만 이후 나타난 외척의 발호와 개경 중심 문벌

  귀족의 현실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은 묘청의 난으로 연결된다.

- 1142(인종20) 김부식은 현직에서 사퇴 후 왕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기 시작해

  1145년에 완성하며 1170(의종 24) 일어난 무신정변(경계의 난)은 의종 주위의

  권력 집단인 내시, 환관과 술사, 친위 군사 간의 내부 세력 다툼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 고려 500년 동안 과거 합격자는 약 6,735명인데 그 가운데 무신정권 100년간 합격자

  는 전체의 33%2,229명으로 고려 전 기간을 감안하면 약 20%가 적정선임에도

  불구하고 합격자가 과다하다. 이는 과거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주어 정권에 대한 불평

  불만을 해소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를 통한 등용보다는 천거제를 두어

  실력보다는 무신 정권에 충성하려는 자를 더욱 중용하였다.

 

- 몽고(원나라)는 총 7차에 걸쳐 침입을 하였는데, 특히 1254(고종 41) 몽골과의 30

  전쟁에서 최대의 피해를 보았다. 이때 원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인원이 207천 명

  으로 당시 고려 인구를 500만으로 보았을 때 전 인구의 약 10%가 포로로 끌려갔다.

  1270(원종 11) 고려 정부가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반발한

  무신들이 삼별초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든다.

 

- 삼별초 항쟁의 초기 모습은 몽골에 대한 저항을 명분으로 민심을 결집하고, 몽골과

  결탁해 삼별초군을 해산하고 개경으로 환도하려는 국왕과 지배층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이었다.

  삼별초 항쟁은 몽골의 압력이 점차 강화되고 무신들의 권력 기반이 크게 약화되자

  그에 대응하여 일어난 반 왕조적 정치운동이었다. 대표적인 증거가 진도를 근거지로

  궁궐과 성을 수축하고 새로운 국왕을 옹립하여 독자적인 진도 정부를 세운 것이

  구체적인 증거이다.

 

- 원의 간섭기 동안 두드러진 활동을 한 인물로 55(평민15, 천민10, 상인2, 승려3,

  외국인7)을 들고 있다. , 억압과 규제만 받아온 민초들에게 원의 간섭은 기회와

  희망의 시기였던 것이다. 민초들의 신분 상승을 주도한 계층은 부곡인(部曲人)’으로

  이들은 향, 부곡, , , 처라는 특수행정구역에 거주하는 하층 주민들이었다.

  무신정권의 권력자들이 불법으로 남의 토지를 빼앗고 공물을 수탈하자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하층민이 저항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들이 부곡인들이었으며

  대표적 사건이 망이, 망소의 난이다.

  고려 후기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는데, 부곡인은

  그런 변화에 편승하여 계층 분화를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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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믿을 것인가 - 시대의 지성 김형석 교수가 전하는 올바른 신앙의 길
김형석 지음 / 이와우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9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종교적 갈등과 생활 자세에 대한 의구심 및

해묵었던 나만이 갖고 있던 종교적 의혹을 확실히 제거해 준 작품이었다

 

교회를 다니며 아니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와 교인들이 벌이는 각종 말도 안 되는 행동

말투를 듣고, 보면서 나에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크게 들었고, 진정 그들은 신도들을

하나님 곁으로 모이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그냥 단순한 헌금 기계로 보는

것인지 정말 힘들었던 시기가 많았다.

그러면서 교회와 신앙생활 속에 마주하게 되는 나만의 대표적 의구심 10가지가 있었다.

  1) 십일조는 꼭 해야 하며 보는 사람도 없는데 조금 적게 내면 안 되는가?

  2) 교회오는 것도 내가 백 번 양보한 것인데 왜 자꾸 교회에서의 봉사를 강요하나?

  3) ‘방언을 못하면 진실한 교인이 아닌가?

  4) 예배는 반드시 내가 다니는 교회에 와서 해야만 하는가?

  5)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죽은 사람들은 정녕 천국에 못 가는가?

  6) 바쁘거나 휴가를 갔을 때 다른 교회나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 안 되나?

  7) 주일, 수요, 금요 철야 예배 등 모든 예배에 참여해야 진정한 교인인가?

  8)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 용서해 준다는 데 꼭 지금부터 교회에 다닐 필요가 있는가?

  9) 교회 종사자들도 헌금 횡령, 사기 등으로 개판인데 거기서 뭘 배울게 있겠는가?

10) 진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려움 속에 있는 신도들을 그냥 방치하겠는가?

등과 같이 교회에 처음나오는 사람이나 비교인들이라면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문제를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완전히 해소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으며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명답을 이야기해도 웃기시네라는

답변만이 나올 뿐 절대적으로 명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어쨌든 나는 작품을 통해 각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일반인들 즉, 비기독교인들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생뚱맞게 알지도 만나 보지도 못 한 분에게 드리는 십일조 헌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 역시 결혼과 동시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모태 신앙에 가까운 와이프와

헌금 문제로 상당한 다툼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십일조의 이야기가 나를 흔들어 놓았는데

가장 크게 나의 심중을 흔들어 놓은 대목은 바로 구약 신명기 2612말씀이었다.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라는 대목이었다.

이 구절 중에서 가장 크게 와서 닿은 단어는 고아과부였다.

나는 여기서 십일조 헌금이 정말로 어렵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로 대변되는 고아

과부를 위해 사용하시겠다는 내용을 읽고는 십일조 헌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나는 교회에 다니며 십일조와는 상관없이 평소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살거나 잘 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정말로 어려운 이웃들이 너무도 많다. 간혹 기도를 드리기 위해

묵상을 하고 있으면 주위에서 들려오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웃들이 너무도 많았고,

고등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학생들의 실상을 보면서 어려운 학생들에게 당장

베풀 수 있는 것은 사랑도 인내도 아닌 빵이다라는 생각 속에 조그맣게 실행을 했었던

것이며 그것이 십일조 헌금으로 변모된 것이다.

 

내가 십일조를 한다고 하면 대개의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우리가 십일조를 잘 냈는데 교회 목사나 장로들이 이 돈을 떼어 먹거나 횡령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다. 또 그런 일이 쉽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각종 매스컴을 통해서도 알고 있다. 사람들이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지는

않는 것과 같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지 목사나

장로를 보고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그들이 내가 낸 헌금을 떼 먹거나 횡령을 했다면 그들의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주님 앞에 나가 심판을 받을 때 그 모든 것이 감안되어 그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 앞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는데 뭐가 무서워

헌금을 회피하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헌금이 제대로 쓰여 지고 있는지만 감시하면 되는

것이지 미주알고주알 따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를 믿고, 목회자를 믿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입장에서도 마냥 은혜와 축복으로만 물질 우선주의에 빠져 살고 있는 인간에게

뭔가를 보여 주어여 하는데 다시 말해 물질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하나님을 믿을 터인데

당장 배고픔 속에 허덕이고 있는 인간들에게 마냥 축복만 이야기해 본들 그런 이야기가

통용이 되겠으며, 배고픈 인간들이 쉽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는가?

그러다 보니 인간들에게 당장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헌금을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지상의 통용 화폐인 은혜와 축복이 아닌 물질적인 축복을 조금

내리시는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럼 반드시 십일조를 10%를 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0%라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율이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개인적인 능력 범위를 수치적

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성경에 성의껏내라고 하면 이를 듣는 이들에게 수량적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가 성의가 있는 것인지 굉장한 혼란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획득한 물질을 열 개냈는데 다른 사람은 비슷한 물질 열 한 개

내는 사람보다 성의가 없어 보일 것이요, 어떤 이는 열 두 개를 내서 열 한 개를 내는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으니 이 모든 것을 감안해 기준점을 제시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기준점이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은 물질 헌납의 시간이 되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릴 것이다.

그런 십일조를 그럼 어떤 방식으로 내야 할까?

식구가 다섯 명인 사람이 몇날 며칠을 굶다 어렵게 일자리를 얻어 그날 양식으로 감자

다섯 알을 구했다고 치자, 감자 한 알로 허기를 채우기도 벅찬데 그 중에 한 알을 교회

십일조로 내라고 한다면 그 사람 눈알은 돌아갈 것이다.

천상의 주님도, 하나님도 중요하지만 내가 당장 배가 고픈데 무슨 헌금이요 십일조인가

말이다. 다섯 알을 다 충분히 나누어 먹고 힘을 내서 다음날 열심히 일을 해서 감자

열 알을 구해와 두 알을 헌금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괜히 배고픈데 감자 한 알 헌금했다가 다음날 힘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임금으로

감자 네 알만 받으면 어찌 되겠는가?

따라서 십일조의 의미는 교인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한

것이지 반드시 10%를 지키는 것을 절대율로 가져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매번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나의 경우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싶다.

?

나는 그래도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어렵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내가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굉장한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오늘날 나를 이렇게 살게 해 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무엇은 무엇인가?

부모님, 형제, 친구, 친척...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것은 정답일수도 있지만 오답일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항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한다. 아주 정확히 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때는 십일조 하는 날을 기다리고도 있다. 남들이 들으면 미친놈이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렇다.

내가 십일조를 낸다는 것은 내게 직장이나 직업 등을 통해 나와 나의 가족의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를 창출할 수 있는 뭔가에 종사하고 있다는 뜻이요, 살아 있다는

증거요,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이를 짜증내면서 하는가.

혹자는 이야기할 것이다. 반드시 교회에 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교회가 싫고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의심된다면 사회에 그만큼 기부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니 십일조는 꼭 하시기 바랍니다.

 

방언에 관한 것도 그렇다.

솔직히 기도를 하는 도중에 옆에서 신실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사람들이 방언을 하면

무섭다. 그냥 무섭다. 그 방언이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이야기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신뢰성이 전혀 없다. 하나님과의 소통이라면 방언을 하는 사람이 전부

비슷하거나 유사해야 하는데 전혀 통일성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볼 때는 기도하는

이들이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하면서 방언 즉,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 진다.

교회를 20여년 다닌 나도 아직 그 방언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방언을 믿을 수

없고 방언이 안 된다고 주눅이 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부가 제시한 의무 교육을 다 했다고 모두가 영어를 외국인처럼 이야기할 수 없듯이

어떤 사람은 방언에 능통할 것이요 어떤 사람은 은혜를 많이 받아 봉사와 섬김을 잘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전도를 잘하듯이 개인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능통한 방언만이

신실한 신자라는 등식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교회와 신자 그리고 종교 생활에 관련된 하고픈 말과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가

엄청 많지만 여기서 줄이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종교생활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밝은 영향을 주려는

한 요소로 작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개인

스스로가 진실한 교인이라면 몸과 마음을 다하여 행동을 잘하여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런 종교관과 생활 철학을 가지고 오늘도 교회에 간다.

내가 교회와 지역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예로서 회사에서는 신문을 많이 보고 폐지로 엄청난 양의 폐휴지가 나온다.

나는 주말마다 이를 모아 교회에서 불우이웃돕기용 폐지 수거함에 내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십일조 헌금에 버금가는 기쁨을 느끼고는 하는데 이런 것 하나하나가 모일

때 나만의 종교관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내가 언급한 종교생활을 하면서 마주하게 된 의구심 10가지에

대한 해결책이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구매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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